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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대표 뮤지컬 배우 류정한, 15년 만의 외도!

류정한을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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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때 서울로 유학 온 기자가 인생에서 처음 만난 뮤지컬은 1997년 세종문화회관에서 공연된 <웨스트사이드 스토리>였다. 대형 무대에서 쉼 없이 움직이며 노래하는 배우들의 모습은 솔직히 말해 스토리도 약하고 지루하기 그지없었다.


대학 때 서울로 유학 온 기자가 인생에서 처음 만난 뮤지컬은 1997년 세종문화회관에서 공연된 <웨스트사이드 스토리>였다. 대형 무대에서 쉼 없이 움직이며 노래하는 배우들의 모습은 솔직히 말해 스토리도 약하고 지루하기 그지없었다. 덕분에 기자는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다시는 뮤지컬을 보지 않았다. 그런데 97년 <웨스트사이드 스토리>가 첫 뮤지컬이며 이후 2~3년은 뮤지컬과 멀리 살았던 사람이 또 있었으니, 바로 뮤지컬 배우 류정한 씨다. 그때만 해도 성악도가 뮤지컬을 하는 것이 흔치 않았던 일이기에, 기자는 객석에서 그의 고운 목소리를 유심히 들었던 기억이 있다. 그리고 15년이 지난 지금, 어느덧 대한민국 대표 뮤지컬 배우가 된 류정한 씨를 기자로서 만나게 됐다.

“그때 보셨어요? 정말 창피해서(웃음). 뮤지컬은 정말 우연한 기회에 하게 됐어요. 제가 공부에 별 관심이 없어서 학교를 잘 안 나갔거든요. 그러다 94년쯤에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를 봤는데, 록 뮤지컬인데도 이질감 없이 굉장히 인상 깊더라고요. 그 뒤에 지금 뮤지컬해븐의 대표인 박용호 선배가 <웨스트사이드 스토리>를 오리지널 키로 한다며 오디션을 보라고 하더라고요. 외국 연출팀이 좋게 봐서 정말 운 좋게 참여하게 됐죠.”


뮤지컬 <몬테크리스토> 앙코르 공연을 일주일 앞두고 연습실에서 만난 류정한 씨는 정중했으나 소문대로 찬바람이 쌩 돌았다. 그러나 기자가 그의 데뷔작을 봤다는 말에 다소 마음을 열었는지, 데뷔 이후 도도한 성격 때문에 만나게 된 숱한 역경을 술술 풀어냈다.

“이후로 3~4년은 고생을 많이 했어요. 데뷔 때 일간지 일면에 나고 그러니까 저는 뭐가 된 줄 알았거든요. 그런데 이쪽 바닥에서는 제가 연기도 못하고 노래도 너무 성악적으로 한다고 싫어했나 봐요. 게다가 연출 선생님이나 제작자들과 친분을 유지하는 것도 없이, 건방지게 당연히 저를 찾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아무도 안 찾더라고요(웃음).”

덕분에 뮤지컬 데뷔 15년차이지만, 참여한 작품 수는 생각만큼 많지 않다. 자리도 잡기 전에 자존심을 한껏 세웠으며, 이름이 알려진 뒤에도 날선 자존심을 뽐냈다.

“아무리 친한 사람이 부탁을 해도 작품이 마음에 닿지 않으면 안 했어요. ‘이런 것까지 하면서 에너지를 소비해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었고, 이상하게 ‘나는 좀 다르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실력도 안 되면서 그런 생각을 했으니 아주 멍청했죠(웃음). 그런데 차츰 좋은 작품들이 늘어나고, 제가 나이를 먹고 연기를 조금씩 알게 되면서 작품 욕심이 생긴 것 같아요. 돈도 참 궁했는데, 그렇게 배고프면서도 아닌 척 사람들과 만나고 그랬어요. 그때는 왜 그랬는지 모르겠어요(웃음).”

객석에서 볼 때도 완벽주의자에 한껏 차가워 보인다. 요즘 흔히 말하는 ‘차도남’일까? 그동안 맡아왔던 수많은 인물 가운데 가장 비슷한 캐릭터를 꼽아 달라 주문해봤다.

