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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운 부부가 세상에 왜이리 많을까요?” - 『왜 우리는 혼자가 되었나?』이정국, 임지선 인터뷰

자기계발서를 읽으면 더 피로해진다 지금 우리가 느껴야 할 감정은 피로가 아니라 분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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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로도로 치자면 “당신만 변하면 된다”는 식의 자기계발서, “나를 따르라”는 식의 멘토링 서적이 더 많지 않은가? 물론 암울한 현실을 직시하는 책은 쓰는 이도, 읽는 이도 힘겹긴 하다. 하지만 소설이 아니다. 현실이다. 읽고 힘들다는 것은, 이런 현실은 옳지 않다는 의미다.

자신을 소개해 달라.


이정국(이하 이): 진로를 못 정해 갈팡지팡 하던 대학 졸업반 때,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나 곰곰히 생각했다. 남들처럼 수리에 밝은 것도 아니었고, 각종 자격증으로 무장한 짱짱한 스펙을 갖춘 것도 아니었다. 주변 사람을 붙잡고 물어봤다. “내가 뭘 잘하는 거 같니?” 물었더니, “넌 글을 잘 쓴다”는 답이 돌아왔다. 그 전에 미니홈피에 끄적끄적 글 쓰는 걸 좋아하긴 했다. 그 말이 진심이었는지 위로였는지는 모르겠으나 아무튼 나름대로의 적성 테스트를 거쳐 글을 쓰는 직업을 택하기로 정했다. 범위를 좁히니, 진로는 금방 결정됐다. 그렇게 해서 지금 8년 째 기자로 활동 중이다.


임지선(이하 임): 70년대도 80년대도 아닌 듯한 1980년에 태어나 90년대도 2000년대도 아닌 듯한 99학번으로 어정쩡하게 살았다. 대학에서는 신문방송학을 전공하고 국어국문학을 부전공했다. 2006년 <한겨레>에 입사했고, 20대 후반부터 30대 초반을 오롯이 사회부 기자로 여기저기 뛰어다니며 살았다. <한겨레21>에서 30주 연속으로 인권 사각지대를 조명한 ‘인권OTL’ 시리즈, 식당 노동자로 위장 취업해 여성 빈곤 노동의 현실을 알린 ‘노동OTL 시리즈’, 국내 최초로 영구임대아파트 121가구를 심층 조사한 `영구빈곤 보고서’ 등을 취재하고 집필하며 인권 보도에 눈을 떴다. <한겨레> 사회부에서는 신문기사의 틀을 벗어난 사람이야기 중심의 기사를 쓰고자 노력했다. 저서로 우리는 혼자가 되었나』를 비롯해 『4천원 인생』, 『현시창』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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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지선(왼쪽), 이정국(오른쪽)


이 책은 어떤 책인고, 저술 계기는 무엇인가.


이 : 애초 <한겨레> 오피니언넷부에서 새로 시작할 기획 연재를 구상하고 있었다. 오피니언이라고 하면 보통 자신의 생각을 글로 써서 신문에 기고하는 것을 말한다. 당시 우리 부서원이 주목했던 것은 ‘그렇다면 신문사의 글을 보낼 수 없는 사람들의 목소리는 어떻게 담을 것인가?’였다. 회의 끝에 ‘직접 찾아가서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자’고 결론을 내렸고, 언론사 사상 최초로 ‘찾아가는 오피니언’을 만들었다. ‘낮은 목소리’라는 타이틀로 1년여 동안 사회의 밑바닥을 훑고 다니며 들었던 이야기를 책으로 묶었다.


임 : 한겨레 오피니언넷부 소속인 이정국, 이경미 기자가 코너를 만들어 꾸려나가던 중 내가 합류해 쓰게 됐다. 매주 어떤 소재의 기사로 이 사회의 낮은 목소리를 전달할 것인지 고민했고 감사하게도 많은 독자들의 호응을 얻었다.

 


『왜 우리는 혼자가 되었나』한국의 열악한 노동 현실을 다룬 『4천 원 인생』의 후속편 같은 느낌도 든다. 임지선 저자는 두 책에 모두 참여했다. 2010년에 비해 2012년, 한국 근로 조건은 어떻게 변했다고 판단하나.


임 : 한국 사회에 비정규직이 독버섯처럼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파견, 외주, 하청, 인턴까지 정규직을 비껴나간 ‘비정규’ 일자리가 도처에 넘쳐난다. 정규직이 아니(非)라는 의미인 ‘비정규직’을 관통하는 정서는 ‘불안’이다. 아직도 많은 이들이 죽도록 일하면서 극심한 불안에 내몰리고 있다. 

