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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정은 “매일 저녁 ‘문학의 쓸모’를 생각한다”

소설집 『아무도 아닌』 발표한 황정은 작가 ‘2016 YES24 소설학교’ 마지막 강연자로 독자들과 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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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의 쓸모’에 대해 질문하는 분들을 보면 괴로워하는 분들이 많아요. ‘내가 문학을 좋아하지만 이것이 이렇게까지 무력할 수가 있느냐’는 당혹감, 혹은 애정이 섞인 분노가 담겨 있는 거죠. 쓰는 사람이라면 자신을 향한 가학적인 질문일 때가 많고요. 사실 문학의 쓸모를 묻는 질문은 제가 매일 저녁 스스로에게 자주 묻는 질문이기도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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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저녁 ‘문학의 쓸모’에 대해 자문해요

 

‘2016 YES24 소설학교’의 마지막 강의가 열렸다. 한 해 동안 ‘소설학교’ 프로젝트를 함께 준비해 온 예스24와 문학동네는 소설가 은희경, 김연수, 정이현에 이어 마지막 강연자로 소설가 황정은을 초대했다. 최근 세 번째 소설집 『아무도 아닌』을 발표한 작가는 2012년 봄부터 2015년 가을까지 발표한 여덟 편의 단편으로 독자들과 재회했다. 『파씨의 입문』 이후 4년여 만에 펴내는 소설집인 만큼 독자들의 반응은 뜨거웠고, 그 반가움은 ‘소설학교’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졌다.

 

지난 29일, 서대문에 위치한 ‘KT&G 상상Univ. 아뜰리에 서울’에서 독자들과 만난 황정은 작가는 소설가의 일상에 대한 이야기로 강연을 시작했다.

 

“최근에 소설 쓰는 일상에 관한 질문을 받은 적이 있어요. 소설 쓸 때 하루 일과가 어떻게 되냐고 물어보셨는데, 그때 했던 대답을 인용해서 말씀을 드리면, 새벽 5시에 일어나서 원고를 시작하고 10시가 되면 운동을 하고 12시가 되면 아침 겸 점심을 먹습니다. 1시에 청소를 하고 1시간 낮잠을 자고 이후 8시까지 다시 원고를 만들려고 노력하고 틈틈이 고양이를 돌봅니다. 8시에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서 저녁을 같이 먹고 저녁까지 놀다가 잠들고 또 다시 새벽 5시에 원고를 쓰죠. 이건 마감이 있을 때의 일상이에요(웃음).”

 

뒤이어 소설가의 하루에 대한 ‘다른 버전’의 이야기가 이어졌다. 마감해야 할 원고가 없을 때, 작가의 일상은 어떤 시간들로 채워질까. 황정은 작가는 ‘아침에 네 발로 기고, 점심에 두 발로 뛰고, 저녁에 세 발로 걷는 것’이 곧 소설가의 하루라고 말했다. 모든 소설가에게 해당되는 것은 아니지만, 어느 소설가의 경우에는 ‘아침에는 백지, 점심에는 피지컬, 저녁은 자괴’라는 말로 일상을 설명할 수 있다는 것.

 

“아침에 일어나면 바로 원고지 앞에 앉는데, 백지와 소설가의 관계는 굉장히 일방적이라고 할 수 있어요. 소설가가 백지를 보면서 뭔가를 써야 한다고 애를 태우고 있을 때 백지는 그냥 백지일 뿐이니까요. 원고 작업을 할 때는 백지와 본인(작가)과의 관계만 남아요. 어쨌든 소설가는 어느 순간에 쓰기 시작해서 그 뒤로도 계속 규칙적으로 지속적으로 쓰는 거죠. 이 아침이 점심의 피지컬에 관한 이야기로 이어지는데요. ‘소설 쓸 때 무엇을 중요하게 여깁니까?’라는 질문을 상당히 많이 받는데, 그럴 때마다 저는 항상 근력이 대단히 중요하다는 대답을 꼭 덧붙여요. 작가가 꾸준히 규칙적으로 지속적으로 뭔가를 해야 소설 쓰기 작업을 감당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저녁이 되면 자괴감에 휩싸이는 이유에 대해 작가는 ‘문학의 쓸모’로 답했다. 소설을 읽고 쓰는 것은 무슨 의미가 있을까. 지금의 사회에서 소설은 무슨 역할을 할까. 사람들은 종종 작가를 향해 물었다.

