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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와의 만남]강렬하고 낯선 경험을 박찬욱에게 묻다

<박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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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일 서울 압구정의 한 극장에서 박찬욱 감독과 함께 보는 <박쥐> 스페셜상영회가 열렸다. 영화 <박쥐>를 보고 관객들은 질문을 했고, 박찬욱 감독은 답했다.

※ 편집자 주
글 내용상 영화에 대한 스포일러가 다수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 점 참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박찬욱 감독이 <박쥐>로 돌아왔다. 앞선 <싸이보그지만 괜찮아>(2006) 이후 3년 만이다. 그의 이름에 걸맞게 관객도 북적거린다. 칸 영화제 초청도 받았다. 하지만 그만큼 논쟁도 한창이다. 영화 내용을 둘러싼 모호성부터 불균질한 텍스트 때문에 호불호가 갈리고 있다.

 

좋고 나쁨을 떠나 영화는 강렬하고 낯설다. 우선은 ‘뱀파이어’라는 소재 때문이다. 뱀파이어라니. 한국영화에서는 생소한 이름. 최근 아름다운 뱀파이어를 다룬 해외영화들, <렛미인><트와일라잇>과 완전 딴판이다. 송강호가 분한 뱀파이어라서, 더구나 신부가 뱀파이어가 된다니, 더더욱 낯설다.

그럼에도, 주인공 (현)상현(송강호)은 우리가 알던 뱀파이어의 모습이 아니다. 창백한 얼굴에 송곳니를 드러내고 인간(의 피)을 먹이로 설정하는. 자신을 뱀파이어라고 규정하지만, 종종 드러나는 상현의 인간적 면모는 뱀파이어로서의 정체성도 의심케도 한다. 거의 죽은 피를 빨아먹는 그는 뱀파이어계의 이단아 내지는 비정규직 같다.

또 뱀파이어가 나타났다고 호들갑을 떨거나 공포에 떠는 인물도 없다. 기껏 비밀을 공유하는 태주(김옥빈)도 “뱀파이어라는 거 생각보다 귀엽다”고 깔깔대거나, 자신도 뱀파이어가 된다. 눈 먼 노신부(박인환)는 외려 뱀파이어가 된 상현에게 자신의 피를 빨아달라고 애원한다.

물론 관습적인 뱀파이어의 이미지들이 깡그리 지워진 건 아니다. 햇빛을 봐선 안 되고, 사뿐히 날아다니거나 상처가 바로 치유되는 초능력도 생긴다. 뱀파이어이거나 그렇지 않거나, 어떻게든 드러나는 낯섦은 취향에 따라 중요한 관람 포인트.

그런 한편으로 이 뱀파이어(를 자칭하는) 영화는 우리가 접한 박찬욱 세계의 일부임을 감지하도록 만든다. 죄의식이 있고, 구원의 문제가 다뤄지며, 욕망과 딜레마가 녹아있는 한편 블랙코미디가 포함돼 있다.


영화 전반에 걸쳐 그는 종교적 구원의 허구성도 꼬집는다. ‘예수천국, 불신지옥’으로 대변되는 근본주의를 능멸한달까. 흡혈하는 뱀파이어가 사제복을 계속 입고 있는 것부터, 상현은 친구의 아내를 탐하지 말라는 십계명을 어긴다. 나중에는 아예 “신부는 일상적인 직업일 뿐”이라고 고해성사(!)를 한다. 상현과 태주의 첫 섹스는 부활절의 종교 요양원에서 이뤄진다. 절제심과 도덕도 치명적인 욕망 앞에선 무용지물이다.

무엇보다, 눈 먼 노신부에게도 그토록 갈구하던 구원은 없다. 눈이 멀어도 종교의 힘으로 극복했을 것이라는 어떤 편견이 지배하는 세계에 대한 일침. 그는 뱀파이어가 되고 싶단다. 뱀파이어로 다시 태어나 바다를 볼 수 있다면, ‘뱀파이어지만 괜찮아’. 어떤 일이 일어나든, 어떻게 되든, 관성적으로 ‘하나님의 뜻’을 들먹이는 어떤 종교인들의 맹목성도 떠오른다. 모든 고통, 아픔 그리고 슬픔은 대체 ‘인간’ 때문이 아니면 무엇이란 말인가.