“제가 했던 역할들이 평범한 캐릭터가 아니라서 대입하기는 좀 힘들고요. <클로져 댄 에버>에서 처음으로 보통 사람을 연기한 적이 있는데, 그때 준이라는 인물이 저와 비슷하다고 생각했어요. 우유부단하고 마음이 굉장히 여린 인물이었거든요. 제가 밥 먹을 때도 뭘 먹을지 결정을 못하고, 릹 하나 살 때도 살까말까 계속 고심해요(웃음). 성격이 좀 내성적이에요. 그래도 바꾸려고 많이 노력해서, 지금은 연습실에서 웃고 떠들고 후배들하고 장난도 치죠. 제가 외로워서가 아니라 저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불편할까봐 노력한 건데, 일부러라도 바꾸니까 좋은 면은 많더라고요.”

뮤지컬 무대에서 그의 이름이 다시 떠오른 것은 역시 <오페라의 유령>이었다.

“터닝 포인트는 아무래도 <오페라의 유령>에서 <지킬 앤 하이드> 사이인 것 같아요. 라울로 이름을 알리면서 러버 역할만 맡게 됐고 이른바 달달한 노래만 부르다, 지킬 하면서 다양한 역할들이 들어왔죠. 모든 작품들이 저를 많이 도와줬고, 자연스레 저도 공연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하게 됐고요. 특히 <스위니토드> 할 때는 정말 힘들게 연습하고 공연했는데, 인생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던 작품이에요.”

지난해 성공리에 공연을 마쳤던 <몬테크리스토>는 3월 1일 충무아트홀 대극장 무대에서 앙코르에 들어갔다. 류정한 외에도 엄기준, 신성록, 옥주연, 차지연 등 초연 때 참여했던 쟁쟁한 배우들이 무대를 채운다.

“지난 공연 때와 비교하면 무대 장치나 의상, 소품들에 변화고 있고, 설득력이 없었던 가사나 대사도 보완이 됐어요. 스스로는 그때 잘 됐던 부분은 초심을 생각하고, 부족한 부분은 열심히 찾아가려고 하죠.”

이번 무대도 그렇지만, 요즘 팬들은 류정한 씨의 영화 데뷔에 관심이 쏠려 있다. 그동안 숱한 러브콜에도 영화나 드라마에는 출연하지 않겠노라 다짐했던 그가 아니던가.

“계속 거절하다, 다큐멘터리를 보고는 감동받아서 제가 먼저 전화를 했어요(웃음). 하지만 이 영화를 발판 삼아 대단한 영화배우가 되고 싶다는 생각은 없어요. 저의 본업은 뮤지컬 배우이고, 물론 영화를 위해서는 다른 홍보 작업도 해야겠지만, 그건 영화를 마무리 짓는 과정이니까요. 영화를 하지 않겠다는 얘기는 이제 못하죠, 하게 됐으니까(웃음).”

<몬테크리스토>에 함께 참여하는 엄기준이나 신성록은 이미 영화와 드라마에서 상당한 입지를 다지고 있다. 류정한 씨의 영화 데뷔에도 신성록 씨의 입김이 작용했다.

“소주 마시다 성록이한테 처음 영화 얘기를 했어요. 성록이와는 <몬테크리스토> 때문에 친해졌는데, 알고 보니 드라마 ‘내 인생의 황금기’에 함께 출연할 뻔 했더라고요(웃음). 그때도 섭외가 들어왔거든요. 성록이는 항상 제가 뮤지컬만 하는 걸 좋게 생각하면서도, 평가를 제대로 못 받는다고 속상해했어요. 그래서 이번 영화는 꼭 했으면 좋겠다고 하더라고요. ‘배재철’이라는 인물은 저만 할 수 있다고요.”

류정한 씨가 선택한 영화 <기적>은 성악가 배재철 씨의 실화다. 한양대에서 성악을 전공하고 유럽의 오페라 무대에서 전성기를 누리던 그는 갑상선 암 선고를 받고 수술을 받다 성대신경이 끊겨 목소리를 잃었다. 그러나 성대 복원수술을 받고 재활에 성공해 2008년 복귀공연에 나선다. 그의 이야기는 일본 NHK의 다큐멘터리로 제작돼 많은 이들에게 감동을 선사했다.

