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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 안의 시인을 깨워라, 당신은 어떤 詩가 되고 싶은가!”

『내 마음을 만지다』 이봉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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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일, 서울 명륜동 시문화회관이었습니다. 『내 마음을 만지다』의 저자이자 문학치료사 이봉희 교수와 ‘내 마음을 만지’고 싶은 사람들이 만났습니다.

<아웃 오브 아프리카(Out of Africa)>. 아시죠? 메릴 스트립과 로버트 레드포드 주연의, 아프리카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로맨스 영화. 저처럼 커피 만드는 사람에겐 인상적인 아프리카의 커피농장을 볼 수 있었던 이 영화엔 동명의 원작이 있습니다. 덴마크 작가 이자크 디네센(Isak Dinesen, 본명 카렌 블릭센(Karen Blixen))이 원작자인데, 『아웃 오브 아프리카』는 그녀의 자전적인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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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릭센 남작과 약혼 뒤 케냐에서 커피농장을 개척했고, 이혼 뒤 이를 경영했고,(결국 망했지만) 사냥꾼이자 사파리 안내자였던 데니스 핀치 해튼과 사랑에 빠졌습니다(그는 비행기 사고로 죽고 말았죠). 연인을 잃고, 대공황으로 인한 커피판매 부진과 농작 실패로 농장을 잃은 뒤, 그녀는 ‘아웃 오브 아프리카’, 덴마크로 돌아와 글을 썼습니다.

아프리카와 아프리카인들에 대한 애정이 드러난 『아웃 오브 아프리카』는 출간되자 큰 호평을 받았습니다. 그녀는 비록 수상은 못했지만, 노벨문학상 후보에 2번이나 올랐습니다. 그녀가 처음 후보에 오른 1954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헤밍웨이는 수상 후 이런 말도 남겼습니다. “이 상은 나보다는 다음의 세 사람, 칼 샌드버그, 버나드 베렌슨, 그리고 아름다운 작가 이자크 디네센에게 돌아갔어야 한다.”

짐작컨대 그녀는 이야기를 만들면서 자신의 슬픔을 다스리고 위안을 받은 것 같아요. 연인과 농장, 두 사랑을 앓고 놓친 슬픔이 글쓰기 동력이 됐다고나 할까요. 그녀가 남긴 이 말이 그것을 입증합니다. “All sorrows can be borne if you can put them into a story or tell a story about them(모든 슬픔은 당신이 그것을 이야기로 만들거나 그것들에 관해 이야기를 할 수 있다면, 견뎌질 수 있다).”

이 말은 그녀가 뉴욕타임즈와 전화인터뷰를 한 뒤 1957년 11월3일자 북리뷰에 실렸는데요, 한나 아렌트가 『인간의 조건』(1958)에 인용함으로써 유명해졌습니다. 아웃 오브 아프리카, 책이든 영화든 보셨다면, 아마도, 짐작할 수 있을 겁니다. 그녀는 모든 것을 잃었습니다. 그토록 사랑했던 연인도, 모든 것을 쏟았던 커피농장도. 그런 그녀를 견디게 한 것은 글쓰기였고, 이야기를 만드는 일이었습니다. 당신도, 혹시 슬픔과 고통, 아픔이 있다면 이야기로 만들거나 그것에 관해 이야기 해 보는 건 어떨까요? 당신 안에도 그런 문학가가 있거든요.

키팅 선생님과 카르페 디엠(Carpe Diem)으로 유명한 <죽은 시인의 사회>도 그런 이야길 던집니다. “의학, 법률, 경제, 기술 따위는 삶을 유지하는데 필요해. 하지만 시詩와 미美, 낭만, 사랑은 삶의 목적인 거야.” 아무렴요. 당신은 혹시 삶에 필요한 것과 목적을 혼동하고 있진 않는지요? 행여 그랬다면 지금부터 하는 이 이야기에도 귀를 한 번 기울여보시죠. 2012년, 그래서 당신은 좀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을 거예요. 삶의 목적에 좀 더 충실한.


지난 5일, 서울 명륜동 시문화회관이었습니다. 『내 마음을 만지다』의 저자이자 문학치료사 이봉희 교수와 ‘내 마음을 만지’고 싶은 사람들이 만났습니다. 그리고 자연스레 감정이 흐르는 대로 내버려뒀던, 느낌이 충만했던 겨울밤. 바깥은 추웠지만, 이곳에 모인 사람들의 마음은 충만하고 따듯했습니다.

