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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 철학의 아포리아를 해결하려는 투쟁의 산물

『현대철학의 종교적 회귀』 신명아 저자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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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철학의 종교적 회귀』는 현대의 여러 철학자가 역사성과 의식 간의 이러한 아포리아에 직면해 모색한 새로운 해결책과 그들이 제시하는 이론적 틀을 살펴 나가는 9편의 글로 구성되어 있다. (2021.10.29)

신명아 저자

현대철학은 고정 불변한 것을 회의하고 해체하며 등장했다. 하지만 데리다, 레비나스, 아감벤 등 현대철학자들의 '종교적 전회(轉回)'는 철학 저변에 다시 초월적이고 해체 불가능한 것에 대한 사유가 움트고 있음을 보여준다. 후설은 기존 철학의 존재론적 토대주의를 극복하고 현상학이라는 이름으로 '체험'을 중시하는 철학의 새로운 탄생을 도모했다. 하지만 데리다는 후설에게 기존 철학의 존재론적 성향을 극복하고 사물이 드러나는 현상을 다루겠다는 의도가 있었지만, 모든 것을 초월론적 의식으로 환원시킴으로써 플라톤의 이데아와 유사한 본질론적인 형상에 고착되는 한계를 가진다고 본다. 후설이 존재 자체의 시간성과 타자성을 근본적으로 포함하는 모델 대신 단순히 둘의 변증법적 융합을 통해 기존 철학의 아포리아를 해결하려 했다고 본 것이다. 비평가 질리언 로즈는 헤겔이나 키르케고르 철학도 바로 이러한 아포리아를 헤쳐 나오려는 투쟁의 산물이라고 본다.

『현대철학의 종교적 회귀』는 현대의 여러 철학자가 역사성과 의식 간의 이러한 아포리아에 직면해 모색한 새로운 해결책과 그들이 제시하는 이론적 틀을 살펴 나가는 9편의 글로 구성되어 있다.



『현대철학의 종교적 회귀』를 구상하게 되신 계기가 궁금합니다.

저의 연구는 프로이트와 라캉의 정신분석에서 출발합니다. 프로이트에게서는 무의식의 중요성을, 라캉에게서는 모든 담론과 지식체계는 상징계 안에 구멍을 가지고 있기에 그곳을 안 보이게 은폐하려는 집착, 즉 편집증(파라노이아)적인 구조를 지니고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현대철학이란 이렇게 문자, 상징계, 담론체계의 본질적 결여를 인정하고, 은폐되고 왜곡된 진리, 라캉적 용어로는 '실재'에 어떻게 하면 접근할 수 있을지 고민하는 겸허한 지성의 산물입니다. 데리다의 '떠도는 기표' '차연' '흔적'의 개념도 진리가 드러나는 모습이고, 들뢰즈의 '생성(되기, becoming)' 역시 그러한 맥락에서 진리의 비결정성을 표현합니다. 이는 벤야민의 사상에서 존재의 비결정성, 아포리아를 신적 차원, 즉 재현하기 어렵고 잡히지 않는 영원한 진리라고 하는 것과 같다고 봅니다. 메시아적인 순간은 마치 카이로스의 머리처럼 잡을 수 없지만, 놓친 듯하면서도 '지금-시간'이라는 순간에 섬광처럼, 혹은 '정지상태의 변증법' 형태로 현현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 책은 이렇게 현대철학자들이 진리와 조우하는 면면을 포착하려는 시도에서 나온 결과물입니다.

'종교적 회귀' 혹은 '신학적 전회'에 대해 간단히 설명해주실 수 있을까요? 그러한 현대철학의 '종교적 회귀'가 이 책에서 어떻게 드러나나요?

현대철학자들의 '종교적 전회(轉回)'란 철학 저변에 다시 초월적이고 해체 불가능한 것에 대한 사유가 움트고 있음을 말합니다. 이 책은 익숙한 한 세트의 철학자인 들뢰즈와 가타리를 9장과 1장에 각기 배치하고 있습니다. 이는 들뢰즈의 '신학적 전회'를 보여주는 이론적 틀이 가타리를 통해 정치사회적으로 견지됨을 보여줌으로써 정치사회적 양상과 신학은 시작과 끝이 아니라 인간 삶의 불가분적 관계임을 보여주기 위함입니다.