 

“사실 제 입장에서는 굳이 대답하고 싶지는 않은 질문이에요. 이야기가 쓸모 없다는 생각이 들고 그 쓸모 없음이 실망스럽다면, 본인이 쓸모 있다고 생각하는 무언가를 하면 된다고 생각하는데요. 일단 저는 문학의 쓸모를 묻는 질문 자체를 좋아하지 않아요. 세상에 차고 넘치는 쓸모를 굳이 문학에까지 들이대는 사람들을 지지하는 편도 아닌데요. 어쨌든 책을 읽는다는 것은 미미한 무언가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읽기에는 아주 개별적이고도 긴 시간이 필요하잖아요. 각자의 독서를 경험하는 것이고 그 경험이 동일할 수가 없죠. 그렇게 소설을 읽을 때 우리는 적극적으로 상상을 하잖아요. 이런 과정이 우리가 속한 사회라든가 관계 맺고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해서 생각하는 방식과 태도에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해요.”

 

동시에 작가는 문학의 쓸모를 묻는 질문을 받을 때마다 서글퍼진다는 고백도 덧붙였다.

 

“그런 질문을 하는 분들을 보면 괴로워하는 분들이 많아요. ‘내가 문학을 좋아하지만 이것이 이렇게까지 무력할 수가 있느냐’는 당혹감, 혹은 애정이 섞인 분노가 담겨 있는 거죠. 쓰는 사람이라면 자신을 향한 가학적인 질문일 때가 많고요. 사실 문학의 쓸모를 묻는 질문은 제가 매일 저녁 스스로에게 자주 묻는 질문이기도 해요.”

 

현실에 압도당하는 순간마다 우리는 문학에게 묻는다. ‘너를 사랑하는 것이 나에게 무슨 소용이 있느냐’고. 자연스레 작가에게는 ‘왜 쓰는가’에 대한 질문이 따라 붙는다.

 

“‘나는 소설을 왜 쓰고 있지, 나는 책을 왜 읽고 있지’ 이런 질문으로 말라 죽어갈 때 『모든 것은 빛난다』의 메시지가 상당히 도움이 됐어요. 그 책에서 저자들이 ‘빛나는 것들이 분명 있는데 그것을 우리가 알아보지 못하고 발견하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라는 이야기를 했더라고요. 그 책에서 가장 중요한 대목으로 꼽을 수 있을 것 같아요. 세상이 엉망이라고 말하기는 쉬운 일이죠. 그런데 빛나는 부분을 발견해 내기 위해서는 훨씬 더 많은 노력과 단련이 필요한 거죠. 지금 같은 때일수록 각자가 근력이나 안목을 지속적으로 기르는 것이 대단히 중요하다는 생각을 해요. 제가 조금씩 소설을 읽고 쓰는 이유 중에 하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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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아닌』, 제가 가장 아끼는 책이 됐어요


강연이 끝난 뒤 독자들과의 대화가 이어졌다. 황정은의 소설을 사랑하는 이들 사이에서 솔직 담백한 이야기들이 오고 갔다.

 

소설을 쓰실 때 항상 염두 해두고 쓰시는 주제가 있나요?


(작품마다) 거의 매번 똑같은 주제일 수는 없으므로 평균치로 이야기하기는 어려운 면이 있는데요. 최근 이야기를 하면, 인간 조건에 관심이 많아요. 한 사람의 개인으로서 화자가 처한 사건들 상황들에 관심이 있고요. 소설 쓸 때 화자의 입장이 되어서 생각을 많이 하는 편이에요.

 

『아무도 아닌』에는 작가의 약력이나 작가의 말, 해설을 싣지 않으셨던데,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특별한 의지가 있어서라기보다는 없어도 괜찮으니까 ‘있어야 하나?’라는 생각으로 뺐습니다. 사실은 이번 책의 마지막 페이지에 수록 작품 발표 지면이 실려 있어요. 지난번에 책을 냈을 때만 해도 ‘다음 책에서는 아예 수록 작품 발표 지면을 없애야지’ 하고 마음을 먹고 있었는데, 이번 책까지는 있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작품들이 쓰여진 시기가 있고 어떤 시기의 공백이 있는데, 그 공백을 기록으로 남겨두고 싶었거든요. 그래서 작품 발표 지면은 이번 책까지 실려 있습니다.

 

습작생입니다. 작가님의 습작 기간은 어느 정도였는지 궁금해요.


2005년에 경향신문(신춘문예)에 「마더」라는 단편으로 등단했는데요. 저한테는 마지막 문장까지 써 본 세 번째 소설이었어요. 첫 번째 단편집(『일곱시 삼십이분 코끼리열차』)에 실려 있는 작품 중에 「소년」이라는 단편이 있는데, 그게 제가 썼던 첫 번째 소설이에요. 습작 기간은 그렇게 길지는 않은 것 같아요. 1년 반 정도 합평 방식의 수업에 참여하면서, 직장생활을 하면서 썼었어요.

