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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혼을 부르짖는 90년대생 딸과 동거하다

『가출생활자와 독립불능자의 동거 라이프』 권혁란 저자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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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다른 사람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두 그루 나무처럼 적당히 떨어져 있으나 그 사이로 바람이 불어 가지를 흩날리거나 낙엽을 떨구어 서로 발등을 덮어주면서 서로의 자람을 보고 느끼며 같이 살아요. (2021.11.29)

권혁란 저자

엄마와 딸의 관계는 영원한 화두다. 딸을 위해 무한희생하는 어머니나 딸에게 자신의 묵혀둔 감정을 쏟아내 상처받은 딸의 이야기도 주위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다. 『가출생활자와 독립불능자의 동거 라이프』는 여타 모녀의 관계에서 한 발 더 나가 ‘따로 또 같이’ 행복을 찾는 모녀의 연대기가 담겨 있다. 결혼, 출산, 육아, 시댁, 제사를 온몸으로 겪어내며 내추럴 본 페미니스트가 된 엄마와 여성혐오, 취업전쟁에 부대끼며 비혼주의자를 자처하는 1990년대생 두 딸의 이야기. 여기에는 무언가 되고 싶었지만 되지 못한, 무언가가 되기 위해 노력하는 이들이 ‘나답게 사는 법’을 찾아가는 여정이 따뜻하게 그려진다. 

딸을 키웠으니 나도 커야겠다고 10년의 세월 동안 ‘가출생활자’로 살아온 엄마와 훌륭한 단독자로 자라났으나 가혹한 이 사회에서 ‘독립불(가)능자’가 될 수밖에 없는 1990년대생 딸들의 이야기를 직접 들어보자.



전작 『엄마의 죽음은 처음이니까』에서는 구순 엄마와의 마지막 2년 동안의 이별 과정을 그리며 존엄한 죽음의 방식에 관해 이야기하셨습니다. 이번 신작은 1990년대생 두 딸의 이야기를 담아내셨는데,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으셨는지요?

“자신의 인생은 스스로의 의지로 결정지어야 한다. 그것이 죽음일지라도.” 이 문장의 참과 거짓을, 선택과 떠밀림의 결과를 생각하면서, 누구에게나 닥쳐올 인생의 마지막 작별에 대해 쓴 것이 『엄마의 죽음은 처음이니까』란 책이었어요. 그렇게 힘겹고 어렵게 엄마가 돌아가신 후에야 엄마인 나 자신의 나이와 살아온 방식을 돌아보게 되었어요. 딸이면서 엄마로 좌충우돌 살아오는 사이에 어느새 딸들이 자라나 엄마 잃은 내 옆에 마치 ‘보호자’처럼 우뚝 서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고요. 면구쩍고 민망하게 어른이 되어버린 그 얼굴을 바라보게 되었고요. 나를 엄마로 둔 딸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엄마로서 딸들을 어떻게 키우고 자라게 했던 걸까, 현재 딸들의 하루하루의 무늬를 짚어보게 되었어요. 

지금은 숫자마저 역사가 되어버린 1930년대생 여자인 내 엄마의 삶과 죽음, 1960년대생 여자인 나의 살아온 날들과 마침내 맞이할 죽음, 1990년대생 여자로 태어나 지금 한창 삶의 한 중앙을 사는 딸들의 선택과 갈 길을 들여다보게 된 셈이죠.



엄마의 죽음을 겪고 나서 두 딸의 엄마인 자신의 현재를 보게 되고 뒤이어 젊은 딸들의 삶은 어떤가 살펴보게 되었다는 얘긴데요. 엄마의 딸, 딸의 엄마, 딸로 이어지는 모녀관계의 현재 무늬는 어떤가요?

2021년 현재 사람들은 말하잖아요. 여자로서 살기가 점점 좋아져서 불편한 게 없지 않나, 세상이 달라져 여자로 태어나 일하고 돈 벌고 사랑하고 살아가는 게 옛날 여자들에 비하면 천국이지 않나? 천양지차 달라져서 더 이상 차별이나 무시를 당할 일이 없다는데, 여자라서 못 할 일은 단 한 가지도 없다고들 말하는데, 과연 딸들의 삶이 선택의 폭이 넓디넓고 행복한 관계를 유지하고 사는 걸까, 궁금해졌어요. 

