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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뒷모습에도 멜랑콜리가 숨어있나요?

미술사가 이연식의 『응답하지 않는 세상을 만나면, 멜랑콜리』 미술에 대한 저술은 ‘말할 수 있는 것과 말할 수 없는 것의 경계’를 탐색하는 작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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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12일, 그림을 통해 예술가들의 멜랑콜리한 속마음을 엿보는 마련되었다. 이날 훌륭한 길잡이가 되어준 것은 신간 『응답하지 않는 세상을 만나면, 멜랑콜리』로 독자들을 찾은 미술사가 이연식이였다. 최근 왕성한 저술과 번역 작업으로 미술사에서 음울하고 기괴하고 에로틱한 것을 끌어내는데 몰두하고 있는 그는 ‘멜랑콜리’를 정면으로 마주한 예술가의 세계와 독자들을 만나게 해주었다.

예술가들이 마음 속 깊이 숨겨둔 ‘멜랑콜리’를 보여주기 위해 저자가 주목한 테마 중 하나는 ‘뒷모습’이었다. 뒷모습은 언제나 조금쯤 낯설게 다가온다. 연인이나 친구, 심지어 자신의 뒷모습일지라도. 저자는 화가가 그려놓은 다양한 뒷모습을 독자들과 함께 살펴보며 그 뒤에 가만히 숨어든 이야기들을 끄집어 내주었다.

저자가 처음 꺼낸 작품은 에드워드 호퍼의 「밤을 새우는 사람들」이었다. 그는 이 그림에서 뒷모습으로 앉아있는 남자가 자꾸 신경에 쓰인다고 말하며 상상을 시작했다. “한밤중에 술집이나 바에 마음에 드는 여성이 있는데, 남자는 둘이라 한 사람은 어쩔 수 없이 반대편 끝에 앉아있는 것 같지 않나요?” 이렇게 말한 저자는 곧 다른 이야기를 만들어냈다. “어쩌면 두 남자는 같은 사람일지도 모르겠네요. 그러니까 현실에서는 남자가 여자의 건너편에 앉아있는데, 남자의 상상 속에서는 여자 옆에 앉아있는 거죠. 그러니까 뒷모습이 현실이고 앞모습을 보이는 그림은 남자의 바람인 거예요.” 그림을 놓고 펼쳐지는 이야기가 재미있는지 독자들은 의자를 바짝 당겨 앉았다. 이렇듯 뒷모습은 상상력을 끌어당기는 부분이 있다고 말한 저자는 새로운 그림을 꺼냈다.

귀스타브 카유보트의 「창가의 남자」. 뒷모습은 자주 부정적으로 인식된다는 저자의 말을 들으며 그림을 바라보았다. 발코니에서 창 밖을 바라보고 서 있는 남자의 무거운 뒷모습이 그려져 있었다. 남자의 뒷모습은 완고해 보였다. 저자는 이 남자가 관객에게 마음을 닫고 있는 동시에 공간에서 소외된 느낌이 든다고 말했다. 이런 해석은 남자가 서 있는 발코니를 염두에 둔 것이었다. 집 전체를 생각해보면 발코니는 밖으로 향한 아주 작은 공간이다. 집 안에서 이루어지는 다른 많은 이야기들을 모두 등 뒤에 둔 채 고집스럽게 창 밖을 향한 남자의 모습은 고집스러운 동시에 외로운 느낌을 주었다.

뒷모습은 종종 감정을 극대화하는 효과를 보인다. 저자는 그 예로 앤드류 와이어스의 작품 「크리스티나의 세계」를 들었다. 미국을 대표하는 화가 앤드류 와이어스는 이웃동네에 살던 여성 크리스티나를 자주 그렸다고 한다. 「크리스티나의 세계」는 퇴행성근질환에 걸려있던 크리스티나가 부모의 무덤에 들렀다 다시 집으로 돌아가는 길을 그린 작품이다. 여기서 와이어스는 크리스티나의 얼굴이 보이지 않은 쪽을 선택했다. 그의 그림 중에는 크리스티나의 얼굴이 드러난 것들도 있지만, 표정이 보이지 않는 뒷모습을 그린 이 그림만큼 강한 잔상을 남기는 것은 없다. 사람들은 결국 크리스티나의 몸짓과 그림의 전반적 분위기를 통해 아직 보지 못한 크리스티나의 표정을 가장 극적인 방식으로 읽어내게 되는 것이다.

