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빵엄마> 찍을 때 가장 많이 울었어요 - 유해진 PD
차가운 오늘을 뜨겁게 사는 그대들에게… ‘사랑PD’가 만난 아름다운 사람들
사인을 부탁하는 독자들에게 그는 책의 제목을 인용하여 다음과 같은 말을 전했다. “오늘 하루도 뜨겁게 살아줘서 고마워요.” 누군가에게 그런 말을 전해들을 수 있다면 그 인생은 얼마나 귀하고 값진 것인가. 유해진 PD가 만났던 한 사람 한 사람은 바로 그런 인생을 살고 있다.
매년 가정의 달 5월, 시청자들에게 뜨거운 감동을 선사하는 다큐멘터리가 있다. MBC창사특집 휴먼다큐멘터리 ‘사랑’ 시리즈는 우리 이웃들의 다양한 사랑의 모습을 모아 시청자를 찾아간다. 아트하우스 모모에서 치러진 유해진 PD와 만남은 ‘사랑’ 시리즈 대표작 <너는 내 운명>, <안녕, 아빠>등 다수를 연출한 그의 신간 『살아줘서 고마워요』를 소개하는 자리였다.
<너는 내 운명>편 (2005년 방송) 9살의 나이 차이, 다른 가정환경, 그러나 부모님의 반대도 갈라놓지 못한 영란, 창원 커플 그러나 그들에게는 또 다른 장벽이 놓여있다. 영란 씨의 암 투병, 그리고 전이. 그들은 그럼에도 여전히 사랑한다. 죽음 앞에서 더 강해지는 영란 씨와 창란 씨의 운명 같은 사랑 | ||
슬픈 상황에서 눈물은 어떻게 참나?
깊은 감정이 다 휴먼 다큐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MBC 교양국 피디가 60명이다. 딱 보면 스타일의 차이가 있다. 그 사람의 감성, 취향, 감성이 나온다. 나는 눈물이 많은 편이다. 어머니가 TV에서 누군가 울면 꼭 우시는데 그걸 많이 닮았다. 다행히 휴먼 다큐라는 장르가 여성적 감수성이 배어 있기에 나와 잘 맞는 것 같다. 실제로 촬영 시 많이 운다. 하지만 프로그램 제작 때 방해가 되어서는 안 되니까 자리를 피해서 울거나 벽처럼 서서 소리죽여 운다.
<풀빵엄마> 편이 제일 힘들었다. 인터뷰 시 마주보고 얘기하는데, 정말 많이 울었다. 주인공 최정미 씨는 정규교육을 많이 받지는 않았지만 삶의 지혜가 두터운 분이다. 그녀의 이야기는 사람의 마음을 쥐락펴락했다.
휴먼 다큐, 피디나 작가에게 필요한 역량이 있다면?
다른 건 모르겠고 사람에 대한 기본적인 애정은 있어야한다. 모든 장르를 잘하는 피디가 있지만 특정장르에 강한 피디가 있다. 잘 안 맞는 데 휴먼 다큐를 하는 사람도 있다. 주인공을 대상화하거나. 직업적으로 임하는 사람은 곤란하다.
지금도 출연자와 연락하는지? 정창원 씨는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하다.
그와 나는 동갑이다. 촬영 끝나고 자연스레 친구가 됐다. 정말 대단한 사람이다. PD 생활하면서 특이한 사람 많이 봤는데 그는 정말 세상과 타협하지 않는. 옳다고 믿으면 무조건 하는 사람이다. 나쁘게 말하면 현실부적응자지만, 좋게 보면 순수하고 계산되지 않은 사람이다.
사실 방송 후, 방송국으로 전화가 많이 왔다. 특히 중년여성들이 연락처를 많이 물어보더라. (좌중 폭소) 출연자들의 일상을 지켜주는 게 PD인 우리의 책임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영란 씨의 죽음 이후, 지리산에서 2년 반을 지내다가 고향인 충주호 유람선에서 일을 했다. 또 흑산도로 가서 고기잡이배를 탔고, 지금은 화물트럭을 운전한다. 시를 쓰는 걸 좋아해서 한 달에 한두 번 문자로 시를 보내준다.