 

우리의 전통과 역사에 없는 뱀파이어도 그렇지만, 공간이나 미장센이 주는 압도적인 강렬함도 상당하다. 욕망과 치정이 함께하는 ‘행복한복집’의 작명은, 그저 웃자고 하는 아이러니다. 일본식 적산가옥에서 한복이 팔리고, 사람들은 2층에서 마작(중국)을 하고 보드카(러시아)를 마신다. 이난영의 오래된 노래와 바흐의 칸타타가 어우러진다. 온통 흰색으로 도배질된 공간에서 두 뱀파이어의 핏빛 향연은 또 어떤가.

영화는 에밀 졸라의 소설 『테레즈 라캥』에서 영감(inspired by)을 받았다. 대부분 등장인물의 이름도 이 소설에서 빌렸다. 다만 자기모순에 빠진 주인공을 상징하듯, 앞으로 부르나 뒤로 부르나 똑같은 현상현(송강호)의 작명을 빼고는. 영화는 박찬욱 감독과 함께 시나리오를 쓴 정서경, 최인 작가가 쓴 동명의 『박쥐』 소설도 잉태했다.

여하튼 <박쥐>는 평도 갈리고 관객들도 갈렸다. 그만큼 각자의 품 안에서 해석하고 읽을 여지가 많다는 것 아니겠나.


지난 10일 서울 압구정의 한 극장에서 박찬욱 감독과 함께 보는 <박쥐> 스페셜상영회가 열렸다. 영화 <박쥐>를 보고 관객들은 질문을 했고, 박찬욱 감독은 답했다. 박 감독은 연출 의도를 밝히기도 했고, 엔딩 장면에 대한 숨겨진 이야기도 알려줬다.

다음은 김영진 영화평론가의 사회로 이뤄진 박찬욱 감독과 관객과의 대화.

영화에서 상현과 태주는 죄의식에 시달린다. 그런데 의아한 게 상현은 맹인 신부를 죽이고서는 죄의식을 별로 느끼지 않는 것 같은데, 왜 그런가.

“별다른 이유는 없다. 상현도 노신부의 죽음에 대해 죄의식을 갖고 있겠지만, 묘사할 시간이 일단 없었다. 태주와 상현은 죄의식을 공유하는 사이라 많이 묘사될 필요도 있었다. 노신부의 경우는, (상현에게) 집요하게 피 요구를 했고 상현 입장에서는 그 살인에 대해 죄의식을 덜 느낀 것이 아니었을까. 인물을 만들 때, 상현의 성격을 그렇게 설정했다.”


상현이 태주의 피를 먹으면서 라 여사의 시선과 마주치면서 태주를 살린다. 죄의식 때문에 살린 것인가.

“(이유를) 딱 하나만 골라 말하긴 어렵다. 상현 입장에서는, 어떤 누구든 시선이라는 것이 중요하다. 그것은 영화 관객이랄 수도 있고. 내가 뭐하고 있지, 라고 느끼는 순간이다. 상현에게 메시지를 보내는 용도는 아니다. 몰두하는 행동에 대해 성찰하는 계기다. 그래서 흡혈 행위를 정지하고 피를 주는 단계로 넘어간다.

사실 그 장면은 10년 전 제일 먼저 만들어놓은 장면이다. 태주를 살해하고 흡혈을 동물처럼 탐하다가 자신의 행동을 갑자기 깨달으면서 순환하는 것. 또 하나의 뱀파이어를 만들고 하나가 되는 이 시퀀스 하나를 갖고 (<박쥐>를) 시작했다.”



 

 

영화를 두 번째 봤다. 『테레즈 라캥』도 읽었는데, 소설과 <박쥐>의 몇몇 등장인물 이름이 연결되는 것 같다. 강우는 카미유, 태주는 테레즈, 라 여사는 라캥과 연결되는 것 같다.