얼굴이 보이지 않는다는 건 때로는 다른 부분을 부각시키는 효과를 낳기도 한다. 귀스타브 카유보트의 그림 「마루를 깎는 사람들」에서는 그 부분이 바로 몸이다. 노동을 하는 이들의 몸과 그 움직임을 잡아내는 이 그림은 개성을 드러내지 않는 인물이 충분히 위엄을 지닐 수 있음을 보여준다. 저자는 이 그림을 한참 바라보면 어둑한 곳에서 성적 접촉을 가지는 연인들의 눈에 상대방의 몸이 이렇게 보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성적접촉에 관한 그림 우타마로의 「찻집 2층에서」를 스크린에 띄웠다. 서구에 가장 널리 알려진 우키오에인 이 작품은 에도시대에 드러나는 대도시 문화를 잘 보여주고 있었다. 이 그림에서 찻집은 마치 러브 호텔 같은 느낌으로 묘사되고 있다. 그림에서 여성의 모습은 뒷모습으로 처리되어 있다. 하지만 여성의 머리모양, 목덜미 등은 섬세하게 표현되어 화면 속 여성과 남성의 열락을 생생하게 전해주고 있다. 저자는 이렇게 뒷모습을 섬세하게 보여주는 것이 때로는 더 에로틱해지는 상황이 있다고 말하며 다음 그림인 다비드의 「헬레네와 파리스」를 보여주었다.


「헬레네와 파리스」는 어찌보면 아주 평범한 그림 같았다. 그런데 저자는 이 그림을 볼 때마다 왼쪽 구석의 어둑한 부분, 그리고 오른쪽 구석의 어둑한 부분에 눈이 간다고 했다. 그리곤 독자들을 향해 지금 여기엔 아무 것도 없지만 어쩐지 무언가 있어야 할 것 같지 않느냐고 되물었다. 그림 속에 숨겨진 시선에 대한 이야기인가하며 고개를 갸우뚱하는 독자들에게 그는 다비드의 제자가 그렸다는「파울로와 프란체스카」를 보여주었다. 그림 속에는 사랑하는 남자와 여자가 있고, 오른쪽 구석으로 그들을 바라보며 숨어있는 다른 남자가 있었다. 이연식 작가는 곧 독자들에게 이 그림의 뒷이야기를 들려주었다.

13세기말 명문가의 딸 프란체스카는 선을 보러 나가 마음에 드는 사람을 만난다. 행복한 마음으로 결혼을 한 프란체스카는 곧 자신이 만난 사람이 신랑의 동생 파울로라는 걸 알게 된다. 프란체스카가 결혼한 사람은 절름발이에 성격이 포악한 잔조토였다. 잔조토에게 시달리며 프란체스카는 고통스러운 하루하루를 보내고 파울로는 자신이 원인 제공자라는 생각에 연민을 가지게 된다. 그리고 둘은 마침내 사랑에 빠지게 된다. 단테의 신곡을 보면 이 두 인물의 영혼이 함께 지옥을 떠돌아다니는 장면이 나온다. 그림에 숨어있는 사람이 바로 잔조토다. 열락에 빠진 두 사람 뒤에 잔조토가 있는 것이다. 우리가 모르는 위험은 이렇듯 언제든 뒤에 도사리고 있다. 그런 면에서 뒤쪽은 두려움의 대상이기도 하다. 브레클린의 「죽음과 함께 있는 자화상」은 그 공포를 잘 보여준다. 같은 맥락에서 에드워드 호퍼의 「밤의 창문」도 살펴보았다. 그림의 구도는 마치 공포물의 앵글을 닮아있다. 대도시 생활에서 사람들이 흔히 빠지는 다른 공간을 엿보고 싶은 욕망이 드러나 있는 이 그림은, 그림 속 여자의 입장에서는 공포다.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누군가 자신의 뒤편을 보고 있는 것. 어떤 일이 일어날지 예측할 수 없는 두려운 상황이다.


물론, 편안한 느낌을 주는 뒷모습 그림도 있었다. 바로 툴루즈-로트렉이 그린 여성들의 그림이었다. 밑바닥 생활을 하는 여성들과 친했다는 로트렉의 그림에서는 여성들이 스스럼없이 자신의 모습을 내보이고 있었다. 양말을 신으며 알몸을 드러낸 그림도, 거울 앞에 서서 뒷모습을 보이는 그림도 여성들은 긴장되지 않은 편안함을 보여주었다. 그 모습은 당당해 보이기까지 했다. 특히, 거울 앞에 서 있는 여성은 뒷모습을 드러내는 동시에 거울을 통해 앞모습도 보여주고 있었다.

