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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은 나 자신을 이해하도록 도와주는 대상” - 신형철의 소설 읽기 매뉴얼 『느낌의 공동체』

“문학은 무엇을 할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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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서 어떤 감흥을 받았을 때 평론을 적는 것과 산문을 적는 것은 그 방법이 다르다. 하나는 느낌을 명제화해서 어떤 의제로 만들어내는 방법이고, 다른 하나는 그 느낌을 나누는 것이다.

사고인가, 사건인가?


“책에서 어떤 감흥을 받았을 때 평론을 적는 것과 산문을 적는 것은 그 방법이 다르다. 하나는 느낌을 명제화해서 어떤 의제로 만들어내는 방법이고, 다른 하나는 그 느낌을 나누는 것이다. 이 책의 글들은 후자의 일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이 책은 그런 느낌을 공유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묶었다.” 『느낌의 공동체』를 출간한 신형철 평론가의 말이다.

지난 6월, 산문집 출간 기념으로 마련된 강연회에서 그는 독자들과 책에서 못다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산문집에서는 주로 시를 이야기했다. 시는 사실, 읽어내는 것 외에 다른 방법이 없다. 글자 하나만 마음에 들어도 시는 즐길 수 있다. 심지어 조사의 차이만으로 시적인 것이 발생하기 때문에 그냥 읽으면 된다. 내 방식대로 많이 읽고, 다른 사람은 어떻게 읽었나 살펴보면 좋은 거다.”

반면, 분량도 형식도 다른 소설은 매뉴얼이 있을 수 있다고 그는 이야기를 이어갔다. 이 매뉴얼이란, 그가 직업적으로 소설을 읽어가며 시행착오 끝에 정리한 것들이다. “소설 속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사건’이다. 사건은 소설의 가치 평가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 모든 것이 사건이 될 순 없다. 특정한 것만이 사건이 될 수 있다. 쉽게 이해하려면 사건을 사고와 비교해보면 된다.

“사고는 처리의 대상이다. 교통사고가 나면, 부서진 차를 견인하고 부상자를 후송해야 한다. 하지만 사건은 해석의 대상이다. 사건은 의미가 뭔지 질문을 던지게 한다. 추리소설을 보면 경찰과 홈즈가 함께 등장한다. 경찰은 현장에 가서 사실을 확인하고 사고처리를 한다. 집에서 그 보고를 지켜보는 홈즈는 ‘뭔가 이상해’라고 여기며, 그 현장에서 진실을 찾으려고 한다.”

더 중요한 것은, 사고는 원상 복구가 가능하지만, 사건은 복구가 불가능하다. 즉, 어떤 ‘사건’이 일어나면 그 사건 이전의 상태로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이다. 억지로 되돌리면 그것은 복구가 아니라 퇴행이 된다. 이렇게 어떠한 행위를 사고로 접근하느냐, 사건으로 접근하느냐에 따라 소설의 성격이 결정된다.

“9.11테러 사건으로 빌딩이 무너져 내렸다. 사고로 본다면, 이 문제는 그저 사실만 확인하면 된다. 광적인 근본주의 이슬람 교도가 저지른 미친 짓이므로, 범인을 잡고 빌딩을 다시 세우고, 복수하면 된다. 하지만 사건으로 본다면, 이 일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물어야 한다. 미국이라는 나라가 국제질서에서 어떤 위치에 있길래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인가? 진실을 찾아내야 한다. 이렇게 사건으로 접근하는 사람들은 극소수였다. 슬픔이 너무 크면 사건으로 해석할 여력이 없다. 수잔 손택은 그런 말을 했다. ‘다같이 슬퍼합시다. 그러나 바보는 되지 맙시다.’ 우리 역시 사건으로 보는 일을 포기하지 말자.”


단편소설 - 삶의 선(線)을 통해 질문하는 이야기


단편소설은 최소한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신형철 평론가는 “질문을 준다”고 말했다. 이것은 과연 어떤 글이 단편소설에 해당되느냐는 물음과 같다다. “최소 조건이 충족되면, 몇 장의 글이든 단편소설이 될 수 있다.” 그는 들뢰즈가 <천의 고원>에서 소설의 재료를 ‘삶의 선(線)’으로 비유한 것을 빌려 설명했다.

우리의 삶에는 무수한 사건의 선이 있다. ‘어째서 이런 일이 벌어 졌을까. 왜 하필 그 사람과 만났을까.’ 싶은 일들이 하나의 선으로 존재한다고 가정하는 것이다. 즉, ‘내가 왜 하필 이 선과 만나 버렸을까.’ 이런 질문이 소설 속에 존재한다. 이 선은 아래와 같이 세 가지 종류로 나눌 수 있다. “삶을 대상으로 소설을 쓴다는 것은 이런 선들을 다루는 것이다.”

