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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경선, 제발 남과 비교하지 말자

『나라는 여자』 임경선 작가와의 상상 북 토크 속 깊고, 은밀하며, 섹시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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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고프지 않으세요? 금요일 저녁 7시인데, 데이트도 안 하시고.” 털털한 첫 마디와 함께 임경선이 등장했다. 그녀는 자신의 성장기를 담은 산문집 『나라는 여자』를 펴냈다. 이번 ‘상상 북 토크’ 행사는 출판사 마음산책의 진행으로 이루어졌다.

6월 21일, KT&G 서대문타워 상상 아뜰리에에 그녀가 문을 열고 거의 뛰다시피 등장했다. 80여 명 남짓의 독자들은 사뭇 진지한 표정이었다. 연예인 팬클럽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하게 작가의 사진을 찍는 모습도 보였다. 그녀의 솔직한 충고가 꾸준히 인기를 얻고 있다. 임경선은 외교관 아버지를 따라 여러 나라를 누비며 자랐다. 오랜 직장 생활 뒤에 프리랜서로 전향하여 ‘관계’와 ‘태도’에 대해 꾸준히 글을 써왔다. 저서로는 『러브 패러독스』, 『캣우먼의 발칙한 연애 관찰기』, 『연애본능』, 『하루키와 노르웨이 숲을 걷다』, 『대한민국에서 일하는 여자로 산다는 것』, 소설집 『어떤 날 그녀들이』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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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한 그녀, 자신을 완전히 비워내다

 

독자와의 만남은 ‘근황 토크’로 시작했다. 책이 나온 지 두 달이 된 지금은, 책과 관련한 특별한 생각을 하지 않는다고 했다. 오히려 심리적으로 놓아주는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밝혔다. 많은 사람이 생각하는 것과는 달리 대부분의 시간을 혼자 웅크리며 지낸다는 그녀. 세상이 바라보는 이미지와 다른 자신의 본 모습을 밝히길 꺼리지 않았다.

 

“사람들이 내 책을 읽었다는 감동에 익숙해지면서 둔해졌다. 글을 쓸 때 가장 중요한 건 절실함이다. 그래야 행동으로 옮길 수 있으니까. 일 년 사이에 책을 두 권 연이어 내다보니 충전기가 필요하다. 결핍과 갈증을 기다리는 요즘이다. 결론은 잘 지내고 있다. 앞으로 어떤 형태로든 책을 쓰고 싶다.”

 

내려놨던 마이크를 다시 잡으며 꼭 하고 싶다는 이야기를 이어갔다. 가져온 책을 펼쳤다. 제임스 설터의 『가벼운 나날』이었다.

 

“세상엔 두 종류의 삶이 있다. 사람들이 생각하는 당신의 삶. 그리고 당신이 원하는 당신의 삶.”

 

임경선은 자신이 누군가가 부러워하는 사람이라는 게 믿기지 않는다고 했다.

 

“육아도 직접 하고 책도 쓰고 특강도 나가기에 언뜻 그렇게 보일 수 있다. 멋지고 재미있는 삶이라는 소리를 종종 듣는다. 그럴 때마다 굉장히 놀랍다. 겉으로 보이는 게 다가 아닌데……”

 

임경선은 『나라는 여자』로 자신의 모습을 드러냈다. 이 책을 낸 후 울적한 기분이 들기도 했다는 그녀. 완전히 비우고 나니 그 공허함에 압도된 느낌이었다고 한다. 근황 토크를 마친 뒤 독자들과의 질의응답이 이어졌다. 새로 나온 책 이야기부터 개인적인 고민까지, 그녀를 향한 질문은 여러 가지였다.

 

 

이번 책을 쓰는 데 필요했던 절박함은 무엇이었나.

 

개인사를 소설에 녹이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야기는 있는 그대로 하는 게 제일 재미있다. 헤어진 옛 애인 이야기를 각색하는 건 치사하지 않은가. 내 안에 있는 이야깃거리를 비워내고자 했다. 완전히 빈 상태로 장편 소설에 도전하고 싶었다.

