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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샘 킨’ 같네요

『카이사르의 마지막 숨』 편집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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샘 킨의 책을 직접 편집하면서, 그동안 독자로서 경험한 샘 킨의 스토리텔링을 더욱 미시적으로 관찰할 수 있었다. (2021.09.08)


“이 원고 말이죠, 저자가 참 할 말이 많았나 봐요. 수다스럽더라고요.”

원고를 검토할 때 종종 수다스러운 저자를 만난다. 별로라는 게 아니라, 박학다식하고 이야기를 풀어내는 방식이 참신하다는 뜻이다. A라는 주제에서 전혀 관련이 없어 보이는 B라는 주제로 도약하는, 도대체 어디로 튈지 모르는 예측 불능의 아슬아슬한 전개. 이런 짜릿짜릿한 글을 공유할 때면 회사 편집자들은 십중팔구 이렇게 감탄한다.

“오, ‘샘 킨’ 같네요!”

‘수다쟁이’의 아이콘 샘 킨은 해나무와 오랫동안 인연을 맺어온 과학 저술가다. 첫 번째 책 『사라진 스푼』 한국어판이 2011년에 나왔으니 한국에 소개된 지도 무려 10년이 흘렀다. 내가 샘 킨을 처음 만난 책 또한 『사라진 스푼』이었다. 학창 시절 대표적인 알레르기 유발자 주기율표―“수헬리베붕탄질산…”을 한 번이라도 되뇌어본 사람이라면 공감할 것이다!―는 샘 킨의 언어를 거치자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가득한 보물창고로 재탄생했다. ‘과학이 이렇게 재미있을 수 있다니!’ 원소의 과학과 인류의 역사가 맛깔스럽게 버물려 있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었던 기억이 난다.




『카이사르의 마지막 숨』은 샘 킨의 네 번째 책이다. 전작(『사라진 스푼』  『바이올리니스트의 엄지』 『뇌과학자들』)의 주제인 주기율표, DNA, 뇌과학에 이어서 이번에는 ‘공기’를 다룬다. 늘 곁에 머무르며 생명의 바탕이 되는 공기. 이토록 밀접함에도, 아니 어쩌면 밀접하기에, 우리는 공기에 대해 별생각 없이 살아간다. 감각으로 포착되지 않아 그저 ‘생명에 필수적인 것’ 정도의 추상적 관념에 머무는 공기를, 샘 킨은 하늘에서 땅으로 끌어내리고는 우리 앞에 들이밀며 말한다. “공기는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어 안달한다. 바로 그 이야기가 여기에 있다.” 

샘 킨의 언어를 두른 공기는 한 권의 ‘흥미진진한 이야기책’으로 변모한다. 한 모금의 숨에 담긴 공기는 그 분자 개수만큼이나 풍성한 이야깃거리를 담고 있다.(팩트 체크에 능한 편집자들이 검색해보는 수고를 하시지 않도록 미리 말하자면, 이것은 물론 과장이다. 『카이사르의 마지막 숨』은 본문의 글자 수는 공백 포함 35만 개로, 공기 한 모금에 들어 있는 공기 분자 수 270해 개에 비하면 턱도 없다. 죄송하다.) 샘 킨은 어디서 이런 새로운 이야기들을 퍼올려 오는지 정말 신기할 따름이었는데, 특히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이 안전한 냉장고를 개발하려 분투했다는 일화가 기억에 남는다. 프리츠 하버의 비료·독가스 연구, 프리스틀리와 라부아지에의 산소 발견 우선권 논쟁처럼 제법 알려진 이야기도 샘 킨의 펜을 거치면 왜 이렇게도 재밌어지는지. 

샘 킨의 수다는 꼬리에 꼬리를 문다. 이런 식이다. 이야기는 산기슭에 살며 ‘흑표범 오줌’을 마시는 괴짜 노인의 ‘나는 자연인이다’식 휴먼 스토리로 시작된다. 그런데 어느새 유독가스로 들끓는 초기 시절 지구의 대기가 생생히 묘사된 과학 다큐멘터리가 되었다가, 다시 괴짜 노인의 이야기로 돌아와서 화산 폭발로―스포일러 주의!―내장과 뼈가 순식간에 증발해버리는 모습이 생동감 있게 연출된 재난 스릴러로 끝맺는다. 다소 지루해 보이는 과학 지식을, 전혀 상관없어 보이는 비극적인 노인의 일화와 연결해 스릴 넘치게 풀어내는 솜씨. 교정·교열을 보면서 다시금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야, 이 작가, 진짜 수다스럽네.’

