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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남자 사이에서 억울하게 죽은 근비

왜 성종은 이 사건을 끝까지 강상 범죄로 밀어붙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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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종은 평소 그렇게 앞뒤 없이 단죄하는 군주는 아니었다. …… 여성에 관해선 성종 같은 합리적인 군주도 파쇼의 논리로 대했다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는 대목이다.

1479년(성종 10) 7월 12일, 장마 열흘째였다. 관료들이 모두 궁궐로 출근한 시간이었는데도 주위가 어둑어둑했다. 사정전思政殿 앞의 회화나무 위로 건물 내부의 빛이 빠져나와 젖은 줄기가 약간씩 반짝였다. 조용한 바깥 풍경과는 달리 내부에서는 치열한 논전이 벌어지고 있었다. 얼마 전 일어난 살인 사건 처벌을 두고 신하들이 두 파로 나뉘어 싸우고 있었다. 격앙된 목소리들이 천정에 가 닿을 정도였다.

논의는 좌부승지 김계창金季昌이 형조의 계본啓本을 들고 와서 다음과 같이 아뢰면서 시작됐다.

“박종손朴終孫이 차경남車敬南과 근비斤非가 함께 자고 있는 방에 들어가 경남의 목을 졸라 죽였습니다. 둘은 모두 근비의 간부姦夫이니, 박종손은 사형에 처하고 근비는 장을 쳐야 할 것입니다.”

그러자 좌승지 김승경이 말을 받았다. “천한 신분에 어찌 정식 혼인을 하겠습니까? 마땅히 먼저 간통한 자를 본남편으로 삼는 것입니다. 근비가 참여하여 본남편을 죽였으니 사형에 처해야 합니다”라고 김계창을 나무라듯 말했다.

김계창이 고개를 번쩍 들었다. 목소리는 왕을 향해 얼굴은 김승경을 향해 “부모에게 고하지 않고 서로 정으로써 간통했으니 간부가 아니고서 무엇이겠습니까?”라고 반박했다. 그러자 도승지 홍귀달은 “평소 박종손은 근비에게 차경남을 죽이겠다고 말하고 다녔습니다. 알고서도 구하지 않았으니 주의誅意의 법으로 논한다면 근비는 죽여야 합니다”라고 재반박했다. 우부승지 채수蔡壽도 “근비는 평소 박종손에게 차경남이 유부남이라 평생을 의탁하여 종신할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이로 볼 때 함께 죽인 것입니다”라고 거들었다.

김계창은 목소리를 높였다. “근비는 차경남과 간통한 지 열흘도 안 되어 박종손과 잤습니다. 어찌 차경남을 본남편이 된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성종은 신하들이 싸우는 것을 물끄러미 듣고 있었다. 그러다가 눈을 옮겨 형조의 계본을 찬찬히 살펴봤다. 논쟁은 계속되고 있었다. 성종은 말들을 모두 멀리 물리치고 이 사건을 자기 식으로 해석했다. 어떤 사건을 파악할 때 성종의 최우선 관심이 있었다. 그것이 강상에 관계되는가 아닌가 하는 것이었다. 성종은 혼잣말로 ‘이것은 지아비를 죽인 것이야’라고 되뇌었다. 그는 이번 사건을 강상과 관련된 범죄의 시범사례로 삼아야 한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오랫동안 침묵하던 왕이 드디어 입을 열었다.

“차경남은 계손季孫의 중매로 근비를 만났으니 간부라고 할 수는 없다. 또 박종손이 살인을 예고했을 때 근비는 한마디의 말로도 중지함이 없었고, 목을 조르는 걸 뻔히 보고도 좌시했으므로 그 마음이 참혹하다. 지정살본부知情殺本夫로 개율하라.”

죄목을 지아비 살인으로 고치라는 것이었다. 왕이 처음 보고받을 때부터 이렇게 사건을 강하게 규정짓는 일은 그리 많지 않았다. 그럴 경우 애초의 결정이 바뀌는 일은 거의 없었다. 두 남녀는 이날 사형선고를 당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

근비는 갓 스무 살이 된 여종이었다. 매끈한 다리와 잘록한 허리를 가진 약간 서구적인 미모의 여자였다. 종이 예쁘면 주인의 첩이 되는 게 보통이었지만 근비의 주인 민효원閔孝源은 이미 판관과 군수를 지낸 육십 노인이었다. 근비는 다른 집 노비에 비해 비교적 연애와 혼인의 길이 열려 있는 편이었다. 이 점을 노리고 근비에게 흑심을 품는 동네 남자들이 많았다.

