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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와의 만남]박찬일 셰엡이 들려주는, 맛있는 파스타 이야기 - 『보통날의 파스타』 박찬일

여러 나라 중 하필 시칠리아를 선택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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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 18일 목요일, 점심시간! 박찬일 셰프의 특별한 독자 초대가 있었습니다. 박 셰프님의 『보통날의 파스타』를 읽으며 입맛만 다시던 분들을 위해, 파스타의 맛(!)을 선사해 주셨습니다. 박 셰프님이 일하시는 논현동 ‘누이누이’에서 직접 말이죠.

지난 2월 18일 목요일, 점심시간! 박찬일 셰프의 특별한 독자 초대가 있었습니다. 박 셰프님의 『보통날의 파스타』를 읽으며 입맛만 다시던 분들을 위해, 파스타의 맛(!)을 선사해 주셨습니다. 박 셰프님이 일하시는 논현동 ‘누이누이’에서 직접 말이죠. 그것뿐이랴! 촉촉이 혀에 감기는 와인은 물론, 박 셰프님의 흥미진진한 이야기들도 마련된 단란한 시간이었죠. 맛이 어땠느냐고요? 얼마나 맛있었느냐고요? 흠…….

그러니까 카르보나라의 맛은, ‘최상급 모피로 목을 간질이는 것 같은, 말이 필요 없는 부드러움…… 황금의 맛 세계에 빠져, 마치 우주가 탄생하기 전 영혼이 된 듯’ 했고, ‘광대무변한 바다의 생명력이 약동하는 듯’ 한 봉골레 파스타는 이렇게 외쳤을 뿐. “요동친다! 조개가 머금은 바다의 파도가 입 안에서 요동치고 있어!(꺽꺽)” 이렇게 『미스터 초밥왕』의 표현을 빌려 주구장창 읊조리는 것도 좋겠지만, 맛을 담을 순 없으니, 파스타만큼 쫀득쫀득했던 그날의 이야기를 담을까 합니다. 아래 기사는 행사 내용, 독자들의 질의응답에 약간의 설정을 더해 재구성한 것입니다.

한식은 매력적인 아이템

“안녕하세요! 여기가 누이누이……. 앗, 셰옙! 셰옙! 박 셰옙, 맞지요?”

(쓰윽 본다.)

“가뜩이나 파스타를 좋아하는데다가 드라마 <파스타>도 열혈 애청하고 있던 중에 이렇게 초대해 주시니 감개가 무량한데요.(글썽글썽)”

(말없이 카르보나라와 봉골레, 가져다주신다.)

“잘 먹겠습니다. ♡_♡ 셰엡, 혹시 드라마 <파스타> 보시나요? 드라마 보니까, 이선균이 버럭버럭 소리 지르고 욕만 한다고 사람들이 뭐라고 하던데 어떻게 보세요?”

“전 욕 안 합니다. 그런데 비싼 레스토랑은 할 수도 있습니다. 목숨이 걸려 있는 곳에서는 욕이 나오지요. 전쟁터처럼.”

♡_♡(츄르릅츕, 우걱우걱)

수란이 올려진 카르보나라, 오른쪽이 바다의 맛을 머금은 봉골레 파스타.

“대개 한식집에서 컴플레인이 잦습니다. 아무래도 한식은 잘 아는 음식이니까요. 왜 이 음식에 이게 안 들어갔어요. 저게 들어갔어요. 왜 카르보나라에 (반숙 상태의) 계란 수란을 해 놨어요. 따지면 피곤합니다.”

(츕츕) “그런데 왜 카르보나라에 계란 수란을 해주셨어요?”

“……원래 계란은 풀어야 하는데, 창의적으로 하려고 수란으로 만들어 내고 있어요. ‘카르보나라’라는 게 우리나라는 크림소스라는 뜻이잖아요. 원래는 크림이 안 들어가고 노른자로만 만드는 스파게티인데, 우리는 크림이 들어가야 ‘카르보나라’라고 하죠. 이건 우리 문화인 셈이죠.

우리가 흔히 중국 음식을 먹지만 그거 중국에는 없잖아요. 음식은 먹는 사람 마음대로 즐길 권리가 있죠. 별 셋짜리 미슐렝 레스토랑에 가 봐도 퓨전 음식이 많아요. 동남아 허브 같은 것을 막 써요. 북아프리카 재료 등등, 이런 게 이국적인 맛을 내거든요. 그쪽 사람들, 일본 한번 갔다 가면 난리 납니다. 간장, 다시마 국물. 이런 것들은 서양에 없으니까, 먼저 쓰면 유니크해지는 거죠.”


