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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강연회]네가 말한 ‘내 생각’이 ‘조건반사’는 아니겠지? - 『리영희 프리즘』 고병권

“아니, 그럼 ‘생각’이라는 게 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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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이란 무엇인가? 지난 3월 27일. 홍대 ‘아트앤스터디’에서, 『리영희 프리즘』에 실린 고병권 선생님의 글을 놓고, 우리는 이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생각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철학에서 ‘생각’이라는 것은 언제나 중요한 단초가 된다. 철학은 생각에서 시작해서 생각으로 맺혀지는 행위니까 말이다. 데카르트의 이 말이 대표적이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나의 존재를 증명해 주는 생각. 비단 ‘생각’이 철학하는 분들에게만 중요한 것이 아니다. 되려 요즘의 시대에 생각하는 행위는 더욱 간절해 보인다. 이전에는 책이나 신문을 통해 정보를 능동적으로 찾아야 했다면, 요즘은 가만히 집에만 있어도 여기저기서 정보가 귓구멍을 비집고 들어온다. 미디어와 인터넷의 발달로 우리는 필요 이상의 생각 주머니들을 머릿속에 띄우고 산다. 이를테면, 연예계 소식, 정치 동향, 혹은 논란이 되는 어떤 주장들(특히 인터넷을 켜면, 포털 사이트 지면을 빼곡히 덮고 있는 자극적인 제목들! 피하기도 어렵다).

아, 잠깐. 그런데 이것들이 과연 ‘생각’일까? 우리가 하루에 생각한다고 믿는(?) 것들이 과연 ‘생각’이 맞을까? 이런 질문 앞에서 우리는 이렇게 되물을 수 있겠지. “아니, 그럼 ‘생각’이라는 게 뭔데?” 고병권 선생님도 그렇게 물었다. 생각이란 무엇인가? 지난 3월 27일. 홍대 ‘아트앤스터디’에서, 『리영희 프리즘』에 실린 고병권 선생님의 글을 놓고, 우리는 이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4년 전쯤, 초등학생들 대상으로 철학 강의를 요청받았어요. 언젠가 나이 들면 아이들과 철학 공부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있어서 겁도 없이 수락했죠. 현실을 모르는 생각이었어요. 아이들을 5분 동안 앉히는 것도 힘들었습니다.(웃음) 그때 강의했던 주제가 ‘생각이란 무엇인가’였습니다.” 그리고 이후, 인권연대 평화인문학에서 한 번, 이랜드 파업하는 아주머니들과 또 한 번, 생각에 대해서 함께 생각해 보았단다. 그런 차에 『리영희 프리즘』 원고 요청을 받았다. 저자에게 리영희는, ‘생각’에 대한 사유를 확장하는 키워드로 다가왔다.

ⓒ 경향신문 김종목 기자

“리영희 선생님의 책을 읽다가 ‘사상의 은사’라는 재미있는 말을 발견했어요. 프랑스 일간지 <르몽드>가 리영희를 ‘사상의 은사’라고 표현했더라고요. 뭔가 생각을 하게 하는 사람이라는 뜻일까요? 배운다는 것은 뭐고, 선생이란 뭘까요?” 이런 것들을 리영희의 텍스트를 두고 생각해 보기로 했다. 고병권 저자의 글에 리영희 선생님의 생각은 재료가 되는 셈. “일전에 선생님께서도 말씀하셨죠. 자신의 신도가 되지 말고, 가져다 쓰라고.(웃음) 그분이 쭉 하셨던 말씀을 살펴보면, 자주 쓰는 단어가 있어요. 이성, 우상, 신화, 계몽, 민주화, 냉전, 의식화……. 이 단어들이 ‘생각’을 설명하는 데 매우 중요한 단어 같이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오늘의 강의, 생각의 비밀을 풀기 위해, 사회과학적이고 정치적인 단어를 철학적으로 해석해 보기로 했다.

