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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정현의 영화적인 순간] 끔찍하게 행복한 라짜로, 아니 너와 나

영화 <행복한 라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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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짜로의 모습에서 착취의 착취를 거듭하다 결국 가장 약한 사람들끼리 서로를 치고받아 죽게 만드는 이 세계의 질서를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다. (2022.09.08)


초등학교를 다닐 때 돋보기로 개미를 관찰하는 수업을 들은 적이 있다. 나는 선생님이 시키는 대로 개미 앞에 빵가루 하나를 흘렸고, 곧 몰려온 개미들이 그것을 이고 지고 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나에게는 별것 아닌 빵가루가 이 개미에겐 이토록 크고, 또 중요하게 지고 가야 하는 것이라니. 아직 어린 나이라 그때의 충격을 이런 구체적인 문장으로 표현하진 못했지만 비슷한 느낌을 받았던 것 같다. 또, '이제 언니가 개미가 무섭다며 죽여달라고 해도 웬만하면 죽이지 말고 밖으로 보내줘야겠다'는 생각도 했다. 

조금 황당하게도, 내가 과자를 많이 흘리는 게 개미한테는 이익 아닌가 하는 생각은 길게 이어지지 못했다. 실험이 끝나자 선생님은 우리에게 일어나라고 말했고 그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옆에 서 있던 남자아이가 개미를 손으로 뭉개 죽였다. 뭐 그 아이뿐은 아니었다. 내가 "어?"라는 소리를 내자 우리를 돌아본 선생님은 내게 쉿 하는 듯 제스처를 지어 보이며 곧 자리로 돌아갔으니까. 그런데 왜였을까. 나는 이 영화 시작부터 끝까지 줄곧 그날이 떠올랐다. 개미와, 그 개미를 보던 사람들.

이 영화는 '인비올라타'라는 작은 마을의 일상에서부터 시작한다. 사랑을 고백하는 이와 그들을 둘러싼 작은 축제. 옷차림은 남루하나 그들의 사랑은 보는 이들을 웃음 짓게 만든다. 언뜻 1970년대의 농촌 풍경이 그랬을까? 그런데 귀엽고 아름다운 풍경이라는 생각은 그다지 오래 지속되지 못한다. 도시로 떠나겠다는 커플의 말에 얼굴이 굳는 사람들. 이 불안한 정적의 실체는 곧 드러난다. 그것은 중개업자 니콜라와 마을 사람들을 담배 농장의 노예로 부리면서 배를 채운 후작 부인의 등장으로부터다. 그러니까 이 모든 것은 간단하면서도 꽤나 끔찍하다. 이 마을 사람들은 어린아이부터 노인까지 평생 후작 부인이라는 담배 제조업자에게 무상으로 노동력을 착취당한 것이다. 그런데 심지어 니콜라가 마을 사람들을 위하는 척 만들어가는 장부에 기입되는 것은 오로지 빚이다. 

그들의 논리는 이러하다. 원래 이 영토와 이곳의 모든 동식물은 후작 부인의 소유인데 그녀가 자비를 베풀어 마을 사람들을 먹고살게 해준다는 것. 이런 논리 안에서 늑대가 잡아간 닭마저도 니콜라는 마을 사람들에게 그 가치를 물어내라고 뒤집어씌운다. 지독한 착취의 현장. 작은 돋보기로 개미를 들여다보았을 때, 개미는 그저 근면하게 일하는 것이었지만 돋보기의 범위를 확대했을 때 눈에 들어왔던 건 그들이 먹이를 옮기는 곳이었다. 그들은 일만 하고 먹이를 취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것을 모두 들여다 보고 있던 우리 인간들, 언제든 개미 따위 죽일 수 있는. 그리고 그런 우리의 실험을 모두 지시했던 또 다른 인간 어른. 지독한 착취의 굴레. 어쨌거나 영화가 만약 여기까지였다면 우리는 이국의 오지에 갇힌 농장 노예의 실상에 경악하는 르포 프로그램을 본 것이었겠지만, 당연하게도 영화는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라짜로가 등장하기 때문이다.

'라짜로'. 아마 성경을 읽은 사람들은 이 낯익은 이름을 기억할 것이다. 예수가 부활시킨 성인 '나사로'. 성경에서는 신이 라짜로를 부활시키지만 영화에서 라짜로는 늑대가 부활시킨다. 자연의 형상으로 온 신일지, 자연 그 자체일지 모르지만(나는 후자라고 말하고 싶다) 자연 치유된 라짜로가 깨어났을 때 이미 마을은 텅 비어 있었다. 자신의 목적 때문이긴 했지만 라짜로를 유일하게 인간답게 대해 줬던 후작 부인의 아들 탄크레디가 벌인 소동으로 마을엔 경찰이 들어왔고 이를 계기로 마을 사람들은 모두 도시로 나가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비로소 이름을 지니게 되지만 너무 오랜 기간 후작 부인에게 착취당한 그들은 맨발로 걸을 수 있는 개천마저도 빠져 죽는다고 생각하며 두려워한다. 그런 그들이 도시로 나가는 건 기쁨일까. 그런데 이런 걸 따지는 것 자체가 모순이다. 이것은 도시의 삶이냐 전원의 삶이냐 하는 호불호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들에겐 그런 선택지 자체가 없었고, 그것을 빼앗은 것은 후작 부인 일당이기 때문이다. 물론 외면적으로 도시에 나간 마을 사람들의 삶은 남루하기 짝이 없다. 도둑질과 작은 사기로 연명하고 있다. 하지만 적어도 그들이 자립했고 공동체를 이루고 있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있다.