“우리가 직면해야 하는 현실은, 바로 삶은 우리가 받아들여야 하는 실존적 한계상황들로 가득하다는 사실입니다. 마음이 건강해지고 치유된다는 것은 그런 현실, 즉 한계상황을 받아들이는 일입니다.”(pp.72~73)



‘좋은’ 부모가 되고 싶은 당신에게

좋은 부모. 아이가 있는 부모라면, 누구나 바라는 것. 이봉희 교수는 좋은 부모가 되는, 꼭 필요한 전제를 말합니다. “좋은 부모가 되기 위해서는 자기 문제를 먼저 해결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상처와 고통은 대물림되고, 폭력은 악순환합니다. 무의식적으로 아이에게 악을 행할지도 모릅니다.

이 교수는 페스탈로치의 말을 꺼냅니다. “당신은 당신의 정원에서 악마를 쫓아낼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그 악마를 당신 아들의 정원에서 다시 발견할 것입니다.” 말인즉슨 자신의 억눌린 과거와 감정을 해소하지 않으면 그것이 아이들에게 전이될 것임을 경고하는 것이죠.

“부모 자신이 먼저 과거 속 고통의 거미줄을 거두어내고, 자신과 자신의 행복을 전적으로 책임질 수 있도록 건강하고 성숙해져야 합니다. 나는 불행하면서 자녀에게 행복하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부모가 먼저 행복하면 자녀는 자연히 행복해집니다.”(p.24)



이 교수는 헨리 나우엔 신부의 말을 꺼냅니다. “잊혀진 상처는 정녕 잊힌 것이 아니라, 치유될 기회를 놓친 것이다. 잊혀진 것은 치유 받을 수 없고 치유 받을 수 없는 것은 더 큰 악(고통)의 원인이 된다.” 치유가 필요한 이유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치유해야 할까요? 이 교수는, 브레드 쇼의 “빠져나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통과하는 것뿐”을 들며 슬픔이 바로 치유감정임을 지목합니다.

“남자들도 치유과정에서 눈물을 흘립니다. 최근 20여명의 대학원생과 문학치유 시간을 가졌는데, 전원이 울었어요. 내가 왜 이러지, 하면서 눈물을 흘리더군요. 우리 모두가 아프구나. 참 할 이야기가 많구나, 느꼈어요. 눈물은 치유의 시작입니다. 슬퍼하는 것을 허락하면 치유가 됩니다.”

그러니, 아이가 울 때, 부모들은 흔히 하는 말, “울지 마”. 이 교수는 그 말을 하지 말라고 권합니다. 되레, “실컷 울렴. 엄마가 안아줄게”라는 것이 더 좋습니다.

“감정은 에너지입니다. 감정을 억압하면 몸속에 다른 에너지로 저장돼 이유 없이 아프거나 우울증 등 다양한 증세로 나중에 나타나요.”

“영어로 감정 Emotion은 ‘흐르다’라는 뜻의 라틴어에서 그 어원을 찾을 수 있습니다. 캐슬린 애덤스를 비롯한 저널테라피스트(저널치료사)들의 표현대로 감정(이모션)은 좋고 나쁜 윤리적인 것 이전에 움직이는 에너지 Energy in Motion, 즉 E-모션일 뿐입니다. 따라서 감정을 무조건 억압하는 것이 아니라 건강하게 표현해서 해소시켜야 합니다.”(pp.47~48)



문학치료와 저널치료

‘문학치료’란 뭘까요? 여기 정의를 한 번 보죠. ‘문학치료는 성장과 치료, 문제 해결을 위한 문학치료사와 내담자, 그리고 문학 간의 상호작용이다.’


“제 책은 문학치료서가 아니에요. 문학치료는 지식을 주고자 함이 아닙니다. 같이 공감해주고 위로해주고 포기하지 않는 게 약입니다. 문학치료사는 같이 아파하려고 애를 써요. 이때 문학은 촉매로서 역할을 하며 치료사는 문학을 선별?사용해 내담자가 성찰과 성장, 정신적?육체적 자유와 치료로 나아가도록 안내합니다.”