1982년에 부산 미문화원 방화 사건이 있었다. 그때 주범인 문부식, 김은숙 두 사람의 재판에 리영희 선생님은 증인으로 불려 갔다. 그들이 리영희 선생의 책을 보고 방화를 생각했다고 진술했기 때문이다. “난 모든 사건에 직접적으로 관계한 일은 없지만 거의 모든 사건의 ‘간접적 주범’이 됩니다.”(p.29) 리영희 선생님이었다면, 결코 반대했을 일을, 그들은 리영희의 이름으로 저지른 셈. “나는 그 행동을 지지하지 않는데, 그들은 나를 선생으로 지지한다? 그렇다면 선생, 은사라고 하는 사람이 무?을 가르쳤다는 뜻일까요? ‘이걸 해라, 하지 마라’ 지시를 했다면 그렇게 행동하지 않았을 겁니다. 그렇다면 배우게 한다는 말이 지식을 전달하는 것 이상을 의미하는 것이 아닐까요?”

스승, 각성을 전달한 사람

우리는 소위 이런 표현을 쓴다. “이 책을 읽고(혹은 이 사람을 통해) 깨어났다.” “머릿속이 무너지는 느낌이 들었다.” “의식에 찬물 한 바가지를 끼얹은 것 같았다.” 이런 표현들, 일전에 윗세대가 리영희의 책을 읽고 너나 할 것 없이 뱉어 낸 감상들이다. “그렇다면 선생이라는 것은, 지식 이전에 각성을 전달한 거죠.” 다만, 고병권 선생님은 리영희라는 텍스트를 접하면서, 대상과의 관계를 분명히 했다. “저는 그분이 체험했을 사건들에 대해 실감을 가지고 있지 않아요. 제자도 아니고요. 다만 그분의 생각이 누군가에게 전달되고 작동되는 방식에 대해 관심이 있어요.” 결국 다시, ‘생각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생각에 대해 얘기하면서 데카르트를 빼놓을 수 없다. 데카르트는 철학자이자 수학자이기도 했다. X축과 Y축. 기하학, 자연과학에도 기여했을 만큼 늘 정확하고 확실한 지식을 구축하고자 한 사람이다. 이런 수학자가, 중세의 형이상학적인 실체들에 대해 불만을 가지고 있었던 것도 어찌 보면 당연한 얘기다. 저자는, ‘데카르트의 의심이 극에 달했다’고 표현했다. “꿈속에서 불에 덴 꿈을 꾼 적 있지 않아요? 꿈은 실제 일어난 일이 아닌데도, 직접 느낄 수 있잖아요. 그러니 지금의 촉감도 진짜가 아닐 수 있다는 거죠. 꿈속에선 움직이고 있지만, 실제론 움직이지 않으니까 내 몸까지도 진짜가 아닐지 모르겠다는 거죠.

그런데 이 차가움이 경험적 사실에 부합하지 않을지라도, 내가 그렇게 생각한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는 거죠. 느낀다는 것, 생각하는 것은 데카르트에게 굉장히 넓은 의미에요. 이 모든 것이 실제로는 가짜라고 하더라도 가짜를 진짜라고 생각하는 것은 확실하다. 생각이라고 하는 일은 어떤 작용이고, 내가 있기 때문에 가능한 거죠. 그러므로 생각하는 나는 확실히 존재한다. 이것이 생각에 대해 도달할 수 있는 가장 빠른 확실성이라고 데카르트는 말했죠.”


그런데, 데카르트가 생각 자체에 대해 질문을 던진 것 같지는 않단다. “생각이라는 작용이 확실하다고만 했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지 말하지 않아 모호해요. 그가 보여 주지 않은 지점을 리영희가 보여 주고 있는 게 아닐까 싶어요.” 그러니까 이런 것들, 내가 맞았기 때문에 바로 복수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빨갱이가 문제라고 ‘생각한다’, 여자는 이래야 한다고 ‘생각한다’ 등등 하루에도 두서없이 떠오르는 생각들을, 진짜 생각이라고 할 수 있을까?

