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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시마 유키오, 지금의 일본 극우와 다른 이유

『미시마 유키오의 문화방위론』 남상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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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7일, 서울 서교동 자음과모음 사옥. 『미시마 유키오의 문화방위론』 출간 기념 강연회에서 남상욱은 미시마(라는 세계)를 일단 열어볼 것을 권했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극우라는 틀에 그를 가둬 열어보려고도 하지 않는 건, 안타까운 일이라고 말한다

일본의 일부 정치인들, 기가 막히다. 막말과 망언이 난무하는 막장의 향연을 펼치고 있다. 과거 일본의 전쟁 범죄를 송두리째 부인하는 말, 연일 쏟아낸다. 아니, 부인 정도가 아니라 외려 적반하장이다. “침략의 정의는 확실한 게 없다”는 아베 총리 발언에서 시작한 이 막장, “위안부는 필요했다”는 하시모토 오사카 시장의 막말로 후끈 달아올랐다. 이어 이시하라 유신회 대표, “태평양전쟁은 침략전쟁이 아니”라며 “침략이라고 규정한 건 자학일 뿐”이라고 토했다. 막말의 종결은 어디일까. 이들은 자신의 이권만 감안할 뿐, 동아시아의 평화는 안중에 없다.

이전부터 일본의 많은 이들이 이 같은 ‘극우’적 발언을 해오고 있다. 미시마 유키오도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다. 많은 한국인들에게 미시마 유키오는 일본의 ‘극우주의자’로만 인식되고 있다. 허나, 결이 다르다고 한다. ‘극우’라는 표식만으로 미시마를 재단해선 안 된다고 말하는 사람, 남상욱이 있다. 그는 『미시마 유키오의 문화방위론』의 옮긴이다. 남상욱은 출간 기념 강연회 미시마(라는 세계)를 일단 열어볼 것을 권했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극우라는 틀에 그를 가둬 열어보려고도 하지 않는 건, 안타까운 일이라고 말한다.

생각해보니 그렇다. 우리는 미시마를 모른다. 많은 이들에게 “천황폐하 만세”를 외치며 자신의 배를 갈랐던 소설가 정도로 읽힌다. 그에게 씌워진 극우라는 표식은 거의 그것이 전부다. 그렇다면 남상욱의 말을 들어보자. 지금 지질한 일본의 극우와 미시마는 어떻게 결이 다를까. 우리가 몰랐던 미시마, 그 세계를 엿볼 수 있는 기회.




남상욱, 미시마의 세계에 들어가다

“한국에서는 극우라는 말만 들어도 책을 펴볼 생각을 안 한다. 빤한 메시지라서 시간 낭비라고 생각하는 거지. 그래서 ‘문화방위론’이라는 자극적 제목에도 불구하고, 피하게 된다.”

일어일문학을 전공했던 남상욱에게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회사에 취직했다가 일본 유학을 갔다. 일본 문학에서 파고들고 싶었던 건 판타지였다. 즉, 환상소설. 그런데 환상소설을 읽다보니, 공허했다. 너무 자아에만 골몰하는 경우가 많았다. 평생 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들었다. 지도교수가 세 번째로 계속 환상소설을 할 것인지 물었을 때, 무너졌다. 그 때 한 선배가 미시마 유키오를 권했다. 당연히 그도 거부감이 들었다. 그가 알기로 미시마는 극우였고, 극우를 연구한다는 것이 그의 앞길에 도움이 될 것인지도 의문이었다.

“나도 (미시마에 대한) 선입견이 강했다. 그러다가 일본 문학 총서의 환상 분야에 미시마 유키오가 있더라. 단편소설인데, 남녀가 질펀한 정사를 나눈 뒤, 차례로 할복을 해서 죽는 소설을 읽었다. 이것이야말로 환상문학이라고 생각했다. 과잉의 플롯이 가슴을 울리더라. 나는 환상문학으로 미시마에 들어가면서 유학생활이 꼬였다(웃음)”

한국의 일문과 교수도 미시마는 꺼리는 존재다. 한국에서는 극우를 연구한다는 것. 그것은 한편으로 낙인이다. 그렇다면 미시마를 순문학으로만 보는 건 어떨까. 남상욱도 문체론이나 내러티브의 관점으로만 미시마(의 문학)를 보려고 노력했었다. 그렇게 따라가다 보니 전후 일본의 어두운 면을 보게 됐다. 한국 사람이 보려고 하지 않은 일본의 모습을 확인했다. 한국인들은 일본인이 불쌍하다고 생각하지 않으려고 하기 때문이다.

