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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우림, 변신을 통한 성장

“아무리 몸부림을 쳐도 아무 것도 변하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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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우림이 아홉 번째 앨범을 발표했습니다. 이번 앨범은 그간 보여주었던 '짝수는 어두운 앨범, 홀수는 밝은 앨범'의 공식에서 벗어나있네요. 고민의 흔적이 여실히 드러나는 음악을 통해 이번 앨범은 보다 많은 이들의 공감을 사고 있습니다. 이번 주에는 자우림의 <Goodbye, Grief> 소개해드립니다.

자우림 <Goodbye, Grief>

이번 그들의 음악은 1집에서 8집까지의 흐름이 아닌, <나는 가수다> 이후의 맥락으로 바라보아야 이해가 빠르다. 사운드의 확장이 자신들의 고유 색깔 내에서 조심스럽게 이루어지고 있던 그간의 모습과는 달리, 이번엔 뚜렷한 기승전결과 공감대 있는 가사들로 ‘자우림’이라는 브랜드가 주는 기존의 이미지를 상당부분 배제하며 작품의 실마리를 풀어나가기 때문이다. 9집이 ‘짝수는 어두운 앨범, 홀수는 밝은 앨범’이라는 기존의 공식에서 벗어난 별개의 스페셜 에디션으로 느껴지는 것은 아마 그런 연유에서일 것이다.

무엇보다 크게 다가오는 것은 김윤아의 역할이다. 강렬함을 넘어 때로는 표독스럽기까지 했던 마녀가 이젠 위트를 담아 삶에 대한 조언을 건넬 줄 아는 착한 누나가 되었다면 적절한 비유일까. 덕분에 프론트우먼을 필두로 대중들에게 투과시켰던 비주류만의 독특함과 밴드의 카리스마는 어느 때보다도 중화되었다. 최근작들이었던 「Carnival Amour」 나 「Idol」 에서 보여준 과장된 연기는 자제하고, 한 호흡 물러서며 ‘진짜 목소리’를 담아내려 한 것이 신작의 접근성을 높인 가장 큰 요인이 되었다.

이렇게 제스처가 큰 뮤지컬 배우에서 현실을 닮은 드라마 배우로 역할을 변경함과 동시에 이들의 음악도 확실히 대중을 고려하기 시작했다. 타이틀곡 「스물다섯, 스물하나」 는 대표적인 예가 될 만한데. 청춘을 회고하는 담담한 음색 위에 밴드 사운드와 현악 세션의 조화가 이들의 철학을 다른 스타일로 그려낸다. 이렇듯 한결 다가가기 쉬워진 음조는 그만큼 사람들의 마음에 닿을 확률을 높이기 마련이다. 음원 차트에서 선방하고 있는 지금의 상황은 이를 반영하고 있으며, 동시에 이들의 운전대가 전과는 다른 방향으로 틀어져 있음을 암시한다.

또한 타이틀에서 엿볼 수 있듯 ‘기타, 드럼, 베이스’라는 틀도 이전에 비해 많은 균열이 가 있다. 「스물다섯, 스물하나」 를 비롯해 「Anna」 에서는 스트링 사운드가 주도적으로 곡을 이끌어나가며, 「이카루스」에서는 드럼의 생동감을 최대한 억누른 둔탁한 비트로 몽환적인 분위기를 연출한다. 또한 1970~80년대 그룹사운드의 소리를 재현하려 한 듯한 올드한 신스 사운드의 삽입은 이전까지의 세련미와는 정반대의 대조를 이루며 예상외의 매력 포인트를 만들었다. 이에 해당하는 두곡, 「님아」 에서는 로큰롤 리듬 위로 생경하다고 할만한 ‘뽕끼’가 충만하고, 「템페스트」 역시 마그마의 「해야」 가 떠오르는 듯한 그 당시 밴드 사운드의 비장미가 재현된다.

편곡적인 측면에서도 점층적 구성, 템포의 변화 및 웅장한 코러스의 사용 등으로 기승전결을 확실히 구분한 자극적인 형식미를 추구하고 있다. 느린 템포의 키보드로 시작해 부분부분 가속을 올리며 절정으로 몰고 간 다음 다시 처음으로 돌아오며 듣는 이의 긴장감과 집중력을 끝까지 보존하는 「Dear mother」 가 대표적이며, 「I feel good」 역시 개러지 록을 기반으로 음울한 진행을 보이다, 후렴구에선 밝은 분위기로 일신하며 반전의 일타를 날린다. 이러한 스펙터클한 사운드의 운용과 다변하는 구조로의 이동은 확실히 <나는 가수다>에서 선보였던 무대와 맥락이 닿아 있다. 방향 전환에 있어 해당 프로그램에서의 경험이 큰 계기가 되었음을 알법한 대목이다.

다소 정체기였던 <음모론>(2011) 이후 기존에 맞추어 놓았던 퍼즐을 흩뜨려 놓은 다음, 그것을 맞춰가는 과정에서 나온 색다른 장식품이다. 우리가 알고 있던 독특한 맛의 메인 디시는 아니지만, 화려한 장식을 걷어 내고 좀 더 본질에 다가간 태도가 그간의 커리어를 새로운 국면으로 이끌고 있다. 크게 크게 그려냈던 이전의 공상을 좀 더 현실에 있음직한 캔버스로 대체했으며, 이로 인해 전보다 많은 사람들이 이들의 음악에 공감하고 위로받고 있다는 사실은 변신이 성공적이었음을 시사한다. 단순한 시간의 흐름 대신 고민과 자기반성의 지배하에 있는 밴드의 역사가 이끌어낸 긍정적인 한걸음이다. 어느덧 보라색 비가 그쳐 버린 숲 속, 이들은 햇살 너머 선명히 새겨진 무지개를 잘 따라가는 중이다.

글/ 황선업(sunup.and.down16@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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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이즘

이즘(www.izm.co.kr)은 음악 평론가 임진모를 주축으로 운영되는 대중음악 웹진이다. 2001년 8월에 오픈한 이래로 매주 가요, 팝, 영화음악에 대한 리뷰를 게재해 오고 있다. 초기에는 한국의 ‘올뮤직가이드’를 목표로 데이터베이스 구축에 힘썼으나 지금은 인터뷰와 리뷰 중심의 웹진에 비중을 두고 있다. 풍부한 자료가 구비된 음악 라이브러리와 필자 개개인의 관점이 살아 있는 비평 사이트를 동시에 추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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