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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 최초 바티칸 대법원 변호사 한동일

『그래도 꿈꿀 권리』 한동일 저자 인터뷰 시간만 12시간, 문제만 200쪽 변호사 시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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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꿈꿀 권리』는 한동일 교수의 자서전이다. 서문에서도 밝혔듯, 이 책은 특히 청춘을 향해 썼다. 한동일 교수는 요즘 청춘이 이전 세대보다 똑똑하고 능력도 많은데도 꿈을 잃었다고 본다. 고비도 있었지만, 역경을 이겨낸 그의 삶을 읽으면 청춘들이 꿈꿀 능력을 다시 찾을 수도 있지 않을까.

프란체스코 교황 방한으로 한국에서도 가톨릭, 교황청을 향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교황청은 지구에서 오랜 역사를 버텨낸 조직 중 대표적인 곳이다. 교황청은 복잡한 조직으로 이뤄져 있다. 그중에서도 당연히 사법부가 있는데, 한국인 최초이자 동아시아 최초로 바티칸 대법원 변호사가 된 사람이 있다. 바로 한동일 교수가 그다.

 

그냥 변호사가 되기도 쉽지 않은데, 바티칸 대법원 변호사가 되기 위해서는 더 어려운 과정을 겪어야 한다. 수많은 법률과 판례를 알아야 하지만, 우선은 라틴어로 그것을 읽어내야 하는 능력도 갖춰야 한다. 얼마나 어려울지 짐작이 간다. 그럼에도 한동일 교수가 이 과정을 견뎌낼 수 있었던 데에는 공부를 향한 열정과 꿈이 있었던 까닭이다.

 

한동일


한국과 로마를 오가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최근에 어떻게 지내셨나요?


서강대에서 라틴어 교양강좌를 맡고부터는 교단에서 학생들을 만나는 일이 하나의 즐거움이 되었습니다. 2010년도 2학기부터 강의를 시작하게 되었는데 ‘교양수업이라서 학점을 채우기 위해 수업을 들으려나 보다.’ 하고 생각했죠. 그러나 큰 오산이었습니다. 스펀지 같은 놀라운 흡수력을 가진 친구들이 호기심 가득한 눈빛을 반짝이며 제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고, 그들의 열정은 저에게도 큰 자극이 되었습니다. 요즘은 오히려 제가 학생들로부터 에너지를 얻곤 합니다. 학기 중에는 강의준비와 연구를 병행하고 있고, 방학이 되면 바티칸으로 돌아가 변호사로서의 본분에 충실하게 지냅니다. 그런데 최근에는 『그래도 꿈꿀 권리』를 출간한 이후 방송과 언론 인터뷰 요청이 많아져서 바티칸으로 돌아가는 일정이 조금 늦춰졌습니다. 다행히도 로타 로마나 관계자 분들께서 “당신이 행복한 일을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충분히 기다릴 수 있으니 당신이 해야 할 일들을 마치고 돌아오라.”며 너그러이 이해해 주셨습니다.

 

『그래도 꿈꿀 권리』는 많은 사람에게 귀감이 될 만한 이야기 같습니다. 특히 청소년에게 보내는 메시지 같은데요. 제목에 ‘그래도’라는 표현을 굳이 붙인 의미가 있을 것 같습니다.


사실 우리 사회에는 이러저러한 자기계발서나 “공부는 이렇게 하라”는 식의 책들이 난무합니다. 사실 저 또한 그러한 류의 책을 세상에 더하지나 않을까 걱정했습니다. 그럼에도 책의 출간을 결심하고, 책 제목에 ‘그래도’라는 말을 덧붙인 이유는 어떤 가르침을 주기 위함이 아니라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으면 하는 간절한 바람 때문이었습니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성취하기가 점점 힘들어지는 것이 요즘의 현실입니다. 특히 책임지지 않는 어른들이 많아지는 것 역시 모두를 허탈하게 합니다. 그러나 ‘나의 작은 노력이 있고, 우리의 노력이 모이면 더 나은 세상을 만들 수 있다.’는 사실만은 분명합니다. 그런 작은 희망의 불씨들이 모여 큰 불씨가 되는 법이니까요. 다음 세대가 맞이할 세상은 그런 ‘희망의 불씨를 꺼트리지 않는 사회였으면 좋겠다’는 마음에서, 그래도 ‘꿈꾸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서, 출판사에서 제안한 여러 제목 중 이 제목을 추천하였습니다.

 

사제 서품을 받은 뒤, 공부를 그치지 않고 계속했습니다. 공부를 멈추고 신부로 신앙 활동을 계속할 수도 있었는데요. 어려운 대법원 변호사 시험에 도전한 계기가 궁금합니다.


