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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 스토리] 최은영 “소설가가 돼서 다행이에요”

<월간 채널예스> 2021년 8월호 커버스토리 『밝은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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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내게 주어진 하루하루를 살고, 글을 즐겁게 쓰고, 쓰는 순간 몰입하고 내가 쓸 수 있는 최선의 글을 순간순간 쓰는 것. 쓰고 싶은 것이 있지만 ‘나중에’ 쓰자, 라는 생각은 하지 않고 미루지 않고 자기 두려움에 도전하는 글쓰기를 하는 것. 그 정도를 바라는 것 같아요.” (2021.08.02)


인터뷰하는 대상이 결정되면 최소 2박 3일은 짝사랑하는 기분으로 산다. 인터뷰이의 근황을 샅샅이 살피고 비교적 최근에 했던 인터뷰를 모두 찾아 읽는다. 소설가 최은영은 인터뷰하기 5일 전 제주의 한 도서관에서 온라인 북 토크를 했다. 그의 첫 장편 소설 『밝은 밤』이 출간되었을 것을 예상하고 잡았던 행사. 하지만 출간이 조금 늦어지면서 행사 제목만 ‘밝은 밤’인 행사가 됐다. 최은영이 쓴 그간의 작품들은 익히 읽어 왔다. 팟캐스트에 출연했을 때 음성도 들었으니 말투도 파악, 홀로 친근한 마음을 갖고 질문지를 만드는 데 뾰족한 질문들이 나오지 않았다. 마흔 다섯 개 정도의 질문을 만들었지만 왠지 최은영의 답은 길지 않을 것 같았다. 예상은 조금 맞고 조금 틀렸다. 



답을 주는 건 이상한 일

첫 질문은 뻔하지만 묻지 않을 수 없는 이야기. 첫 장편을 출간한 소감을 물었다. 

“예전에는 출간 후 반응이 걱정됐는데 이제는 그렇게 신경 쓰이지 않아요. 한동안 글을 못 쓰다가 썼으니까요. 그것만으로도 보상 받은 기분이고 완성했다는 것만으로도 100% 만족스럽기 때문에 이 소설에 대해 어떤 평가가 나오든 크게 상관이 없을 것 같아요. 책이 나온 것 자체로 기쁘고요. 장편을 썼다는 것에 뿌듯한 마음이 커요.”

서른에 등단한 최은영은 두 권의 소설집 『쇼코의 미소』『내게 무해한 사람』을 쓰는 내내 ‘나는 왜 더 잘 쓰지 못하지’를 곱씹었다. 이민을 가고 싶은 마음이 들었을 정도였다. 세 번째 책 『밝은 밤』은 2019년 말부터 쓰기 시작해 1년간 계간지 『문학동네』에 연재하고 올해 초 완성한 최은영의 첫 장편. 3년 만에 나온 책이지만 3년간 쓴 소설은 아니다. 

“개인적인 사정으로 1년을 글을 못 쓰다가 다시 쓰기 시작해서 완성한 소설이 『밝은 밤』이에요. 그래서 많이 각별하고요. 원래 작년에 나왔어야 하는 책인데 미뤄졌지만 어쩔 수 없었어요. 그냥 내가 약간 느리게 쓴다, 느리게 하는 사람이라는 느낌을 갖고 마무리를 했어요.”

소재는 2016년에 떠올렸다. 한국 근현대사를 살아온 여자들의 긴 이야기를 써보고 싶었다. 단편도 중편도 구상을 크게 안 하고 쓰는 스타일. 장편 역시 구상하지 않고 시작했는데 사분의 삼 정도를 달리다 보니 글이 막혔다. 이래서 구상을 하고 소설을 써야 하나 싶었지만, 원래 스타일대로 썼다. 

“처음에는 동네 도서관에서 썼어요. PC실에서. 그런데 코로나 바이러스가 심해지면서 도서관이 문을 닫아서 집에서도 쓰고, 독서실을 끊어서 쓰다가 또 문을 닫아서 다시 집에서 썼어요. 그래도 가장 많이 쓴 공간은 독서실일 거예요. 2시쯤 가서 10시까지 쓰기도 하고 11시까지 있기도 하고. 인터넷 검색하고 놀고 또 자고 그러다가 마감이 있으니까 또 쓰고. 그런 일상의 반복이었어요.”