이 과정에서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바로 내담자의 자기표현이죠. 즉, 글쓰기/시창작/그림/저널쓰기 등 언어표현이 중요한 요소라고 합니다. 문학치유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글쓰기입니다. 문학은 문학적 가치와 무관하게 내담자의 반응을 어떻게 이끌어낼 것인지가 중요하고요. 그래서 남의 사례가 중요하지 않습니다. 스스로 깨닫고 찾아가고 탐구하도록 만드는 것이 문학치유의 목적입니다.

그렇다면 ‘저널치료’는 뭘까요. 이 교수에 의하면, 글쓰기 치료의 일부입니다. 곧 일기입니다. 정의를 잠깐 살펴볼까요? ‘정신과 육체, 감정의 건강과 행복의 증진, 문제해결, 성장과 치료를 목적으로 한 지극히 사적이며 자유로운 성찰적 글쓰기, 즉 자신의 마음을 읽는 행위다. 성찰적 글쓰기다.’

“내 안의 분노를 어떻게 건강하게 표출할 수 있을까요? 그것은 안전한 글로 감정을 쏟아내는 것입니다.”(p.48)



이 교수는, “글쓰기는 말하기와 다른 독특함이 있다”(Bolton)을 인용하면서, SBS플러스의 부부관계치유클리닉 프로그램 <미워도 다시 한 번>의 한 커플이 치유과정에서 ‘저널치료’가 가장 좋았다고 했던 이야기도 꺼냅니다.

“토해내듯 글 쓰는 것이 좋습니다. 우리는 알고자 하는 강박에 시달리고 에너지를 써요. 모든 일을 다 알고자 하는 욕구는 예측 불가능한 부모 때문이에요. 이런 부모 밑의 아이는 포로수용소에서 성장하는 것과 같다고 합니다. 해결 못한 악은 언젠가 꼭 대물림해요. 그들은 과거를 치유할 때까지 모든 걸 이해하려고 계속 시도해요. 감정을 다루는 작업이 필요한데, 글쓰기나 문학치료가 좋습니다.”

“답답하고 이유 없이 울고 싶다면, 세상에 나만 남은 듯 외롭다면, 나의 고통이 누군가에게 웃음거리가 된 것 같다면, 그래서 어떤 비난도 하지 않는 안전한 친구가 필요하다면 이때 저널이 필요합니다. 펜을 꺼내 공책에 글을 써보십시오. 펜 끝에 숨어 있는 말들을 해방시켜보십시오.”(p.36)



많은 우리는, 어쩌면 감정불구로 자랐고 살았습니다. 내가 느끼는 감정이 지극히 정상적인 흐름임에도 부모들이 허락하는 감정만 나도 허용하는 감정의 감옥. 특히 “남자는 울면 안 돼”라는 식으로 남자는 감정을 더욱 짓눌러야 하는 악순환이었죠. 저는 남자인데, 어릴 때부터 저 말 참 많이 들었습니다. 울고 싶어도 저 말이 떠오르곤 했죠. 학습의 결과였을 겁니다. 하지만 그건 나쁜 학습이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상대적으로 남자는 여자보다 더 감정이 메말랐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백곰의 딜레마’라는 말이 있습니다. 잊을만하다고 생각했는데, 갑자기 튀어나오는 빙산 같은 것. 생각을 억압하려 들수록, 그 생각은 다시 떠오를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것. 이런 겁니다. 1분 동안 백곰에 대해 생각하지 않으려고 노력해 보세요. 아마 실패할 걸요? 백곰의 모습이 계속 나타날 테니까요. 백곰의 딜레마는 댄 웨그너 버지니아 대학교수의 『백곰과 원하지 않은 생각(White Bears and Other Unwanted Thoughts)』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고통 받는 사람들은 그 고통스러운 생각을 피할 수 있는 무슨 일이든 하려고 해요. 그래서 무엇엔가 중독이 됩니다. 무엇엔가 생각을 몰두해서 내속의 아픔을 기억하지 않으려고 하는 거죠. 그러나 그건 ‘바보 되기’에요. 높은 수준의 의식은 (고통과 아픔이라는 감정을) 정면으로 대면하는 것이에요. 내 안의 목소리를 찾아주세요. 문학치유는 그래서 내가 나를 찾아가는 과정입니다.”