사실 공부를 멈추고 일반적인 사제의 모습으로 살았다면 더 편하고 좋은 부분도 많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제 안에 있었던 뭔가 모를 강렬한 열정이 바티칸 대법원 변호사 시험에 도전하도록 했습니다. 거기에는 한국인이 가지 않았던 새로운 길을 가고자 하는 마음도 있었습니다. 지금은 동양인들에 대한 처우가 좀 나아졌지만, 10년 전만 해도 동양인들을 멸시하는 발언이나 행동이 다반사였습니다. 더욱이, “동양인들은 유럽인들을 넘어설 수 없다”는 편견을 이겨내고 싶었고, 제 자신과의 싸움에서도 지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사실 처음의 마음은 ‘오기’였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해낼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은 없었지만, 그에 대해 시도를 했다는 것만으로도 제 인생에 충분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해서 변호사 시험에 지원하게 되었습니다.

 

대한민국 최초이자, 동아시아 최초의 바티칸 대법원 변호사인데요. 일반인들은 바티칸 대법원이라는 존재가 생소할 것 같습니다. 설명 부탁드립니다.


통상 우리나라에서는 ‘교회법’이라고 하면 종교단체의 내부 규율 정도겠거니 하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서양법제사 안에서 교회법은 오늘날의 입법사상 형성에 광범위한 영향을 끼칩니다. 가령 원상회복, 무죄추정의 원칙, 기득권 보호, 다수결의 원칙, 고리대금업의 금지, 소송대리인 제도, 불법행위 금지, 긴급피난 제도 등 수없이 많은 제도들이 교회법의 결정에서 영향을 받은 것들이지요. 그런 항목들만 봐도 교회법의 모체가 되는 ‘바티칸 대법원’이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 곳인지를 짐작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구체적으로 바티칸 대법원인 로타 로마나는 교황이 상소를 받기 위해 설치한 상설법원입니다. 바티칸 대법원이 있는 로타 로마나 건물 정면에는 ‘Corte Imperiale’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습니다. ‘황제의 재판소’라는 뜻입니다. 현재 로타 로마나가 위치한 장소는 역사적으로 로마의 황제가 재판하던 곳이기도 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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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도 썼듯, 바티칸 대법원 변호사 시험은 문제만 200쪽, 시험시간이 무려 열두 시간인데요. 선생님께서는 이때 시험이 평생 잊히지 않을 것 같습니다. 두 번 시험을 치르셨는데, 그때 상황을 묘사한다면.


최종 변호인 자격시험은 장장 12시간에 걸쳐 이루어집니다. 최종 시험에까지 갈 수 있는 후보가 그리 많지 않기 때문에 커다란 시험장에는 몇 명의 후보자만이 각자 배정된 자리에서 시험을 보게 됩니다. 점심도 각 후보자의 책상으로 배달되고요. 그런데 사실 ‘밥 생각’이 전혀 들지가 않습니다. 마치 커다란 진공관에 빠져 있는 느낌이라고나 할까요! 정적만이 흐르는 그곳에서 200쪽이 넘는 재판 기록을 읽고 라틴어로 판결문을 쓰는 시험은 지금 생각해봐도 끔찍합니다.


변호사 자격시험은 일생에 딱 세 번의 기회가 주어지는데요. 두 번까지는 시험에 응시할 수 있지만 세 번째 시험을 치르려면 교황의 허가를 받아야 하기 때문에 거의 불가능한 일이라고 볼 수 있지요. 저는 너무 긴장한 나머지, 첫 시험에서는 탈락하고 말았습니다. 두 번째 시험을 보던 순간에도 양손이 너무 떨려서 시험을 치를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나약한 마음과 두려움 때문에 마지막 기회를 버릴 수는 없다는 생각이 번쩍 들어, 펜을 쥔 오른손을 왼손으로 붙잡고 한참이나 기도를 했지요. 열두 시간 내내 혼신의 힘을 다해 시험을 치르고 나니 몸과 영혼이 분리된 듯, 걸을 수조차 없는 상태였어요. 10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로마에서 공부를 해왔지만, 그날에야 처음으로 로마의 아름다운 노을을 제대로 바라보았던 기억이 납니다.  

 

바티칸 대법원 변호사로, 참여했던 재판 중 인상적인 게 있었다면?


참여한 재판보다 저의 첫 의뢰인이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변호사가 된 뒤 첫 사건 의뢰인을 만났습니다. 제 사무실에 들어오자마자 저를 보더니 그대로 나가더군요. 아마도 이탈리아 사람의 입장에서 동양인 변호사의 모습이 낯설었나 봅니다. 그 일이 있었던 뒤로 저는 또 다른 꿈을 꾸기 시작했습니다. 우리나라의 청년들이 세계 곳곳에서 저마다 역량을 떨치는 모습을요. 저는 개인적으로 ‘한국 최초의 바티칸 대법원 변호사’라는 표현이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한국인’이라는 단어가 세계인들에게 낯선 단어가 아니었으면 합니다. 제가 라틴어 강의를 하게 된 것도 우리 청년들이 시야를 넓혀 한국인으로서의 자긍심을 갖고 세계무대로 나아갔으면 하는 마음에서였습니다.

 

거의 한평생을 공부에 매진해오셨습니다. 선생님께 ‘공부’란 어떤 의미일까요?
 