그런데 아니더라고요. 잘 배우지 못하고 그저 순응적이어서 여섯 아이의 엄마가 되어 90평생 일하면서 세상 무해한 존재로 살다가 요양원에서 죽은 내 엄마가 있었고. 배운 게 엄마보단 많았지만 그다지 현명하지 못해서 세상 흐름대로 연애하고 결혼하고 엄마가 되어 딸들 키우다가 뒤늦게 환골탈태하듯 페미니스트가 된 내가 있지만. 과연 딸들은 남녀 무차별하고 완전 평등하고 삶의 선택지가 풍족하기 그지없다는 2000년 중반에 어른 여자가 되어 정말 잘 사는 걸까. 그 ‘아님’ 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싶었어요. 

선택의 폭이 그렇게나 넓은 곳에서 인생에서 누릴 많은 선택항목에 모두 ‘No’를 체크하게 된 딸의 마음을, 최대한 열심히 일하면서 치이는 회사에서의 팔로워 위치를, 깊이 사귀거나 넓게 사귈 수 없는 연애의 현실 같은 것을 살펴보다가 무조건 장하다, 훌륭하다 응원해주고 싶었어요.

작가님 자신을 ‘가출생활자’로, 딸들을 ‘독립불(가)능자’로 칭하였습니다. 이렇게 표현한 배경과 사연이 있을 것 같아요.

우리 집도 여느 부부처럼 싸우고 헤어지고 화해하고 또 싸우곤 했어요. 집이 부서지고 갈라지는 일들을 겪으면서 그나마 내가 나가는 것이 가장 손해가 적다고 생각했어요. 아이들의 생활에는 흔들림이 적게, 안온한 집에서 그나마 삶을 영위할 수 있게 하려고, 다른 가족구성원이 떨어져 나가지 않게 막으려고 제가 나간 셈이에요. 내 한 몸 빠져나가 1년, 2년, 몇 달을 밖에서 생활했던 시간들을 생각해 보니 우연히 ‘가출생활자’란 말이 떠올랐던 것뿐이에요. 저런 정체성을 내면에 깊이 간직한 건 아니었던 거지요. 돌아와 집을 새로 꾸미고 새로 짓고 보니 그 옛날보단 정갈하고 튼튼해져서 다른 사람이 아닌 제가 나갔다 들어왔다 한 것이 아주 나쁜 선택은 아니었나 봐, 가끔 안도합니다.

독립불(가)능자는 딸들인 것 같은데(저도 포함), 비하하거나 후려치려는 것은 전혀 아니에요. 유치원 다닐 때부터 대학 졸업까지 유달리 성실하고 부지런해서 별명이 다 성실함의 대명사, 개미나 꿀벌 같은 것들을 달고 살았거든요. 그리 열심히 공부하고 일하고 있으나 현재 독립이라는 것이 불가능해 보이는 것이 딸들이어서 그렇게 붙여 봤어요. 내로라하는 성공은 못 했어도 어엿한 직장을 잡고 수억 연봉에는 미치지 못하나 제 몫의 돈을 버는 딸들에게도 현재 독립은 언감생심이에요. 비싸기 이를 데 없는 집값을 감당할 수도 없거니와 젊은 여성이 혼자 나가 살기에는 너무나 위험한 사회잖아요.

하루걸러 터지는 여성 대상 폭력, 강간, 살인에서 더 나아가 이제는 이별 살인, 스토커 살인, 게다가 이젠 부모까지 죽여 버리는 남자들의 행태에는 분노와 더불어 슬픔까지 오니까요. 딸들이 20대일 때부터 한국은 여성혐오의 기운이 도처에 만연했어요. 행여 연애하고 결혼하고 아이 낳고 살고 싶다는 선택을 했다 해도 동년배의 남자들이 저토록 여자들을 귀중하게 여기지 않으니 어떻게 독립을 하겠어요. 그냥 개개의 인간으로만 여겨줘도 될 일들이 모두 거꾸로 흘러가잖아요. 딸과 동년배의 남자들이 ‘믿고 거르는 책, 믿고 거르는 영화, 페미니즘, 꼴페미 서적 및 영화 리스트’를 공유하고 좌표 찍고 괴롭히는 이즈음, 세상의 어느 딸들이 독립해 나가 온전한 삶을 누리겠어요?



글을 어떻게 읽고 받아들일지는 독자 각자의 몫인 것 같아요. 그런 면에서 어떤 분은 분명 “딸이 서른이 넘었는데, 독립 안 합니까? 결혼 안 시킵니까?” 묻는 분들도 계실 것 같아요. 작가님 생각은 어떠세요?