“건강과 심리적 억압의 관계에 관한 연구를 보면, 우리가 경험한 감정적 격변이나 심리적 외상(트라우마)은 그것의 심각성 그 자체보다는 그것을 털어놓지 못하고 억압하기 때문에 정신적, 육체적 질병을 초래한다고 합니다.”(p.47)



아픔, 내가 살아있다는 증거

왜 나는 아프면 아프다고 말하지 못할까요?
왜 나는 연약하며 도움이 필요하다고 말하면 안 된단 말인가요?

우리는 아픔을 말하면 약해서 그렇다는 오해를 받습니다. 경쟁과 효율중심의 사회에서 아픔과 고통은 곧 약함과 동격으로 취급합니다. 그것이 우리를 더 힘들게 하는 게 아닐까요?

이 교수는 말합니다. “아픔은 인격적 결함이 아닌 살아있다는 증거예요. 역설 같지만 아픔은 아름다운 겁니다. 느끼지 못하는 게 고통이죠.” 그리고 <여인의 향기>에서 알 파치노가 분한 프랭크의 예를 듭니다. 프랭크는 “나는 나쁜 인간이야. 아니, 나쁜 게 아니라 썩은 인간이지”라고 자책하는데, 크리스 오도넬이 분한 찰리, 이렇게 말해줍니다. “당신은 나쁜 게 아니에요. 다만 고통 받고 있을 뿐이에요.”

“분노나 슬픔의 감정들을 내면화하여 표현하지 않거나 억압한다고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해소하지 못하고 억압한 감정 에너지는 마음속에 여러 다른 형태로 저장되어 있습니다. 그러다가 예기치 않은 순간에 공허감이나 우울함, 대인관계의 문제, 원인을 알 수 없는 육체적 통증 등 뜻밖의 형태로 나타나서 내 자신과 타인에게 고통을 안겨줍니다.”(p.47)



자존감에 대한 이야기가 따릅니다. 이 교수는 낮은 자존감은 나를 잃어버린 것, 혹은 없어진 것과 같은 상태라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나를 찾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것이 나의 일부임을 받아들이고 현재 감정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느껴야 합니다. 타인의 판단이나 의견이 아니라 자기 내면으로부터 자신의 독특함을 깨달아야 해요. 내 존재를 타인(의 인정)에 기대지 마세요. 자존감을 키워 나를 발견한 사람은 창의성이 높아집니다. 내면의 비판자에게 해방된 후에만 자아는 명확히 표현하기 시작하고 창조성을 발전시켜요. 감정을 다루는 글쓰기가 그래서 아이에게는 필요해요.”

이 詩를 한 번 보시죠. 김지하 시인의 「속3」입니다.

솔직한 것이 좋다만/ 그저 좋은 것만도 아닌 것이/ 詩란 어둠을/ 어둠대로 쓰면서 어둠을/ 수정하는 것/ 쓰면서/ 저도 몰래 햇살을 이끄는 일.

문학의 치료적 힘은 이어지는 문구에서도 드러납니다. “나를 찾으려면 낯선 자를 찾아가라.” 낯선 자가 곧 문학이요, 문학치유사 등입니다. 이 교수는 문학치유를 한 계기를 설명합니다. 수업을 할 때 학생들에게 문학감상문 숙제를 주고, 자신의 느낌을 쓰도록 했답니다. 학생들이 수업 중 울기도 하고, 어떤 문제나 우울증 등이 치유됐다는 편지를 많이 받았답니다. 그것이 계기가 돼 문학치유라는 학문을 개발하고 싶었고, 마침 찾아보니 미국에선 이미 의사들이 오래 전 시작을 했습니다. 이 교수, 본격적으로 문학치료사로서의 길을 나섰습니다.


“문학에는 정답이 없다고 학생들에게 말했어요. 지금 이 순간, 시를 읽고 느낀 게 그 학생에게 진실이고 정답이라고 했어요. 어떻게든 자기 이야기를 하도록 만들려고 했고요. 언어는 하나의 사인(sign)이고, 독자는 그 죽은 암호에 숨결을 불어넣습니다. 그러면 그 죽은 문자가 내게 의미가 돼 살아나기 시작합니다. 피그말리온 신화와 같은 것이죠.”


