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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계발서가 가장 많이 팔리는 나라는 한국 - 유병률 『죽음의 계곡』

죽음의 계곡, 탈출구는 어디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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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삶을 한번 돌아보면, 끊임없이 자기를 계발해야 한다는 주입식 이데올로기에 사로잡혀 있다. 내 삶을 고스란히 병든 자본주의의 제물로 갖다 바친다. 세상의 많은 논리 가운데 극히 일부일 뿐인 ‘경제 논리’가 세상의 전부인 것처럼 받아들이는 셈이다. 많이 힘들더라도, 최소한 눈을 뜨고 가자.

『서른살 경제학』의 저자, 유병률이 『죽음의 계곡』이라는 신간으로 독자 앞에 섰다. 소설 같은 제목이지만, 이 책은 경제사를 기술한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자본주의의 역사다. 저자는 말한다.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는 죽음의 계곡에 갇혀 있다고.

 

'죽음의 계곡'은 추상적인 공간이 아니다. 미국 서부 오리건주에 있는 월래밋밸리가 바로 죽음의 계곡이다. 이곳은 19세기 중반까지 칼라푸야라는 원주민 부족이 살던 땅이었다. 비옥한 토양으로 이루어져 있어 살기 좋은 곳이었지만, 동시에 질병이 만연하던 곳이기도 했다. 원주민은 백인의 침략 때문에 이 땅을 버리지만, 이전까지는 주기적으로 엄습하던 전염병도 감내하고 버텼다. 이후 사람들은 원주민을 위협했던 전염병이 꽃가루 알레르기 때문에 발생한 것으로 추측한다.

 

유병률은 죽음의 계곡이 21세기 한국사회와 비슷다고 본다. 사회에서 죽어나가는 사람은 늘 있고, 공동체 구성원을 위협하는 구조적인 모순도 존재하지만 개인은 아무런 대책 없이 살아간다. 그렇다면 자연스레 어떻게 해야 죽음의 계곡에서 벗어날 수 있을지 궁금해진다. 직접 저자의 말을 들어 보자.

 

우리가 경제사를 꼭 알아야 하는 이유

 

『서른살 경제학』을 2005년에 냈다. 7년이 지났으니, 그 당시에 비해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예전에 『서른살 경제학』을 읽었던 30대의 대부분이 40대가 되었다. 예전 독자를 위해 『마흔살 경제학』을 낼 법도 한데 이번에 쓴 책은 경제사 책이다. 책을 쓴 동기가 궁금하다.

 

“경제 관련 책을 몇 권 써오면서 늘 자괴감에 빠지곤 했다. 당장 눈앞의 경제 문제에 대한 고민이 늘 태평양 위에 떠 있는 작은 조각배 정도의 문제제기밖에 되지 못한다는 생각 말이다. 눈앞의 당면한 문제들을 파헤치는 것에만 주력하면, 경제라는 놈이 늘 우리의 뒤통수를 치게 된다.

 
문제는 경기나 거시정책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흔히 ‘경제가 좋아졌으면… ’ 이야기하지만 설령 경제가 좋아진다고 한들, 우리 삶이 달라질 거냐? 그렇지도 않다. 좀 덜 나빠질 수는 있어도, 크게 나아질 수는 없다. 그렇다면 문제는 구조의 문제이고, 그런 구조에 이미 익숙해버리고, 닳고 닳아버린 우리의 문제다. 그래서 우리가 어떻게 이런 구조로 흘러오게 됐는지, 우리가 어떻게 하다가 그런 구조에 나도 모르게 순응하게 돼버렸는지 한번 보자는 것이다.

 
사람도 그렇다. 그 사람을 제대로 알려면 그 사람의 역사를 알아야 한다. 어떤 부모 밑에서 어떤 아픔과 어떤 상처를 가지고 자랐는지, 어떤 트라우마를 가지고 있는지 알아야 한다. 그래야 그 사람의 현재 위치를 제대로 알 수 있다. 우리가 사는 세상도 마찬가지다. 우리 선배세대가 어떤 환경에서 어떤 상처를 가지고 살아왔는지, 어떻게 환경에 순응하고, 다른 한편으론 어떻게 환경을 바꿔왔는지 알아야 지금 우리의 위치를 알 수 있다. 그래야 우리한테 아직도 남아있는 나쁜 옛것과 희망적인 새로운 것을 구별해낼 수 있다. 그래서 세상사, 그중에서도 경제사를 모르면 눈을 감고 길을 걷는 것과 같다.”

