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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 전공자가 소설가가 되어 펴낸 산문집 『매우 탁월한 취향』

『매우 탁월한 취향』 홍예진 작가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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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로는 아득한 기억 저편에서 때로는 지극한 현실에서, 오늘도 누군가 무심히 흘려보내는 일상의 사건을 꼼꼼히 곱씹고 들여다보는 작가의 세심한 스케치는 매우 탁월한 취향처럼 우아하면서도 섬세하고, 따뜻하면서도 날카로운 울림을 전해준다. (2021.08.11)


우리 삶에서 결코 떼어낼 수 없는 감정이 있다면 바로 슬픔과 기쁨일 것이다. 서울에서 태어나 미국의 작은 바닷가 마을에서 살고 있는 홍예진 작가는 오래전부터 줄곧 쓰던 펜을 손에 쥐고 다양한 인간 군상이 맞부딪치며 만들어내는 관계의 갈등과 상처, 애정과 연민에 주목한다. 타인의 일상과 생각을 읽는다는 것은 너무 솔직하면 부담스럽고, 담백하기만 하면 그저 그런 무료한 일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홍예진 작가의 글은 알싸하지만 부드럽고, 마냥 낙관적이지는 않으면서도 시종일관 특유의 유머를 잃지 않는다. 말 그대로 우아하면서도 섬세하고, 날카로우면서도 따뜻한 『매우 탁월한 취향』이 아닐 수 없다. 



『매우 탁월한 취향』이라니 제목이 근사해요. 

고맙습니다. 『매우 탁월한 취향』은 미국에 살지만 한국어로 글을 쓰고, 문학 관련 공부라고는 한 적 없는 미술 전공자가 소설가가 되어 펴낸 산문집입니다. 저는 한국에서 태어나 성장하고 대학을 졸업한 뒤 프랑스에서 유학 생활을 했으며, 서른 이후로는 미국에서 살아온 이주민입니다. 이주민들은 성장기를 보냈던 나라의 관습에 체화된 시선으로 현지 문화를 바라보는데, 이 과정에서 타 문화권에 대한 포괄적이고 막연한 통념이 경험을 통해 부서지거나 틈을 메워 더 단단해지기도 해요. 그런데 저는 유럽에서 이미 한 번 문화 충격을 겪었던 터라 미국이라는 나라를 바라보는 시선이 주변의 다른 한국계 지인들의 것과는 조금 차이가 있다는 걸 느꼈습니다. 틈새의 간극을 보면서 중간 지대에 선 채로 사유한 것들을 재미 삼아 산문으로 적어두기 시작했는데 나중에 보니 그 분량이 꽤 되어 책으로 묶을 수 있었지요. 물론 소설가이니까 주로 소설을 쓰지만요. 

그렇다면 궁금해지는데, 소설가로서 소설 쓰기와 에세이 쓰기에는 어떤 차이가 있나요? 

소설을 쓰다 보면 주변에서 벌어지는 일과 눈에 들어오는 사물, 인물을 예사로 넘길 수 없게 됩니다. 보고 느낀 것들의 상당수가 글감인 것 같아서 문장으로 풀어내고 싶은 욕구에 사로잡히죠. 물론 모든 글감이 소설 소재가 될 순 없으니까 빙빙 돌고 있는 생각과 말을 어디엔가 풀어놓지 않으면 안절부절못합니다. 식재료가 상하기 전에 음식을 해 먹어야 한다는 강박과 비슷하달까요. 재료에 따라 어떤 것으로는 한 상이 나오고, 어떤 것은 단품요리가 되고, 또 어떤 것은 후식이 되듯이 장편소설, 단편소설, 수필로 알맞은 소재가 따로 있는 것 같아요. 저는 장편소설을 쓰고 싶어서 글을 쓰기 시작했는데 이런 이유로 결국 셋 다 쓰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이주민으로 살아오면서 겪은 통념의 변화에 대해 말씀하셨는데, 타향에서 살고 있다는 사실이 글쓰기에 어떤 영향을 주나요. 모국어와 글이란 작가에게 무엇인지 알고 싶어요. 

언어와 관습이 다른 곳에서 산다는 건, 이전의 나를 일부 지우고 그 자리에 새로 배운 것을 그려 넣으며 생활해야 한다는 걸 말합니다. 녹록할 리 없죠. 말과 글을 다룰 때는 두뇌 회전을 몇 배나 빨리해야 하고, 스스로의 태도나 처신을 연신 검열하게 되니까요. 물론 차차 익숙해지고 조금씩 조금씩 변화하면서, 완벽하진 않더라도 어느 정도 녹아들기는 합니다. 변화와 적응을 통해 안락을 얻지만 이면의 씁쓸함도 따라오죠. 모국어 실력이 마모된다고 느낄 때가 그중 하나지요. 영상물, 인터넷, 독서 등으로 간극을 메우고 있지만 글을 쓰지 않았더라면 빈 곳이 더 많았을 겁니다. 한 언어를 능동적으로 소유하는 방법으로 글쓰기만 한 것이 있을까 싶어요. 매끄럽게 읽히고 진부하지 않은 글을 쓰고자 하는 열망은 제 안의 모국어 냉장고가 계속 작동하도록 만들어주지요. 모국어로 글을 쓴다는 것은 냉장고가 꺼지지 않게 자가발전을 하는 것과 같습니다. 적어도 저한테는요. 

책 속에서 가장 기억에 남거나 애착이 가는 에피소드가 있을까요? 