저자는 여기서 거울이라는 소재를 끄집어냈다. 뒷모습을 그릴 때, 화가들은 거울이라는 아이템을 여러 가지로 활용해왔다. 거울을 사용하면 뒷모습과 앞모습을 함께 보여줄 수 있기 때문에 화가들에게 흥미로운 아이템이었다. 또 화가의 의도에 따라 거울을 이용해 다양한 연출을 할 수도 있었다. 벨라스케스의 「거울을 보는 비너스」를 보면 거울 속 여성의 얼굴이 흐릿하게 그려져 있다. 여기서 여성은 몸으로만 보여 진다. 이에 대해 보편적인 여성을 표현한다는 해석도 있지만 여성주의적 맥락에서는 비판을 피할 수 없다. 과거 여성참정권을 주장하는 여성이 이 그림을 도끼로 찍은 적도 있었다고 했다.

곧이어 이 작품과 거의 비슷한 구도로 그려진 실비아 슬레이의 「누워있는 필립 골럽」을 살펴보았다. 남성 예술가와 여성 모델이라는 전통적 패러다임을 바꾸려는 작가의 의지가 한눈에 보이는 그림이었다. 벨라스케스의 「거울 속의 비너스」를 패러디하고 있지만 이 그림에서 거울에 비친 필립 골럽의 얼굴은 더없이 선명하다. 그것을 그리고 있는 실비아 슬레이의 모습 역시 마찬가지다. 여성과 남성의 시선을 둘러싼 페미니즘적 논의는 이런 방식으로 그림 위에 나타난다. 실비아 슬레이는 여성들이 하나같이 에로틱한 자태를 뽐내고 있는 앵그르의 「터키탕」을 패러디한 그림도 그렸다. 이연식 작가는 이 작품에서 작가의 의도는 몹시 성공적으로 구현되었다며 보이는 대로 그리면 전혀 에로틱하지 않다고 말했다.

앞서 이야기했듯 거울은 뒷모습과 앞모습을 동시에 그릴 수 있는 효과적 장치다. 저자는 거울을 보는 여인을 그린 우타마로의 그림을 통해 거울의 효과를 설명했다. 외출하기 전 마지막으로 머리 끄트머리를 손보는 여인. 이 단순한 일에 온 신경을 집중한 여자에게 세계는 정지한 것과 같다. 일상적인 터치에 파격적 구도와 알맞은 비율로 그려진 이 작품은 거울 안과 밖이 명확히 구분되지 않는 느낌도 준다. 어느 쪽이 거울이고 어느 쪽이 거울을 보는 여성인지 헷갈리기도 한다. 역시 거울이 주는 재미난 효과 중 하나다.

계속해서 거울에 대한 관심을 유지하며 저자는 조금 독특한 그림을 보여주었다. 바로 마그리트의 작품 「금지된 재현」이었다. 우리는 이 그림에서 앞모습을 비추어야 할 거울이 뒷모습을 비추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어느 곳에도 앞이 없는 그림이다. 이 작품에서 거울은 결코 이야기 되어서는 안 될 가장 충격적인 비밀을 밝히고 만 셈이다. 우리가 모르는 어떤 비밀도 없다는 그 비밀 말이다.

마그리트의 그림에 이어 얀 반 아이크의「아르놀피의 결혼」을 살펴보았다. 그림 속에 등장하는 거울과 그 거울에 등장하는 화가 자신의 모습, 그리고 거울 밑에 ‘반 아이크가 여기 있었다’ 라고 적힌 글씨도 찾아보았다. 거울을 통해 공간을 확장시키고, 자신의 모습을 드러낸 이 그림은 여러모로 거울을 효과적으로 활용한 대표작이다. 이렇듯 거울을 통한 유희를 드러낸 작품으로는 벨라스케의 「시녀들」이 있다. 벨라스케 본인과 마르가르타 공주, 시녀들, 그리고 고관대작들의 모습, 난쟁이 광대들과 개가 잔뜩 그려져 있는 이 커다란 그림에는 바로 거울이 있다. 그리고 그 거울 안에는 왕과 왕비가 있다. 거울을 통해 그림은 훨씬 복잡하고 넓은 상상의 공간을 내포하게 된 셈이다.

거울은 자화상에서도 널리 사용된다. 자신의 모습을 보고 그릴 수 없었던 화가들은 거울을 사용해 자화상을 그렸다고 한다. 다비드는 오른손잡이인데 자화상에서는 왼손에 붓을 들고 있다. 거울을 보고 그린 때문이다. 이런 그림은 마치 화면 자체가 거울의 면인 것처럼 느껴진다. 그러니까 관객이 있는 자리가 사실은 화가의 자리인 셈이다.