저자는 이런 생각들을 의심한다. 떠오른다고 다 생각이 아니다. 즉, 생각에도 층위가 있다는 것. “나 이렇게 ‘생각해’라는 말 자체가, 생각이 없다는 것을 폭로할 때가 있어요. 리영희와 더불어 생각하게 됐다는 것은, 이전과 다른 차원의 일이 벌어졌다는 의미일 겁니다. 이때의 생각은 나에게 일어난 하나의 사건이죠. 이런 사건이 일어나면 이제와는 다르게 생각하게 되는 겁니다.” 지구는 여전히 같은 방향으로 도는데, 사물은 그 어느 것도 배치를 바꾸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모든 것이 달라졌다’고 말할 수 있는 순간. 마치 개안한 듯한 순간, 그때가 생각이라는 사건이 벌어진 순간이다.

즉, 학습된 생각과, 진짜 생각은 다르다는 거다. “저절로 나오는 반응이 있어요. 남자는 이렇고, 여자는 저렇고 하는 생각이라던가, 무릎을 치면 다리가 저절로 올라오는 것처럼 드는 생각들이 있죠. 원래 하고 있던 생각을 떠올리는 것은, 몸이 습관화된 기억을 하는 행위예요. 술에 취해 그날의 기억은 없어도, 집은 찾아 들어간 것처럼.(웃음)”

그는 지식을 전달한 사람이라기보다는 각성을 전달한 사람이었다. 각성이란 누군가를 배울 수 있게 만드는 일이다. 나는 리영희를 통해 보건대, 스승이란 ‘가르치는 사람’이라기보다는 ‘배우게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사람들의 선입견을 깨뜨렸고, 사람들의 잠을 깨웠다. 한마디로 그는 일깨우는 사람이었다.(p.26)

그러므로 스승이란, ‘달리 생각하게 하는 사건’을 경험케 해 준 이에게 붙이는 이름이다. ‘생각’하게 만든 사람. “이런 면에서 보자면 세상에 스승이 많습니다. 저는 ‘가르친다’ 보다 ‘배우게 한다’는 말을 좋아합니다. 이전에 강의를 하는데 한 친구가 묻더라고요. 대학생들이 지금 뭘 하면 좋겠느냐고요. 곰곰이 생각해 봤는데, 저도 대학이란 걸 딱 하나 다녀 봐서 모르겠더라고요. 여러 개 다녔으면 이게 좋겠다, 저건 별로다, 알려줄 수 있을 텐데.(웃음) 하물며 인생은 말할 것도 없죠. 가르칠 수 있는 게 없어요. 다만 어떤 말이나 책, 생각이 의도와 다르게 어떤 배움은 줄 수가 있겠죠.”

함께 생각하기 = 동료 되기

ⓒ 경향신문 김종목 기자
배움이라는 것을 이렇게 정의해 놓고 보면, 배움이란 어디서든 겪을 수 있는 사건이다. “사회에서는 지식인이 스승 대접을 받죠. 하지만, 서로가 서로에게 배우고 있는 거예요. 노동자의 생산 활동이 작가에게 영감을 줄 수도 있고, 자연이 배우게 할 때도 있죠. 사건을 겪게 하는 모든 것이 스승으로 불릴 수 있어요.”

