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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정현의 영화적인 순간] 이제 나를 알아보겠어요?

영화 <피닉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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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그 복원된 역사 앞에서 자주 물어야 한다. 이제, 나를 알아보겠냐고, 가해자가 아무렇지 않게 없애버리려 했던 피해자의 기억을 알아보겠냐고 말이다.(2022.03.04)


‘현재를 걸으며 과거를 회상한다.’

독일에 가면 길바닥에 이런 글귀들이 새겨져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전쟁범죄를 저지른 가해국으로서 당연한 일이긴 하지만, 과거를 회상하지도 반성하지도 않는 일본의 극우들 때문인지 독일의 저런 반성적 자세는 가끔 인상적으로 느껴지곤 한다. 물론 일부 독일의 역사수정주의자들은 여전히 홀로코스트의 역사를 변형하고 망각하고자 노력하지만 말이다.

 그러고 보면 왜 그들은 그런 ‘노력’까지 하면서 굳이 기억을 지우려고 하는 걸까. 이것은 최근 나의 화두였다. 나는 얼마 전 친일 작가의 작품을 재해석했다. 유쾌한 작업이 아니었으나 이를 통해 새로운 사유 지점이 생긴 것도 사실이었다. 가령 이런 거였다. 폭력의 정당화에 가담하게 되는 것. 내가 대학원을 다닐 때, 나는 그녀의 친일행각을 문학적 의의를 이유로 두둔하는 것을 더 많이 듣고 보았다. 그래서 처음엔 나 또한 깊게 생각하지 않았던 것도 있다. 그러나 자료조사를 거듭할수록 내가 여태 믿고 있던 것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물론, 그녀의 작품은 단지 비난‘만’이 아닌 깊이 있는 분석을 바탕으로 한 비판이 더욱더 이뤄져야 한다. 이것이 작가 본인에게는 사실상 바닥을 쳤던 조선 여성들의 인권을 드높이는 일과 맞닿아 있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일본 여성에게는 모성애, 조선 여성에게는 독립과 자립을 요구하는 것은 일본의 여성 정책 중 하나였다. 그리하여 조선의 딸과 아들을 일본 제국의 군대에 기꺼이 보내는 어머니상을 만들고자 했던 것이 일본 제국의 교묘한 정책이었다. 그러나, 아니 그렇다고 해도. 그 어떤 이유가 있을지언정 그녀가 저지른 친일 행각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문맹률이 97%에 달하던 당시의 조선에서 작가들은 자유롭게 말과 글을 쓸 수 있는 3%의 사람들이었다. 그러니 오히려 더욱 드러내고 인정해야 한다. 그런데, 내내 이런 생각을 지울 수 없던 내게, ‘문학적’인 이유든 다른 이유에서든 그녀의 친일 행각을 두둔하는 것을 읽고 보고 듣는 일은 내게는 꽤 충격적인 일로 남겨졌다.

 최근 이런 일을 겪으면서 나는 한 영화를 떠올렸다. 크리스티안 펫졸드 감독의 <피닉스>. 제2차 세계대전 직후 황폐한 독일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 이 영화는 얼굴을 붕대로 모조리 감고 자신을 숨기려 하는 여성 넬리의 등장으로 시작된다. 넬리는 주목받는 가수이자 부유한 유대인 집안의 일원이었다. 그나 나치의 학살이 시작되며 누군가의 밀고로 수용소에 끌려갔다 얼굴이 망가진 채 돌아온다. 그런 넬리에게 목숨을 구해서 다행이라고, 감히 누가 그런 말을 할 수 있을까. 넬리는 재건 성형을 하지만 의사로부터 이전의 모습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말을 듣는다. 하지만 넬리에게 삶이란 사실 그 ‘이전’ 뿐이다. 수용소에서의 시간을 삶이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은 없을 테니 말이다. 그래서인지 넬리는 ‘너를 밀고한 사람은 네 남편 조니’이라고 말하는 유대인 친구 레네의 만류에도 한사코 남편을 찾아 나선다. 넬리는 조니를 시내의 바에서 쉽게 찾아내지만 그는 넬리를 전혀 알아보지 못한다. 아무리 얼굴이 바뀌었다고 한들, 다른 친구들은 알아보는 넬리를 말이다. 게다가 심지어 넬리에게 조니는, 죽은 아내의 유산을 받아야 하니 넬리의 행세를 하라는 제안까지 한다. 여기에 넬리는 그런 남편의 제안을 그저 수용하며 자신의 행세를 하기 시작한다. 넬리의 넬리 행세. 그런 넬리의 모습을 보며, 친구 레네는 자신은 이제 독일어 노래는 듣지도 못하겠다며, 이제 너의 돈은 이스라엘을 위해 쓰여야 한다고 간곡히 부탁한다. 그리고 자신의 그런 간곡함에도 조니를 찾아가는 걸 멈추지 않는 넬리를 보며 레네는 ‘미래는 없다’고 자살을 택하고야 만다. 그러나 그런 레네의 죽음 앞에서도 넬리는 조니를 찾아가 자신의 행세를 성실히 해나간다.

 대체 넬리는 왜 이런 선택을 한 것일까. 