“존경하는 것 이상으로 대단한 분을, 훌륭한 아티스트를 연기할 수 있다는 것이 영광이고, 다행히 주변에서도 긍정적으로 생각해주시는 것 같아요. 사실 영화 쪽에서는 신인이라 많이 걱정도 되지만, 특히 배재철 씨의 전성기를 모르는 분들이 영화만 보고 그 분의 실력을 가늠할까봐 더 걱정이 돼요. 그래서 노래만큼은 비슷하게 하고 싶다는 욕심이 생겨서 <몬테크리스토>가 끝나면 배재철 씨한테 레슨을 받기로 했어요. 뮤지컬 하면서 목소리가 많이 거칠어져서 안타깝지만, 흉내라도 내야 하니까요.”

얘기를 나누다 보니 그는 영화 출연보다도 성악가를 연기한다는 것에 더 긴장하고 있다.

“긴장되고 설레요. 제가 가지 못했던 성악가의 길을 연기로서 간다고 생각하니까 부담도 되지만 무척 설레요. 감사하기도 하고요. 사실 대학 들어가서는 정말 열심히 안 했거든요. 그런데 뮤지컬을 하면서는 오히려 오페라를 많이 봤어요. 오페라를 보면 마음이 뜨거워지더라고요. 너무나 잘 하는 동기들을 보면 ‘아, 나도 함께 할 수 있었는데…’ 하는 마음도 들고. 그래서 나중에 정말 공부하고 싶을 때 이태리 가서 편하게 배우고 싶다는 생각도 했거든요.”

영화 촬영 때문에 뮤지컬 <몬테크리스토>가 끝나면 한동안 무대에서 류정한 씨를 만나기는 힘들다. 어쩌면 그 이후에도 류정한의 행보는 알 수 없는 것이 아니겠는가. 기자가 뮤지컬 배우들을 만나면 류정한 선배를 존경한다는 말을 많이 듣는다. 이른바 ‘류 라인’이 있을 정도. 오랜 시간 무대를 떠나는 만큼 후배들에게 건넬 한 마디를 부탁해 봤다.

“요즘은 실력 있고 눈에 띄는 후배들이 많아요. 후배들이 더욱 잘 커가기를 바랄 뿐이죠. 사실 대극장에 설 배우들이 없어요. 프로듀서들이 하는 말도, 막상 찾으면 대극장에서 존재감을 드러낼 수 있는 남자 배우가 많지 않다는 거죠. 후배들이 잘 자라서 5년 뒤에는 빛을 발했으면 좋겠어요. 다들 실력은 있으니까 마음가짐이 중요한 것 같아요.”

류정한 씨의 5년 뒤는 어떨까?

“저는… 좀 더 인간답게 살고 싶어요. 너무 바빠서 하지 못했던 요리도 배우고, 결혼도 그 범주에 들어가고요(웃음). 제가 가장 부러운 사람들이 담배 끊은 사람과 가정을 이룬 사람이거든요. 나이가 들면 겁이 많아져요. 좋은 점을 보고 확 다가가는 게 아니라, 좋은 점들 가운데 단점 하나를 보고 ‘안 될 거야’라며 물러나거든요. 네, 5년 뒤에는 일에 너무 치이지 않고 좀 여유롭게 살았으면 좋겠어요(웃음).”

한 시간 가까이 많은 얘기들을 쏟아낸 류정한 씨는 친히 연습실 입구까지 배웅해주었다. 흔히 ‘차가운 사람’들은 잘 표현하지 못한 ‘뜨거움’이 마음속에 있다. 오랜 시간 부딪히다 보면 그 뜨거움이 진솔한 데다 투명하다는 것을 알기에, 깊은 인연을 맺은 사람들은 그의 곁을 떠나지 않는다. 차도남인 류정한을 따르는 후배들이 많은 이유도 비슷하지 않을까. 무대에서 뿜어내는 광기어린 연기 또한 그 열정에서 비롯됐을 것이다. 15년을 무대에서 살아온 류정한 씨는 이제 스크린 연기에 도전한다. 줄곧 한길을 걸어왔던 배우의 외도이기에 더욱 기대할 수밖에 없다. 이탈리아 현지 촬영도 있다는데, 성악을 배우겠노라 바로 무대를 떠나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다(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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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윤하정

"공연 보느라 영화 볼 시간이 없다.."는 공연 칼럼니스트, 문화전문기자. 저서로는 <지금 당신의 무대는 어디입니까?>, 공연 소개하는 여자 윤하정의 <공연을 보러 떠나는 유럽> , 공연 소개하는 여자 윤하정의 <축제를 즐기러 떠나는 유럽>, 공연 소개하는 여자 윤하정의 <예술이 좋아 떠나는 유럽> 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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