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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아 “뒤늦게 울지 않는 만화를 그리고 싶다”

『오늘의 단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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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키와 사는 모습을 SNS에 종종 올린 뒤로, 개에 관한 에세이를 써보자는 제안을 더러 받았어요. 그런데 애써 거절을 했던 건 키키의 이야기를 하는 게 마냥 즐겁지만은 않았기 때문이에요. 반려견과 함께 산다는 건 기약된 헤어짐을 알고 지내는 거니까요. (2021.07.28)


‘생활견’ 키키와 ‘반려인’ 진아는 사계절을 한껏 즐길 줄 안다. 자두를 한 바구니 쌓아 놓고 먹는다거나, 밤바람을 맞으며 마시는 맥주의 맛으로 여름을 행복하게 기억하는 이들을 보면 저절로 흐뭇해져서 지나가는 여름을 붙잡고 싶다. 전작 『빵 고르듯 살고 싶다』 『사물에게 배웁니다』 등으로 일상의 소소한 기쁨을 포착해 기록한 작가 임진아가 이번에는 반려견 키키와 살며 애틋하게 다가온 계절의 단어들을 모았다. 『오늘의 단어』는 키키와 진아가 함께 쓰고 그린 이야기다.

 



키키와 진아의 사계절

반려견 키키와 함께한 책은 처음이시죠? 기분이 남다를 것 같아요. 

제 그림 속에 키키가 등장한 적은 많았지만, 키키의 이름을 담아 책을 만든 건 처음이에요. 키키와 함께하게 되어서 너무 좋죠. 만화에서는 키키의 이야기를 주로 담고, 이후 등장하는 글에서는 키키의 목소리를 넘지 않는 선에서 ‘우리의 진짜 이야기는 이렇습니다’라는 설명을 썼어요. 저의 이야기보다 키키의 시선이 잘 담겼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시 큐레이션 앱 ‘시요일’에 연재했던 만화 「키키의 산책-우리가 아는 단어」가 책으로 묶였어요. 어떻게 작업이 이루어진 건가요? 

시요일에서 만화 연재 제안을 받고, 머뭇거림 없이 수락을 했어요. 제가 키키에 대해 그리는 이야기가 아니라 ‘키키가 동거인 진아를 관찰한 일기’였으면 한다는 기획이 너무 마음에 들었거든요. 키키의 눈에 비친 진아의 모습은 저에게도 무척 궁금한 이야기였으니까요. 작년 봄부터 연재를 시작해 겨울까지 이어가는 동안 이걸 책으로 묶으면 좋겠다는 이야기가 있었고, 연재가 끝나자마자 바로 출간 작업에 들어갔어요. 함께 실릴 글을 추가로 쓰고, 그림 작업을 더해서 책이 완성됐죠. 

책에서는 ‘여름’의 이야기로 시작해 ‘봄’ 이야기로 끝을 맺어요. 

연재 당시에는 봄에 시작해서 겨울에 끝이 났는데요. 연재 담당자님께 “책에서는 꼭 봄이 처음에 오지 않아도 좋을 것 같다”는 말을 어렴풋이 한 적이 있었어요. 이후 출간 일정이 잡히면서 책을 편집해주신 김미라 편집자님을 만났는데 원고를 쭉 보시고는 “이 만화는 봄이 아니라 여름으로 시작해도 좋을 것 같다”고 말씀하시더라고요. 마음이 통한 것 같아서 놀랐고, 기뻤죠(웃음). 독자 분들께서도 책이 출간된 계절인 여름의 이야기를 처음에 보실 수 있어서 더 좋아하실 것 같아요. 

작가 후기에서 “이 만화는 저에게 시작입니다”라고 했어요. 어떤 의미였나요? 

그동안 일러스트를 만화 형식으로 작업하거나 한두 컷 정도 짧은 만화 느낌의 그림을 그린 적은 있지만, 책 한 권을 만화로 채운 건 처음이었거든요. 저는 동경하는 만화가의 원화를 보기 위해서 도쿄행 비행기 티켓을 바로 끊을 정도로 만화를 좋아하지만 ‘과연 내가 할 수 있는 일일까?’라는 질문 앞에서는 늘 고민이 많았어요. 그런데 이 책 덕분에 용기를 얻었죠. 앞으로 내가 만화 작업을 할 수 있게 된다면, ‘만화를 그리는 나’의 시작은 지금이 아닐까 싶었어요. 『오늘의 단어』는 ‘지금은 못하는 것도, 언젠가는 할 수 있겠구나’라는 용기를 준 책이에요. 