하루는 박중손朴仲孫이 근비를 자신의 집으로 불렀다. 그는 민효원과 거래하는 어물전의 주인인데, ‘물 좋은 민어가 들어왔으니 어서 가져가라’고 근비를 불렀다. 그녀는 투덜거렸다. 민어같이 큰 생선을 처녀한테 들려 보내려는 중손의 심보가 미웠다. 그리고 가게가 아니라 집으로 오라는 게 더 불만이었다. 그의 집은 어물전을 지나 더 가야하는 먼 길이었다. 하지만 물건이 그리로 들어왔고 오늘은 몸이 아파 장사를 하지 못한다는 얘기에 어쩔 수가 없었다.

주인 효원은 민어라면 환장하는 늙은이였다. 근비는 민어의 대가리만 끊어서 가져올 생각이었다. 저녁상에 찜을 해서 올리고 나머지는 내일 받아 매운탕으로 끓이면 되겠거니 생각하자 발걸음이 약간 가벼워졌다.

집에 도착하니 중손이 문을 열어줬다. 민어를 보여달라고 하자 아직 손질이 덜 끝났다며 방에서 잠깐 기다리라고 했다. 방에 이불이 있어 근비가 쭈뼛거리자 중손은 괜찮으니 들어가서 다리를 좀 쉬라고 사람 좋게 얘기했다.

얼마나 지났을까. 누군가 문을 슬며시 밀고 들어왔다. 처음 보는 남자였다. 벌떡 일어난 근비는 집에 손님이 온 줄 알고 “저는 민어를 가지러 왔을 뿐입니다” 하며 나가려 했다. 그런데 문이 열리지 않았다. 그때 팔 한쪽이 마비되는 듯 아팠다. 소리를 지르려 했으나 입은 어느새 막혀 있었다. 남자는 굶주린 짐승처럼 난폭하게 그 자리에서 근비를 강간했다. 창졸간에 당하는 일이라 근비는 정신이 없었다. 뭍에 올라온 민어처럼 힘없이 몇 번 뒤척거렸을 뿐이다.

그는 일을 마치자 자신을 차경남이라고 소개했다. 다정하게 말을 걸며 평소에 너를 예쁘게 봐오다가 날을 잡은 거라면서 박중손에게는 죄가 없다고 했다. 이미 나에게 시집온 것이나 다름없고, 비록 내가 결혼한 몸이지만 첩으로 들일 것이니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그는 돈을 몇 푼 쥐어주고 휑하니 나가버렸다.

근비는 박중손에게 따질 힘도 없었다. 문을 열고 나오자 그는 웃으면서 근비에게 “내가 중매를 선 것”이라며 뻔뻔하게 얘기했다. 욕지기가 치밀어오르는 걸 참으며 근비는 어서 민어나 줘서 가게 해달라고 말했다. 그러자 중손은 딱하다는 듯이 근비를 보더니, 그건 지어낸 말이고 오늘 일도 있고 하니 저녁 무렵 사람을 시켜 한 마리 보내겠다고 인심 쓰듯 말했다. 문을 나오며 근비는 쓴웃음이 났다. 자기가 아직 세상을 너무 모른다고 생각했다.

근비의 시련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며칠 후 근방에 사는 박종손이라는 머슴에게 또 강간을 당한 것이다. 그는 흉악한 사람이었다. 이미 근비와 경남이 몰래 사통한 것을 알고 접근했다. 그는 근비에게서 욕심을 채우고 “그놈을 죽여 너와 살겠다”는 말을 했다. 그후 종손은 근비와 마주칠 때마다 경남을 죽이겠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했다. 근비는 저 사람이 왜 저러나 싶었지만 자신의 신세가 한탄스럽기만 했다. 며칠 사이에 두 명의 남자에게 번갈아 변을 당하고 나니 여자의 신세가 억울했다. 그래서 박종손의 말이 진짜 현실적인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인지에 대해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

살인 사건에 대한 심리가 다시 열렸다. 지난번에 근비에게 장형을 내려야 한다던 좌부승지 김계창이 먼저 입을 열었다. 하지만 그의 손에는 성종의 명령대로 죄명을 바꾼 문서가 들려 있었다.

“박종손이 매일 근비와 더불어 ‘차경남이를 죽이고 너에게 장가들어 같이 살고자 한다’고 했습니다. 어느 날 밤 차경남과 근비가 함께 있는데 종손이 들어와서 새끼로 목을 조르자 근비가 말렸는데 종손이 위협하자 바로 그쳤습니다. 큰소리를 쳐서 밖에 들리도록 하지 않았으니 마땅히 극형에 처해야 합니다.”