“그럼, 요즘 한식의 세계화, 세계화 하는데, 우리나라의 김치, 고추장도 그쪽에서는 독특한 향신료가 될 수 있겠네요?”

“왜 고추장, 김치를 안 쓰느냐면, 몰라서 그래요. 누군가 먼저 쓴다면 센세이셔널할 거예요. 그런데 사실, 외국 사람들은, 한국 음식을 개별적으로 인식하지 못하고, 중국, 일본의 한 부류 음식이라고 생각해요. 우리 입장에서 생각해 보세요. 오스트리아 음식이 어떨 것 같아요. 거기는 국민소득이 3만 불인데, ‘독일 음식 아녜요?’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죠. 엄연히 다릅니다. 우리도 잘 몰라요. 그러니 그 사람들이 어떻게 한국의 개별성을 인식하겠어요.”

“셰엡은 한식의 세계화, 어떻게 보십니까?”

“요리에 뜻이 있다면, 한식에 충분히 관심을 가질 만해요. 한식은 영원한 아이템이니까. 사실 서양에서 더 팔아먹을 음식이 없어요. 한식은 무궁무진한 가능성이 있는 셈이죠. 한식을 했다고 하면 그들은 신기해할 수밖에 없어요. 한국을 너무 모르니까. 역대 오스트리아, 노르웨이가 동계 올림픽에서 금메달 몇 개 땄는지 우린 아나요? 잘 몰라요. 아마 우리가 이번 동계 올림픽에서도 선전하긴 했지만, 그 사람들, 한국 잘 모를 거예요. 그러니, 한식을 통해서 우리 문화를 알려야죠.”

“그럼, 떡볶이 어떤가요? 한식으로 자꾸 사람들이 떡볶이를 밀고 있는데.”

“떡볶이로는 안돼요. 대통령은 좋아하는 음식인데, 그거, 외국인은 안 좋아하는 음식입니다. 제왕 시대인가요? 왜 아무도 말을 안 해 주는 건지, 왜 자꾸 떡볶이에서 한식의 답을 찾으려는 걸까요.”

이선균 보니까, 셰엡은 오더만 부르던데?

“셰엡, 파스타가 맛이 좋습니다. 카르보나라는 느끼하지 않게 입 안에서 부드럽게 감돌고요, 봉골레 파스타는 은은한 올리브 향이 퍼지면서 아주 담백합니다. 셰엡의 책을 보니까, 스파게티에 대해 몰랐던 것도 많고, 오해한 것도 많더라고요.”

“굳이 어떤 오해를 풀어 주겠다는 사명감에서 쓴 책은 아니고, 이태리 음식은 실제 이렇게 달라요, 라고 말해 주고 싶었죠. 알고 먹는 거와 모르고 먹는 것과 다르니까. 마침 드라마도 해서 화제가 되었던 것 같아요.”

여러분들이 파스타를 먹으면서 파스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꺼리’를 마련해 주고자 생각했다. 그것이 이 결과물이다.(p.12)

“드라마 보시면 어때요? 정말 실제 주방 풍경과 비슷한가요?”

“챙겨보지는 못했지만, 대충 얘기 들어보면, 이선균이 일 안 하고 소리만 지른다면서요. 아무리 셰프라도 일을 안 할 수가 없지. 보니까 전표만 뜯어보고 그릇만 닦데? 그것이 셰프들의 상징적인 일처럼 보여서 그런 걸 겁니다.

냉면집에 가면, 주방 안을 유심히 보게 돼요. 아무래도 동료들이니까. 냉면집은 복장이 다르죠. 아주머니들은 주름 모자를 쓰고, 비닐 앞치마를 하고 있습니다. 냉면집은 물이 많이 튀기니까 장화도 신죠. 100석 정도 되는 큰 냉면집에 갔을 때, 거기 주방장은 뭘 하나 살펴봤어요. 그런데 그 사람은 모자도 안 쓰고, 앞치마도 안 하고……. 그 사람이 하는 일이 없어요. 그런데 굉장히 중요한 일을 하고 있더라고. 오더 받는 일이죠. 잘 들어 보시면, 소리가 들려요. 그런데 무슨 말인지는 모를 거예요.

