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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특집] 바깥은 대관령 - 천선영 교수

『월간 채널예스』 2021년 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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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대 사회학과 천선영 교수의 남다른 여름방학은 ‘호기심의 나침반’을 들고 대관령 곳곳을 누비는 일의 연속이다. (2021.08.11)


경북대 사회학과 천선영 교수의 남다른 여름방학은 ‘호기심의 나침반’을 들고 대관령 곳곳을 누비는 일의 연속이다. 이유는 하나, ‘지금 여기서 충분히 행복할 것’을 위해서.  



지난해 펴낸 여행책 『기꺼이, 이방인』 에필로그에 ‘흉추 골절로 끝난 첫 대관령 생활, 손목 골절로 시작한 두 번째 대관령 생활’이라고 적혀 있습니다. 올여름 역시 대관령에 계시네요? 

올 때마다 느낌이 달라요. 처음엔 마냥 신기했고, 한국에 이런 곳이 있구나 싶었어요. 두 번째는 손목 골절로 시작했지만 여전히 대관령이 보배라는 생각을 했어요. 세 번째인 올여름은 운 좋게 좋은 숙소를 만나 가만히 앉아 창밖 풍경을 바라보는 중이에요. 올해 목표는 ‘다치지 말자’와 ‘글쓰기’인데, 이제 슬슬 움직여봐야죠.

‘아무것도 하지 않기 위해’ 스며든 대관령에서 여행책을 쓰셨어요. 

정말 아무것도 안 하려 했는데, 며칠 지나니까 뭔가 쓰고 싶은 감정이 올라오더라고요. 대관령이라는 공간이 주는 영향이라고 생각해요. 6월이 연장되는 느낌, 전기가 끊기는 느낌, 두 달 동안 다른 삶, 다른 사람이 된 느낌이 너무 좋았어요. 강제 디톡스라고 해야 할까. 환경적 요인이 디톡스를 촉진하는 부분이 있다고 생각해요. 

‘여름은 대관령’ 말고도 ‘기꺼이, 이방인’을 자처하는 곳이 또 있을 것 같아요. 

방학이나 주말이면 항상 떠돌아다니는 편이에요. 당분간 여름은 대관령에 올 테지만, 봄과 가을엔 구례, 겨울에는 제주도 위미로 가요. 삶이라는 게 뭔가 놓았을 때 다른 걸 보게 되는 부분이 있어요. 평소 ‘유동성’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는데, 여행하면서 많은 걸 봐요. 얼마 전 통영에 들렀다 우연히 만난 ‘백사냉면’ 사장님 부부에게 들은 얘긴데, 이 분들은 1년에 한 달은 반드시 쉰다고 해요. 가게 임대료도 내야 하는데, 그걸 포기하는 대신 자기 삶을 선택한 거죠. 제주에서 만난 밥집을 운영하는 젊은 친구, 주문진에서 만난 원 테이블 레스토랑 셰프도 그랬어요. 남들은 배부른 소리라고 할 수 있지만, 자기 삶을 어떤 시간으로 채울 것인가, 어떻게 유지할 것인가 선택한 거잖아요. 

여행 중에 만나는 사람들을 ‘사람책’, 여행의 방법을 ‘기생 여행’이라고 표현하신 대목이 인상적이었어요. 

구례, 제주, 대관령을 가면 모두 다른 자연, 다른 사람인 느낌이 들어요. 인생을 레이어처럼 산다는 느낌. 그러면서 삶을 소박하지만 단단하게 운영하고 있다는 생각을 해요. 사회학을 가르치고 있지만, 그걸 떠나서 개인적으로도 ‘실체를 가지고 사는 사람’에 대한 동경이 있어요. 그런 사람들 하나하나가 모두 ‘책’ 같고, 그 책에 귀 기울이고 엿보게 돼요. ‘기생 여행’이라는 건, 그들 삶의 애환을 다 알 수 없는 이방인으로서 그분들의 기운에 힘입어 일상을 유지할 동력을 얻는다는 의미예요. 동력이 떨어지면 거기서 다시 얻는다는 점에서, ‘기생’이라는 단어도 좋아하고요.  