여러 에피소드가 동시에 떠오르지만 꼭 하나여야 한다면 ‘푸른 눈동자에게’를 꼽아야 할 것 같습니다. 비슷한 정서의 글이 다수 있기는 한데, 한국인이 드문 곳에 살면서 제가 가장 두려워하고 견디기 힘든 문제를 정면으로 다룬 것이 이 글이거든요. 제 아이들이 아시아인의 생김새를 가졌다는 이유 하나로 부당한 일을 겪을 때면 애써 모른 척하고 있던 통점에 바늘이 꽂히는 것만 같았지요. 게다가 이 글을 쓸 때, 동심의 악의 없는 무지가 저지른 오래전의 ‘씻을 수 없는’ 죄에 대해 생각하면서 마음속으로 피를 흘렸고요. 이 책에 실린 것 중 가장 아픈 글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살면서 경험한 그런 아픔도 작가님이 책에서 말하는 ‘취향’을 만드는 데 일조했을 것 같아요. 

네, 어쩌면 그런 걸 받아들이는 자세라고 할까요? 물론 남보다 앞서가고 트렌드의 앞줄에 서 있어야 탁월한 취향을 가진 거라면 저는 ‘매우 탁월한 취향’의 사람은 아닐 겁니다. 저는 익숙한 것을 좋아하고, 새로운 것을 수용하는 데 별로 유연한 편은 아니니까요. 다만 이런 저도 남보다 빨리 잘하는 게 하나 있는데, 그건 바로 ‘포기’하는 것입니다. 제가 할 수 없을 것 같은 일이나 좋아하기 어려워 보이는 것들에 대한 마음의 차단이 빨라요. 미련도 없고요. 그런 성향은 더러 장점이 되기도 하고 때로 약점이 되기도 해서 한때는 극복해야 한다고 여기며 고민도 많았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그마저도 포기했어요. 집중이 되는 곳에 집중하며 마음이 끌리는 방향으로 걸어가자는 것. 철학이라기엔 좀 거창하지만, 받아들이자고 마음먹은 생활방식이라고 하면 적당한 표현일 것 같습니다.

어떤 사람이 이 책을 읽으면 좋을까요? 그런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공감을 통해 위로를 받았다’는 표현이 자주 쓰이는 걸 봅니다. 그만큼 사람들은 자신의 마음을 대변해주는 대상을 갈구한다는 것인데, 막상 찾으려면 그 대상이 쉽게 눈에 띄지 않는 법이죠. 공감이란 굵직한 줄기를 짚으며 전달되기도 하지만 세밀한 요철까지 더듬어줘야 온전하게 완성되는 거라고 여기고 있어요. 독자들에게 촘촘하게 다가가는 글이 되기를 바라고, 그로 인해 많은 이들이 섬세한 위로를 받는다면 저자로서 더할 나위 없이 보람 있을 것 같습니다.

책을 내는 과정은 어땠나요. 그리고 앞으로의 계획도 말씀해주세요. 

역시 모든 일은 계획이나 예측대로 벌어지지 않는다는 걸 다시 한 번 느꼈습니다. 소설 원고를 낼 출판사를 찾고 있었는데 산문집을 먼저 내게 되었으니까요. 실은 작가가 되기를 포기해야 하나 싶을 때쯤 기적적으로 출판사 두 곳과 계약을 하게 되었는데, 『매우 탁월한 취향』을 펴낸 책과이음이 그중 하나입니다. 다른 한 곳은 문학 전문 출판사 폴앤니나이고 그곳에서 곧 장편소설이 나옵니다. 어쨌든 이전에 공저로 낸 책이 있긴 하지만 제 글만으로 꽉 채운 단행본은 이 산문집이 처음이라 『매우 탁월한 취향』은 저에게 짙은 의미로 남을 거예요. 책을 내고 싶어 애태운 시간이 있었으니 새털처럼 가볍고 솜사탕처럼 달콤한 마음으로 붕붕 떠다닐 줄 알았는데 아직은 얼떨떨합니다. 푸른 표지의 사랑스러운 이 책 안에 제 글이 적혀 있다는 사실이 꿈만 같아요. 저는 어떤 장르의 글이든 술술 잘 읽히게 쓰고 싶어요. 문장으로 건네는 이야기가 얼마나 매력적인지 소곤대는 글이 샘처럼 솟아났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려면 건조하지 않게 살아야겠죠? 이것만은 절대 ‘포기’하지 않으려고요. 




*홍예진

소설을 쓰고 주변의 이야기를 기록한다. 경희대학교 산업디자인과, 프랑스 파리 ESAT(Ecole Superieure des Arts et Techniques) 무대미술과를 졸업한 뒤 아트디렉터로 활동했으며 대학에서 강의를 했다. 2014년 단편 〈초대받은 사람들〉로 외교부 산하 재외동포문학공모에서 대상을 받으며 본격적인 작가의 길에 들어섰다. 앤솔러지 『소설 뉴욕』에 단편 〈미뉴에트〉를 발표했으며, 재미 작가 프란시스 차의 〈살아가는 동안〉을 우리말로 번역했다. 2021년 가을 장편소설 『소나무 극장』(폴앤니나) 출간을 앞두고 있다.
태어나 자란 한국의 서울과 경기, 프랑스 중부와 남부와 파리, 미국 뉴욕과 보스턴과 미시간을 거쳐, 지금은 코네티컷의 바닷가 마을에 정착해 살고 있다. 남편과 두 아들이 있고, 바닷가 산책하기, 다운타운 어슬렁거리기, 장화 신고 가드닝하기를 좋아한다.



매우 탁월한 취향
매우 탁월한 취향
홍예진 저
책과이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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