‘공부’란 단순히 지식을 머릿속에 넣고 아는 것이 많아지는 게 아닙니다. 공부는 자신을 절제하고, 가치 있는 일의 우선순위를 구분할 줄 알고, 시간을 관리하는 등, 공부를 통해 자기 자신을 연마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누군가 나에게 불어넣어 주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배움을 찾아 나서야 하는 길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성취한 공부는 자신만을 위해서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공부해서 남 주는” 그런 공부를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는 제 인생의 ‘진짜 공부’가 이제부터 시작되는 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책을 쓰면서, 선생님의 인생을 쭉 돌아볼 수 있었던 계기가 되었을 것 같습니다. 선생님 인생에서 혹시 후회했던 순간이 있었나요? 


왜 없겠습니까. 뒤돌아보면 참 많은 순간들이 아쉽고 후회되는 순간들입니다. 그 가운데 가장 아쉬웠던 순간을 꼽으라면 공부를 다시 하러 가기 위해 제가 했던 행동들입니다. 제 신념도 중요하지만 주변도 중요하다는 것을 모르고 너무나 미성숙하게 행동했던 과거의 제 모습이 후회됩니다. 그때 조금 더 성숙하고 또 유연하게 생각하고 행동했더라면… 하는 생각을 가끔 해봅니다.

 

책에서 대한민국의 학생들을 위한 애정 어린 비판도 아끼지 않으셨습니다. 요즘 학생들은 어떤 점에서 예전보다 낫고, 어떤 점에서는 좀 약한가요?


요즘 학생들은 외국어 능력이나 국제적인 감각 면에서 저희 때보다 훨씬 탁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자기 자신의 꿈을 계획하고 목표를 설정하는 데는 상당히 취약합니다. 마치 ‘선택장애’에 빠진 사람들처럼요. 그러나 그것은 아이들 자신의 문제가 아닌, 우리 사회의 구조문제와 직결되는 것이기도 합니다. 획일화된 교육 방식의 결과물인 ‘일류대학 입학’과 ‘대기업 취업’이라는 단 하나의 목적 때문이리라 생각합니다. 자신이 무엇을 하고 싶어하는지, 무엇을 가장 잘할 수 있는지를 찾아나가는 것이 급선무입니다. 그래야만 ‘진짜 행복한 나’를 만날 수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만의 선택과 결정을 할 수 있는 독립적인 자아를 찾아야겠지요. 공부도 중요하지만 ‘나만의 목표설정’과 ‘동기 부여’가 먼저여야 한다는 것을 간과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세계무대를 향한 도전을 준비하고 있는 2030세대 청년들에게 마지막으로 전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무엇입니까?


“자아의 신화를 이루어내는 것이야말로 이 세상 모든 사람에게 부과된 유일한 의무다. 간절히 원할 때 온 우주는 그 소망이 실현되도록 도와준다”는 파울로 코엘료의 말을 기억합니다. 저는 천주교인이기 때문에 ‘온 우주의 도움’을 결국 신의 도움으로 생각하지만, 우주의 힘이든 신의 힘이든 사람이 무엇을 간절히 원하고 바라고 노력할 때 그것이 꼭 이루어지도록 만드는 손길이 분명 있다고 느낍니다. 제가 지금까지 걸어온 모든 성취 역시 하느님의 도움과 주변의 많은 분들의 배려 덕분에 가능한 것이었다고 생각하지만, 그러한 도움의 손길을 받아들일 기회는 다른 누가 만들어주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 자신이 끊임없이 꿈을 그리고 끊임없이 방법을 찾는 순간에 보이는 법입니다. 지금은 캄캄한 터널을 지나는 것처럼 한 치 앞이 보이지 않고 불안하겠지만, “해낼 수 있다”는 신념 하나로 당신이 맞은 오늘을 지혜롭게 헤쳐나가길 바랍니다. 물론 힘든 순간도 있겠지요. 그럴 때에는 내 자신이 바보 같다고 생각하며 주저앉지 말고, 우리가 간혹 오늘 할 일을 내일로 미루듯 고통을 잠시 뒤로 미루는 법도 터득하길 바랍니다. 그렇게 잠시 호흡을 가다듬고 마음이 조금 더 단단해졌을 때 다시 한번 도약하면 됩니다. 여러분이 원하는 바를 잊지 않고 마음에 새기다 보면 머릿속에 그리던 그 무대가 비로소 눈앞에 펼쳐질 거라 믿습니다. 제가 경험했던 놀라운 기적이 당신에게도 꼭 이루어지기를 기도합니다.
  

* 이 인터뷰는 서면으로 진행했습니다.

 

 

그래도 꿈꿀 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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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꿈꿀 권리 한동일 저 | 비채
한국인 최초, 최우등 수료, 5개 국어 구사’와 같은 수식어를 가진 그이지만 이 책은 성공담이 아니다. 오히려 실패담에 가깝다. ‘꿈꿀 수 없는 사회’라는 딜레마에 갇힌 청년들을 위한 헌사이기도 하다. 그래서인지 이 이야기 속에는 현실과의 타협을 종용하던 가난과 끝이 보이지 않는 언어장벽을 넘어서야 했던 청년 한동일의 꿈과 인생, 끝나지 않은 도전과정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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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손민규(인문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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