『밝은 밤』은 증조모에서 할머니, 그리고 엄마와 나로 이어지는 4대의 삶을 기록한 소설이다. 주인공 ‘지연’이 이혼 후 정착한 도시 ‘희령’에서 할머니와 재회하고 할머니를 통해 증조모가 살아온 역사를 듣게 된다. 100년의 시간을 관통하는 이야기. 소설의 주인공이 어릴 적 희령에 도착하자마자 할머니에게 마음을 열었듯 최은영의 소설을 좋아하는 독자라면 ‘삼천’과 ‘새비’라는 생소한 이름의 인물과도 금세 친밀해지지 않을까. 

“소설을 쓸 때 어떤 성격의 인물을 쓰겠다는 의도 같은 건 거의 생각하지 않아요. 소설을 생각하다 보면 인물이 떠오르니까요. 만든다기보다는 인물이 나온다는 의미가 더 맞을 것 같아요. 제가 어릴 때 할머니 할아버지가 키워 주셨던 때가 있어요. 할머니 생각을 많이 하고 쓴 소설이라서 할머니의 캐릭터가 많은 인물에 반영이 됐어요. 저는 작품을 무의식적으로 쓰는 것 같아요. 뭘 넣어야지, 그런 건 거의 없어요. 시간이 지난 다음에 읽어 보면 ‘내가 이래서 썼구나’ 하는 게 있겠지만, 살면서 느꼈던 화나고 억울하고 슬프고 그런 감정들을 풀려고 쓴 건, 있는 것 같아요.”

인터뷰를 한 날은 소설이 출간되기 일주일 전이었다. PDF로 받은 소설을 읽으며 인상 깊은 문장에 밑줄을 긋고 옮겨 적다 보니 다섯 장이 훌쩍 넘어갔다. 가장 많이 나오는 단어가 무얼까, 작품 속에서 깊이 배어있는 정서는 무엇일까 헤아려 보려다 생각을 고쳤다. 읽자마자 마음에 흡수된 이야기의 탄생기를 요모조모 따지며 작가에게 묻고 싶지 않았다. 

“소설은 답이 없잖아요. 정답이 없잖아요. 어떤 인물에 대해 쓰다가도 많은 이야기를 삭제하게 되는데, 그건 읽는 사람이 능동적으로 상상할 수 있는 여지를 만들고자 하는 거죠. 그런데 많은 분들이 ‘그때 그 사람은 왜 그랬냐? 이유가 뭐냐?’ 그런 걸 물어보시거든요. 이 구절의 의미는 뭐냐? 라는 질문도 받거든요. 아마 학창시절 국어 교육의 영향이 아닐까 싶기도 한데요. 무엇을 의도했는지는 중요하지 않은 것 같아요. 자기 경험과 생각에 따라 해석하는 게 소설이기 때문에 답을 물어보면 답할 수가 없어요. 이렇게 답하면 ‘저 작가는 생각도 안 하고 썼네?’라고 하는데 저도 물론 생각이 있죠. 하지만 답을 주는 건 이상한 일인 것 같아요.”

『밝은 밤』은 밤 같은 시절을 견뎌낸 여성들의 이야기다. ‘백정의 딸’이라는 이유로 태어날 때부터끊임 없이 공격을 받아야 했던 삼천, 삼천과 각별한 우정을 나누는 새비, 그리고 그들의 딸들, 또 딸들의 딸들. 

“인물들이 살아낸 시대를 밖에서 보면 어둡고 힘들어요. 하지만 실제로 들어가서 보면 이들이 살기 위해 애썼던 행동들은 어둡지만은 않아요. 자신을 믿어야만 버틸 수 있었던, 힘든 가운에서도 피어난 우정들을 생각해보면 ‘밝은 밤’ 같았어요.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런 것 같아요. 인생이 불쌍하다, 팔자가 세다는 이야기를 듣는다고 해도 분명히 좋은 순간들이 있었을 거예요. 남들은 이상하다고 생각할 수 있는 행복도 느꼈을 거고요. 저희 할머니 이야기를 들어봐도 당시에는 너무 힘들었지만 나중에는 좋은 순간들을 많이 기억하시더라고요.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도 살기 위해 했던 선택들에 대해 너무 죄책감을 갖지 말고 자기를 미워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최은영에게 『밝은 밤』의 모든 인물은 각별하다. 다만 지연은 작가와 가장 닮은 인물이라서 초고를 다 쓰고 개고하는 과정에서 바라보기가 어려웠다. 