과거와는 다른 사람이 되고 나면, 과거의 일이 유치해 보인다. 저자는 “그때 우리가 배운 것”이란다. “리영희 선생님은 그런 의미에서 사상의 은사인 거겠죠. 이전처럼 사물을 볼 수 없게끔 한 사람이니까요. 흔히 ‘나는 이렇게 생각해’ ‘이런 견해를 갖고 있어’라는 것은 생각이라기보다 내가 갖고 있는 회로도의 상황일 수 있어요.” 생각과 반응, 어떻게 구별할 수 있을까? 생각, 각성, 그러니까 깨우침은 나의 깨짐을 동반한다. 고통을 수반한다. 그런 의미에서 공부는 사람을 아프게 한단다. “그래야 반응할 수 있으니까요. 매너리즘적으로 견해를 갖는 것은 생각으로 볼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생각할 수 없게 만드는 말과 생각이 바로 우상이다. 우상은 사유가 금지된 영역이다. 생각할 수 없게 하는 것, 의심하지 않는 것, 습관이 여기에 속한다. 한 시대의 습관을 통념이라고 부른다. “우리는 몰상식한 것에만 문제를 삼지, 종교적, 도덕적, 정치적으로 금지된 사유에 대해서는 생각하려고 하지 않아요. 이를테면 리영희 시대에 공산주의가 그런 금지된 사유였죠. 이런 것들이 우상입니다.” “냉전 체제 아래에서는 강력한 이분법이 지배한다. ‘일체의 사상을 흑과 백, 죽일 놈과 사랑할 놈, 천사와 악마, 자본주의와 공산주의’로 구분하고, 모든 이들이 ‘흑백 사상의 포로가 되는’ 체제가 냉전이다. (…) ‘그가 빨갱이였다니 그는 정말 나쁜 놈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것은 생각이 아니다. 우리 사회에서 ‘빨갱이’에 대한 생각은 ‘생각’이라기보다 일종의 ‘반응’이고, 리영희의 표현을 빌리자면 ‘조건반사’일 뿐이다.”(p.19)

리영희가 생각하기를 가르친다는 것은, 동료를 늘리는 행위다. 깨어난 사람 사이에는 스승-제자의 관계가 성립하지 않는다. 같이 고민하는 사람을 의미한다. 결코 뚫릴 것 같지 않은 독재의 벽은 어떻게 무너졌는가? 기약 없이 손만 흔들던 민주주의를 어떻게 맞았던가? 동료가 한 명, 두 명 늘어났기 때문이다. 감옥에 들어오는 사람이 많아지고, 고민하는 사람이 늘어났다는 거다. “손바닥만 한 크기의 관 속 같은 그 철 방에 있는 것은 나 혼자였지만, 그런 관 속에 들어 있는 학생, 노동자, 지식인은 전국에 수백 명, 수천 명이었다. 그들 중 적지 않은 수가 나의 몸부림으로 잠을 깼고, 그리고 나와 같은 정신으로 그들의 이웃의 잠을 깨게 하려다가 철 방 속에 갇히게 된 것을 알았다. 해마다 그 수는 늘어났다. (…) 철로 된 방에는 구멍이 뚫렸다. 그 구멍은 아직 사람이 빠져나갈 만한 크기는 아니었지만 적어도 숨을 쉬고, 빛을 보고, 주먹이 나갈 만한 크기는 되었다.”(p.30)

그리하여 ‘민주화’란 ‘의식화’와 다른 말이 아니었다. 집단적 깨어남, 집단적 의식화가 바로 민주화다. “‘민주주의는 그 자체가 적극적 가치이고 원리다. 민주주의는 그 자체 속에 무한한 창조의 에너지를 가지고 있다.’ 민주주의는 금지와 부정, 반대의 체제가 아니다. 어떤 선험적인 제한을 두지 않는, 자신의 모든 전제들을 다시 의심하고 사유할 수 있는 체제, 그 어떤 것도 가능한 순수 잠재성의 체제, 그것이 이념적으로 민주주의라고 할 수 있다.”(p.30) 저자는 자유야말로 인간의 전부라고 말하는 리영희를 인간주의자라기보다 민주주의자로 부르고 싶다고 했다. “스승은 제자를 자유인으로 만드는 과정에 있?, 자신의 노예로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스승이 평생 스승이고 제자가 평생 제자로만 남는 것은 노예로 만드는 것과 다름이 없죠.” 그는 이 시대에 리영희를 독해하는 방법을 이렇게 제시한다. 우상화하는 것이 아니라, 배움을 얻고, 깨어지고, 동료가 되기! 이는 우리가 지금에도 리영희를 읽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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