‘3번 테이블에 물냉면 둘, 비빔냉면 둘~’ 이러면 오래 걸리니까, 암호같이 중얼거리죠. 중얼중얼하면, 주방에서는 다 알아들어요. 이를테면, 중국집에서 ‘짜둘짬둘짬둘……’ 하듯이 직업 용어죠. 그 집 주방장이 유일하게 하는 일이 오더 부르는 일이더라고. 그것도 굉장히 중요한 일입니다. 음식들이 잘못 나와도 그 사람이 컨트롤하죠. 어떤 음식이 먼저 나가고, 주문이 엉키면 어떻게 처리하는지. 이런 것들이 굉장히 중요한 일이에요.”


“그럼 셰프는 어때요? 셰프도 오더만 부르나요?”

“제 레스토랑에는 사람이 없어서 그럴 순 없습니다. 일을 도와주는 척, 하는 척, 합니다.”

왜 크림수프에다 면을 빠뜨렸나?

음식 대접 후에 파스타에 관한 이런저런 얘기를 들려주신 박 셰엡~!

(열심히 먹는다.) “이거 은근 양이 상당한데요? 카르보나라 소스가 중독성 있어요. 느끼하지 않아서 자꾸 빵도 찍어 먹게 되고(우걱우걱), 절로 포크를 부르는 맛이랄까요. 전 이렇게 소스가 많은 카르보나라가 좋아요.”

“그런데 이태리는 그렇게 안 먹습니다. 이태리 파스타 보면, 소스가 굉장히 적어요. 일본만 해도 파스타 소스가 우리보다 훨씬 적어요. 일본이야 워낙 외국 것을 잘 받아들여, 자기화 시키는데, 또 그런 것이 제일 잘나가요. 일본에서는 간장에 날치 알 올린 파스타가 제일 인기입니다.”

“오호, 간장에 날치 알이라. 어떤 맛일까요? 그런데 우리나라에서 파스타는 왜 소스가 많아진 걸까요?”

“우리는 대개 이렇게 생각하죠. 국물 있는 건 짬뽕, 없는 건 자장. 그러니까 ‘소스’라고 하면 자장 소스만큼은 있어야 된다고 보는 거죠. 어렸을 때 먹었던 자장 생각해 보세요. 예전보다 지금, 소스가 훨씬 많아진 것 같지 않아요?”

국물을 많이 먹는 문화, 김치의 문화와 함께 자장면도 이런 습관에 한 움큼 보탠 것 같다. 자장면은 면을 완전히 덮듯이 많은 양의 소스를 준다. 이런 습관에 길들여진 우리들은 파스타조차도 소스가 면을 덮을 정도로 많이 먹어야 한다. 그런데 이탈리아의 파스타는 소스가 국수에 ‘묻어’ 있을 뿐이지, ‘덮고’ 있지는 않으니까 말이다.(p.48)

“외국인들이 우리 파스타를 보면, 왜 크림수프에다 면 빠뜨렸느냐고 그래요. 그리고 소스를 이만큼 남겨 놔요. 빵 찍어 먹어야지, 이걸 어떻게 다 먹느냐면서요. 그러니 외국 친구들이 파스타를 먹으러 온다고 하면 고민을 하게 되죠. 이전에는 고민하다가, 소스를 중간 정도 드렸어요. 일단 칭찬을 하고서는 소스 얘기를 덧붙이더라고요. 맛있었는데, 소스가 좀 많았다!”

“그럼, 이태리 사람들은 왜 소스를 조금 먹나요?”

“뭐, 원래 그랬어요. 파스타를 과학적으로 분석해 보자면, 그게 우리에게는 한 끼 식사거든요. 그런데 그 친구들에게는 코스의 일부예요. 전채 요리-파스타-스테이크, 이렇게 먹는 게 일반적이죠. 심지어는 피자집에 가도 전채 요리를 꼭 먹어요. 시고 짠 음식을 먹어서, 식전에 입맛을 돋우는 과정을 예민하게 생각해요. 전채 요리를 먹지 않으면 밥을 먹지 않았다고 생각할 정도니까요. 마치 우리가 김치 생각하듯이.”

“재미있네요. 그러고 보니까, 우리나라 사람들은 소스, 국물 이런 것을 좋아하는 것 같아요. 국, 찌개 같은 음식도 밥상에 자주 올라오고요.”