“제가 만들어낸 인물이지만 그 인물의 감정을 제가 다 느낄 수밖에 없어서 힘들기도 했어요. 하지만 지연이가 살아나가려고 애쓰는 모습이 안타까우면서도 그 자체로 대견하기도 하고 그래서 결과적으로는 힘을 많이 받은 것 같아요. 지연이를 응원하는 게 결국 저를 응원하는 일이 되더라고요. 쉽게 극복하고 나아지고 치유되는 인물이었다면 이런 기분을 못 느꼈을 것 같아요.”

최은영은 등단 후 처음으로 발표한 소설집 『쇼코의 미소』를 펴내며 “자기 자신이라는 이유만으로 멸시와 혐오의 대상이 되는 사람들 쪽에서 세상과 사람을 바라보는 작가가 되고 싶다.”고 작가의 말에 밝혔다. 이 다짐은 두 번째 소설집 『내게 무해한 사람』에 이어 『밝은 밤』에서도 지켜졌다.



있는 그대로 나를 보는 일

최은영은 2018년 단편소설 『몫』을 출간하면서 “소설을 쓸 때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으로 “솔직할 것, 나의 가장 더러운 부분도 쓸 수 있어야 한다는 것, 가까운 사람들의 상처를 함부로 재현하지 않는 것, 사람들의 고통을 이용하지 않는 것, 아는 척 잘난 척. 내가 뭐라고 되는 척하지 않는 것.”이라고 답했다. 3년이라는 시간이 흐른 지금, 추가된 것이 있냐고 물었다. 

“인물들에 관해 너무 비참하게 쓰지는 말자고 생각해요. 문학이라는 것이 행복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쓰는 건 아니지만 극도로 비참하게 만들고 싶진 않아요.”

그의 소설을 읽어온 사람들이라면 그의 성정을 눈치챘을 것이다. 감정이 많은 사람, 마음이 약해 자주 다치는 사람. 『밝은 밤』을 쓰기 전까지 최은영은 “누가 툭 치면 쏟아져내릴 물주머니 같은” 시간을 보냈지만 소설을 쓰며 회복할 수 있었다.

“슬픈 일에 영향을 많이 받아요. 감정이 많아서 항상 힘들어요. 남들이 ‘왜 이런 것 갖고 힘드냐?’고 이야기할 수 있는 문제들도 잘 안 돼요. 몸이 막 반응을 하니까요. 몇 년 전에 상담을 받았었는데 선생님이 선교사로 이민을 가시면서 끝났어요. 화상통화도 했지만 그걸로는 안 되더라고요. 제가 갖고 있는 문제는 항상 똑같았어요. 스스로에게 너무 못되게 굴고 너무 뭐라고 한다. 마치 옆에 보이지 않은 사람들이 따라다니면서 저한테 계속 뭐라고 하는 거예요. 얼마나 슬픈 일이에요.”

다행히 상담을 받으며 많이 편안해졌다. 힘든 일이 생기면 나중에 이 문제를 소설로 써야겠다고 생각한다. 자신의 인생에 언제나 만족하고 행복한 사람은 글을 쓸 수 없으니까. 

최은영은 소설가로 데뷔하기 전 대학에서 한국어 강사로 일했고 영어 과외도 했고 고등학교에서 방과후 교사도 했다. 그러다 책이 나왔고 전업작가가 됐다. 다양한 일을 해본 경험이 창작에도 도움이 되지 않았을까 물었다. 

“그냥 드는 생각은 소설을 쓰는 일이 제 적성에 맞다는 거예요. 예전에 다른 일을 했다면 몰랐겠지만, 이것저것 해봤으니까요. 소설이 나한테는 맞는 일이구나, 그래서 만족하게 돼요.”