동시에 샘 킨과 나의 메일도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혼을 쏙 빼놓는 스토리텔링 솜씨에 사로잡혀 팬이 된 독자들이 분명 있었고 한국에서 네 번째로 소개되는 책이니 출간 이벤트를 열고 싶었다. 논의 끝에, 미리 준비한 제단된 면지를 저자에게 보내 친필 사인을 받아 한정 수량으로 ‘친필 사인본’을 제작하기로 했다. 양이 꽤 되는데, 해주려나? 떨리는 마음으로 메일을 보냈다. “I'm writing this email asking if you could sign autographs on endpapers, which will go into Korean edition of your book, to Korean readers.”(맞게 썼는지는 잘 모른다. 뜻만 통하면 되는 것 아닌가!) 답장은 여느 한국인보다 빨랐다. “I'm happy to sign them.” 오 마이 갓. 그렇게 시작된 친필 사인본 제작 프로젝트는 샘 킨과 스무 차례 메일을 주고받은 끝에 성공적으로 마무리되었다.




그 저자에 그 편집자라고, 내친김에 수다를 좀 더 떨어보자면, 『카이사르의 마지막 숨』 은 나에게 처음으로 유튜버의 삶을 체험하게 해준 책이기도 하다. 책을 어떻게 알릴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흥미로운 에피소드가 풍부하다는 장점을 활용하기로 했다. 이목을 사로잡을 수 있는 일화를 선정해 유튜브 영상으로 만드는 것. 가장 인상 깊었던 ‘아인슈타인과 국민 냉장고’ 에피소드를 골랐고, 이곳저곳에서 적절한 이미지와 영상 소스를 그러모았다. 책의 내용을 유튜브 문법에 맞게 스크립트로 만들고, 내레이션까지 있으면 좋을 듯해 녹음까지 마쳤다. 결과적으로 마음에 드는 영상이 만들어진 것 같아 내심 기뻤다. 그리고 결연한 마음으로 나는 절대 유튜버를 하지 않겠다고 다짐하는 일기를 썼다. 

샘 킨은 서면으로 진행한 『카이사르의 마지막 숨』 출간 기념 인터뷰에서 자신의 책을 통해 특별히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과학은 근본적으로 인간의 활동이라는 사실을 전달하고 싶었습니다. 여러분은 과학을 배우면서 한바탕 웃을 수 있습니다. 울음을 터뜨리게 될지도 모릅니다.” 아하, 과학은 얼핏 보면 바늘로 찔러도 피 한 방울 나올 것 같지 않지만 사실은 그 속에 ‘인간의 피’가 돌고 있다는 점을 알려주고 싶어서 샘 킨은 이토록 수다스러워졌는지도 모른다. 인간은 다른 어떤 존재만큼이나 풍성한 이야기를 담고 있으니까. 

샘 킨의 책을 직접 편집하면서, 그동안 독자로서 경험한 샘 킨의 스토리텔링을 더욱 미시적으로 관찰할 수 있었다. 그가 지닌 수다의 힘을 다시금 똑똑히 느꼈기에, 앞으로 생각지도 못한 전개를 자랑하는 수다스러운 원고를 검토하면서 좀 더 자신 있게 외칠 수 있을 것 같다. “오, ‘샘 킨’ 같네요!”



카이사르의 마지막 숨
카이사르의 마지막 숨
샘 킨 저 | 이충호 역
해나무
사라진 스푼
사라진 스푼
샘 킨 저 | 이충호 역
해나무
바이올리니스트의 엄지
바이올리니스트의 엄지
샘 킨 저 | 이충호 역
해나무
뇌과학자들
뇌과학자들
샘 킨 저 | 이충호 역
해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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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ㆍ사진 | 조장현(해나무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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