(1) 절단선

“교통사고, 혹은 누군가의 죽음처럼 평온한 일상에 갑자기 벌어진 사건이다. 그 순간 나에게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바로 알 수 있다. 다만 이런 종류의 선은, 내 삶과 만나는 지점은 알지만, 이 충격이 언제 끝나게 될지, 언제쯤 내 삶의 밖으로 빠져나갈지 알 수 없다.”

(2) 파열선

“나도 모르는 사이에 조금씩 내 삶 속을 뚫고 들어오는 선이 있다. 이 선의 특징은 정신을 차리고, 이 선의 존재를 알아버렸을 때는, 이미 손쓸 수 없이 늦어버린다는 거다. 언제 시작되었는지 모르지만, 한참 후에야 어떤 일이 내 삶에 이미 시작되었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을 뿐이다. ‘오래 만나고 있는 남자친구가 있어요. 언제부터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잘 모르겠어요. 그러나 뭔가 우리 사이가 잘못되어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렇게 말하게 되는 경우다.”

(3) 단절선

“위의 두 가지 선과 다르게, 내가 직접 긋는 선이 존재한다. 회사를 잘 다니던 사람이 불현듯 다 그만두고 귀농을 하는 경우. 여행을 떠나버리는 경우. 그 사람의 삶에 단절선이 생긴다.”

이 중에 단편소설이 다루기 가장 좋은 선은 파열선이다. “왜냐하면 제일 알아보기 어려운 선이다. 이 선은 삶에 대한 아주 예민한 통찰이 없으면 알아볼 수 없다. 용기가 없어도 발견하기 어려운 선이다. 이 선을 발견해내기만 하면, 몇 장의 글이건 단편소설이 될 수 있다.”


장편소설 - 좋은 질문에 좋은 응답을 하는 이야기


단편소설은 ‘삶을 관통하는 선(線)을 발견해 질문을 던지는 것’이라고 정리할 수 있겠다. 그렇다면 장편소설은 단편소설과 어떻게 다른가? “장편소설은 소설이 던지는 질문에, 작가가 어떤 식으로든 발언해야 한다. 사건의 진실이 밝혀졌을 때 등장인물이 어떤 식으로 응답을 하느냐에 따라, 작가는 세계에 발언을 하게 되는 것이다.”

신형철 평론가는 “장편소설의 규범을 모범처럼 보여주는 소설”로 베른하르트 슐링크의 『더 리더』를 꼽아 설명했다. 『더 리더』는 독일 전쟁 전후 세대인 36살 한나와 15살 소년 미하엘이 나누는 사랑이야기다. 홀로코스트, 유태인 학살 문제를 다루고 있는 『더 리더』에는 많은 질문이 등장한다. 모르고 저지른 일은 죄가 아닌가? 왜 여주인공은 마지막에 그런 선택을 해야 했나? “이러한 질문에 좋은 응답을 하는 게 좋은 장편소설이다.”

좋은 응답이란 무엇인가? “골치가 아프면 아플수록 좋은 응답이다. 손쉽게 판단할 수 없는 응답. 좋은 장편소설은, 하나의 소설로 끝나는 게 아니다. 어떤 의제를 제시해, 인물들이 어떻게 응답하는지 보여주는 것으로 질문을 던지고, 우리에게 토론거리를 던진다.” 그는 좋은 응답이란 “‘이런 응답이 가능하구나’ 기준 자체를 흔드는 응답”이라고도 덧붙였다.

최인훈의 『광장』을 보자. 남도 북도 아닌 제 3국으로 이송되던 이명준은 자살을 선택한다. 이 응답은 그 당시 독자들이 갖고 있던 좌표를 흔들어버렸다. 그 등장인물이 절대 할 수 없는 응답을 했다면 그건 좋은 응답이 아니다 지극히 할만한 응답을 한 것도 좋은 응답은 아니다. ‘어, 이럴 수 있나?’ 싶지만 한번 더 생각하면 ‘아, 이럴 수도 있구나’ 끄덕이게 하는 응답. X축, Y축이 아니라 아예 새로운 축을 하나 그어버리는 응답이 좋은 응답이다.


“문학이 더 위대해졌으면 좋겠다”


단편소설을 읽을 때는 질문을, 장편소설을 읽을 때는 응답에 귀 기울여 읽어보자. 아마 이제까지 단순한 ‘감상’의 차원을 너머 소설이 좀더 내 삶 가까이에 관여한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신형철 평론가는 위의 내용이 다음 책의 중요한 주제라고도 귀띔해 주었다.