등단 초기 최은영은 독자들에게 큰 사랑을 받았지만, “너무 평범한 이야기를 쓴다”, “문장이 평이하다”는 말도 많이 들었다. 얼마간은 고치려고 노력도 했지만 지금은 장점이라고 여긴다. 

“사람들은 대부분 자기 장점을 단점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그런데 장점과 단점은 동전 앞 뒷면 같은 거예요. 평범하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을 때 특별해 보이고 싶은 마음이 들어서 바꾸려고 했어요. 그런데 결국 이 평이한 이야기와 평범한 문체가 제 장점이더라고요. 있는 그대로 내가 할 수 있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게 더 나은 방법 같아요. 내 마음이 안 든다고 고치는 것보다 자기확신을 갖는 게 중요해요. 고치려고 하면 이도 저도 안 되는 경우가 많아요.” 

최은영은 자주 생각한다. “남의 말은 3일 간다”, “어차피 좋아할 사람은 좋아하고 싫어할 사람은 싫어한다.”, “사람들은 나에게 관심이 없다.” 체념적인 말로 들릴 수 있겠지만 나를 지키는 말이기도 하다. 



더 많은 사랑이 있길 바라는 사람

최은영은 소재를 생각하고 글을 구상하는 편이 아니다. “어떤 소재의 글을 쓰고 싶냐?”는 질문을종종 받지만 뚜렷한 답을 내놓은 적이 없다. 그래도 분명한 건 앞으로도 여성의 이야기, 노인이나 아동의 이야기를 비롯해 저평가되어온 관계들에 대해 관심을 놓지 않을 거라는 사실이다. 

최근에는 차별금지법을 많이 생각한다. 최은영이 대학을 다녔던 시절이 19년 전인데 그때도 소수자 차별에 대해 이야기하면 “그 이야기는 다른 일들이 해결된 후 ‘나중에’ 하자”는 반론을 들었다. 그리고 19년이 지난 지금, 사람들은 아직도 ‘나중에’를 말하고 있다. 

“제가 어린 시절에 말했던 ‘나중에’가 이미 도래했는데도 또 ‘나중에’라고 해요. 그 사실이 저를 너무 화나게 해요. 사회가 빠른 속도로 변하지만 소수자 혐오는 더 광범위하게 퍼졌고 이제 어떤 사람들은 그걸 레저처럼 여기기도 해요. 사회가 점점 더 잔인해지고 있다고 피부로 느끼고 있어요. 그리고 제가 자주 생각하는 사회문제 중 하나는 지금 20대들의 고통이죠. 기성세대들이 사다리를 다 걷어차버려서 직장을 구하고 자기가 원하는 삶에 진입하는 것조차도 어렵게 되어버렸잖아요. 제가 20대였을 때와는 비교를 할 수 없을 정도로 어려운 상황이라고 생각해요. 저는 기성세대의 입장에서 20대들의 고통에 책임이 있어요.”

최은영은 대학 시절 여성주의 교지를 만들었다. 2년 동안 잡지를 만들었던 시간이 세상과 인간에 대한 관점을 완전히 바꾸어놓았다. 원래도 예민한 성격이었지만 언어에 더 예민해졌고 스스로와  타인에 대해 완전히 다르게 접근하게 된 계기가 됐다.

“여성주의를 접하면서 저 개인적으로는 동물들에 대해서도 더 가까이 느끼게 됐어요. 교지를 시작한 대학교 1학년 겨울에 정희진 선생님이 학교에 강연을 오셨어요. 그때 제 세상이 완전히 바뀌는 경험을 했어요. 그 전으로는 돌아갈 수 없겠더라고요. 『저는 오늘 꽃을 받았어요』라는 선생님의 책도 찾아 읽었고 시야가 넓어지고 확장되는, 이상할 만큼 가슴 아픈 시기가 있었어요. 그 시기를 지나지 않았으면 글도 쓰지 않았을 것 같다는 확신이 있어요.”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사랑하고 싶다는 마음을 일으키는 이야기”를 쓰고 싶은 최은영. 언제나 관계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최은영. 그가 갖고 싶은 재능이 있다면 무엇일지 궁금했다. 창작으로써의 재능이 아닌 관계에 있어서의 재능.