초반에 논의되는 현대철학자, 가타리, 스튜어트 홀, 하트와 네그리 등은 계몽, 이성 그리고 정의 같은 근대적 철학의 관심을 초월해서 사회와 그 구성원인 개인의 상호관계에 천착합니다. 특히 가타리는 사회가 조직을 유지하기 위해 미시정치적 차원에서 일상을 파고들어 주체들의 욕망을 통제하는 분자파시즘에 대항해 분자혁명을 제시합니다. 분자혁명이란 각 주체가 사회의 통제 수단인 개인이라는 차원을 초월하여 서로 미세하게 연결되어 생성되는 복합적, 다중적 주체성, 즉 '집합소'이므로 서로 연대하고 서로의 정체성을 횡단하는 것입니다. 이런 과정에서 가타리는 생태계와의 조화를 강조하는 생태철학의 입장도 견지합니다.

다음으로 홀의 정체성 정치, 하트와 네그리의 탈제국적 주체성 탐구를 거쳐 랑시에르의 인민의 지성적 평등을 논의하면서, 현대철학의 주체성에 대한 다양한 시도를 살폈습니다. 이후에는 레비나스의 타자의 윤리학에서 주체가 타자에게 볼모가 되는 양태를 신의 차원과 연결하여 논의합니다.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벤야민, 데리다, 지젝, 아감벤, 들뢰즈의 '신학적 전회'가 논의됩니다.

벤야민을 통해 (구원의 순간이 오기는 하지만 언제나 하루 늦게 온다는) 카프카의 구원관을 끌어들여서 '약함의 정치학'(weak politics)으로 논의하였습니다. 구원의 순간인 카이로스의 시간은 구체적 시간이나 일직선상으로 세상의 종말에 오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에 대해 끊임없이 공부하고 배우고 있는 학생들, 조수 혹은 카프카 『변신』의 주인공 잠자처럼 영웅이 아닌 약한 주체와 관련 있다는 것이 '약함의 정치학'입니다. 데리다에서는 기존 신학의 메시아니즘을 극복하고, '메시아주의 없는 메시아성'을 통해 진정한 메시아적 현현을 역사적 정치적 순간과 무관하지 않게 '도래하는 민주주의' 형태로 파악하는 과정을 포착하였습니다. 지젝에게서는 죽음 충동, 즉 현재의 쾌락원칙, 충만성을 거부함으로써 실현되는 진정한 신의 케노시스, 비움의 정치학을 통해 '신학적 전회'가 형성됨을 파악하려 했습니다.

벤야민, 데리다, 레비나스, 아감벤, 지젝, 들뢰즈, 가타리 등 다양한 현대철학자를 총 9개의 장에서 다루고 있습니다. 서문에서 부산대학교 이재성 교수님은 이러한 긴 여정의 끝에 들뢰즈의 초월적 존재론이 있다고 써주셨습니다. 『현대철학의 종교적 회귀』에 등장하는 여러 철학자의 사상은 어떻게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습니까?

앞서 다루지 못한 아감벤, 들뢰즈를 살펴보겠습니다. 아감벤은 호모 사케르, 즉 헐벗은 생명이라는 미약한 존재가 바로 진정한 생명 특히 수치를 느낄 수 있는 살아있는 생명의 윤리성을 가지고 있으며, 법과 권력의 차원인 '예외 상황'의 생명권력(biopower)보다 우위에 있는 존재임을 다룹니다. 아감벤은 나중에 저서들에서 이런 진정한 존재의 '삶의 형식(form of life)'이 수도사들의 삶과 맞닿아 있음을 강조할 정도로 더 본격적인 신학적 전회를 보여줍니다. 마지막으로 살펴볼 들뢰즈는 사실상 가장 신적 차원과 멀어 보이며 무신론자로도 보입니다. 들뢰즈의 신학적 전회는 신은 '바닷가재, 이중집게발(더블 펜치), 이중구속이다'라는 명제처럼, 신은 모든 상반적 요소를 다 품는 존재로서 우리가 왜 이분구조를 폐기해야 하는지 보여줍니다. 신은 영토화면서 탈영토화하여 모든 기존의 체계가 해체되고 다시 사막화하여 무한한 신의 차원과 만나 새로이 탄생하여야 하는 과정과 연결됩니다. 이런 들뢰즈의 신적 차원은 데리다의 차연과 해체 이론이 사막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이유를 알려줍니다. 아감벤도 모든 기존체계의 무효화(nullification)를 강조함으로써 '헐벗은 생명'이 소생하고 자유를 누리는 것을 강조합니다.