 

20대는 취업, 30대는 조직에서 살아남기, 40대부터는 자녀교육과 노후걱정, 도대체 안 힘든 세대가 없다. 모든 세대가 ‘샌드위치 세대’다. 이들 샌드위치 세대가 ‘딜리셔스’해지기 위해 ‘문화능력’을 키워야 한다고 전작 『딜리셔스 샌드위치』에서 말했다. 전작과 『죽음의 계곡』 간의 문제의식은 어떻게 이어지는가.

 

 

 

“최근에 <대한민국 대표선배가 88만원 세대에게> 라는 인터뷰를 15회 진행했다. 박경철 원장, 박웅현CD, 이준익 감독, 최재천 교수, 김범수 대표, 우석훈씨 등 기존의 성공 카테고리에서 벗어나 자기 것을 꿋꿋이 추구하면서, 또한 즐기면서 새로운 성공스토리를 쓴 것에 주목했다. 그 분들은 얼마나 치열하게 자기 것을 ‘즐기며 추구하느냐’에 답이 있다고 생각한다. 나의 문제의식이기도 하다.

 

핵심은 세상이 강요하는 줄서기를 의심하고 거부해야 한다는 거다. 지금 우리가 강요당하고 있고, 오히려 우리가 더 적극적으로 내면화하고 있는 줄서기의 논리는 전적으로 ‘경제 논리에 의한’ 줄서기다. 우리는 이제 경제논리에 따른 기회의 사다리를 밑에서부터 걷어차야 한다. 새로운 문화의 논리, 공생의 논리를 만들어가야 한다.
 
우리의 삶을 한번 돌아보면, 끊임없이 자기를 계발해야 한다는 주입식 이데올로기에 사로잡혀 있다. 내 삶을 고스란히 병든 자본주의의 제물로 갖다 바친다. 세상의 많은 논리 가운데 극히 일부일 뿐인 ‘경제 논리’가 세상의 전부인 것처럼 받아들이는 셈이다. 많이 힘들더라도, 최소한 눈을 뜨고 가자. 눈앞의 것만 보면, 영원히 경제로부터 종속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우리를 경제라는 한쪽 방향으로만 강요해온 실체가 무엇인지에 매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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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구조가 변하면, 인간도 변한다

 

『죽음의 계곡』이라는 책은 여러 가지 점에서 흥미로운 책이다. 첫 번째가 제목이다. 경제사를 다룬 책이지만, ‘죽음의 계곡’이라는 제목은 전혀 경제서 같지 않다. 오히려 소설책에 어울리는 제목이다. 이처럼 비유적이고 상징적인 제목을 선택한 이유가 있나.

 

“미국 오리건주에 가면 윌라맷밸리라는 지역이 있다. 와인 중에 ‘피노 누아르’라고 있는데, 그걸로 유명한 곳이다. 아주 축복받는 곳이다. 거기엔 전설이 하나 내려오고 있다. 그 전설이 뭔가 하면 축복받은 그곳이 실은, 죽음의 계곡이었다는 이야기다.

 
윌라맷밸리에는 원래 ‘칼라푸야’라는 인디언 부족이 살았다. 이들 구성원 중, 갑자기 하나 둘씩 죽어나갔다. 아무도 그 이유를 알지 못했다. 부족의 원로들은 풍요를 누리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치러야 할 대가라고 했다. 주민들도 혜택을 포기할 수 없었기 때문에 원래 그렇게 사는 거라고 받아들이며 살았다. 원래 그렇게 사는 것이라는 집단의식이 대대로 내면화됐던 것이다. 그래서 의심을 하거나, 계곡 너머로 탈출을 꿈꾸지 못했다. 누구도 떠나지 못했다. 그러다 결국 백인들한테 쫓겨나고 만다.

 
이 전설이 지금 우리의 현실과 너무나 닮았다. 모두가 힘들어 지쳐 쓰러지면서도 그냥 살고 있다. 원래 그렇게 사는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말이다. 또 그런 이데올로기를 마음 깊숙이 받아들인다. 그래서 죽음의 계곡이다. 아무도 떠나려 하지 않기에 결국 누구도 못 떠난다.”


두 번째 흥미로운 점은, 6가지 키워드를 정하여 경제사를 설명했다는 것이다. 6가지 키워드는 각각 변화해 온 자본주의 시대에 적응해 온 인간형을 상징한다. 아직 책을 읽지 않은 독자를 위해, 자본주의 시대에서 인간이 어떤 모습으로 적응해 왔는지 설명해 달라.