미시마를 따라가는 것은 그런 것이었다. 일본인도 나름 불쌍한 역사적 경험을 갖고 있구나. 이어 미시마가 전후 일본을 보는 관점을 따라가면서 이 책을 쓰게 됐다. 미시마를 통해 그의 세계가 넓어졌다. 절대 이해해서는 안 될 것 같은 사람을 이해하려고 한 발 딛게 된 것이다.

“이 책에는 우리가 몰랐던 일본이라기보다는, 굳이 알고 싶지 않았던 일본, 그리고 우리가 좀처럼 생각하지 않으려고 하는 오늘날 한국의 ‘문화’에 대한 문제 제기가 다수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p.386~387)


미시마, 넌 누구냐

미시마는 극우이면서 게이다. 한국 뿐 아니라 일본에서도 껄끄러운 존재다. 가라타니 고진 등의 일본 지식인도 미시마를 다루지 않는다. 남상욱이 미시마를 전공한다고 했을 때 일본인들의 반응도 “그걸 왜 하느냐?”였다. 전향 권유도 많이 받았다. 다만 일부 젊은 사람들만이 지지를 해줬다. 미시마를 연구하면 전후 일본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며.

1925년 도쿄에서 태어난 미시마의 본명은 히라오카 기미타케(平岡公威)였다. 같은 해 쇼와 천황도 태어났다. 미시마의 아버지는 농수산 관련 기관의 행정 관료였으며, 어머니는 귀족의 피를 받은 사람이었다. 부유한 집안에서 자란 미시마는 열여섯에 등단했고, 도쿄대 법학부를 수석으로 졸업하면서 천황이 준 금시계를 하사받았다.

“미시마가 천황주의자라는 얘기도 듣는데, 문학세계는 중세적인 이미지였다가 전후로 이동한다. 대학을 졸업하고 한국으로 치면 기획재정부, 대장성 은행국에 근무 중인 1949년 『가면의 고백』이라는 커밍아웃 물을 써서 중박을 쳤다. 이후 전업 작가를 선언하고 1951년 세계 일주를 한다. 세계 일주를 마치고 그의 위상이 달라졌다. 당시 세계 일주는 특권적인 기회였다.”

1954년 빅히트작 『파도 소리』는 곧 영문으로 번역됐는데 전미베스트셀러 8위에 오를 정도로 해외에서도 인정을 받았다. 이후 미시마의 작품은 죽을 때까지 영문으로 번역됐다. 당시 아시아의 작가가 이렇게 미국에서 두각을 나타낸 것은 아주 드문 일이었다. 50년대 후반, 아시아에서 노벨문학상을 탄다면 미시마가 탈 것이라는 얘기가 나올 정도였다. 그는 1960년대로 가면서 정치적인 소설을 본격적으로 쓰기 시작한다. 1965년 『풍요의 바다』 4부작을 연재할 때 일본 문단은 그를 미쳤다고 얘기했으며, 1968년에 『문화방위론』을 썼다.

“한국 사람이 볼 때 일본의 극우는 이시하라 신타로다. 그도 촉망받는 젊은 작가(주. 1952년 『회색 교실』로 등단)였다. 미시마도 자민당 입당 권유를 많이 받았으나 안 했다. 그것 자체로 우리가 알고 있는 이미지와 다르다. 미시마가 극우라는 것은 일본 사회에 위험한 것이었다. 미시마는 1970년 오사카 만국박람회가 열리던 해 11월 25일, 도쿄 이치가야 육상자위대 동부총감부 총감실에서 할복자살했다.”