성종이 듣고 싶었던 얘기였다. 왕은 반가워서 “죽일 때 소리를 지르지 않은 것은 참여한 것이니 사형을 시키는 것이 옳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형조참판 이극균李克均과 참의 이육李陸이 나섰다. 그들은 “해친다는 말에 겁을 내서 그런 것이니 극형에 처하는 것은 온당치 못할까 합니다”라며 성종을 진정시켰다.

그러자 좌우에서 ‘죽여야 한다’ ‘죽일 수 없다’는 갑론을박이 벌어졌다. 또다시 성종이 어탁을 쳤다. 그는 앞서의 견해를 다시 한번 반복하면서 근비의 경우 “춘추필법으로 단정하여 교형에 처하는 것이 마땅하지 않겠느냐”고 동의를 구했다.

그때 왕이 왜 이렇게 서두르고 단정적인지 의구심이 든 예조참판 이극돈李克墩이 “혹은 죽여야 한다고 하고, 혹은 죽일 수 없다고 하여 중론이 일치하지 않으니 급하게 법으로 처치하면 온당치 못할 듯합니다”라고 중재해 최종 판단은 며칠 뒤로 잡혔다. 그동안 의정부와 육조 등에서 자세히 논하라는 왕명이 떨어졌다.

며칠 뒤 근비의 처형에 대한 논의가 재개됐다. 그 사이에 신하들은 사건에 대한 좀더 면밀한 조사를 벌였다. 의정부와 육조, 대간이 모두 나서서 의논을 했다.

먼저 윤필상이 강경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요지는 “만 번 죽여도 가벼울 만큼 남편을 살해한 정상이 명백한데 어찌 한 여자를 불쌍히 여겨 천하의 큰 법을 무너뜨리겠는가” 하는 것이었다. 반론도 여전히 만만치 않았다. 노사신과 이극배가 함께 길게 논리를 폈다.

“근비가 차경남과 사귈 때 양가 부모와 이웃도 알지 못했습니다. 또 차경남은 본처가 집에 있어서 근비와 하루도 동거하지 않았으니 본남편으로 논할 수 없습니다. 차경남이 살해된 일에서도 미심쩍은 점이 있습니다. 박종손이 죽이겠다는 말을 하자 근비는 평소 이를 말렸던 것으로 조사가 되었습니다. 또한 살해하던 날에는 해를 당할까 두려워 차경남을 대피시키려고 했는데 박종손이 억지로 함께 유숙시켜서 일을 저질렀으니 근비가 참여하지 않았다고 봐야 합니다.”

그러자 한천손韓千孫?신부申溥 등이 그렇다면 왜 차경남이 죽은 뒤에 삿갓과 그물로 시체를 덮어서 은닉했으며, 이튿날 몰래 칼을 씻어서 살해한 정상을 없애려 했느냐고 따지듯이 반론을 펼쳤다. 공범이 아니라면 직접 은폐하기보다 신고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들의 논리는 금방 힘을 잃었다. “죽는 것을 구하지 못하고 보고만 있었으니 부득이하여 그 형적을 없애서 자신을 위한 계책을 도모한 것은 상정常情”이라는 견해가 힘을 얻었다.

논의는 근비에 대한 정상참작 쪽으로 흘러가기 시작했다. “한번 간통한 남자와 짜고서 남편을 살해했다고는 보기 힘들다”는 이육의 의견과 “비록 음행을 하는 여자일지라도 남자와 간통할 때에는 반드시 말을 통하는 자(중매)가 있게 마련인데, 어찌 이것을 가지고 본남편이라고 결정하겠느냐”는 이극돈의 견해가 그러했다.

송수거사, <미인도>
당시 양반의 집안에서 부리는 계집종은 반드시 주인이 허락해야 시집을 갈 수 있었다. 게다가 그 남편 되는 사람이 아내가 주인집에 일하러 가는 것을 방해하지 않아야 비로소 본남편의 자격을 갖췄다. 이것이 당시 노비들의 삶의 실태였다. 근비의 주인 민효원은 그녀에게 남자가 있다는 사실도 전혀 모르고 있었으니 본남편으로 성립될 수 없다는 견해들이 이어졌다.

또한 ‘미워서 죽이고 싶다’는 말은 바로 시정의 간악한 무리가 보통 사용하는 욕설이므로 근비가 이를 듣고 진짜 실행할 줄 예상하지 못했다는 것은 당연하다는 얘기도 나왔다. 신하들 중에서 이극돈은 매우 웅장하게 근비를 변호했다. 그는 마치 근비 측이 고용한 국선 변호사와도 같았다.