촬영하다 보면 예기치 않은 상황이 많이 벌어질 것 같은데?
<사랑>은 5월 특집으로 한 달만 방송한다. 보통 8월에 팀이 꾸려지면, 두 세달 정도 주인공을 물색하고 11, 12월 촬영을 스타트한다. 타 프로그램보다 주어진 시간이 많기 때문에 방송 분량에는 걱정이 없다.
다음으로 여러분이 보게 될 작품은 <안녕, 아빠>다. 전 편 <너는 내 운명>과 달리, 작정을 하고 죽음에 관한 과정을 촬영했다. <너는 내 운명> 때 사랑은 특정시절에 아름답고 숭고하게 발현된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번 편을 통해 죽음을 아름답게 담고 싶었고 ‘잘 죽는 것’(Well-dying)에 대한 의미를 찾고 싶었다. 가장 기억에 많이 남는다.
<안녕, 아빠>편 (2007년 방송) 대장암 말기 판정을 받은 준호씨. 그에게는 사랑스런 아내 은희 씨와 두 아이 영훈과 규빈이 있다. 하루하루 극심한 통증으로 힘들어하는 그는 헌신적인 아내의 간호와 아이들의 재롱을 보며 희망의 끈을 잡는다. 고민 끝에 마지막 시술을 포기하고 그는 일상으로 돌아간다. 아이들과 마지막 시간을 온전히 함께 하기 위해서. | ||
현재 이차 항암치료를 앞두고 있다. 암 투병 중인 주인공들이 많이 죽는 게 안타깝다. 슬픈 이야기 말고 극복하고 좋아진 케이스를 담을 수는 없는지?
의도한 건 아니다. 본의 아니게 나에게 원죄의식이 있다. 사실 좋은 예가 없는 건 아니다. 작년 MBC <제니의 꿈>이 방영됐다. 교포 1.5세 21살 여학생인데 암을 네 번 경험하고 다 이겨냈다. 남가주 주립대 생물학에 진학했고 의사의 꿈을 가지고 있다. 당차고 아름다운 여성에 대한 방송이었는데 주목받지 못했다. 그런 (비극적 결말)부분에 대해 시청자분들에게 죄송한 마음이 있다.
출연자들을 개인적으로 도와준 경험이 있는지?
프로그램을 같이 하면 출연자들이 가족 같다. 일 년 정도를 함께하니까. 규빈, 영훈이에게는 크리스마스 선물을 보낸다. 아무래도 제일 많이 챙기는 건 가까이 있는 엄지공주 가족이다. 가끔씩 밥도 먹고, 우리 애가 쓰던 물품들도 챙겨준다. 사실 많은 피디들이 그렇게 한다. 티를 내지는 않는다.
24시간 밀착촬영인가? 촬영방식이 궁금하다.
밀착 촬영이 중요하다. 주제의식 위주로 편집이 되기 때문에 편집시 버려지는 장면이 많다. 기다림의 미학이라는 말처럼, 끈질긴 놈이 이긴다. <안녕, 아빠> 촬영할 때 대전성모병원 건너편 여관에 숙소를 잡았다. 물론 항상 카메라를 켜놓지는 않는다. 일어나자마자 병원에 가서 상황을 살핀다. 그러다가 찍어야 할 게 있으면 촬영하는 식이다. 출연자뿐만 아니라 주변 사람들 (옆 병상 사람들, 간호사들)과도 친분을 형성해야한다. 본의 아니게 폐를 끼치게 되기 때문이다. 한 달 반 정도는 그렇게 지낸다. 한꺼번에 두 편을 해야 하므로 여기저기 다니기도 한다.
이루고자 하는 바가 있는지, PD로서 목표가 있다면?