뒤늦게 울지 않는 만화를 그리고 싶다

키키와의 첫만남이 궁금해요. 

원래 오빠가 키우던 강아지였는데, 바빠지면서 키키를 본가로 보냈어요. 그 당시 저희 가족은 16년간 함께한 반려견과 사별을 한 상태였거든요. 키키가 그 빈자리를 채워주며 알게 모르게 우리의 슬픔을 품어줬던 것 같아요. 쭉 본가에서 함께 살다가 키키가 6살이 되었을 때 제가 독립을 하면서 같이 나오게 됐죠. 저 혼자 키키를 온전히 책임지기 시작한 건 그때부터였기 때문에, 제가 독립한 날이 키키와 처음 만난 날처럼 느껴지곤 해요. 

독립할 때 키키를 데리고 나온 이유가 무엇이었나요?  

부모님이 주는 사랑의 방식이 키키의 건강에는 안 좋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사람이 먹는 음식을 자꾸 나눠주셔서, 한때 키키의 건강이 나빠졌었거든요. 그리고 키키는 조용한 걸 좋아하는 강아지라서 성향이 비슷한 저와 함께 사는 게 더 편할 것 같았어요. 이를테면 엄마가 크게 통화를 시작하면, 키키는 다른 방으로 건너가요(웃음). 아빠가 술을 드시고 들어온 날은 침대 밑에 숨기도 하고요. 그런 키키에게 평화를 선사하고 싶었어요. 

인터뷰를 준비하면서 ‘키키가 사람이라면, 어떤 성향일 것 같냐’는 질문을 하려다가 책을 끝까지 읽고 그만두었어요. ‘키키를 왜 사람에 빗대야 할까? 키키는 키키인데’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감동적인 이야기네요(웃음). 그렇게 봐주셔서 감사해요. 저도 키키를 의인화해서 그린 게 아니라, 평상시 우리의 모습을 담았다고 생각해요. 실제로 키키와 나누는 대화가 많거든요. 예를 들면 단둘이 집에 있을 때 어디서 소리가 나면 동시에 그쪽을 돌아봤다가, 곧장 서로를 쳐다봐요. 제가 “무슨 소리야?”라고 키키에게 묻기도 하고요(웃음). 이런 우리의 모습이 만화에 자연스레 담긴 것 같아요. 

만화 속에서 ‘진아’보다 ‘키키’의 책 읽는 모습이 많은 게 재미있었어요. 

만화 속 키키의 성격을 ‘혼자 있는 시간을 좋아하고, 그 시간을 충실히 갖는 캐릭터’로 설정했거든요. 누구와 함께 살더라도 책을 읽는 시간은 철저히 혼자인 시간이 되잖아요. 한 공간에 있지만 우리에게는 각자의 시간이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어요. 키키는 책을 읽기 위해 산책을 마다하기도 하고, 원하는 책을 사려고 다른 동네에 가기도 해요. 그렇게 자기 세상을 모으고, 일상을 잘 돌보는 강아지로 그리고 싶었어요. 

책에 실린 단어 중, 특히 애착이 가는 게 있나요? 

‘양말’과 ‘반’이요. 두 단어 모두 키키와의 마지막을 생각하는 이야기인데요. 키키와 함께하는 날들을 슬프게 그리고 싶지 않지만, 그럼에도 우리에게는 끝이 있고 지금 이 순간이 우리의 소중한 하루라는 사실을 잊지 않고 싶어요. 

“먼 훗날의 내가 다시 읽더라도 울지 않을 수 있는 만화를 그립니다.(342쪽)”라고 한 것도 키키와의 마지막을 생각했기 때문인가요?

키키와 사는 모습을 SNS에 종종 올린 뒤로, 개에 관한 에세이를 써보자는 제안을 더러 받았어요. 그런데 애써 거절을 했던 건 키키의 이야기를 하는 게 마냥 즐겁지만은 않았기 때문이에요. 반려견과 함께 산다는 건 기약된 헤어짐을 알고 지내는 거니까요. 그 생각을 빼놓고 키키의 이야기를 할 수 없었고, 그렇다면 작업을 할 때 너무 슬플 것 같더라고요. 하지만 이번 책은 ‘키키가 진아를 바라보는 이야기’라는 기획이었기 때문에 즐겁게 임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덕분에 키키가 되어볼 수 있어서 좋았고, 작업하는 내내 ‘만화 속 진아와 밖의 진아가 이걸 보고 뒤늦게 울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계절의 작은 행복을 놓치지 않았으면

감각적인 행복의 이야기가 많았어요. 키키가 냄새로 세상을 알아간다면, 진아는 좋은 소리를 모으는 사람이더라고요. 