이연식 작가는 거울을 통해 그린 자화상 중 흥미로운 작품 한 점을 보여주었다. 노먼 로베르의 이 자화상은 실제 자신, 거울, 그리고 그림을 그리는 캔버스를 모두 그림 안에 담은 삼중 자화상이었다. 그림 안에는 뒤러와 렘브란트의 자화상이 들어 있어 마치 그것을 흉내 내려는 듯 보인다. 하지만 정작 화가는 거기에 큰 관심이 없다. 그림 속에서는 실제 화가의 모습은 명확하게 보이지 않는다. 게다가 큰 안경이 얼굴을 가리고 있다. 저자는 이 그림을 보면 그림을 그리는 존재인 자신에 대한 화가의 겸허함이 느껴진다고 했다.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끝내 자신의 얼굴을 그리지 않았던 뒷모습의 화가 프리드리히로 향했다. 「저녁 무렵의 두 남자」라는 그림은 두 남자의 뒷모습이 화면을 채우고 있었다. 저자는 이 그림이 프리드리히가 결혼 뒤 그린 것이라고 말하며 결혼 전과 결혼 뒤에 프리드리히의 작품은 큰 차이를 보인다고 했다. 프리드리히는 마흔 넷의 나이에 결혼을 하는데 그동안 그림에 인물을 거의 그리지 않았다. 하지만 결혼 뒤에는 적극적으로 인물이 들어간 그림을 그렸다고 한다. 물론 그 모습은 모두 뒷모습이다.


프리드리히의 그림 중 「뤼겐 섬의 백악절벽」이라는 그림은 신혼여행을 간 프리드리히와 부인의 모습을 그린 것이다. 이 그림 역시 뒷모습으로 표현된다. 그림에는 세 사람이 있는데, 맨 왼쪽에 있는 여성은 프리드리히의 부인이다. 절벽은 엄청나게 가파르다. 가운데 있는 남자는 절벽에 주저앉아 있는데 모자도 바닥에 떨어져있다. 저자는 이 인물을 프리드리히 자신일 거라 말했다. 그리고 맨 오른 편에 있는 젊은 남성. 그는 먼 미래를 보듯 바다를 내려다보고 있다. 꿈이나 함께 가야하는 길에 대한 그림을 그리는 것처럼 보인다. 신혼여행인데 왜 사람이 셋일까? 프리드리히는 자신의 이상적인 모습과 현실적인 모습을 분리시켜 이 그림에 그려 넣었다. 이 젊은 남성이 바로 프리드리히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자신의 모습이다. 프리드리히가 자신을 이상화하는 것은 뱃전에 부인과 둘이 앉아있는 장면을 그린 그림에도 나타난다. 이 그림에서 프리드리히는 마흔 살이 넘은 자신을 젊은 남성으로 그리고 있다.

결혼한 지 1-2년쯤 지났을 때, 프리드리히는 자신의 부인의 뒷모습을 그린다. 「해 뜰 무렵의 여인」 혹은 「해질 무렵의 여인」이라는 이름이 모두 붙는 그림이다. 자신의 부인을 세계의 신비가 드러나는 순간의 안내자인 것처럼 그려놓았다. 시간이 지나 결혼 생활이 4년쯤 되었을 때 그는 다시 부인을 그린다. 이 그림은 「창가의 여인」이라는 유명한 그림이다. 이 그림에서 여인의 뒷모습은 전과 다르다. 집안에 갇힌 여성이 창밖을 보는 장면을 보면 화가의 심정이 복잡했을 것 같다. 저자는 활달했던 부인이 일상의 속박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모습을 보고 마음이 무거워진 건 아닐까 하는 추측을 내놓았다.

이런 프리드리히에게도 앞모습이 그려진 그림이 있다. 그의 친가가 그린 「작업실의 프리드리히」라는 작품이다. 이 그림을 통해 뒷모습만 보이던 화가는 앞모습을 보이게 된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화가의 앞모습을 그리다 보니 이번에는 프리드리히가 작업하는 그림이 뒷모습을 보이게 된다. 저자는 그림과 화가의 이런 관계가 흥미롭지 않느냐고 독자에게 묻더니 고개를 끄덕이며 스크린에 다른 그림을 띄웠다.


