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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한국 대중예술 현장에는 그가 있다]① 공연기획자 탁현민

공익을 위한 공연을 만들 때가 제일 행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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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국화, 전인권, 정태춘, 박은옥, 강산에, 윤도현 밴드, 자우림, 한영애, 이은미, 이상은, 김광진, 크라잉넛, 레이지본, 노브레인, 뜨거운 감자, 양희은, 여행스케치, 크래쉬…… 낯익은 가수들이다. 만약 당신이 이 가수들의 공연에 다녀왔다면 탁현민과 당신은 구면이다.

들국화, 전인권, 정태춘, 박은옥, 강산에, 윤도현 밴드, 자우림, 한영애, 이은미, 이상은, 김광진, 크라잉넛, 레이지본, 노브레인, 뜨거운 감자, 양희은, 여행스케치, 크래쉬…… 낯익은 가수들이다. 만약 당신이 이 가수들의 공연에 다녀왔다면 탁현민과 당신은 구면이다. 이 가수들이 선 무대를 기획한 사람이 바로 그이기 때문이다.

대중음악의 최전선에 서있는 그가 자신의 경험을 『탁현민의 재미있는 무대 밖 이야기』에 담았다. 양적으로 팽창하고 있지만 질적으로 끝없이 추락하고 있는 대중음악과 공연산업을 바라보는 그의 시선에는 안타까움과 분노, 애정과 미움이 혼재되어 있다. 책을 통해 그는 ‘빌어먹을’ 대중음악 판에 대한 불평과 푸념을 하려는 것도, 힘들다고 우는 소리를 하려는 것도 아니다. 그곳에 몸담고 있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그곳의 생생한 이야기를 냉정한 비판과 함께 전하려고 하는 것이다.

참여연대에서 시작한 공연기획

『탁현민의 재미있는 무대 밖 이야기』를 출간한 탁현민 씨

탁현민 씨의 이력은 참으로 화려하면서도 엉뚱하다. 고등학교 때까지는 음악과는 전혀 인연이 없이 살았다. 대학교에 입학할 때까지 그는 시인을 꿈꾸는 문학청년이었다. 대학에 다닐 때는 그의 동년배들이 그러했든 학생운동에 열심이었다. 1톤 트럭을 빌려 과일 장사를 했던 적도 있었다. 그런 그가 공연기획자 일을 하게 된 계기가 재미있다.

“첫 직장이 참여 연대였는데, 자선기금을 마련하기 위한 공연을 해보자는 제안을 했습니다. 작은 단체에서는 말 꺼낸 사람이 일을 해야 하잖아요.” 그래서 하게 된 공연이 자우림과 이은미의 자선콘서트. “공연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면서 무대를 만들었어요. 그때 공연 수익이 8000만원이었어요. 대박을 친 거죠. 그래서 내가 이쪽으로 능력이 있구나, 잘해봐야겠다고 생각했어요.(웃음)”

그렇게 시민단체 콘서트를 몇 번 진행하다가, ‘아름다운 재단’의 박원순 변호사에게 ‘공연문화기획센터’ 일을 제의 받는다. 아름다운 재단을 거쳐, 1년 정도 프리랜서로 일하다가, KMTV에서 계약직 프로듀서로 일하며 쇼프로를 만들었다. 그 후, 오마이뉴스에서 기자 생활도 했고, 윤도현 밴드를 만나 그들의 전국 투어 콘서트를 기획했다. 현재 다음기획 컨텐츠 사업팀장으로 일하면서, 음반기획, 마케팅, 공연 기획, 콘서트 연출, 대학 강사, 칼럼니스트 등으로 활동 중이다.

“공연기획자로 일한지 6년 정도 됐어요. 일한 시간에 비해 경력이 빠른 편이죠. 공연에 대해서 누구에게 배운 적이 없어요. 대부분의 공연기획자들은 AD나 조연출로 일하면서 일을 배우지만 저는 누구 밑에서 고개 숙이고 일하는 걸 못해서 현장에서 하나씩 배웠어요.” 특히, 그는 기술 스태프들과 이야기를 하면서 많은 것을 배웠다. “기술 스태프들은 굉장히 일이 많이 하는 편이라 다들 경험이 많죠. 그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아이디어가 제 아이디어보다 나은 적이 더 많아요.”

감동이 있는 따뜻한 공연을 꿈꾼다

특이하게도 그는 다른 사람들이 만든 공연을 많이 보지 않는다. “남이 만든 좋은 공연을 보면 질투가 나서요.(웃음) 저는 시집에서 공연 아이디어에 대해 많이 얻어요. 원래 시를 좋아했고, 문장을 통해 얻어지는 이미지를 좋아하거든요.”

그가 무대에 올린 수많은 공연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좋은 공연은 신영복 교수 정년퇴임 기념콘서트. 간만에 했던 따뜻한 공연이었다. ‘인권 콘서트’도 오랫동안 그의 가슴을 뿌듯하게 했다. “가수들을 들러리로, 인권운동을 하신 교수들을 무대 중앙에 세운 공연이었습니다. 신영복 교수님을 비롯해 여섯 일곱 분의 교수님들이 노래를 부르고, 가수들은 이야기를 했죠.”