“볶음밥에 국물 주는 건 전 세계 우리나라밖에 없어요. 볶음밥과 비슷한 메뉴는 동남아, 남미, 멕시코 다 있는데, 국물 달라고 찾는 사람들은 한국 사람밖에 없죠. 그것도 언제부터 짬뽕 국물로 바뀌었죠. 그것만 해도 우리가 얼마나 국물을 좋아하는지 알 만하죠.

사실, 이태리에는 수프라는 것을 따로 여기지 않아요. ‘파스타 먹을래? 수프 먹을래?’라고 물을 만큼, 파스타와 수프가 대용하는 음식이라고 생각하죠. 대신 그들에게 국물 역할을 하는 게 와인입니다.
(파스타와 와인은 불가분한 관계다. 식사할 때 따로 국물을 곁들이지 않는 이탈리아인들은 와인으로 그 역할을 대신한다.ㅡp.272) 이런 이유로 우리는 소스가 많고, 그들은 덜한 겁니다. 그래서…….”

“……그래서?”

“우리 레스토랑에서도 소스를 조금 주고 짬뽕 국물을 줄까 고민하고 있어요. 일단 처음에는 계란 국물을 주다가, 짬뽕 국물을 주는 거죠. ‘우와, 바뀌었어!’ 싶게.(웃음) 음식은 대개 식문화라는 것을 따라가기 마련이니까.”

사람을 길들이는 혀의 기억

“어쩐지 외국에 가면 한국인들이 서로 알아볼 만한 특징이 눈에 훤히 띌 것 같아요. 국물을 찾는다거나, 젓가락을 쓴다거나.”

“그렇죠. 유럽에 있는 스시, 일식집에 들어가 보면 우리는 한국 사람을 알아봐요. 뒤쪽에는 대개 임금이 싼 중국 사람이 대칼(!)로 회 썰고 있어요. 사실 일본 사람은 거의 없어요. 일식집이라고 해도 중식, 일식, 한식을 짬뽕해서 파는데 먹는 사람들은 다 일식인 줄 알고 먹죠. 외국 여행을 중에 만난 일식집에서, 신선한 도미 초밥 상상하면 큰일 납니다. 날 생선 파는 곳은 없어요. 있는 곳은 굉장히 고급 식당이죠. 일본 사람이 일하는 굉장히 비싼 식당일 겁니다.

젓가락질하는 것은 부르주아의 상징이죠. 1800년대까지, 포크, 나이프로 밥을 먹으면 귀족이라고 했는데, 지금은 젓가락인 셈입니다. 이태리 친구들이 내가 젓가락질하는 걸 보면서 부러워하고, 알려 달라고 하더군요. 젓가락으로 콩 집기 시범을 보였더니, 거의 뭐 기절해요.(웃음) 젓가락질이 굉장한 거죠.

그 친구들을 보면 우리가 또 놀라요. 고급 식당에서 과일을 먹고 싶으면, 과일 코스가 따로 있기 때문에 따로 시켜야 돼요. 사과나 복숭아를 시키면 진짜 한 덩어리 그대로 나와요. 걔들은 그걸 칼질해서 먹어요. 포크와 나이프를 사용해서 과일 껍질을 벗기는데 그걸 진짜 잘해요. 얘네들은 또 이런 걸 잘하는구나, 하는 거죠. 제가 3년 있었는데, 이제 그게 좀 되더라고요.”


“파스타는 이제 전 세계에서 찾는 음식이죠?”

“그렇죠. 그런데 또 유럽을 돌아보면 재미있는 게, 이태리 식당에 가면 다 수입 밀가루를 써요. 이태리에 밀을 심을 땅이 별로 없어요. 우리나라에서 현미가 비싼 것처럼, 거기도 이태리 밀이 무척 비싸죠. 거의 수출해요. 프랑스 사람들은 스파게티를 ‘루이’라고 하는데, 그들이 이태리 사람을 멸시할 때, ‘저 루이들~’이라고 하죠. 파스타 먹는 무식한 민족이라고 욕하는데, 프랑스 사람들도 많이 먹어요.”

“파스타가 세계적인 음식이 될 수 있었던 이유가 있다면 뭘까요?”

<누들로드>란 다큐멘터리도 있었듯이, 국수가 먹기도, 보관하기도 편하죠. 파스타 면은 유통기한이 3년 정도 돼요. 수분 함량이 10퍼센트가 채 되지 않아서 안 상하죠. 그걸 팔고 있는 저는 행운아인 거고.”