 

“자본주의의 역사를 크게 세 가지 시대로 구분했다. 우선 자본주의가 탄생했던 ‘야만의 시대’다. 그리고 자본주의가 가장 풍요로웠던 ‘타협의 시대’, 마지막으로 우리가 지금 그 한복판을 지나고 있는, 타협이 해체된 이후의 ‘시장의 시대’다. 이런 자본주의의 역사는 매시기마다 새로운 인간형을 요구했다. 사회구조의 변화는 늘 그렇듯 개인의 정체성을 뒤바꿔놓았다.

 
우선 ‘야만의 시대’에 우리의 할아버지 세대는 ‘서커스단의 코끼리’같은 인간형을 요구받다. 조련사가 던져주는 먹이를 얻기 위해 묵묵히 회초리를 견뎠다. 당시 대다수 사람들은 자유가 무엇인지도, 자신의 욕망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서커스단 코끼리처럼 시키는 대로 링도 돌리고, 재주도 넘으며 살았다.

 
20세기 중반 ‘타협의 시대’의 우리 부모세대는 대부분 전보다 잘살게 되었다. 자본과 노동 간 이해가 맞아떨어졌기 때문에 타협을 했던 시대이니까. 혁신은 덜 됐지만, 개개인 삶의 스케줄은 대개 예측 가능했고, 절박함이나 불안의 흔적도 없었다. 자본주의 역사상 가장 좋았다는 ‘풍요의 시대’이기도 하다. 이 시대가 요구한 인간형은 바로 ‘양계장의 암탉’이다. 주인이 내주는 먹이를 먹으며 매일 알만 낳으면 비교적 편안하게 노후까지 보장됐다. 비록 알을 품고 새끼를 깔 수는 없었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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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타협 속에서 부족하지 않는 임금을 받으며, 안정된 삶을 누린다. 하지만 컨베이어벨트 앞에 늘어선 노동자들은 지독한 작업속도와 기계적인 작업리듬을 감내해야 했다. 또한 대기업과 대공장의 관료주의로 인해서 개인의 개성과 창의성은 점점 실종된다.  그래서 타협의 시대는 안정적인 보금자리가 주어진 시대였지만, 그 보금자리는 내 평생의 시간을 기업가에게 팔아넘긴 보금자리였다. ‘평생을 보장받는 안식처였지만, 그건 ’또 다른 감옥’이었다.


마지막 ‘시장의 시대’다. 1980년대 이후 자본과 정치는 타협의 시대를 지탱해온 울타리를 해체한다. 경제사의 현실은 보금자리와 감옥 사이에서 적당히 타협하며 살던 사람에게 분열된 삶을 강요하며 가치와 생존 사이에서 갈등하게 만든다. 바로 지금 우리의 모습이다. 끊임없이 자신을 개발하고 달달볶는다. 기회의 사다리를 붙잡기 위해 죽기 살기로 경쟁하는 악착같은 ‘자기계발형 인간’이 탄생했다. ‘지킬과 하이드’의 하이드처럼, 자신의 본질적 소망과 생존 자체에 대한 소망을 분리시키는 이중적 인간을 만들었다.


그렇다면 지금 죽음의 계곡을 탈출할 수 있는 인간형은 무엇일까? ‘귀신고래형’ 인간이라고 생각한다. 공존 공생해야 할 생태계를 독점한 사나운 범고래들과는 달리, 보살펴야 할 약한 존재를 업고 다니며 자립할 수 있을 때까지 보호해주는 귀신고래와 같은 인간형에서 희망을 발견할 수 있다고 본다.”

 

오늘날의 우리를 ‘악마의 맷돌’ 속에서 갈리고 있는 세대라고 표현한 부분이 섬뜩하다. 불안에 시달리는 우리는 어떻게 삶의 방식을 바꾸어야 할까?

 

“‘악마의 맷돌’이라 표현한 이유는 지금 우리는 비록 자율적인 시장의 시대에 살고 있지만, 시장의 자율성 이면에는 사회 전체를 맷돌처럼 집어삼킬 수 있는 폭력적인 강제성이 숨어 있기 때문이다. 시장의 전면화는 곧 경쟁의 전면화이고, 경쟁이라 함은 승자와 패자를 나누는 과정이다. 그래서 ‘시장의 시대’의 가장 큰 특징은 본질적으로 불안과 불균형, 절박함을 내재하고 있다는 것이다. 조금만 뒤쳐져도 패자가 된다. 피곤하다고 멈춰서도 안 되고, 아무리 달려도 제자리라 해도 계속 달려야 한다. 이건 기업도, 개인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사람들은 너무 불안하면, 야합을 하게 된다. 도저히 불가항력적인 힘에 마주치면 공격자와 자신을 동일시 해버린다. 공격자의 논리를 마치 자신이 선택한 논리인양 받아들인다, 그래서 신자유주의가 개인의 정체성에 미치는 영향이 무섭다.