“이렇게 말하면 이상할 수도 있는데요. 항상 바라는 건 저에게 더 많은 사랑이 있길 바라요. 더 많이 사랑하는 사람은 호구 같다고, 멍청하다고 하잖아요. 하지만 가장 힘이 있는 사람은 언제나 사랑이 많은 사람 같아요. 용기가 있다고 할까요? 타인과 관계를 잘 맺는 사람은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인데, 저는 그 사랑이 부족한 상태로 오래 살았거든요. 아직도 사람과의 관계에 있어 무서워하는 것이 있지만 두려움을 좀 줄이고 사랑을 키워야겠다고 생각해요. 할머니가 될 때까지 살 수 있으려면 마음의 힘이 세야 할 것 같아요. 좋아하는 걸 추구하지도 못하고 두려움 때문에 차선을 택했던 것들이 요즘은 후회가 많이 돼요.”

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건 믿음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상대에게 너무 큰 기대를 하지 않는 것, 최소한의 믿음을 지켜준다면 고마운 일 아닐까. 사람을 대할 때 두 마음으로 대하지 않는 일이 우리에게는 필요하다.



소설가는 나의 천직

요즘 최은영은 피아노를 배우고 전화영어를 하고 요가를 한다. 모두 이틀 간격으로 오전에 하는 일들이다. 정해진 일을 마친 다음에는 점심을 먹고 반려묘의 똥을 치우고 두세 시쯤 독서실에 가서 인터넷 서핑을 한다. 놀다가 시간이 훌쩍 지나가버린 걸 눈치채면 글을 쓴다. 다작하고 싶은 욕망은 처음부터 없었다. 천천히 조금 쓰더라도 괜찮은 원고를 쓰고 싶다고 생각한다. 

“그래도 마감은 웬만하면 지키려고 해요. 며칠 더 잡고 있으면 더 나아질 수 있겠지만, 조금 후지게 발표해도 약속은 지키자, 생각해요. 단행본을 낼 때 고칠 수 있으니까요. 소설을 배울 때, 결국 마지막에 남는 첫 문장은 초고의 첫 문장이 아니라고 들었어요. 일단 쓰다 보면 손이 풀리고 두 장쯤 쓰다가 제대로 시작할 수 있거든요. 습작을 하시는 분들이 있다면 첫 문장이 중요하다는 생각에 너무 겁먹고 쓰지 않는 게 좋아요. 『쇼쿄의 미소』의 첫 문장도 초고의 스물 여섯 번째 페이지에 나온 문장이거든요.”

어릴 적 최은영에게 독서는 놀이였다. 소설가가 된 지금의 독서는 공부가 될 때가 많다. 작가가 되기까지 영향을 미친 책 중에 기억에 남는 책은 호스피스 운동의 선구자인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와 그의 제자 데이비드 케슬러가 쓴 에세이 『인생 수업』. 석사 논문을 쓰던 시절, 베스트셀러라서 읽지 않으려다가 중고서점에서 발견해 읽은 책이다. 

“그때 박사학위를 빨리 받아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을 때였거든요. 논문을 쓰는데 재미도 없고 괴롭고 왜 살았나 싶었는데, 우연히 이 책을 읽게 됐어요. 저자가 정신의학자인데 호스피스병동에서 죽음을 마주한 사람들을 만나요. 그리고 사람들이 죽기 전에 그동안 꿈꿨던 일을 못한 걸 가장 후회한다는 사실을 발견해요. 더 돈을 많이 벌고 사회적인 업적을 쌓아야 했는데, 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었다고 해요. 그때 소설을 써야겠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죽을 때 후회하지 않으려면 내가 원하는 걸 해야겠다고 생각했죠.”

소설을 쓰는 삶을 살게 되며 최은영은 먼 미래는 잘 생각하지 않게 되었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장 가까운 미래조차도 장담할 수 없기 때문에 아침에 눈을 뜨면 내게 주어진 시간은 오늘이라고 생각하고 하루에 충실하고자 노력한다. 