“스파게티 하면 파스타, 파스타 하면 이태리, 하는데 정말 이태리 사람들은 파스타를 많이 먹나요? 매 끼니에 파스타를 먹는 건 아니죠?”

파스타는 점심과 저녁 시간에 등장한다. 이탈리아 요리의 주인공인 파스타가 아무 때나 등장하지 않는 것이다. 파스타를 먹는 시간에는 대개 코스 요리를 먹게 된다. 좀 격식 있는 자리는 5~6 코스가 나오기도 하지만 대개는 서너 가지 코스가 기본이다. 전채인 안티파스토, 파스타(대신 리조토나 뇨키, 수프를 먹기도 한다.) 고기나 생선, 디저트가 가장 기본적인 식사의 구성이다. 물론 마음대로 코스를 조정하기도 한다. 전채와 파스타만 달랑 먹을 수도 있고, 아예 파스타만 두 종류를 먹기도 한다.(p.57)

“많이 먹긴 하지만, 스파게티만 먹고 살지는 않아요. 많이 먹는다는 사람들이 인구의 절반도 안 될 거고, 실제로 짧은 파스타를 주로 먹죠. 간편하니까. 저는 국수를 30년 먹다가 거기 파스타를 먹은 셈인데, 3년 먹어도 짧은 파스타가 익숙해지지 않아요. 끼니를 먹은 것 같지가 않더라고요. 참 놀랍죠. 그러고 보면, 혀라는 것은 정말 간사한 것 같아요. 화학적으로 변한 게 없는데, 물리적 촉각 때문에, ‘좋다 싫다’고 판단을 내려요. 혀처럼 예민하고 간사한 게 없는 것 같아요. 그걸 속이는 게 음식의 과학이거든요.”

특히 먹는 혀의 기억은 깊게 새겨진다. 매일 음식을 먹으면서 사람은 그 습관을 길들인다. 먹는 것처럼 집요하고 완강한 습관은 드물다. 하루 세 번의 반복되는 ‘기억의 작업’은 우리를 지독하게 보수적으로 만든다. 한국에서 먹는 한국형 파스타를 먹던 혀는 이탈리아에서 까탈을 떠는 게 당연하다.(p.51)

“음식 동네에서 돈 버는 방법은 물 팔거나 공기 팔면 돼요. 빵은 공기를 파는 셈이죠. 팥빵을 눌러보면 만주만 하게 작아지죠. 공기를 먹으면서 맛있다고 좋아하는 거예요.(웃음) 나를 속이는 음식들이 얼마나 많아요. 아이스크림도 다 공기죠. 30센티 아이스크림도 원가가 100원쯤 할까요. 물과 공기로 만든 거니까. 물장수가 돈 번다고 하잖아요. 예전 다방 커피가 원가 50원에 3,000원 받았잖아요. 지금도 커피 체인에 눈에 불을 켜고 덤비는 게 원가는 적고, 셀프서비스가 되니까 그렇죠.”

결심하면 길은 많고, 용기를 내면 가능하다

열 명의 독자가 초청되어, 박찬일 셰프의 레스토랑 ‘누이누이’에서
맛있는 시간을 보냈다.

“원래 편집 일을 하셨잖아요? 그 당시에는 셰프에 대한 인식이 그리 좋지 않았을 텐데, 어떻게 인정받던 직업을 버리고 셰프의 길로 뛰어들었나요?”

“그 당시에 셰프의 인식이 나았다면, 제가 못했을지도 모르죠. 제자리가 어디 있겠어요.(웃음) 생각해 보면 저는 어렸을 때부터 평생 뭘 한다는 생각은 안 했거든요. 그저 하고 싶으면, 할 수 있다고만 생각했죠. 그때도 무대포로 전세금 빼서 이탈리아에 갔거든요. 식당일이라면, 밥은 안 굶겠구나, 했지 구체적인 건 없었어요.”