소위 남들만 그렇게 말해요. 별 상관없는 사람, 관심은 하나도 없는 사람들이 슬쩍 보고 마구 물어보고 함부로 말하는 편이지요. 조금이라도 나와 관계가 있는 사람, 잘 지내고 있는지 잘 사는지 궁금해하고 염려하는 사람, 딸들과 어떻게 지내는지 아는 사람들은 저렇게 말하지 않아요. 예로부터 그랬잖아요. 누군가가 몇 살인지, 어느 학교 다니는지, 건강한지, 어느 대학에 들어갔는지, 결혼했는지 애는 하나 낳았는지, 둘째를 낳으라든지, 하는 말들. 

남의 인생에 그다지 관심도 없으면서, 돌아서면 잊을 거면서 그저 말만 던지는 사람들이 남 인생의 가장 예민하고 중차대한 일에 편하게 말을 훌쩍 해버리는 것 말이에요. 저한테도 그랬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나만 보면 ‘애들 밥은 어쩌고?’‘남편 밥은 어쩌고 나와서 이러고 있느냐?’고 말했거든요. 그런 이들이 스쳐 가면서 희롱하듯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저런 말에는 크게 괘념치 않습니다. 다만 진심으로 애들 독립시키는 게 어떻겠느냐 묻거나 결혼을 시키라는 말을 한다면 저도 진심으로 말하곤 해요. 불감청(不敢請)이언정 고소원(固所願)이니 좋은 사람 있으면 소개시켜 달라고요. 우리 딸의 심성이나 인성이나 성실함은 타의 추종을 불허할 만큼이니 정말 좋은 사람 만났으면 한다고요. 꼭 독립이나 결혼이 아니더라도. 현자처럼 느긋이 말한다면, 인연이 있다면 그 길을 가겠지요. 언제 어느 때일지 모르나.

두 따님이 이 가혹한 시대를 살아가는 30대 여성을 대변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특히 사회초년생 시절의 어려움이 뭉클하게 다가오더라고요. 누구에게나 ‘처음’이 있어서 그런 거 같아요.

‘복사시키고 혼 좀 냈다고 나가버려? 90년대 직장인 잡는 법’ 오늘 신문에서 본 기사입니다. 입사와 퇴사를 반복하는 90년대생들, 퇴사 이유를 물어보면 업무 지적을 받고 자존감이 떨어졌다, 야근이 잦아 부담스럽다, 그 정도도 견디지 못하나, 같은 문장이 이어집니다. 이직을 쉽게 생각하고 금방 퇴사한다’ ‘힘든 업무는 쉽게 포기’ ‘오로지 내 업무만 관심’ ‘권리만 찾고 의무는 모르쇠’ ‘개인 일정 위주의 휴가 사용’ ‘팀워크 부족, 협업이 어려움‘ 같은 말들이 으레 따라오고요. 딸들도 저 기사들 속의 한 사람으로 포함이 되겠지요. 그러나 세상 수억의 사람이 있다면 모두 다 다르게 살아가는 이 세상에서 어떻게 90년대생 딸 둘이 작금의 젊은 여성을 대표하거나 대변할 수 있겠어요. 어쩌면 나이 빼고 비슷한 건 거의 없을지도 모르겠어요. 수억의 인간이 수억 가지 다른 색으로 살아간다, 믿으니.

다만 취업이 그렇게나 어려울 때 취직하느라 고생한 것은 너나 나나 똑같을 것이고 사회초년생이 맞이할 사회의 선배나 상사를 맞닥뜨리기는 누구에게나 어려울 터이니 그건 비슷하긴 하겠네요. 어느 여자나 모든 누구의 딸들도 어김없이 어려움을 겪었을 테고요.

지금을 살아가는 MZ세대에게 엄마로서, 어른으로서 당부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저는 ’너무 열심히 일하는 편’인 딸들에게 좀 냉정하지만 가끔 ‘너만 겪는 어려움 아니다’라는 말을 해요. 첫 직장 들어가 수시로 울고 다닐 때 전폭적으로 심정적으로 응원하고 지지하지만, 비난은 아니지만 이런 말은 가끔 했어요. ‘너 하나만 특별히 겪는 고통은 아닐 수도 있다’라고요. 남과 비교하거나 상대적으로 고통의 크기를 가늠하여 무시하려는 건 아니지만, 가끔은 남의 말과 행동에 과한 의미 부여를 하지 말라고도 말해요. 매사에 일희일비하고 인정욕구에 시달리다 보면 황폐해지는 몸과 마음은 너의 것이라고, 그러니 소중한 영육을 지킬 건 너 자신의 심리근육이라고도 제법 의젓한 어른처럼 말하기도 해요. 그러한 딸들에게, 그 세대에게 당부하고 싶은 것이라니, 자격은 없습니다만, 이런 말은 해주고 싶어요. 제 말은 의욕을 충만케 하거나 불쑥 힘 나게 해주진 못할 거예요. 일에 영혼을 다 갈아 넣지 마라, 일하면서 하얗게 불태우지 마라, 일은 꼭 사랑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길이 하나만 있는 게 아니다, 길은 여러 개가 있고 길이 있다고 다 걸어가 볼 필요는 없다, 심지어 저것이 길이라고 생각 안 해도 된다, 슬픔과 갈등을 쌓아두지 마라. 인정욕구에 너무 시달리지 마라, 인생, 짧다 정도입니다. 아무튼 저는 의젓하고 현명한 엄마나 어른은 못 되는 사람인가 봐요.