 

『아무도 아닌』에 실린 작품 중에서 「웃는 남자」는 다른 소설과 결이 다르다고 생각했어요. 이 작품의 결말을 쓰시면서 많이 괴로워하셨을 것 같은데, 어떠셨나요?


『아무도 아닌』에 실린 단편이 8개인데요. 마지막에 실린 3개의 단편이 2014년 4월 이후에 쓰인 소설들이에요. 그 중에 「명실」하고 「누가」를 쓸 때까지만 해도, 쓰고 싶은 것도 많고 써야 할 것도 많아서 창작욕이 불타올라 있는 상태였어요. 2014년 4월 16일 이후에, 많은 이들과 마찬가지로, 한동안 작업을 못했어요. 그러다가 2014년 가을에 「웃는 남자」를 쓰면서 다시 소설을 쓰기 시작했는데요. 4월 16일 이후로 사건이 진행되는 걸 보면서 ‘뭔가가 죽어가고 있구나’라는 게 확실하게 느껴졌어요. 그걸 어떻게든 해야 하는데 제가 할 수 있는 게 소설 쓰기뿐이어서 ‘내가 뭔가를 해야 한다’가 ‘뭔가를 써야만 한다’로 바뀌었고요. 그렇게 해서 나온 소설이 「웃는 남자」라는 단편이에요. 이 작품의 화자들을 많이 좋아했기 때문에 결말을 그렇게 쓰는 게 쉽지는 않았어요. 제목이 「웃는 남자」이지만 사실은 웃지 않아요. 그런데 화자가 방에 틀어박혔다가 그 방에서 나올 때는 웃으면서 나올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게 어떤 웃음일지는 결정을 못한 채로 단편을 발표했고, 그래서 이번 계절에 그 뒷내용을 써서 발표를 했어요.

 

폭력에 대한 3부작을 완성하고 싶다고 말씀하신 걸 봤어요. 앞으로 어떻게 진행이 될지 궁금합니다.


폭력 3부작은, 일단 제가 말한 게 있으므로, 마음의 빚으로 계속 가지고 있는 이야기들인데요. 지금은 제가 현실에서 접하는 폭력들이 너무나 거대해서, 뭔가를 서술하기가 조금 불가능한 상황이에요. 과거에 제가 폭력에 관해서 세 개의 이야기를 쓰겠다고 장담했던 것 자체가 부끄럽게 느껴질 정도로 현실이 너무 압도적이라서요. 이 시기가 지나고 조금 더 폭력에 대해 다양하게 생각할 수 있게 될 때, 그때 쓸 생각을 하고 있어요. 

 

이전에 읽었던 작품들을 단편집으로 다시 만나니까 감회가 새로웠습니다. 단편을 모아서 책을 내실 때 작가님은 어떤 기분이 드세요?


이 책에 실린 단편들이 모인 시간은 꽤 되는데요. 제가 계속 출판사에 원고를 안 드리고 있었어요. 저도 여러 가지 고민이 많아서 책을 낼만한 상태가 아닌 것 같았거든요. 올해 가을쯤에서야 다시 원고를 보고 출판사에 보내서 이렇게 책으로 묶였는데, 그때까지만 해도 단편들을 묶어서 내는 책에 대한 회의가 조금 있었어요. 그러다가 9월쯤에 독자와의 대화에 참석했는데, 한 독자 분이 제가 발표했던 단편들 이야기를 하시면서 ‘책 언제 나와요?’ 하시는 거예요. 그때 빨리 원고를 출판사에 보내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책을) 내는 과정에서 많이 망설이고 조금 회의하고 무력감에 시달리기도 했지만, 내고 나서는 제가 가장 아끼는 책이 됐어요. 여덟 개의 단편들 모두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상당히 애착을 가지고 있고요. 각각의 단편들을 쓴 상황, 각각의 화자들에 대해서 할 수 있는 이야기가 굉장히 많아요. 이 책을 읽어주시는 분들에게 정말 고맙다는 생각을 하면서 낸 책이고, 지금까지 낸 책 중에서 그 생각을 이렇게 강하게 한 적이 없는 것 같습니다. 저도 좋아하는 책이에요.

 


 

 

아무도 아닌황정은 저 | 문학동네
황정은의 세번째 소설집 『아무도 아닌』이 출간되었다. 『파씨의 입문』(창비, 2012) 이후 4년여 만에 펴내는 소설집으로, 2012년 봄부터 2015년 가을까지 발표한 여덟 편의 단편소설을 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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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ㆍ사진 | 임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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