공연기획자로 그는 좋은 공연과 잘된 공연을 구분한다. “잘된 공연은 누구나 만들 수 있어요. 스타들만 있으면 되니까. 그 스타들을 보러 온 사람들이 즐겁게 놀다가고, 목표한 공연 수익을 벌면 되죠.”

그가 생각하는 좋은 공연은 어떤 것일까? “좋은 공연은 수익이 없어도 해야 하는 공연입니다. 공연의 의미에 맞춰 기획을 짜고, 기획에 맞는 사람을 섭외하고, 공연장을 빌리고, 기획에 맞는 디테일한 연출 계획을 짜야 하죠. 그런데, 좋은 공연의 치명적인 문제가 일단 예산이 적고, 대부분의 매스컴에서 진지하게 바라봐주지 않아 홍보가 어렵다는 점이죠.”

그는 신중현의 마지막 콘서트를 예로 들었다. “우리 대중음악사에서 신중현은 대단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뮤지션입니다. 그렇지만 대부분의 언론 기자들은 그가 뉴스 가치가 없다고 생각했어요.”

인간은 희망을 잃어버려선 안 된다

그는 공익을 위한 공연을 만들 때가 제일 행복하다고 했다. “그런 공연은 감동이 있어서 좋아요.” 그러면서 매디슨 스퀘어에서 있었던 카트리나 수재민을 위한 자선 공연 이야기를 꺼냈다.

“그때 무대에서 어느 여배우가 이런 말을 했어요. 돈이나 집은 없어져도 괜찮지만 사람은 희망을 잃어서는 절대 안 된다고요. 그런 희망을 이야기한 것으로도 자신은 행복하다고 그렇게 말했습니다. 저는 그렇게 희망을 주는 공연을 만들고 싶어요.”

그러나 현재 한국의 공익 공연들은 재미도 희망도 감동도 없다. “한국에서 공익 공연은 결코 적은 것이 아니지만 구태의연하고, 고통 받는 사람들에 대한 공감이나 배려가 없어요. 수재민을 위한 자선 공연이나 주말 오후에 하는 쇼프로나 다를 것이 없으니까요. 다른 점이 있다면 ARS 전화번호가 나오는 정도? 거기에 나온 가수들이 잘못이라는 건 아니에요. 그 사람들은 좋은 일 한다고 출연료도 받지 않고 나와서 노래를 불렀을 테니까요. 어울리는 연출을 하지 못한 기획자의 책임이죠.”

공연이 끝나고 관객들이 생생해서 나오면 그것은 실패한 공연

그는 관객들이 자신의 공연에 놀러왔으면 좋겠다는, 모든 공연기획자가 가지는 소망을 이야기했다. “공연이 끝나고 관객들이 생생해서 나오면 그것은 실패한 공연입니다. 한 공연을 보면서도 열광하는 사람이 있고, 팔짱을 끼고 있는 사람이 있죠. 그 사람들을 두고 어떻게 공연할 것인가가 저뿐만 아니라 모든 공연기획자들의 영원한 고민이 아닐까요.”

공연이 시작되면 개입의 여지가 없다. 그렇기 때문에 어느 정도의 상실감을 느끼기도 한다. “공연을 만든다는 것은 정말 대단한 것입니다. 아무 것도 없던 무대에 세트, 빛, 가수가 올라가 내가 생각한 그림대로 무대가 만들어지잖아요. 그것은 내가 만든 우주지만, 스스로 자전과 공전을 하기 시작하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어요.”

공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관객이다. “관객은, 특히 한국 관객들은 정말 보석 같은 존재입니다. 눈물나게 고마운 존재입니다.” 일천한 공연문화, 볼만한 공연도 적은 현실에서 좋아하는 가수가 있으면 한 달 전부터 예매해 기다린다. 그것뿐인가? “공연 당일 공연장에 오죠. 한국 공연장이 어디 교통 편한 곳에 있나요? 공연 시간도 애매하기 그지없어 밥도 굶고 공연장에 오는 분들이 많잖아요. 게다가 공연장에서 제대로 대접을 받나요? 줄 제대로 안선다고 안전요원들에게 한 소리 들어가며 공연장 안으로 들어오죠.”

그는 그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공연을 찾고, 신나게 놀다 가는 관객을 볼 때마다 무한한 존경과 감사의 마음이 솟구친다. 그래서 상주 사태가 안타깝다. “제가 하도 방송 욕을 많이 해서 사장님이 어디 인터뷰 나가서 방송 욕 좀 하지 말라고 하시지만요.(웃음) 관객을 쇼프로의 배경으로 여기는 방송의 태도에는 문제가 많습니다. 결국 그런 태도가 이런 큰 사건을 불러온 것이니까요.”

수많은 공연을 올렸지만 무대 뒤에서 관객들의 표정을 바라볼 때가 가장 떨리고 또한 신이 난다. “매번 느끼지만 공연이라는 것은 정말 신기해요. 전혀 모르던 사람들이 같은 노래를 부르고, 함께 박수를 치고, 가수가 손을 들라고 하면 같이 손을 들고, 뛰라면 같이 뛰죠. 마음을 활짝 열고 모르는 사람과 신나게 놀잖아요. 현실에서 생전 처음 보는 사람과 입을 맞추어 노래 부르는 일이 가능하나요?”