그리고 그렇다면 조니는 어떻게 이토록 자신의 아내를 못 알아볼 수 있을까. 얼굴이야 그렇다치더라도 그녀의 걸음걸이, 목소리, 글씨체까지 전부 그대로인데 말이다. 앞선 이야기와의 연결을 위해 좀더 이른 결말을 말해보자면 이러하다. 넬리의 넬리 행세는 결국 영화의 마지막까지 멈추지 않는다. 영화의 말미, 조니는 넬리에게 기어이 죽은 아내의 옷을 입혀 친구들 앞에 서게 한다. 넬리는 친구들 앞에서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는데 그런 넬리를 보고 감격하는 친구들의 모습과 달리 조니의 눈동자는 어느 순간 크게 진동하며 흔들린다. 죽은 아내의 옷을 입은 넬리의 손목에 새겨진 숫자. 그것은 ‘유대인 넬리’를 증명하기 위해 독일인이 그녀의 몸에 새겨넣은 ‘낙인’이었다. 그러니까 그것은 독일인 남편 조니가 고발한 유대인 아내 넬리의 수용소 번호였다.

 


조니에게 그런 넬리는 절대 이 세상에 존재하면 안 되는 사람이었다. 독일인인 조니 자신이 고발한 유대인 넬리는 이제 ‘없어야 하는 존재’이다. 조니는 자신의 손으로 아내를 고발했다. 이유는 하나였다. 그녀가 유대인이기 때문에, 자신은 살아야 하기 때문에. 그렇기에 조니에게 넬 리가 존재할 수 있는 시간은, 오로지 자신이 넬리를 고발한 이전의 ‘시간’에서만 가능했다. 홀로코스트 이전, 유대인이라는 신분이 아무 것도 아니었던 때만 가능한 것이다. 반면 넬리는 어떠한가. 영화의 중반까지, 나는 넬리가 사랑 때문에 남편을 찾아 헤맨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영화가 진행되면서, 특히 폐허가 된 집터에서 위태롭게 서 있는 넬리를 보며 나는 그녀가 조니를 찾은 것엔 다른 이유가 있다고 생각했다. 넬리는 폐허가 된 이전의 자신을 찾고 싶은 것이다. 재건하지 못한 얼굴, 잃어버린 정체성, 복원될 수 없는 과거의 삶. 그러나 주지했듯 수용소의 삶을 과연 삶이라 할 수 있을까. 그녀는 단지 자신의 삶을 찾고 싶은 것이다. 그렇기에 넬리에게 조니는 자신의 진정한 삶을 복원해주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필요한 존재였다. 그러므로 자신을 부정하는 조니를 마주하면 마주할수록 넬리는 반드시 그가 자신을 응시하도록 해야 한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니 비록 그 방법에서 차이가 있을지언정, 자살을 선택한 레네와 넬리는 어쩌면 가해자 독일에게 같은 것을 요구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복구할 수 없다면 복원해줄 것, 그것이 역사적 가해자들이 반드시 해야 할 일이기도 하다. 물론 마지막까지 조니는 그 바람을 저버린다. 하지만 왜일까. 그가 저버린 그 바람 속에서 넬리는 독일인이 찍어버린 영원히 지워지지 않는 낙인을 육체에 새기고 완벽하게 남편 앞에 복원된다. 마치 불사조 피닉스처럼 말이다. 

 <피닉스>는 사실 애당초 내가 쓰려던 <트랜짓>과 커다란 흐름에서 비슷한 메시지를 내포하고 있다. 과거와 현재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것, 끝나지 않는 독일 역사의 상흔이 현재 유럽의 여러 폭력과 얽혀 있다는 것 등이 그러하다. <트랜짓>이 유럽과 난민이라는 좀더 포괄적인 틀에서 그것을 다루었다면 <피닉스>는 좀더 창끝을 갈아 그 주제의식을 예각화 시킨 모양새다. 그 창끝은 독일 역사수정주의자들을 겨냥하고 있다. 여전히 나치를 신봉하며 홀로코스트를 부인하는 그들에게 감독은 힘주어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인정하고 기억하고 사과하지 않는 이상 과거 독일이 저지른 폭력은 불사조처럼 영원히 되살아날 것이라고 말이다. 

 이는 현재 한국의 상황에서도 크게 다른 의미로 나타나지 않는다. 나는 마치 ‘넬리’의 심정으로 우리가 일본에 대해 좀더 공부하고 연구하고 분석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식민 지배 이후 많은 것들이 연결되었고 영향을 끼쳐왔으니 더 잘 알아볼 필요가 있다. 그러나 ‘지일’을 ‘친일’로 환원할 필요는 없다. 일본은 제2차 세계대전 최대 전범국가이면서도 제대로 된 사과를 단 한 번도 한 적이 한 번도 없다. 오히려 자신들의 전쟁범죄에 대해, 서구로부터 아시아를 보호하기 위함이라는 주장을 함으로써 ‘자가당착’을 반복하고 있다. 그들이 해야 할 일은 오로지 복원하고, 기억하고 그 복원된 역사 앞에서 끝없이 사과하고 용서를 구하는 일뿐임에도 말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 복원된 역사 앞에서 자주 물어야 한다. 이제, 나를 알아보겠냐고, 가해자가 아무렇지 않게 없애버리려 했던 피해자의 기억을 알아보겠냐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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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한정현(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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