들뢰즈와 데리다에게 사막은 (지금은 안 보이지만 도래할) '사람들이 가득 찬' 고독의 장소, 절대적 고독의 장소입니다. 들뢰즈의 '초월적 존재론'은 기존 철학의 초월적 신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을 자극하고 기다리는" 그런 사막의 고독 차원이어서 이곳을 사유하는 것은 '국가' 차원이 아니라 '부족'의 차원입니다. 어느 거대한 조직체계가 아니라 그것으로부터 배제된 분자적 차원을 살려주는 신적 차원입니다. 들뢰즈의 신학적 전회는 "우리는 양들이다", "사자 같이 (희생양) 피의 희생이 주어지던 신은 뒷배경으로 물러나고 희생된 신이 전면에 옵니다. 신은 도살된 동물이 되었다."에서처럼 신약의 예수가 상기될 정도로 강력한 신학적 전회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코로나 등으로 여러 가지 변화가 큰 현재와 같은 시기에 『현대철학의 종교적 회귀』를 읽는 것이 독자들에게 어떤 의미를 지닐 수 있을까요?

들뢰즈가 호소하듯이, 피의 희생이 아닌, '희생된 신'은 우리에게 들뢰즈가 말한 '동물-생성' 혹은 '동물-되기' 등 다양한 희생자-되기의 개념과 맞물려 있습니다. 이 책에의 원제목에는 '위기의 시대'라는 구절이 있었습니다. 이 책은 현재의 문제와 무관하지 않습니다. 알 수 없는 원천에서 생성된 코로나 바이러스는 다양한 생명 요소와 환경의 만남이 균형을 잃은 결과물입니다. 이 책의 독자들은 사회정치적 차원에서 시작한 앞 장에서 후반부로 넘어가면서 현대의 나는 타자와 불가분하다는 사실을 깨닫고, 타자의 문명에 무관심한 자신을 반성하게 될 것입니다.

현재는 분자적이고 미세한 차원에서 우리가 무심코 차별하고 억압한 생명체들의 반란으로 드러나는 코로나19의 타격을 받고 있지만, 크게는 문명 차원에서 어려움을 겪을 것을 대비해야 합니다. 글로벌 차원에서 미국이 손을 놓은 아프간의 상황이 어떻게 변할지 주시해야 하고, 그 정치적 변동으로 억압받는 수많은 여성, 정치적 탄압의 대상자들에게 무관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주체는 타자와 밀접한 관계가 있으므로, 어느 곳의 평화와 행복이 다른 곳에서는 반비례 관계일 수도 있음을 기억하고 글로벌 차원에서 어떤 정치적이고 이념적 횡포에 눈감아서는 안 됩니다. 우리의 잘못된 환경관으로 지구가 몸살을 앓고, 그 대지 위의 우리가 부정적 여파를 겪고 있습니다. 우리가 타자와 그들의 문명에 무관심하고 왜곡할 때 그들의 고통의 소리는 벤야민의 '신적 정의'의 실현 과정에 어느 순간 내 가까운 이웃의 아픔으로 그리고 나의 아픔으로 다가올 수 있다는 것을 인식해야 합니다.

다음 책 계획이 있으시다면요?