그림은 뭉크의 「해변의 두 사람」이었다. 뭉크는 일평생 해변의 두 사람을 그렸다고 한다. 그래서 이 그림은 동판도 있고, 수채화도 있다. 그림 속에서 여자는 고개를 돌리지 않는다. 그래서 둘의 얼굴은 우리에게 보이지 않는다. 물론 어쩌다 얼굴을 돌린 그림도 있다. 이별을 하는 순간이다. 차라리 얼굴을 돌리지 않았으면 다행이었을 텐데. 이렇게 얼굴을 보인 그림에서는 여자가 떠나간다. 남자의 가슴에서는 피가 흐른다. 이 그림이 바로 「이별」이다.

뒷모습에 대한 마지막 해석은 우타마로의 그림이었다. 거울을 보며 분을 바르는 여성을 그린 이 그림은 뒷모습이 주는 감각적인 세계를 잘 그리고 있다. 그림 속 여성은 거울에 빠져있다. 뒷모습을 말할 때 목덜미는 빠트릴 수 없는 부분이다. 이 그림에는 기대와 아름다움이 모두 담겨 있다. 저자는 이 순간 그림 속 여성은 먼 세계를 헤맬지언정 그녀의 뒷모습은 곁에 있는 사람에게 사랑하는 사람의 뒷모습으로 소중할 거라 말했다. 마지막 그림까지 모두 살펴본 독자들은 평소 궁금했던 것들을 물었다.


독자들이 이연식에게 묻다

강렬하게 멜랑콜리를 느꼈던 작품 중 마음에 와 닿았던 것이 있다면?

워낙 많습니다. 개인적으로 프리드리히의 「피하 속의 수도원」을 같은 그림을 좋아해요. 이유라면 몰락의 느낌인데, 그 몰락 속에서 삶이나 사람의 깊은 원천을 생각하게 되는 듯합니다.

서양화와 동양화의 차별화된 매력은 무엇일까요?

저는 사실 그림을 서양화와 동양화로 구별할 수 있는지 의문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구별법을 바꿔야 한다는 생각이 있어요. 오늘 살펴본 일본 그림들은 제3지대라고 할 수 있죠? 동북아시아, 유럽, 그리고 일본회화가 있는 것 같습니다. 그림을 볼 때 서양화나 동양화로 둘의 차별점을 떠올리는 것보다는 어느 쪽이건 관능적이고 시각적 쾌락을 주는 작품이 좋습니다. 굳이 이야기하자면 제가 하는 작업은 동서양의 회화가 복합적이어서 차이를 단적으로 나누기 어렵다는 걸 보여주는 게 잠정적 목표예요.

‘말하는 그림’에 대해 쓰실 계획은 없으신가요?

글쎄요. 그림엔 소리가 없죠. 격정과 격동이 있는데, 막으로 감싸고 있는 느낌이랄까요. 저는 미술에 대한 저술은 말할 수 있는 것과 말할 수 없는 것의 경계를 탐색하는 작업이라고 생각해요. 그 틈새를 꾸준히 살펴보며 작업하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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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답하지 않는 세상을 만나면, 멜랑콜리 이연식 저 | 이봄
지은이가 이 책을 집필한 이유는, 미술사를 연구한 시간만큼 화가를 꿈꾸던 시간이 있었기 때문이다. 대학에서 서양미술을 공부하며 그림을 그렸던 이연식은 작업 도중 문득 찾아오는 슬럼프와 멜랑콜리한 감수성이 예술가만이 획득할 수 있는 창조성의 원천이 아니라는 점, 그러나 결코 무시할 수 없는 감수성이라는 점을 오랫동안 생각해왔다. 미술사학으로 방향을 바꾼 뒤엔 자연스럽게 화가들의 화폭에 담긴 멜랑콜리가 다른 미술사가보다 더 눈에 더 띄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는 멜랑콜리가 예술가들의 전유물이 아니며, 사회적으로 자연스러운 감수성임을 받아들였으면 하는 마음을 담아 이 책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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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정연빈

북극곰이 되기를 꿈꾸며 세상을 거닐다.
어지러운 방에 돌아와 글을 씁니다.

응답하지 않는 세상을 만나면, 멜랑콜리

<이연식> 저14,250원(5% + 2%)

예술가는 도망치지 않는다, 그린다 멜랑콜리는 세상이 녹록지 않음을 절감할 때 느끼는 좌절감과 패배감이라고 한다. 멜랑콜리는 우울감에 빠지게 하는 기질이나 원인이 아니라 세상을 감내하며 나타나는 징후이다. 멜랑콜리를 느끼는 이들이 어쩔 수 없이 떠안게 되는 패배의식과 소외감은 안타깝지만, 세상과 조우하며 균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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