 

쌍용 자동차 사태를 다룬 공지영의 의자놀이』비롯해 정권 말기인 탓인지, 사회 부조리를 고발하는 책이 많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독자로서, 다소 피로한 감도 없지 않다. 실제로, 이런 인문 사회 쪽 책이 문학이나 실용서에 비해 판매량을 보장하지도 않는다. 독자가 피로함을 느끼지 않으면서 이 책을 읽을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이 : 우선, 주변을 돌아보기를 권한다. 각박한 사회다. 주변을 돌아보기엔 ‘내 앞길'더 너무나 불투명하다. 바로 옆에서 누군가 죽어나가는데도, 내 살 길이 바빠서 쳐다볼 수 없는 사회다. 하지만 이 책의 기획 의도는 ’나도 힘들지만, 주변을 한번 둘러보자‘리는 취지였다. 그래서 책 제목이 ’왜 우리는 혼자가 되었나‘이다. ’내가 혼자가 되었나‘가 아니다.

 

우리’라는 공동체 의식을 회복해야 한다. ‘나만 잘살면 되지’라는 생각은 결국 사회를 파멸로 이끈다. 최근 연이어진 아동성폭력 사건을 봐도 그렇다. 우리가 우리 이웃의 아이들을 자기 아이 돌보듯 보살피고 관심을 가졌다면 그런 흉측한 범죄가 벌어졌을까? 서로 떠넘기기에 급급한 사회다. 우리가 사회문제를 지적하는 서적에 대해 피로를 느끼는 것은, 사회문제에 대해 관심이 없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한 발 물러서서 사회를 조망하기를 권한다. 분노가 생길 것이다. 이것이 이런 책들이 더 많이 나와야 하는 이유다.

 

임 : 피로도로 치자면 “당신만 변하면 된다”는 식의 자기계발서, “나를 따르라”는 식의 멘토링 서적이 더 많지 않은가? 물론 암울한 현실을 직시하는 책은 쓰는 이도, 읽는 이도 힘겹긴 하다. 하지만 소설이 아니다. 현실이다. 읽고 힘들다는 것은, 이런 현실은 옳지 않다는 의미다. 많은 이들이 읽고 공감하는 것이야 말로 세상을 변하게 하는 동력이 될 것이다. 참여하는 마음으로 읽는다면 좀 덜 피로하지 않을까?

  
기자를 꿈꾸는 사람이 여전히 많다. 기자로 산다는 것에 대해 얘기해 달라.

 

이 : 기자는 피곤한 직업이다. 주5일 정착되고, 저녁이 있는 삶을 추구하는 사회분위기와 다르게 휴일근무, 야근 근무를 밥 먹듯 한다. 몸만 힘든 것이 아니라 정신적으로도 고통을 받는다. 매일매일 눈을 뜨면 어떤 기사를 써야할지 고민해야 한다. 기사 거리를 겨우 찾아내도 취재하면서 기사를 작성하는 과정 역시 엄청난 스트레스다. 이런 고통의 나날을 보내야 하는 것이 기자다. 한시라도 긴장감을 늦췄다간 감각이 떨어져 금방 도태되고 만다.

 

하지만 그래도 기자를 지망하는 사람이 많고, 기자 직업에 대해 보람을 느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작은 희망이 보이기 때문이다. 최근 컨택터스라는 용역경비 회사가 한 사업장에서 폭력을 휘둘러 말썽이 생겼다. 내가 근무하는 <한겨레> 24시팀 기자들은 2달여간을 이 한 건에 매달려서 수십 건의 보도를 쏟아 냈다. 결과 국회에서 청문회까지 열리고 관리감독 부서인 경찰청장은 사과를 했다. 재발방지를 위해 관련 법 개정도 추진 중이다. 힘들지만 보람을 느끼는 것은 이렇게 해서 사회가 조금씩 발전해 나가는 데 한 몫을 하기 때문이다.

 

또, 기자는 다른 직업과 다른 점이 있다. 자기가 힘들게 취재하고 쓴 기사는 오로지 자기의 공으로 돌아온다는 것이다. 일반 회사원들의 경우 자기가 노력해도 그 성과가 조직에게 돌아간다는 점과는 다른 부분이다. 
 

임 : 이제 매체도, 기자도 넘쳐난다. ‘기록하는 사람’이란 뜻의 기자는 쓰임에 따라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다. 많은 사람을 만나고 다양한 상황과 마주치는 직업인만큼 힘도 들지만 보람도 많다고 생각한다. 막연히 ‘기자’를 꿈꾸기보다는 ‘어떤 기록을 하는 사람’이 되고 싶은지 생각해보면 좋겠다.