아프간의 탈레반 점령 이후 저의 관심은 이슬람문명으로 전환되었습니다. 그러나 이슬람문명은 참으로 멀리 있습니다. 영어로 내용을 접하니 유럽 중심 시각으로 이슬람문명을 접하지 않을까도 염려됩니다. 이 점에서 다음 저의 행보는 무거운 걸음이 될 것입니다. 저의 학문이 서구철학에 매여 있음을 탄식하고, 얼마 전부터 칼 융을 통해 인도 사상에 접하려 하였고, 예수회 센터에서 서명원(Benard Senécal) 신부의 불교 특강에 참여하기도 하는 등 여러 길을 모색하고 있습니다.

이슬람의 '슬람'은 평화와 구원의 의미를 가진 단어이며, 이슬람문명은 본래 평화를 구가하는 문명입니다. 지금 이슬람의 전투적인 성전으로 폄하된 '지하드'의 원래 뜻은 책 서문에 언급한 철학자들의 아포리아와의 '투쟁(strife)' 혹은 그것을 해결하는 '노력'과 비슷한 의미입니다. '죄를 짓지 않으려는' 혹은 신의 명령에 충실하려는 '노력' 혹은 '투쟁'을 말합니다. 이슬람 사람들은 자신의 어두운 자아와 싸우는 내적 노력을 '큰 지하드(the Greater Jihad)'라고 부르고 신앙심 없는 자와 싸우는 것을 '작은 지하드(the Lesser Jihad)'라고 부르며 내적 노력에 관심을 기울입니다.

하지만 지금 안으로는 탈레반이 원래의 이슬람문명의 평화적 구도 자세를 왜곡하고 있고, 밖으로는 이슬람에 대한 편견인 이슬람혐오(Islmaphobia)가 팽배하게 나타납니다. 다행히 타리끄 라마단(Tariq Ramadan) 같은 이슬람 출신 학자들이 과감히 이슬람문명도 시대에 맞춰 변모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또 다른 학자는 지하드라는 단어에 80개 정도의 다양한 의미가 있는데 전쟁으로 해석되는 건 단 하나의 경우일 뿐이라며, 전투적 이슬람주의를 비난합니다. 『현대철학의 종교적 회귀』에서 레비나스가 성경의 다양한 해석을 강조하는 것처럼, 이슬람계 학자들도 코란 적용을 위한 해석을 다양하게 허락할 필요를 논하는 시점입니다. 이 책의 철학자들이 보여준 신학적 전회를 기독교와 이슬람문명의 '어긋난 조우'를 연구하면서 실천해보려고 합니다.




*신명아
    
경희대학교 글로벌커뮤니케이션학부 영미어문전공 교수이다. 정신분석 및 문화비평가. 2005년 영미문학연구회 공동대표, 2012년 한국라캉과현대정신분석학회(현 현대정신분석학회) 회장, 2015년 한국 비평이론학회 회장을 역임하였다. 현재 한국가톨릭교수협의회 경희대학교 대표이다. 경희대학교 문리과대학 영문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노스다코타대학교에서 영문학 석사, 미국 게인즈빌 소재 플로리다대학교에서 영문학 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1999년 조선일보에 인문학 옹호 칼럼을 썼고 2002년 『월간 미술』에 라캉의 시각예술론을 게재하여 라캉의 정신분석을 대중에 소개하였다. 대만, 일본, 중국, 싱가포르, 사이프러스, 포르투갈의 포르투에서 개최된 학술대회에서 프로이트, 라캉, 들뢰즈 등의 비평이론가들에 대해 발표했다. 
저서로는 국내에서 공저로 출판된 『페미니즘, 어제와 오늘』 『라깡의 재탄생』 『젠더를 말한다』 『20세기 미국소설의 이해』 『라깡, 사유의 모험』 『우리 시대의 욕망읽기』가 있고, 해외에서 출판된 Reconsidering Social Identification: Race, Gender, Calss and Caste(Abdul R. JanMohamed, 2011)가 있다. 역서로 『윌리엄 포크너: 현실과 피안을 넘나드는 예술가』, 2006년도 대한민국 학술원 우수도서로 선정된 『독자로 돌아가기: 신비평에서 포스트모던 비평까지』와 『라깡 정신분석 사전』(공역) 등이 있다.



현대철학의 종교적 회귀
현대철학의 종교적 회귀
신명아 저
경희대학교출판문화원(경희대학교출판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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