“미시마에 의한 느닷없는 ‘테러’는 당시 일본의 TV와 라디오를 통해 생방송되었고, 일본에 주재하고 있는 각국의 특파원들은 그 소식을 자국에 긴급 타전했으며, 다음 날 한국 신문들은 이 사건을 일본 전체주의 부활로 보고, 이를 규탄하는 사설을 일제히 게재했다.”(p.384)

일본문학 속 미시마 유키오의 위치

일본의 노벨문학상 수상자이자 ‘행동하는 양심’으로 불리는 오에 겐자부로가 미시마보다 열 살 아래다. 위로는 요시모토 바나나의 아버지인 요시모토 다카아키, 가와바타 야스나리, 다니자카 준이치로 등이 있는데, 2세대 전후작가인 미시마 유키오는 이들을 전통성으로 수용하고, 자신의 작품 세계로 받아들였다. 반면 같은 2세대 전후작가인 아베 코보(『모래의 여자』 등)는 반전통이었다. 미시마 작품은 제1세계에서, 아베 코보는 동구권에서 베스트셀러였다. 그러나 한국은 이들 시기를 건너뛰어 무라카미 하루키에게로 갔다.

“1960년대 미시마 유키오와 오에 겐자부로의 관계가 무척 재밌다. 두근거릴 정도다(웃음). 미시마의 『풍요의 바다』에 대한 액션과 리액션이 있었다. 많은 대학생들이 이 둘을 읽다가 오에 겐자부로의 『만연원년의 풋볼』이 나오자, 미시마의 종언이 왔다고 말한다. 미시마 죽음을 둘러싼 많은 루머가 있는데, 오에 겐자부로에게 져서 그랬다는 얘기도 있다.”

그렇다면 1968년에 나온 미시마의 『문화방위론』은 어떤 의미를 지닐까?

“문화방위론, 생소한 언어다. 문화를 지킨다는 것은 무엇일까. 그렇다면 그때의 문화는 또 뭘까? 일본에는 할복이라는 것이 있다. 박물관에서 그 퍼포먼스를 할 수 있나? 그게 또 유네스코에 등재가 되는가? 그런 것들은 문화에서 다 배제된다. 문화를 보존한다고 하지만, 눈에 보이는 것만이 문화가 아니라고 미시마가 문제를 제기한다.”

남상욱은 ‘1968, 문화방위론’이 던지는 질문들을 다음과 같이 정리한다.

1. 1968 : 메이지 100년인가, 전후 28년인가? (연속인가, 단절인가 : 역사에 대한 새로운 정의의 필요)
미시마는 단절돼 있다고 봤다. 보수나 우익과는 반대 입장이었다. 깨끗하고 순한 민족이 이런저런 경험으로 더러워졌다고 본 것이 보수우익이라면, 미시마는 그렇지 않았다.

2. 1968 : 고도성장(경제)인가, 정지(정치)인가? (취직인가, 시위인가 : 미래인가 현재인가)
미시마는 모든 것을 정지시키고 싸우자고 얘기했다. 미래를 꿈꾸지 말고 오늘 하고 싶은 일은 지금 당장 하라고 말한다.

3. 1968 : 짐승으로 살 것인가, 인간으로 살 것인가? (인간성에 대한 새로운 정의의 필요)
1964년 일본에 국립암센터가 생긴다. 인간은 장수해야 한다는 국가의 지침이 나오는데, 미시마는 반발했다. 그가 가장 싫어했던 노년의 모습은 치매에 걸려 똥칠하는 것이었다. 그는 그것을 인간이 아닌 짐승이라고 했다. 스스로 죽음을 결정하는 것이 인간이라고 여겼다.

4. 1968 : 미국인가 중국인가 혹은?(미국적 라이프 스타일 vs 코뮤니즘 그리고 일본적인 것)
미시마는 중국의 문화대혁명에 대해 위협을 느꼈다. 미시마는 혁명을 바라면서도 공산당을 미워했다.