그리고 그들 앞에 몇 년의 시간을 두고 자연 그대로의 모습인 라짜로가 등장한다. 모두 라짜로를 알아보지 못할 때 이런 라짜로의 등장에 무릎을 꿇으며 환대하는 이가 있으니 바로 '안토니아'다. 그녀는 인비올라타에 살았을 적 후작 부인의 수발을 든 경험이 있는 사람이다. "이렇게 많은 숟가락과 포크가 있는데 후작 부인은 우리를 초대하지 않는다"라고 말했던 안토니아. 그들은 라짜로에게 음식과(과자지만) 옷을 제공하고 (훔친 거지만) 잠자리를 준다. 그리고 라짜로는 그들이 머무는 숙소 근처에서 치커리 같은 식재료를 발견하고 알려준다. 재미있는 사실은 이렇게 아무것도 없는 맨몸의 라짜로조차 그들에게 자연의 소중함과 가치를 알려주는데, 그들을 착취로부터 구해 줬다는 국가는 딱히 해준 것이 없어 보인다는 점이다. 자유를 준다며 인비올라타에서 도시로 이주시켰지만,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아본 적이 없는 그들에게 적절한 보상도 없는 도시에서의 삶은 실제 자유라고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처참한 가난의 굴레는 일인 독재를 연상케 하는 사회인 인비올라타에서뿐 아니라 자본주의 사회인 도시에서도 지속된다. 

그러므로 그들이 비록 사소하지만 물건값을 올려 받는 사기를 쳤을지언정 그것이 결코 나쁘게만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살기 위한 노력으로까지 보이는데, 이것은 후작 부인의 아들 탄크레디와 마을 사람들을 노예처럼 부렸던 니콜라의 딸의 행태와 대비되며 더욱 선명해진다. 탄크레디는 애당초 자신의 어머니를 경멸했음에도 불구하고, 과거의 영광을 잊지 못하고 여전히 한탕주의에 빠져 있다. 그는 마을 사람들 앞에 나타나 재력가인 척하며 집으로 초대한다. 처음으로 후작 부인 일가에 초대를 받은 마을 사람들은 아껴놓은 돈으로 최고급 디저트까지 사서 찾아가지만 탄크레디는 기억조차 하지 못하고, 니콜라의 딸은 디저트만이라도 줄 수 없느냐며 사정한다. 자본주의 사회의 진정한 계급이란 이런 걸까. 마을 사람들은 과거엔 비록 후작 부인의 노예로 살았으나 지금은 오히려 그 반대다. 왜냐면 그들에겐 최고급 디저트를 선물할 수 있는 돈이 있기 때문이다. 

자, 그런데 여기서 문제가 다시 생긴다. 남의 말을 의심할 줄 모르는 라짜로는 자신에게 인간적으로 대해 주었던 탄크레디의 변화가 못내 마음이 아프고, 그런 차에 니콜라의 딸이 했던 말이 떠오른다. 자신들을 그렇게 만든 건 '은행'이라는 말. 사실 우리에게 그 말은 '이게 다 자본주의 탓이 다' 정도로 들리겠지만, 그 사회에 스며들지 않은 라짜로에게 그 말은 실질적으로 다가온다. 결국 은행에 찾아가 탄크레디의 돈을 돌려달라고 말하는 라짜로. 경기가 좋지 않아 잔뜩 민감해 있던 사람들은 그가 노력도 없이 돈을 가지려는 도둑이라고 생각하고, 경찰의 제지에도 불구하고 그를 때려죽이고 만다. 결국, 자연이 살려놓은 라짜로는 국가가 아닌 일반 국민들에게 죽임을 당한 것이다. 그리고... 정말 그럴까. 국가도 제도도 아닌 국민들이 그를 죽였을까.

하지만 그가 죽은 곳은 자본이 집약되어 있는 도심 한가운데 국립 은행이었다. 과연 국민들이 그를 죽였을까. 아니면, 그게 아니라면 국가가 만든 자본이 그를 죽였을까. 그것은 생각하기 나름이겠지만 라짜로의 모습에서 착취의 착취를 거듭하다 결국 가장 약한 사람들끼리 서로를 치고받아 죽게 만드는 이 세계의 질서를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영화의 초반, 탄크레디가 어머니인 후작 부인에게 라짜로를 가리키며 "쟤는 누군가를 착취하지 않을 것 같아"라고 말했을 때 후작 부인이 했던 대답이 떠오른다. "아니, 그건 불가능해"

그렇다. 그건 살아선 불가능하다. 이런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아 있는 우리 누구도 타인을 완벽하게 착취하지 않을 수는 없을 것이다. 그래서 라짜로는 죽었고, 그래서 행복할 수밖에 없다. 끔찍하게 행복한 라짜로 그리고 어쩌면 너와 나, 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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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한정현(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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