 

세상을 정면으로 마주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그런 거창한 건 현실에 없다. 실제로 세상을 직면하는 건 나에게 주어진 과제를 최대한 열심히 하는 거다. 동시에 차선책을 얼마나 치밀하고 예리하게 세우는지가 관건이다. 현재의 과제조차 하지 않으면서 거창한 것만 바라보며 불평하는 마음 자세는 버려야 한다. 이력서에 10년 후 자신의 모습을 쓰라는 게 가장 무의미하다. 길어야 내년이나 내후년의 문제가 중요하다고 본다.

 

콤플렉스를 극복하고 남과 비교하지 않으며 살 방법은 없을까?

 

남과 비교하지 않으며 산다는 건 굉장히 힘들다. 개인적으로 쓰는 방법은, 일단 채울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을 나눈다. 채울 수 있는 것만 신경 쓰며 살아가고자 한다. 놓아줄 건 놓아주는 게 맞다. 나이 들면 체력도 떨어진다. 물고 늘어질 것만 늘어지자. 나도 주변 사람들과 비교하고 욕망도 컸던 20대를 보냈다. 30대 중반부터는 이런 걸 추리고 내가 놓쳤던 것에 ‘안녕’을 고해야 견딜 수 있다. 꼭 성취의 대상이 아니라도 자체로 즐거울 수 있는 것을 찾자. 우리는 자기 콤플렉스에 취해있는 것 같다. 너무 무겁다. 의식적으로라도 도마뱀 꼬리 잘라내듯이 적당히 잘라내자.

 

남이 바라보는 나와 내가 아는 자신의 모습이 달라서 혼란스럽다.

 

‘나’라는 존재는 계속 바뀐다. 사람들이 내 말투를 들으면 ‘쿨한 여자’라고 생각한다. 현실은 ‘개뿔’, 하나도 쿨하지 않다. 수줍음 많고 대중 앞에 서는 게 헛구역질 날 정도로 힘들다. 이 나이 먹도록 여전하다. 어쨌든 다양한 자신의 모습을 즐기는 게 좋은 일이다.

 

다음 여행지는 어디인가?

 

다음 여행지는 하와이다. 『엄마와 연애할 때』로 벌은 인세로 딸에게 가자고 약속했던 곳이다. 처음엔 두 달 정도 가려고 했는데, 생각해 보니 너무 긴 것 같았다. 한 달로 줄였지만, 딸과의 시간치고는 그것도 길어서 열흘로 줄였다. (웃음) 엄청난 검색으로 묵고 싶었던 멋진 호텔에 묵기로 했다.

 

외국 생활을 오래 했는데, 한국에서의 대학 선후배 관계는 어땠나.

 

선후배 관계는 애초에 틀렸다. 대신 연애를 했다. (웃음) 모르거나 의구심이 생기는 부분이 있으면 질문을 많이 했던 것 같다.

 

결혼 전과 후에 남성관이 많이 달라졌나.

 

나는 굉장히 주관적이다. 주로 이상한 사람들을 좋아했다. 똘똘하고 자신만의 세계가 있으면서 예민하고 예술적이고 이상주의적인 사람 말이다. 우디 앨런 같은 사람. 둘 만의 세계가 생기기 때문에 연애하기 참 좋았다. 여전히 그런 사람을 좋아한다. 대신 남편은 내 오래된 취향과는 거리가 멀다. (웃음) 그래서 결혼한 게 아닌가 싶다. 내 취향의 남자들에겐 내가 더 퍼주고 더 좋아한다. 정신이 늙은 사람은 싫다. 모든 걸 나이 탓으로 돌리는 건 재미없다. 꾸역꾸역 좀비처럼 사는 건 사회적으로도 민폐다.

 

일상생활 속에서 어떻게 창조력을 발휘하나.

 

일은 회사에서처럼 한다. 아이 유치원 보내고 청소부터 한다. 오전엔 고정 연재물을 하고 오후엔 책 작업이다. 이후엔 살림도 하고 아이와의 시간을 보낸다. 이틀에 한 번은 운동도 한다. 항상 같은 패턴이다. 책을 쓸 때는 가사를 축소하고 효율화했다. 부단한 노력으로 남편과 가사 분담을 했다. 몸은 힘들지만, 일상을 시스템화하면 할 수 있다. 사람들 생각과는 달리 나는 비사교적인 생활을 한다. 사람도 잘 안 만나고 말도 거의 안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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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태어나도 결혼할 건가?