 
우선, 정확하게 인식하고, 세상을 의심해야 한다. 우리가 어떻게 하다가 죽음의 계곡으로 흘러들어오게 됐는지 인식하는 것, 그리고 우리가 왜 세상이 강요하는 이데올로기의 노예가 됐는지 의심하자. 의심하고 인식하면 안목이 생기고, 안목이 생기면 다른 길이 보인다. 세상이 강요하는 줄서기를 거부할 수 있는 능력이 생긴다. 세상이 강요하는 기회의 사다리를 밑에서부터 걷어찰 수 있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다른 길을 추구하다보면 결국 세상은 바뀌게 된다.”

 

자기계발서가 잘 팔리는 한국, 대안은 경쟁이 아니다


책에서 이야기하는 내용이 주로 미국의 사례다. 영미 자본주의보다는 한국의 자본주의에 대해 궁금해 할 독자가 있을 것 같다. 차후, 한국 자본주의에서 자본주의 전개와 이에 적응해 온 인간상이라는 내용으로 책을 쓸 계획이 있나.

 

“미국 자본주의 역사를 통해 한국을 보여주자고 했다. 미국 경제사를 선택한 이유는 미국만큼 자본주의 변천사를 적나라하게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곳도 없다는 요인도 있지만, 우리나라 자본주의와 너무나 닮아있기 때문이다. 압축성장, 각개약진, 승자독식 같은 것들이 판박이다. 자기계발서가 세계에서 가장 많이 생산되고 팔리는 시장도 바로 미국과 한국이다. 유럽에서 자기계발서가 이처럼 흥행하는 것을 본 적 있나? 

 
그래도 미국은 야만의 시대를 거친 이후 최소한 20세기 중반 40여 년간 풍요의 시대라도 있었지만, 한국은 이마저도 없다. 국가자본주의의 야만의 시대에서 곧바로 시장의 시대, 신자유주의 시대로 넘어가버렸다. 오히려 한국 자본주의는 미국 자본주의보다 더 나쁜 셈이다.”


2007년 서브프라임 부실로 인한 세계적인 금융위기 이후, 2011년 그리스를 비롯한 유럽 재정위기가 한국 경제에도 영향을 미쳤다. 현재 자본주의가 죽음의 계곡이라는 사실을 상징적으로 보여 주는 사건이 아니었나 싶다. 많은 사람이 위기의 핵심을 ‘금융’으로 보고, 『죽음의 계곡』에서도 5장, ‘악마의 맷돌’에서 중요하게 다룬다.

 

“금융의 바림직한 위상은 산업의 윤활유와 같은 역할을 하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금융은 이미 경제의 전부가 된 것처럼 행동한다. 끊임없이 버블을 만들고, 이런 버블로 위기의 본질, 우리 삶의 본질을 은폐한다. 금융이 우리를 가장 많이 착각하도록 하고 있는 것이 바로 ‘자기 승산에 대한 과대평가’이다. 시장은 수많은 사람들의 성공스토리를 실시간으로 전달하고 퍼뜨린다. 그걸 보면서 마치 나도 조금만 노력하면 성공할 수 있다, 돈 벌 수 있다는 착각을 하게 만들고 있다.

 
이런 착각과 환상 때문에 우리는 더더욱 자신을 달달 볶고, 스스로에게 자기계발을 강요한다. 사실 낭만은 금융기법을 계속해서 발명해내고 있는 극히 소수에게만 있을 뿐인데, 대다수 사람에게는 야만인데, 마치 자신도 그 낭만을 누릴 수 있을 듯한, 환상을 가지게 한다는 것이다. 다수에 대한 야만을, 낭만으로 은폐해버리는 것이다.”


대안에 대해서 이야기 해 보자.『죽음의 계곡』은 우리가 왜 죽음의 계곡에서 벗어날 수 없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경제에 정통하지 않은 일반 독자도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간명하고 재밌게 쓴 책이다. 특히 죽음의 계곡을 탈출할 수 있는 방법으로 제안한 ‘귀신고래의 경제학’이 흥미로웠다. IT의 진보 외에 사회경제적 대안에 대해서도 좀 더 듣고 싶다.

 

“죽음의 계곡을 탈출할 수 있는 필요조건은 국가적으로 우리 삶의 질을 개선하고, 불안을 조금이라고 걷어내는 것이다. 내가 진정 하고 싶은 것을 추구한다고 할 때, 최소한 먹고살 수 있도록 해주는 사회적인 안전망이 필요하다. 복지의 역할이고, 우리가 참여해서 강제해야할 정치의 역할이다.