“문화적인 소양은 이미 모범생들이 당연한 듯 쌓아나가는 하나의 스펙이 되어버렸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으리라. 하지만 이런 오늘날의 문화에 무엇인가 결정적인 게 빠져 있는 것은 아닐까? 마치 지젝이 얘기했던 카페인 없는 커피처럼 말이다. 『문화방위론』의 문제의식은 바로 거기에 있다. 1960년대 미시마의 눈에는 현재 융성하고 있는 ‘건전’한 일본 문화와, 그 문화를 있게 만든 기원 사이의 고리가 단절된 것처럼 비쳤다. 그러니까 1960년대 일본에서 문화는 그것의 가장 중요한 성격 중 하나인 신비와 동시대에 대한 폭력성이 모두 배제된 채, 기획되고 전시되고 소비되는 처지로 전락한 것이다.”(p.392~393)

미시마를 읽는 또 다른 방법

“일본 헌법에 평화라는 말이 다섯 번 나온다. 어떤 나라 헌법에도 평화가 그리 많이 안 나온다. 그만큼 배제되어야 할 대상으로서 폭력을 강조한다. 만나봤던 일본인 대부분은 온순했다. 폭력을 싫어하고 혐오하고. 평화는 사람을 무장해제 시키는 만큼 기만적인 단어일 수도 있다. 미시마는 국가의 폭력에 대항해 개인이 총을 갖는 게 나쁘지 않다고 봤다. 폭력을 한 가운데 놓고, 인간을 본디 폭력적인 존재로 보고, 국가와 생, 문화, 혁명이 둘러싸고 있다고 봤다.”

남상욱은 미시마를 극우의 틀에 가두지 말 것을 권한다. 미시마는 극우라는 레떼르와 달리 일본에 호의적이지 않았다. 그는 평소 정장을 입었고 사람들에게 깍듯이 대할 만큼 신사적이었고, 자신이 한 말을 실천하고자 했다. 지금의 지질한 극우 인사들과는 달랐다는 얘기다.

“미시마로 인해 나도 인생이 바뀐 사람이다. 표식을 미루고 읽어보고 판단할 수 있다. 먼저 지형도를 매겨놓고, 열어보지도 않는데, 스스로 확인해보는 것이 중요하다. 많은 일본 여성들이 미시마를 좋아한다. 폭력적인 부분 말고 심리적인 부분에 대해서. 책 중에는 밑줄 칠 것도 없이 전체의 상이 그려지면서 개안하게 만드는 책이 있다. 데리다가 그렇고, 미시마는 반대다. 군데군데 잠언은 많으나 통합해 보면 사상적 관점에선 별 것이 없다. 단 몇 줄에서 느낌이 오는 것이 있다. 미시마는 마스터할 거리는 아니지만 데굴데굴 굴려볼 수 있다면 옮긴이로선 더 바랄 것이 없다. 인용할 거리가 아닌 살아가는데 도움이 되는 것을 찾으면 좋겠다.”

“그의 문학적 행위는 활자 매체라는, 좁은 의미의 문학에만 한정될 수도 없다. 그는 근대 일본 문학 특유의 병약함을 벗어던지기 위해 보디빌딩을 했고, 개조된 자기 육체의 오마주를 사진집과, 직접 연출하고 출연한 영화 속에 남겼다. 또 B급 영화에 배우로 출연하거나 직접 영화를 제작하고 감독까지 했다. 미사마의 이런 행위는 문학적 행위를 포기한다기보다는 문학의 외연을 넓혀가려는 시도로 보는 것이 좀 더 바람직하다.”(p.3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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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시마 유키오의 문화방위론 미시마 유키오 저/남상욱 역 | 자음과모음(이룸)
1967년부터 1969년까지 3년에 걸쳐 저자 미시마 유키오가 혁명과 문화에 대해 주장한 정치 논문, 정치에 대해 좌파 거장과 나눈 대담, 정치뿐 아니라 문화와 예술에 대해 학생들과 나눈 대담이 담겨 있다. 미시마는 정치적 입장에서 자신만의 독자성이 있다면 문장에 의해 행동과 결의를 굳히고, 굳히면서 쓰고, 쓰는 것에 의해 한층 더 굳혀 행동의 단서에 도달한 후 그 증거로서 또다시 문장을 쓰고, 이런 문장에 의해 행동과 책임이 규제되는 것이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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