 

당연하다. 단, 서른 중반에 결혼하고 싶다. 기왕이면 두 번이고 세 번이고 하고 싶다. 결혼 생활은 굉장한 화두다. 인간이 결혼하는 이유는 이거 밖에 할 수 있는 게 없기 때문이다. 일부일처제는 매우 어려운 거다. (웃음) 아이와 엮인 문제를 빼고는, 한 사람과 그렇게 오래 사는 건 변태적인 일이다. 인간의 본성과 거리가 있기 때문이다.

 

‘작가’라는 직업이 내 일이라는 생각은 언제 들었나.

 

사실 작가라는 타이틀은 민망하다. 정체성이 아니라 상황의 문제인 것 같다. 현재 내가 글을 쓰는 정황이 있는 거지, 작가라는 직업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생각도 했다. 실체나 기준이 있는 것도 아니고, 꼭 등단해야 작가인가 싶기도 하다. 그 애매한 행위가 글쓰기이지 않은가. 타이틀이 아직 와 닿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천직이라고 생각한 적은 없다. 물론 그렇게 느끼는 분들을 굉장히 존중하고 부럽다. 원래 꿈은 연재 칼럼을 쓰는 것이었다. 지금 상황에서 편안하게 즐길 수 있고, 주변에 기쁨을 줄 수 있는 일을 계속 찾을 것 같다.

 

다음 작품은 무엇인가?

 

현재 장편소설을 구상 중이고, 목표이기도 하다. 더불어 캣우먼을 그리워하는 분들을 위해 정리 요약본 식의 책이 나올 예정이다.


남과 비교하지 마세요

 

『섹스 앤 더 시티』의 캐리 브래드쇼와 공감하기엔 뉴요커의 삶은 현실과 너무도 멀었다. 이효리의 독설은 멋지지만 그녀는 티브이 속에서 빛나는 스타다. 임경선은 자신을 ‘개뿔 쿨하지 않은 사람’이라고 했다. 전문 상담사도 아니고, 등단한 적도 없는 그녀가 많은 이들이 공감하는 글을 쓰는 작가가 되었다. 그녀는 살림할 때도 바닥에 무언가 떨어져 있는 걸 보지 못하는 성격이라고 했다. 자신을 찾아 고민을 털어 놓는 사람들의 마음속에 어질러진 파편들도 차곡차곡 주워담아 정리해주었다. 화려한 캐리도, 완벽한 이효리도 해줄 수 없는 말을 ‘쿨하지 않은’ 임경선은 척척 내뱉었다. 그녀는 자신을 찾아오는 고민 대부분은 남과 비교하는 태도가 원인이라고 했다. 세상이 기대하는 나의 모습에 주눅들지 말고 솔직하게 맞서라는 충고도 잊지 않았다.

 

“자신의 고민은 남과 비교함에 있어요. 남의 블로그나 SNS 보면서 침 흘리지 마세요. 개뿔, 아무것도 없다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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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는 여자 임경선 저 | 마음산책
이 책은 작가의 개인사에서 그치지 않는다.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경계인으로 살아가며 무수히 상처 받고 체념하고, 결국엔 스스로 단단해진 삶. 저자는 과한 자기연민 없이 현실을 받아들이면서 자발적으로 움직이고 꿈꾸는 것을 멈추지 않는다. 그녀는 말한다. 자신의 상처가 개인적으로 보이지만 사실은 보편적이고 우리 모두는 각자의 개별적인 상처를 떠안고 살아간다고. 그리고 그것은 “나라는 여자를 더 정직하고 선명하게” 만들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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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송인희

홋카이도의 매력에 흠뻑 빠져 삿포로에서 살고 있다.
새로운 언어와 문화, 일상을 여행한다.
먹고 마시는 것과 사소한 순간을 좋아하며, 종종 글자를 읽고 쓴다.
song_soon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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