문학과 치료

아이와 어른의 차이는 뭘까요. ‘놀라워하는 능력.’ 아이 때, 모든 게 놀랍고 경이롭습니다. 그러나 어른이 되면 모든 게 낯익고 생의 경이로움을 느낄 수 없습니다. 문학은 그런 어른에게 놀라움과 경이로움을 선사하는 무엇입니다. 문학은 곧 ‘낯선 사람/낯설게 하기’입니다.

“<소피의 선택>에는 이런 말이 나와요. “철학하는 유일한 힘은 놀라는 것이다.” 어른은 아이처럼 놀라워할 수 있는 능력이 없어요. 어른은 지식, 지혜, 경험이 있으나 경이로움을 볼 수가 없습니다. 그날이 그날 같고, 매일 똑같아요. 어른의 그것을 회복하도록 하는 게 문학입니다. 어른의 지혜와 지식에 아이의 놀라워하는 능력을 동시에 가진다면 어떨까요? 그런 능력을 가졌던 사람, 그래서 세상을 바꾼 사람이 뉴턴입니다. 뉴턴은 ‘사과가 왜 떨어지지?’하고 의문을 가졌지요. 놀라워하는 능력을 회복시키는 것이 문학의 힘이고 철학도 유사한 힘을 갖고 있습니다.”

이 교수는 말하지 않은 침묵의 언어에 대해서도 덧붙입니다. “침묵의 언어를 읽는 힘이 삶을 풍요롭게, 외롭지 않게 해요.”

이 교수, 문학의 궁극적 힘은 ‘자아의 확대’라고 강조합니다. 타인은 변하지 않으니 기대하지 말 것. 문학은 눈에 보이고 들리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알려주는 존재. 즉, 삶과 사유의 영역을 확대해주는 것이 문학입니다. 문학은 우리에게 아름다움을 인식시키고, 전인적 자아의 완성을 돕습니다. 프로이드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무의식의 세계를 발견한 사람은 내게 아니고 시인이다.”

이 교수 생각에는 우리 안에 시인이 있고, 그 시인을 깨우는 것이 곧, 문학치료입니다. 이 교수,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에 있는 이 말을 꺼냅니다. “내 속에서 솟아나오려는 것 바로 그것을 나는 살아보려고 했다. 그것이 왜 그토록 어려웠을까.”

그리고 도종환 시인의 「내 안의 시인」을 함께 읊습니다.

모든 사람의 가슴속에는 시인이 살고 있었다는데/ 그 시인 언제 나를 떠난 것일까/ 제비꽃만 보아도 걸음을 멈추고 쪼그려 앉아/ 어쩔 줄 몰라하며 손끝 살짝살짝 대보던/ 눈빛 여린 시인을 떠나보내고 나는 지금/ 습관처럼 어디를 바삐 가고 있는 걸까 (…) 의롭지 않은 이가 내미는 손은 잡지 않고/ 산과 들 서리에 덮여도 향기를 잃지 않는/ 산국처럼 살던 곧은 시인 몰라라하고/ 나는 오늘 어떤 이들과 한길을 가고 있는가(…) 내 안에 시인이 사라진다는 건 마지막까지/ 남아 있던 최후의 인간이 사라지는 거라는데(…)

“우리 각자가 하나의 詩이자, 언어라고 생각해요. 여러분 각자는 詩입니다. 우리는 하나의 언어인 상대를 각자 자신의 언어로 번역합니다. 가끔 ‘나를 함부로 펼치지 말라. 나를 당신의 언어로 번역하지 말라’고 말하고 싶을 때가 있어요. 여러분들 안에 있는 시인을 깨우세요. 우리의 일생은 하나의 긴 연작시를 써내려가는 과정이에요. 여러분에게 마지막 도전을 던지고 싶어요. 여러분 각자는 어떤 詩가 되고 싶으신가요.”


“시인은 자신의 은밀한 고통으로 우리를 위로해주는 사람들입니다. 문학은 내가 아프다고 말하면 “너만 그런 게 아니야 나도 그래”라고 말해줍니다. 시인 가이 존슨의 말처럼 문학이 주는 가장 큰 위로는 우리가 인생의 어떤 어두운 길목에 서 있든지 누군가는 이미 나보다 먼저 그곳을 지나갔고, 그리고 승리했다는 것을 알게 해줍니다.“(p.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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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ㆍ사진 | 김이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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