책 제목에 붙은 ‘기꺼이’라는 부사의 태도가 ‘생활 여행’의 묘미를 한층 더 살리는 느낌이에요. 

대부분의 사람은 정주에 대한 욕구가 강해요. 무리 속에 있어야 안전하니까. 반면 여행은 개별자로서의 존재 가치를 확인하는 좋은 방법이에요. 때로는 무섭고, 외롭고, 쓸쓸하지만 힘든 과정이 자신을 성장시키는구나, 가끔은 이방인으로 살아도 괜찮아, 라는 생각을 무수한 여행을 통해 알게 됐어요. ‘기꺼이’라는 부사가 잘 안 붙는 부사인데, 이방인이 누리는 자유와 거리감에 붙이면 어떨까 싶어 붙여봤어요. ‘자신의 말’로 삼으면 힘이 생긴다고 하는데, ‘기꺼이’도 그런 것 같아요.(웃음)

‘모바일폰, 카메라, 가이드북이 없는 3무 여행’의 장점을 언급하셨어요. 요즘 사람들에겐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여행법인데요. 

책을 읽은 독자들이 가장 많이 반발하는 대목이에요.(웃음) 사진 찍기와 구글맵을 포기할 순 없다는 거죠. 제가 여행에서 제일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사람 만나는 일이에요. 여행자의 권리가 ‘길 묻기’잖아요. 자연스럽게 많은 사람을 만나는 방법인데, 그들은 하나를 물으면 몇 개의 호의를 얹어서 돌려줘요. 모든 지역 사람이 전부 좋은 정보원이고 가이드인 셈이죠. 구글맵과 셀카에 집중하면 사람 만나는 기회를 잃는 거예요. 똑같은 장소, 똑같은 포즈로 수십, 수백 컷 찍은 사진을 다시 들여다볼까라는 의문도 들어요. 굳이 비교하면 영화와 연극 중에서 연극이 가진 1회성의 감각이야말로 삶의 감각과 맞닿아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여행에서 느끼는 1분 1초의 순간을 호흡하는 묘미를 포기할 수 없는 이유예요. 사진과 가이드북의 도움을 받지 않으면 자신만의 감각이 살아나요. 그때 입력되는 새로운 정보가 여행의 맛을 한껏 살려주는 거죠.

생활 여행을 계획하는 분들에게 ‘사람책’과 대면하는 가장 좋은 노하우를 귀띔해주신다면요? 

어딜 가든 무조건 동네 서점부터 찾아요. 책 좋아하고, 지역을 사랑하고 노력하는 사람들이 드나드는 곳이거든요. 거기서 서점 주인과 친해지면, 한 분씩 소개를 받게 돼요. 지역 소식지를 보고 무작정 찾아가기도 해요. ‘사람책’과 대면하고, ‘사람책’을 읽기 위해서요. 그러면 그분이 또 좋은 분을 소개하고 다시 찾아가는 거죠. 좋은 사람은 좋은 사람을 알기 마련이에요.

세 번째 대관령 살이가 막 시작됐네요. 요즘 떠올리시는 생각이 궁금합니다. 

‘가벼운 주거’라는 개념이에요. 우리의 주거가 이렇게 무거울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에서 떠올린 개념이에요. 환경 이슈들로 인한 엄청난 변화, 에너지 충전을 위한 공간 이동의 중요성과도 맞물려 있고요. 여행을 통해 만나는 공간이 사람에게 주는 위안과 힘을 떠올리면 좀 더 가벼워졌으면 좋겠다는 경험적 확신이 있어요. 개인적으론 제 책에 대한 어머니의 리뷰를 자주 떠올려요. 책을 다 읽으신 어머니가 저에 대해 더 많이 이해하게 됐다고 하면서, “호기심 많고 겁 없는 게 나를 닮아 그렇구나”라고 하시더라고요. 여행에 필요한 큰 동력 하나가 생긴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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