 

 


취재 도중 생긴 에피소드가 있나. 가급적이면 책에는 공개하지 않은 이야기면 좋겠다.

 

이 : 지하방 거주자 취재할 때였다. 서울 신림동에 다세대 주택 밀집 지역이었는데 반지하방은 흙타울로 뒤덮여 처참한 상태였다. 차오르는 물을 피해 겨우 탈출한 한 어머님을 만났다. 이 어머니는 저를 보자마자 울기 시작했다. 어머니가 운 것은 단지 집이 물에 잠겨서가 아니었다. 바로 딸 때문이다. 영상학과 입시 준비하던 딸의 포트폴리오가 모두 물에 잠겨 못쓰게 된 것이다. 인터뷰를 마친 뒤 나는 그 어머님께 무언가를 해주고 싶었다.

 

“큰 도움은 못되지만, 뭐하나 해드리고 싶습니다” 하고 정중하게 말씀드렸더니, 어머님께서는 “우리 딸이 케이크를 좋아하니 케이크 하나 사달라”라고 말했다. 나는 어머님과 함께 근처 제과점에 들러서 케이크를 손에 안겨드렸다. 그 때 방긋 웃으시던 표정이 기억이 난다. 지금은 그 모녀가 정상적인 생활로 돌아왔을 것이라 믿는다. 내가 사드린 케이크 한 조각이 모녀에게 큰 힘이 되었다면 더할 나위 없을 것 같다.

 

임 : ‘무늬만 부부’ 기사를 쓰고 나서 한 선배가 “부인이 그 기사를 스크랩해서 가져와 읽어보라고 했다”며 “기사 속 아내의 심정이 자기 심정이라고 하더라”라고 했다. 어떤 선배는 “기사 속 남편의 이야기를 읽고 누가 내 일상을 훔쳐본 줄 알았다”고 했다. 이런 피드백이 너무 많아서 난 “도대체 외로운 부부가 세상에 얼마나 많은 것인가”라고 한탄한 적이 있다. 드러나지 않는, 곪은 구석이 한국 사회 곳곳에 의외로 많다.


앞으로 계획에 대해 알려 달라. 그리고 채널예스 독자를 위해 한 마디 한다면?

 

이 : 현재는 경찰청에 출입하고 있다. 아무래도 그 전에 썼던 사회약자를 위한 기사보다는 범죄와 국가 기관인 경찰에 관한 기사를 많이 쓴다. 하지만 항상 낮은 곳으로 시선을 두려고 노력한다. 현장의 기자로서 가치 판단이 잘 안 되는 부분이 있다. 양 쪽 얘기가 다 다름대로 타당하다고 느낄 때 말이다. 하지만 양쪽에 다 옳다고 쓴다면 다른 한쪽은 피해를 받게 돼 있다. 사회의 가치가 그만큼 첨예하게 대립하기 때문이다.

 

그럴 때마다 나름대로 기준을 잡았다. ‘양쪽의 입장이 엇갈릴 경우 사회적 약자의 편에서 기사를 쓰자’이다. 그동안 그렇게 기사를 써왔고, 원칙이 맞았다는 나름대로의 자존심을 갖고 있다. 다른 사람도 살면서 가치판단이 잘 안될 경우가 있을 것이다. 그럴 때 사회적 약자를 생각하기를 당부한다.


앞으로도 이 기준에 맞춰서 기사를 판단하고 작성할 것이다. 여러분들도 한 번은 주변을 둘러보길 바란다. 우리보다 훨씬 열악하게 사는 이웃이 산재해 있다. 그리고 또 우리의 아주 작은 관심 하나로 많은 것을 바꿀 수 있다.

 

임 : 앞으로 기자로서 게으르지 않게 살겠다. 책에 관심 가져 주셔서 감사하다.  

 

* 이 인터뷰는 서면으로 진행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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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우리는 혼자가 되었나 이정국,임지선,이경미 공저 | RSG(레디셋고)

『왜 우리는 혼자가 되었나』는 곳곳에서 균열과 누수가 일어나고 있는 한국 사회를 둘러보고, 문제적 상황에 처해 있는 사람들을 만나며, 그 해결책을 찾는 책이다. 「한겨레」의 이정국, 임지선, 이경미 기자는 이 책에서 ‘감정 노동, 정화 노동, 직장인 임산부 차별, 직장 왕따’ 등 노동 현장의 문제들은 물론 ‘자살, 언론 보도 피해, 노인 고독사’ 등의 사회 문제, ‘각방 부부, 아동 유기’ 등의 안타까운 사연들을 심도 있게 취재하고 그 내용을 픽션, 편지, 대담 등 다양한 형태로 풀어냈다.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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