PD가 되기로 결심했을 때, 이런 장르는 생각 하지 못했다. 건강하고 아름답게 세상을 만들고자 했지만 직설적인 언어로 만들고 싶었다. 사회문제를 제기하고, 해답을 찾고자 노력하는 프로그램 말이다. 그래서 ‘피디수첩’할 때 열심히 했고 재밌게 했다. 그리고 선배의 부름으로 휴먼 다큐 ‘사랑’시리즈를 시작했을 때는 무엇이 정답인지 모르고 ‘너는 내 운명’을 만들었다. 프로그램이 끝나고 게시판에 들어갔는데, 올라오는 글들이 단순히 ‘감동이에요’, ‘잘 봤어요’가 아니라 자신의 삶을 얘기하고 반성하는 글이더라. ‘남편과 아이들을 더 많이 사랑하지 못한 걸 후회한다.’,‘아빠에게 사랑을 표현할거다’ 등등. 정말 깜짝 놀라 숨이 막힐 정도였다. 기대했던 결과가 아니라 더 벅차고 놀라웠다. 그 매력에 빠져서 지금까지 왔다. 세상에 대해서 목소리 높여서 옳고 그름 이성적으로 따지는 것도 필요하지만, 속삭이는 언어로, 우리사회를 따뜻하게 만들 수 있도록 기여하고 싶다.
주인공 가족에 대한 후속편 계획이, 있는지?
지금은 때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들의 일상을 깨는 어떤 시도도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이 시기가 아이들에게 예민한 때이기에 걱정된다. 물론 피디적인 욕심으로는 하고는 싶다.
휴먼 피디를 하면서 현장에서 힘든 부분이 있다면?
슬픔을 참는 것이 힘든 부분이다. 하지만 제일 힘든 건 관계 문제다. 긴 시간 동안 많은 사람들과 관계를 원만히 형성해 나가야 한 프로가 온전히 탄생한다. 중간에 갈등도 생기기 마련이다. 주인공들이 아니었지만 촬영 시 대해야 하는 사람들 사이에 생기는 갈등은 합리적, 상식적 대화를 통해 해결이 되기도 하지만 안 그럴 때도 분명 있었다.
시청자들은 다큐를 볼 때 진정성을 기대하고 본다. 사실주의를 보여주고 싶지만 100% 사실주의가 아닐 수 있는(각색화) 부분도 있을 것 같은데?
다큐에 대한 오래된 논쟁이다. <사랑>에 관해서는 이 부분이 크게 침해되지 않는다. 워낙 오래 찍기 때문이다. 물론 7년간 저마다 스타일을 담아 여러 명의 피디들이 만들었기에 차이도 있을 것이다. 나 같은 경우 <너는 내 운명>에서 주인공 임종 장면을 촬영하긴 했지만 엔딩씬으로 내보내지 않았다. 대신 두 사람이 뽀뽀하는 장면을 멈추고 흑백으로 디졸브 시켰다. 다른 편에서는 임종장면을 그대로 내보내기도 한다. 취향과 스타일의 문제기에 무엇이 정답이라고는 말할 수 없다.
MBC 스폐셜 편집 중에 달려오신 것으로 알고 있다. 지금 하고 있는 작업은 어떤 것인가?
뉴욕 할렘가에 한 학교가 있다. 몇 년 전 한국에서 생활했던 원어민 교사 한 분이 학교를 설립해 한국식 교육 도입했다. 그는 한국이 교육을 최고 가치로 했기에 발전했다는 생각을 가지고 교육을 통해 희망을 이야기하는 사람이다. 마침 한국을 방문했기에 그 과정들을 카메라에 담았다. (MBC 스페셜 '우리 학교는 한국스타일'은 12월 5일 수요일 저녁 9시에 방송된다.)
유해진PD에게 최고의 작품은 어떤 것인가?
하나만 꼽자면 출연자가 섭섭해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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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윤미현 / 연출 김새별 , 유해진 , 김진만20,900원(5% +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