“지금 이 순간 저는 살아 숨을 쉬고 있지만 내일도 그럴 수 있으리라는 보장은 없어요. 그 사실이 무섭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그래서 이 하루가 더 소중해요. 인간의 삶은 유한하고 그 끝이 어디인지 알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요. 그런 의미에서 이제 저는 꿈이 없어요. 그저 내게 주어진 하루하루를 살고, 글을 즐겁게 쓰고, 쓰는 순간 몰입하고 내가 쓸 수 있는 최선의 글을 순간순간 쓰는 것. 쓰고 싶은 것이 있지만 ‘나중에’ 쓰자, 라는 생각은 하지 않고 미루지 않고 자기 두려움에 도전하는 글쓰기를 하는 것. 그 정도를 바라는 것 같아요.”

『밝은 밤』을 두고 최은영은 “최선을 다했다”고 말했다. 열심히 썼던 기억이 소중하니까, 전작들을쓰면서 했던 ‘나 왜 이렇게 못 쓰지?” 같은 생각은 하지 않았다. 요즘 자주 생각하는 건 독자들에 대한 고마움. 새롭고 재미있는 것들이 쏟아지는 세상에서 시간을 들여 책을 읽는다는 것, 소설을 읽는다는 것이 얼마나 드물고 귀한 일인지 틈틈이 곱씹는다.

“천직이라는 말이 이상한 말이라고 생각했는데 소설가로 살고 보니 소설가가 저의 천직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삶과 직업이 떨어져 있는 게 아니라 겹쳐 있다고 해야 할까요. 일이 일 자체로서의 보상을 주고 제 삶에 숨을 불어넣어주더라고요. 일을 통해, 일을 수단 삼아 무엇을 목표로 하는 것이 아니라 일을 할 때 그 일 자체로 만족하게 되는 마음이 들어서 정말 제가 작가로 살 수 있는 지금에 감사한 마음을 느껴요. 늘 마음에 허함이 있는데 소설 쓰기는 그 허함을 채워주는 몇 안 되는 일이고, 이 일을 하지 않았으면 이 일로만 채워질 수 있는 부분에 대한 허기를 계속 느끼며 살아갔으리라고 생각해요. 소설가가 되어서 정말 다행이다, 행복하다, 라고 자주 생각해요.”

연재 마감을 앞두고 초조한 마음으로 독서실에 들어가 바로 원고를 쓰지 못하고 이것저것 인터넷 서핑을 하는 최은영의 모습을 상상했다. 글이 써지지 않는 날은 무척 좌절했을 테고 진도가 많이 나간 날에는 뿌듯한 마음으로 집에 돌아왔을 것이다. 문득 아포리즘 같은 문장이 써졌을 때는 기어이 삭제했을 테고 인물이 너무 비참하다고 느껴지면 방향을 조금 틀었을 것이다. 그렇게 완성된 초고를 여러 번 개고하고 최종고를 완성했을 때, 얼마나 행복했을까. 최은영은 『밝은 밤』 작가의 말에 “소설이 책이라는 몸을 입을 때 나는 늘 이별하는 기분을 느낀다. 책은 책의 운명을 살 것이다.”라고 썼다. 『밝은 밤』은 이제 작가의 손을 떠나 독자에게 향한다. 소설은 작가의 기획 의도가 없는 작품. 해석과 감상은 모두 독자의 몫이다. 최은영은 “사람에 대한 이해라는 것은 늘 과정일 뿐이고, 결과로서의 이해는 불가능하다. 완전히 이해할 수 없지만 이해해보려고 노력하는 과정이 소중하게 느껴진다”고 말했다. 어쩌면 작가는 독자보다 뒤늦게 이 소설을 써야 했던, 쓰게 했던 이유를 알게 될지 모른다. 그리고 또 도전할 것이다. 나중에 쓰자고 미루지 않고 순간순간 최선의 글을 쓰면서, 그 과정을 사랑하게 될 것이다. 



*최은영(소설가)

고려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했다. 2013년 중편소설 「쇼코의 미소」로 [작가세계] 신인상을 받으며 등단했다. 소설집 『쇼코의 미소』 『내게 무해한 사람』이 있다. 허균문학작가상, 김준성문학상, 이해조소설문학상, 한국일보문학상, 제5회, 제8회, 제11회 젊은작가상을 수상했다.



밝은 밤
밝은 밤
최은영 저
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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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엄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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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umji01@ye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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