 
하지만,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이것만 된다고 내 삶이 행복해질 것이냐는 것이다. 내 마음 속의 ‘남들보다 더 열심히 해서 살아남아야 하고, 기회의 사다리를 올라타야 한다’는 낡은 찌꺼기가 사라지겠냐는 것이다. 그래서 강조하는 게 ‘귀신고래’다. 귀신고래는 온 몸에 따개비와 굴을 붙이고는 바다를 유영한다. 따개비들은 귀신고래와 함께 바다를 누비며 플랑크톤을 먹고 산다. 귀신고래는 또 새끼를 등에 업고 다니며 키운다. 그래서 상어보다 무서운 범고래와는 아우라가 다르다. 나로 인해서 다른 생명이 살아 숨 쉴 수 있고, 나 역시 남들로 인해 성숙하고 아름다워질 수 있는 그런 공간, 그런 플랫폼, 그런 관계를 소중이 여기고 동참하자. 우리 주변의 귀신고래를 소중히 여기고 그 등에 올라타자.

 

그것이 IT진보가 열어준 새로운 집단지성의 공간, 새로운 모바일 광장이 될 수도 있고, 내 주변에서부터 나눔의 경제, 공유의 경제를 실천하는 것일 수도 있고, 내가 하고 싶은 것과 해야할 것을 일치시키는 문화의 공간을 만드는 것일 수도 있다.”

 

사회경제적인 대안 외에도 진정한 변혁이 이뤄지려면 하부토대 외에도 상부구조에서도 변화가 있어야 한다. 책에서는 민주주의 실현이나 비경제적인 인간의 욕망을 꼽았다. 하지만 한국사회는 그 어떤 사회보다 비경제적인 인간의 욕망이 무시당하는 사회다. 비경제적인 욕망이 다소 어려운 표현인데, 다르게 말하면 공동체이다. 한국 사회는 공동체가 많이 무너진 사회다. 최근 사회적인 이슈가 된 학원폭력 등도 결국은 공동체 의식이 부족한 데서 발생했다고 본다. 공동체 복원을 위해 필요한 상부구조의 개혁, 쉽지 않을 것 같다. 하지만 책에서는 다소 낙관적인 이야기를 많이 썼는데, 여기에 대해 좀 더 이야기를 듣고 싶다.

 

“비경제적인 욕망이 무시당하는 이유는 우리 스스로가 무시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살아남아야 한다’ 는 명제만 강요당하고 있고, 또 이를 우리 스스로 내면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경쟁상황에서 남을 무너뜨리고, 더 높이 올라가는 것에 대해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도록 스스로 최면을 건다. 이게 아닌 줄 알면서도, 나를 합리화하기 위해서다. 지킬박사는 사라지고 하이드만 남았다.


하이드는 이중성과 분열을 상징한다. 고귀한 쪽과 부조리한 쪽이 분열되면서, 부조리에 몰입하는 것이다. 인간으로서의 본질적 소망, 그러니깐 정말 내가 무엇인가를 하고 싶다는 본질적 욕망과 단지 먹고 살기 위해, 뒤처지지 않기 위해 생존 그 자체를 소망해야 하는 것이 완전히 분열되고, 그래서 이제는 생존 그 자체에 대한 소망에만 몰입하게 된 거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이 내가 하고 싶은 일이 아니라고 느끼면서도 그 일을 위해 자신을 끊임없이 혹사시키고 있는 경우가 많지 않나. 


내가 살고 싶은 방식과 내가 살아가고 있는 방식이 전혀 다른 것, 내 영혼과 내 손발의 움직임이 전혀 다른 것, 바로 이런 하이드형 인간을 우리는 지금 강요받고 있다. 그런 이데올로기에 노예가 되고 있음을 자각하고, 저항하는 것이 공동체 회복의 출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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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으로, 채널예스 독자에게 한 마디 부탁한다.

 

“책의 제목이 좀 무시무시하지만, 진짜 하고 전하고 싶었던 것은 희망이다. 이미 세상은 바뀌기 시작했다. 스마트폰이 만들어내고 있는 집단지성, 개개인의 의견이 모아지고 행동으로 동참되는 광장이 만들어지고 있다. 한 특정 개인이 목소리를 못 내게 억압할 수는 있어도, 모든 사람에게서 스마트폰을 뺏을 수는 없다. 세상은 이미 진보적인 쪽으로 바뀌고 있다.”

 

* 이 인터뷰는 서면으로 진행되었으며, 사진 및 일러스트는 알투스 출판사에서 제공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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