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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스트의 하루] 사랑할 수 없는, 나의 일 - 한지형

에세이스트의 하루 31편 - 한지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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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가 밝았으나, 부서 이동 없이 여전히 이 일을 한다. 올해도 열심히, 그러나 차마 사랑할 수 없는 마음으로. (2022.01.12)


예스24가 진행하는 글쓰기 공모전 ‘나도, 에세이스트’ 대상 수상자들이 에세이를 연재합니다. 에세이스트의 일상에서 발견한 빛나는 문장을 따라가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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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언컨대 나의 일을 사랑하던 시절이 있었다.

나는 국민연금공단 입사 8년 차 대리다. 신의 직장이라고 부르는 사람들도 있건만, 우리는 여느 직장인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호기롭게 퇴사를 예고하며 매주 로또를 사고 다음주에 출근하기를 반복하는 직원이 다수 있다. 상사, 부하, 동료 사이에서 버거운 인간관계를 이어가는 직원이 있다. ‘몇십 년 지나면 연금 고갈되지 않냐, 연금 보험료 내기 싫다, 연금 안 받을 테니 내 돈 돌려달라’ 외치는 민원인들 속에서 지치고, 급여나 복리후생 수준에 불만인 사람들도 있다.

나도 그런 부류냐고 묻는다면, 입사 과정이 꽤 험난하여, 어지간해선 직장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고 해두겠다. 대학 졸업 후 첫 직장은 대기업이었다. 적성과 능력이 직무를 따라가질 못했고, 매일 야근에 한 달에 한두 번의 밤샘을 요구하는 업무량과 거친 영업직군의 환경에 적응하지 못했다. 삼 개월 만에 첫 직장을 때려치웠는데, 재취업하기까지는 삼 년이 걸렸다. 지금 직장의 첫 번째 지원에선 최종 면접까지 갔다가 미끄러졌고, 그다음 해 공채에 겨우 합격했다. 그런 곡절을 거쳐온 터라, 입사 8년 차의 지금 월급이 대학 졸업 후 첫 직장이던 대기업 신입사원 연수 시절 월급도 여전히 못 따라잡지만, 1%의 흔들림도 없이 나의 일을 사랑했다고 자부한다.

가입자 업무를 할 땐 강제 가입된 사람들의 불만 전화를 매일 받았다. 소득 신고 자료가 있어서 가입해야 한다, 사업자등록이 있으면 의무가입자라고 설명하다가 불친절 직원으로 신고도 당했다. 연금을 주는 업무를 하면 욕먹을 일이 없을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분할연금 업무를 했는데, 분할연금이란 게 이혼 한 전 배우자에게 자신의 연금 반을 떼주는 것이다. 숱한 이혼 남녀들이 나를 찾아왔다. 결혼과 파경에 이르는 스토리를 분할연금 지급 건수만큼 들었다. 누가 바람을 피운 유책배우자인지, 이혼은 합의였는지 소송이었는지, 재산분할은 어땠는지, 만삭의 몸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경청하는 웃지 못할 상황에 놓이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굳건히 나의 일을 사랑했다. 어쨌든 연금은 사회에 꼭 필요한 제도이며, 내가 거기 조금이나마 이바지한다는 자부심이 있었다. 보람도 누리면서 급여도 받는, 그 속에서 행복을 얻는 몇 안 되는 직장인이었다고 자부한다. 기독교인인 나의 기도의 시작은 항상 ‘우리 직장과 이 제도를 돌봐주소서.’였다. 이렇게 자꾸자꾸 일을 사랑했음을 강조하는 건, 지금은 그렇다고 말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작년부터 장애인 심사 업무를 맡게 됐다. 국민연금에서 웬 장애인 업무냐 하겠지만. 사실이 그렇다. 우리가 장애 결정 업무를 국가에서 위탁받아서 수행한다.

아, 세상엔 아픈 사람이 너무나 많았다. 그냥 아픈 사람 말고, 무려 장애인이라고 불리는, 심각하게 아픈 사람이 정말 끝도 없이 많았다. 작년 한 해는 우리 관할구(區)에서만 이천칠백 건이 넘는 장애 심사를 접수했다. 올해도 그만큼, 혹은 그 이상을 접수할 것으로 본다. 

장애인 판정을 주면서도 기뻐할 수 없고, 장애인 판정을 주지 못하면서는 더 기뻐할 수 없는 상황에 매일 놓였다. 진료기록지를 천장 넘게 제출한 사람이 장애인 판정을 받게 되었고, 의료비나 복지수당 관련한 혜택을 볼 수 있을 거라고 설명하며, “장애인이 돼서 정말 잘 됐어요.”라고 말하던 순간들. 그리고 “맞아요. 정말 감사해요.”라고 대답하는 사람 사이에 정적이 흐르던 순간들. 일생을 겪어도 사랑할 수가 없을 것이다.

11년생 지적장애 아동의 학교폭력위원회 회의록을 본다. “지적장애가 있다는 이유로, 방과 후 수시로 불러내어 복부를 가격함.”이라는 건조한 글자를 보며. 그 글자들이 일렁여서 똑바로 볼 수가 없다. 19년생 뇌병변 장애. 그 아이의 진단서와 초진 기록을 유심히 들여다본다. 내 아이와 동갑인 이 아기의 증상은 무엇이었을까. 그 아픔의 징후들이 내 아이에게는 없나, 살펴보다가, 안심하다가, 나 자신에게 깊이 실망한다.

둘째를 내게 권하는 사람들은 알까. 이 업무를 하면서 딸의 동생 계획을 차츰차츰 지워왔다는 것을. 나에게 한 생명이 건강하게 태어나고 평범하게 자라는 일상이란 건 수많은 폭죽이 일제히 터지는 축제의 피날레처럼 귀하고 요란하다는 사실을. 하루하루가 진료기록지로 채워지는 삶이 널렸는데. 왜 당신이 그리는 나의 둘째는 그런 삶을 비껴갈 거라고 짐작할까. 왜. 도대체, 왜.

새해가 밝았으나, 부서 이동 없이 여전히 이 일을 한다. 올해도 열심히, 그러나 차마 사랑할 수 없는 마음으로. 내 가족 중엔 장애 심사받을 사람이 없음을 안도하는 이기적인 마음으로. 장애인과 그 가족들의 마음을 헤아리고 싶지만, 그들의 입장이 되어 완전히 이해하는 날은 영원히 오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한지형


끼룩끼룩 지금은 서울에 사는 부산갈매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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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한지형(나도, 에세이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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