“우리가 소설을 읽는 것은, 내 삶의 파열선을 알아채거나 발견하는 일이라고도 할 수 있다. 소설을 읽으며 좋은 삶이라는 것은 이런 것이구나 배우는 것인데, 정말 배울 수 있을까? 이 문제는 더 생각을 해봐야 한다. 문학을 너무나 사랑하고, 앞으로도 사랑할 예정이지만 문학이 최고로 위대하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우리는 누군가를 사랑할 때, 그가 가장 위대하기 때문에 사랑하지 않는다. 사랑하기 때문에 위대해졌으면 좋겠다고 바라는 것뿐이다. 나도 마찬가지다. 문학이 더 위대해졌으면 좋겠다.”

‘어떤 사람을 아는 사람은 희망 없이 그를 사랑하는 사람뿐이다.’ 신형철 평론가는 벤야민의 말을 인용하며 이야기를 이어갔다.

“문학이 무조건 옳다. 위대하다. 그러니 많이 읽어라, 하는 멘토가 될 생각이 전혀 없다. 아무리 훌륭한 사람을 만나도 미래의 나를 바꾸기는 힘들다. 과거의 나 만이 지금의 나를 조금 바꿀 수 있을 뿐이다. 그래서 문학밖에 없다는 생각이 든다. 문학 속에 등장하는 전혀 위대하지 않은 사람들을 보고, 공감하고 감동하면서 결국 우리는 우리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내가 해온 일이 이런 일이었구나. 잘못했구나. 지난 날의 나를 깨달으면서 아주 조금, 나은 사람이 되는 거다. 문학은 과거의 나 자신을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게 도와주는 대상이다. 실제로 부딪치며 피 흘리지 않고 삶을, 나를 배울 수 있는 것은 결국 문학밖에 없다. 문학이 과연 뭘까? 과연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여러분도 함께 생각해보면 좋겠다”




“너 똑바로 절망한 거 맞아?”


강연을 마치고 질의응답 시간을 가졌다.

소설이 다시 공공성을 획득할 거라고 생각하나?

“믿는 거다. 소설이 나를 좋은 사람으로 바꿀 수 있을까? 그것도 결국 믿는 거다. 문학뿐 만 아니라 삶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점점 좋은 사람이 된다고 믿지 않으면 살 가치가 없지 않나. 마찬가지로 문학이 일종의 삶이라고 생각한다면, 그렇게 믿지 않을 도리가 없는 것이다. 나도 그렇게 믿고 있는 것이고.”

문학이 궁극적으로 치료를 해 줄 수 있을까?

“많은 비평가들이 위로라는 말을 싫어한다. 문학은 우리를 괴롭히는 거지 위로하는 게 아니라는 거다. 그러나 나는 꼭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위로 좀 받으면 어떤가. 다들 그러고 사는구나, 위로를 받는 일이 나는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다른 방식으로 상황을 헤쳐나갈 수 있는 힘을 주는 위로라면 그게 왜 나쁘겠나.”

우리 시대에 필요한 비평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특정한 문학이 아니라 문학자체에 힘을 실어주고 싶다. 특정한 문학을 위해 냉정하고 날카로운 칼을 들이대기보다는, 문학 전체가 나아지길 바라는 마음에서 글을 쓰고 싶다. 입에 발린 칭찬을 하자는 게 아니다. 좋은 비평은 가장 정확한 방식으로 칭찬하는 것이다. 더 솔직하게 얘기하자면 글을 써서 누구에게도 상처 주고 싶지 않다. 정의로운 자의 위치에 서서, 충분히 아름답지 않은 것에 대해 목소리를 내는 일에 자신이 없다. 그건 내 자신이 불행해지는 일이다. 불행을 무릅쓰고 어떤 사명감 때문에 글을 쓰는 사람이 될 수는 없다.”

작가 지망생이다. 요즘 어두운 세태소설이 많다. 작가란 당연히 희망을 써야 하는 게 아닌가? 문학에서 희망을 전달하지 않으면 뭘 써야 하는 건가 고민이 된다.

“인간의 진짜 문제는, 희망이 없어서가 아니라 끝까지 절망할 수 없는 능력이 없어서가 아닐까 싶다. 정말 오래도록 계속 절망해야만 답이 나올 수 있는 문제를 너무 빨리 극복해버려서 문제가 아닐까? 이럴 때 문학은 좀 특별한 일을 해야 하지 않은가. 온 사람들이 말하는 ‘희망을 가지세요’가 아니라 ‘너 똑바로 절망한 거 맞아?’라고 물어야 한다. 진짜 대가들은 희망을 얘기한다. 코맥 매카시의 『로드』는 철저하게 절망하는 좋은 작품이다. 대가들은 어떤 어두운 소설 속에서도 끝내 희망이 있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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