개성이 강한 가수들과 일하다 보니 언쟁은 다반사. “많이 싸우죠. 선곡하는 것부터 싸우죠. 빈정거리고 싸우고. 그렇지만 싸워야 할 때는 싸우고, 부딪쳐야 할 때는 부딪쳐야 한다고 생각해요.” 아무래도 가수가 하고 싶은 것과 그가 시키고 싶은 것 사이에는 괴리가 있기 마련이다. “제가 생각하는 상업성은 돈을 벌어야 할 공연-예를 들어 윤도현 밴드의 전국 투어 콘서트 같은 것은 무조건 기를 쓰고 돈을 벌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홍보를 해야 한다면 쇼프로에 나가 뿅 망치도 맞아야 하고요.”

그는 함께 일하는 가수들을 보면 항상 마음이 짠하다고 했다. “연예인들은 필연적으로 내려와야 하는 사람들입니다. 보통 사람들은 한 번 죽지만 연예인들은 인기가 사라지면 살아있으면서 죽음을 맛보기도 하죠. 때로 여론이나 루머로 살해당하기도 하고.”

브라이언 엡스타인과 알버트 그로스먼

같은 업종에 종사하는 사람 중 좋아하는 인물은 브라이언 엡스타인과 알버트 그로스먼. “브라이언 엡스타인은 제5의 비틀즈 멤버라고 불리는 사람입니다. 아티스트에 대한 이해, 디자인 능력이 탁월했죠. 아티스트로부터 최대한 재능을 뽑아내는 법을 알고 있었고, 그것을 상품화하는 능력도 훌륭했죠. 곡을 선곡하고, 머리부터 발끝까지 단장시키고, 그들을 미국 투어에 보내고, 개성이 강한 멤버 간의 갈등을 조율해 비틀즈라는 최고의 밴드를 만들어낸 것이 브라이언 엡스타인이었어요. 브라이언 엡스타인이 없었다면 비틀즈는 리버풀의 지방 밴드로 끝났을 겁니다.”

매니저이자 공연기획자의 모범이라고 할만한 브라이언 엡스타인에 비해 밥 딜런과 재니스 조플린의 매니저였던 알버트 그로스먼은 못된 매니저의 전형이다. “알버트 그로스먼은 아마 매니저가 할 수 있는 나쁜 짓은 다했을 겁니다.(웃음) 그렇지만 놀라운 것은 그와 함께 일한 가수들은 그를 100% 신뢰했다는 점이죠. 같이 일하는 사람을 잡아두는 매력이 있는 사이라고 생각해요. 재니스 조플린이 이 사람과 계약이 끝나던 날 주변 사람들이 다 ‘지옥에서 탈출한 걸 축하한다’라고 말했지만 정작 재니스 조플린은 그와 함께 일할 수 없는 것을 아쉬워했다고 할 정도니까요. 자기 가수에게는 최고의 평가를 받았지만 타인에게는 최악이라는 평가를 받았어요.”

나는 나의 무대에서 평생 내려오지 않을 것

좋은 공연을 만들려고 하는 미래의 공연기획자들에게 그는 이런 말을 남겼다. “좋은 공연을 만들려고 굳이 내 책을 읽을 필요는 없습니다. 시 작법 책이나 소설 작법 책을 읽는다고 시인이나 소설가가 될 수 있는 게 아니잖아요. 나가서 신나게 놀고, 진하게 연애하고, 좋은 공연도 보고, 여행도 여기저기 다니세요. 그것이 좋은 공연을 만드는 데 더 필요한 것입니다.” 그러면서 대학생 때는 자신이 그러했든 ‘돈이 안 되는 공부를 해볼 것을 권했다.

“세상은 잘난 놈보다 별난 놈 위주로 돌아가고 있어요. 공부를 해서 잘하려고 하기 보단 뭔가 재밌는 아이디어가 있으면 직접 만드는 사람이 더 경쟁력 있지 않을까요? 좋은 회사에 취직해서 좋은 공연을 만들겠다, 라고 하는 학생들이 많은데 그때마다 아이디어가 있으면 먼저 만들어 봐라. 뭐하려 회사에 취직하려고 하냐고 많이 말해요”

언젠가 그는 무대에 올라간 적이 있었다. “공연이 끝나고 인사를 하러 올라간 적이 있었어요. 제가 어디 가서 쫄고 그런 사람이 아니거든요. 그런데 무대에 올라간 순간 머리 속에 준비해왔던 멘트가 하나도 생각이 안 났어요. 그때 스태프들을 소개하면서, 수고해줘서 고맙다, 그런 말을 하려고 했었거든요.” 그때 그는 자신의 무대가 어디인지 절감했다고 했다. “그 무대에서 내려오면서 생각했죠. 사람에겐 각자의 무대가 있고, 나는 내 무대에서는 무릎에 힘이 빠지지 않을 것이라고요. 그 무대에서는 평생 내려오지 않으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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