필자에게 사람들은 ‘왜 요리사가 됐느냐.’고 묻는다. 그러니까, 무슨 소설 주인공처럼 운명적으로 요리사가 될 수밖에 없었다는 식의 근사한 사연을 듣고 싶은 게다. 그러나 머릿속을 아무리 헤집어봐도 그럴싸한 이유가 없다. 솔직하게 IMF 때문에 파산의 위험을 눈치채고, 비 오기 전 개미처럼 이삿짐을 싼 것이라고 말할 용기가 없어 그럭저럭 둘러대곤 했다. 고백건대, 필자는 참외나 배를 깎기 싫어서 어머니가 외출에서 돌아오기를 기다렸으며, 그래도 오지 않으시면 껍질째 씹어 먹던 사람이다. 서양식 요리사가 된 지금도 끼니를 때우기 위해 밥을 할라치면 바락바락 씻기가 귀찮아 두어 번 찬물에 흔들어 안친다.(p.276)

“이태리 가면 전 세계에서 그런 사람들이 와요. 쉰, 여든의 나이의 사람들도 많은데, 취미로 요리 배우겠다고 오는 게 아니라, 먹고살려고 오는 사람 많아요. 6개월 정도 배우고 가서, 조그맣게 차리기도 하거든요. 지금 하는 일을 그만두라는 건 아니지만, 하고 싶은 일을 결심하면 길은 많고, 용기를 내면 뭐든 가능해요.”

“셰프, 1999년 이탈리아 요리 학교 ICIF를 수료하고 나서, 시칠리아에서 연수하셨잖아요. 왜 그곳에 갔나요? 그때 셰프의 스승님이 성깔 있으신(!) 분이셨다면서요? 그분한테 무엇을 전수받으셨나요?”

“배운 거? 욕하는 거.(웃음) 연세 때문인지 최근에는 되게 순해지셨어요.

시칠리아는 소득이 1만 불 조금 넘을 거예요. 우리나라보다 못 살아요. 가난하면 범죄 조직이 많을 수밖에 없는데, 거기도 마피아가 많아요. 왜 갔느냐고요? 그것도 무모한 이유죠. 남들 안 하는 게 하고 싶어서.(웃음) 좋고 비싼 식당이야 언제든 갈 수 있지만, 시칠리아 같은 삭막한 동네는 언제 가보겠느냐 싶은 거였죠. 정말 그 당시에나 가능했던 일이랄까요. 그곳 사람들이 독특한 구석이 있어요. 지진이 많아서 3분의 1 이상 사람들이 죽었어요. 그러니 사람들 심리에 ‘내일’이라는 것이 없는 것 같아요. 친절하지도 않고, 외지인을 경계해요.”


“무모한 이유여도, 여러 나라 중에 하필 시칠리아를 선택한 이유가 있을 것 같은데요?”

“20대 중반에 호암아트홀에서 <시네마 천국>이라는 영화를 봤어요. 끝물이라 저랑 친구랑, 그리고 한 아줌마, 이렇게 셋이서 봤는데, 완전히 매혹되었어요. 지중해에 꼭 가 봐야지. 시칠리아에 꼭 가 봐야지. 생각했더랬죠.(이 영화는 DVD 5.1채널로 보면 끝내줘요. 음악이 환상적이잖아요!)

무의미한 상징이나 표피적인 것에 사람들이 혹해요. 그렇게 속아서들 결혼하잖아요. 웃는 모습이 예뻐서 사랑에 빠져요. 사실 웃는 얼굴이 본질하고 상관없잖아요?(웃음) 되게 웃긴 이유로 결혼하듯이. 인생이 결정하는 이유도 되게 우스운 걸지도 몰라요.

모로코 영화를 봤다면, 언젠가 모로코에 갔을지도 몰라요. 인생이란 모르는 거죠. 제 얘기 듣고 누가 또 엉뚱한 일을 벌일지도 모르고, 누군가는 드라마를 보며 ‘열심히 요리해서 욕 좀 해야지.’ 하는 꿈을 안고 요리를 할지도 모르는 거죠.”


“소문대로, 말씀을 정말 재미나게 하세요!”

“재미있긴요. 요리를 잘해야죠.”

(※참고! 박 셰프님의 맛있는 이야기, 채널예스에도 업데이트되고 있습니다. 이야기가 더 고프신 분들께, 박 셰프님의 ‘발칙한 섞어찌개’를 대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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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 셰프가 들려주는 감칠맛 나는 진짜 파스타 이야기 이탈리아의 대표음식 파스타를 책으로 먹는다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한 후 돌연 유학하여 이탈리아 음식을 전공한 후 귀국, 유명 셰프이자 와인 전문가로 명성을 떨치고 있는 박찬일의 새로운 요리 에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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