마지막으로 작가님은 자신의 시간과 몫을 찾으려고 애써왔어요. 거꾸로 된 모녀의 역할에 갸우뚱할 분들도 계실 거고요. 그럼에도 이보다 행복해 보이는 모녀는 또 없어 보입니다. 그 비결은 무엇일까요? 

“엄마가 철없으면 자식이 먼저 철이 든다” “전생에 나라를 구했나보다, 어쩜 그렇게 딸들이 엄마한테 잘 하냐” “효녀를 키웠구나, 복도 많다” 등등. 사춘기 딸들 대신 가출을 자주 하고 제 맘대로 사는 엄마를 아직도 사랑해주고 재밌어 해주는, 같이 있는 것을 행복해하는 것을 보고 누군가는 맘에 안 들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거꾸로 된 모녀의 역할을 쓴 이 책이 어쩌면 자랑처럼 보일 수도 있을 것이고 그래서 분명히 ‘호오’가 극명하게 갈릴 거예요. 당연히 질투와 시기의 감정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을 거라 생각해요. 하지만 난 여전히 좋아하는 것을 이야기하고 살려고 해요. 좋아하는 것만을 이야기하고 살기에도, 좋아하는 사람과 지내기만도 시간이 많이 남아 있지 않다고 생각하니까요. 지금까지 너무 많은 이들과 싸워왔고 헤어졌고 보냈어요. 아직 젊은 주제에 사위스런 소리한다고 할 줄 모르나 내 또래 친구들이 벌써 여럿 죽었어요. 내 딸들보다 더 어린 자식을 두고 이 나이보다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어요. 얼마 남지 않은 시간 동안 잘 살다가 잘 죽고 싶어요. 매일 닥쳐올 늙음과 죽음을 생각합니다. 죽겠다는 비탄이 아니라 잘 살겠다는 다짐이고 거기에 유일한 딸 둘 생각이 들어 있어요.

나는 엄마지만 딸의 어떤 취향의 다름에도 사고방식과 행동에도 우리는 다른 사람이라고 여기지 못마땅해하지는 않는 편입니다. 우리는 이렇게나 다른 사람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두 그루 나무처럼 적당히 떨어져 있으나 그 사이로 바람이 불어 가지를 흩날리거나 낙엽을 떨구어 서로 발등을 덮어주면서 서로의 자람을 보고 느낄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는 관계가 되리라 믿으면서 같이 살아요. 내가 행여 인지장애가 생겨서 마음이 제멋대로 불뚱거리거나 잊지 않는다면 ‘따로 또 같이’의 이 관계가 죽기 전까지 이어지겠지요. 부디 그렇게 되기를 마음을 갈고 닦아야겠죠.





*권혁란

한 여자의 여섯 번째 딸로 오십 년, 두 딸의 엄마로 삼십 년을 살았다. 페미니스트 저널 [이프]에서 일하면서 많은 글을 썼으며 책을 만들었고 피메일 게이즈(여성적 시선)로 세상을 보면서 겹겹의 미늘을 벗어났다. 여러 사람과 같이 『엄마 없어서 슬펐니?』, 『나는 일하는 엄마다』를 썼고, 혼자로는 심장의 속도로 걸어온 천 일간의 치유 여행 『트래블 테라피』, 존엄하고 아름다운 이별에 관해 묻는 애도 일기 『엄마의 죽음은 처음이니까』를 펴냈다. 딸들과 함께 돌아가신 엄마와 병아리 나리와의 사랑의 기억만을 골라내 그림동화책 『다섯 번 다시 태어난 병아리 나리』를 만들었다.




가출생활자와 독립불능자의 동거 라이프
가출생활자와 독립불능자의 동거 라이프
권혁란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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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ㆍ사진 | 출판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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