“같이 누워서 곤하게 자다가 깨달았을 즈음에 차경남은 이미 죽어가서 수족만 움직였는데, 스무 살의 어리고 미혹된 계집이 창졸간에 놀라 어찌 이를 구하겠습니까? 더구나 ‘너도 함께 죽인다’는 말로써 공갈하는데 이에 대항하겠습니까? 삼사에서 추문할 즈음에 숨겨서 면하고자 하는 것은 모든 사람이 같은 마음인데, 더구나 자기와 같이 누웠던 사람이 죽음을 당한 일을 가볍게 스스로 고하겠습니까? 이는 족히 논할 것이 못됩니다. 사형을 감하도록 재량하소서.”

하지만 지금까지 나온 의견들은 근비가 자발적으로 죽은 경남과 관계를 맺었다고 보고 있다. 하지만 실정은 그렇지 않았다. 윤계겸尹繼謙?이숙기李叔琦?어세겸魚世謙 등은 좀더 실상에 가깝게 사건의 발단과 전개를 다시 한번 요약해서 왕에게 들려줬다.

“박중손의 꾀임으로 근비가 우연히 그의 집에 갔다가 차경남을 만났고, 중손이 못 나오게 문을 막아서서 억지로 간통한 것입니다. 만약 근비의 주인이 이를 알고서 법관에게 고했다면 마땅히 중손은 용지통간容止通奸의 율을 면치 못할 것인데 이것이 어찌 중매라고 하겠습니까? 또한 근비가 박종손과 내키지 않게 잠시 간통하였으나, 다시 친밀하게 된 자취가 없으니 둘 사이에 무슨 정고情故가 있어 함께 모의하겠습니까? 또 박종손의 협박을 듣고 근비가 ‘경남은 본처가 있어 나를 데려가지 않을 텐데 종손이 무슨 이유로 무리하게 해치려고 하겠는가?’라고 여겼다니 그것은 살인 계획을 거절한 것입니다. 차경남이 죽은 뒤에 주머니와 띠를 불에 태운 것을 가지고 공모했다 하면 크게 옳지 못합니다.”

그러고 나서도 근비에 대한 변호는 봇물처럼 쏟아졌다. 죽여야 한다는 의견은 열에 한둘이었다. 만약 다수결 투표를 한다면 근비는 압도적인 표를 얻어 사형을 면하게 될 판이었다. 그러나 때는 조선시대였다. 사람을 살리고 죽이는 결정권은 오직 임금만이 쥐고 있었다. 신하의 백 마디 말은 왕의 한 마디 말에 무릎을 꿇어야 하는 시대였다. 성종은 마침내 좌우 대신들을 모두 앞으로 나오도록 명하여 말했다.

“근비의 죄는 강상에 관계되는데, 만약 사형을 감하면 일반 백성들 가운데 간부를 사랑하는 자가 모두 그 본남편을 죽이고자 할 것이니, 옳겠는가? 이런 풍습을 자라나게 할 수 없으니, 본남편을 죽이려고 꾀한 율로 처단하라.”

결국 많은 논의에도 불구하고 근비는 남편을 살해하려는 모의에 적극 가담한 자로 최종 처벌을 받게 되었다. 그에 해당하는 벌은 능지처참이었다. 성종은 능지처참 대신 큰 칼로 목을 치는 참형에 처하게 했다. 얼마 후 근비는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왜 성종은 이 사건을 끝까지 강상 범죄로 밀어붙였을까. 성종은 평소 그렇게 앞뒤 없이 단죄하는 군주는 아니었다. 그날 근비를 논하는 자리에서 김계창이 또 하나의 사건을 말했다. 상의원尙衣院 능라장綾羅匠인 윤생이 출납하는 때를 틈타서 실을 몰래 훔쳤고, 내부內府의 재물을 도둑질한 것이니 죽여야 마땅하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성종은 “도로 넣을 때에 숨겨두었다가 넣지 아니한 것은 문을 열고 훔친 것과는 차이가 있다. 또 보통 사람의 마음은 이욕利慾이 항상 앞서므로 재물을 보면 가지고 싶은 것은 괴이할 것이 없다. 결장 100 대에 처하라”라고 명했다.

왜 이러한 합리성을 근비의 본남편 여부를 판단하고, 살해에 가담하지 않은 정황에는 적용하지 못했을까. 여성에 관해선 성종 같은 합리적인 군주도 파쇼의 논리로 대했다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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