“맞다. 그들은 『테레즈 라캥』에서 가져온 이름이다. 처음엔 그럴 생각이 없었다. 태주만 연결해서 (이름을) 지었는데, 그럴듯한 게 마음에 들어서 나머지 인물들도 그렇게 했다. 다만 상현만 그렇지 않다. 상현만 (소설과) 다른 캐릭터였기 때문이다. ‘현상현’이라고 거꾸로 해도 똑같은 이름을 만들었다.”

상현이 마지막에 그런 결정을 할 만한 이유가 없었던 것 같은데, 왜 그렇게 했나.

“그건 관객들 생각에 달려 있는 건데, 나도 관객의 한 사람으로서 이야기할 수밖에 없다. 어떤 장면의 동기나 의도와 같은 것을 (감독이) 정해주면 영화가 협소해진다. 영화에 대한 관객들의 다양한 인상이나 견해가 만든 사람 입장에서는 가장 큰 재산이다. 영화를 만들고 돌아봤을 때 남는 건 그것이다. 그래서 인터뷰를 가급적 자제하고 오디오 코멘터리를 하고 싶지 않다.

다시 돌아가서, 자신이 원하지 않았는데 정체성이 바뀌고 어떤 존재로 규정되는 것도 삶의 조건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이 왜 주어졌는지 파악되지 않은 채로 남겨둔 거고. 상현의 경우처럼 그렇게 정해져버렸을 때도 책임져야 하는 것이 인간의 삶이 아닌가 싶다.”


김영진: “방금 말한 그런 부분이 (영화에 대한) 불만이나 비난과 겹쳐지는 부분이다. 사람들은 잘 알지도 모르면서 정의하기를 좋아한다. 현대 영화는 그런 부분에 대해 저항을 많이 하고 틈이나 여백을 많이 열어둔다. 그런 여백이나 틈을 생각할 수 있는 부분이 많다는 것, 그게 매력이 아닌가 싶다.”


엔딩에서 피고래가 나오는 장면은 어떻게 구상했나.

“마지막 촬영을 하고 마지막 단계에서 이뤄진 변화였다. 원래 각본상에는 훨씬 복잡한 이미지로 가득 찬 장면이었다. 상현의 환상 속에서 바다에 알 수 없는 생명체들이 많이 등장했다. 천국인지 지옥인지 알 수 없는. 날개 달린 거대한 지네들 수만 마리가 하늘을 덮고 있고, 거대하고 다리가 긴 진드기들이 바다 위를 걸어 다니는 환상적이고 낯선 것이었다. 아름다운 풍경 속에서 이런 생명체들이 오가는 풍경을 그리고 싶었는데 주변에서 다들 말렸다. 비극적 장면에서 꼭 이렇게 해야겠느냐고. (웃음)

나도 늘 관객들이 싫어하지 않을까 걱정하며 만들어오고 있다. 마지막 장면은 순진한 신부가 죽음 이후의 있을 곳에 대한 환영을 낯선 이미지로 보이고 싶었다. 그러나 관객의 비극적 감정을 날려버릴 것 같아서 낭만적으로 암수고래 두 마리가 사랑을 나누듯이 유영하는 장면으로 만들었다. 하지만 그들이 유영하는 곳이 피바다고, 그것만으로도 그로테스크하게 보이기도 한다. 이런 이미지도 괜찮고 어울리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마지막 장면으로 넣었다.”


이건 사실 하늘에 물어봐야 할 질문이다. 자학기도를 하는 상현이 뱀파이어가 된 것은 신의 뜻이라고 생각한다. 영화를 보면 신도 선량하지는 않은 것 같다. ‘인간만 선해야 하는가, 우리는 어찌 살아야 하는가.’ 하는 질문을 하지 않을 수 없다. 마지막 상현의 선택도 설득력 있다고 생각했고.

“스스로를 처벌하고자 하는 자학기도의 내용이 그런 해석을 이끌어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상현은 사실 보기보다 강한 욕망을 가진 사람이다. 시놉시스에서는 더 강했다. 순교할 기회만 찾고 있던 사람이었다. 사고로 뱀파이어가 된 상현을 통해 스스로 원하지 않는 운명이라도 책임을 져야하는 것이 인간의 삶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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