혼자 살면서 일상의 소리에 귀 기울이게 되었어요. 이를테면 비가 막 내리기 시작할 때 동네 사람들이 동시에 창문을 막 닫거든요. 그런 소리를 들을 때 너무 좋아요(웃음). ‘이건 비 오는 마을의 소리야!’ 하면서 비가 오기를 기다리게 되고요. 키키처럼 냄새에 행복해할 때도 많죠. 작업실 옆에 쿠키집이 하나 있는데요. 잼이나 초코를 끓일 때 향이 엄청나거든요. 그래서 쿠키를 미리 사놨다가 카페에서 잼을 끓일 때 맞춰서 먹어요(웃음). 그럼 너무 맛있어요. 이렇게 소소한 즐거움을 느끼며 행복해하죠.

글도 쓰고 그림도 그리시잖아요. 두 장르가 작가님에게 어떻게 느껴지나요?

그림은 동력이 많이 들어서, 무리하지 않으려고 애쓰게 되는 장르인 것 같아요. 또 제 그림이 삽화로 많이 쓰이기 때문에 글을 넘지 않으려 애쓰죠. 반면 글은 육체적으로는 덜 힘들지만 생각을 꺼내서 하나의 덩어리로 만들기까지 감정소모가 정말 많다는 걸 느껴요. 둘 다 너무 좋고, 재미있는데요. 제 성향에 더 잘 맞는 건 글인 것 같아요. 잘 쓰고 싶다는 의욕이 뒤늦게 생겨서 요즘은 좋은 글이 무엇인가에 대해 자주 고민해요. 

요즘 작가님을 가장 즐겁게 하는 게 있다면요. 

여름 과일을 챙겨 먹는 거요. 최근에 신비복숭아를 먹었는데 너무 맛있어서 네 박스째 먹고 있어요(웃음). 이 계절이 지나면 한동안 못 먹으니까 열심히 먹어야죠. 

키키와 함께 보내는 하루 중 가장 행복한 순간이 언제예요?

산책 갈 때요. 아침에 일어나면 같이 밥을 먹고 도보 20분 거리의 작업실로 출근을 하거든요. 제가 일을 할 동안 키키는 계속 기다리는 입장인데, 산책을 할 때만큼은 키키가 주인공이 돼요. 그동안 못 누린 걸 다 누리겠다는 기세로 앞장서서 막 뛰어가는 모습을 보면 키키의 몸과 마음이 건강하다는 증거인 것 같아서 참 좋아요. 

오늘 작가님과 키키의 하루를 표현할 단어는 무엇일까요? 

저는 ‘시작’이요. 그동안 인터뷰를 많이 안 해봐서, 책을 앞에 두고 함께 이야기 나눌 수 있다는 게 어떤 ‘시작’ 같은 느낌이 들어요. 키키는 아마도 ‘편지’를 고를 거예요. 저에게 만화 연재를 제안해주신 편집자님이 오늘 키키에게 편지를 주셨거든요. 저에게 쓴 이야기는 없고, 오직 키키를 위한 편지였어요. 그래서 더 의미가 있을 것 같아요.


 

어떤 독자들이 이 책을 읽으면 좋을까요?

바쁘게 지내느라 오늘의 계절을 놓치는 분들 혹은 우리에게 계절이 있다는 걸 ‘춥고 더운’ 날씨의 힘듦으로 먼저 느끼는 분들에게 권하고 싶어요. 계절이 주는 그날만의 행복이 분명히 있으니까 이 책을 통해 한번 예습해 보시고, 다음 계절에는 꼭 그 작은 행복을 느껴보셨으면 좋겠어요.




*임진아

살면서 느끼는 것들을 그리거나 쓴다. 일상의 자잘한 순간을 만화, 글씨, 그림으로 표현한다. 누군가의 어느 날과 닮아 있는 순간을 그리거나 쓴다. 좋아하는 것이 있기에 스스로 감동받는 삶을 살고 있다. 연재한 만화로는 「엊그제」와 「임양의 사소한 일상」이 있고, 개인 작업으로는 〈괜찮씨의 하루〉, 〈이십대 쌀 상회〉, 〈인생 아마추어〉 등이 있다. 지은 책으로는 『사물에게 배웁니다』, 『빵 고르듯 살고 싶다』, 『아직, 도쿄』가 있으며, 그린 책으로는 『오늘도 대한민국은 이상 기후입니다!』, 『마음 곁에 두는 마음』 등이 있다. 『지금은 살림력을 키울 시간입니다』, 『나의 복숭아』 등에 글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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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아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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