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신화는 무엇을 설명하고 있을까? : 천둥과 태양의 신들, 그리고 인간처럼 죽는 신

한승훈의 신화의 질문 3화

  • 페이스북
  • 트위터
  • 복사

오늘날 신화는 자연이나 역사에 대한 설명이라는 관점은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이유는 간단하다. 신화적인 설명은 문제를 이해하거나 명확히 하는 것을 돕기보다는 오히려 복잡하고 모호하게 만든다. (2021.07.02)

종교학자 한승훈의 '신화의 질문' 칼럼이 격주 금요일 연재됩니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신화를 새롭게 읽으며, 인류의 흥미진진한 질문과 만나 보세요.


「코노하나사쿠야히메노미코토」, 가츠시카 호쿠사이 , 『富嶽百景』 (1834) 初編

19세기 이전까지 학자들은 신화가 주로 두 가지 영역에 대한 설명을 담고 있는 이야기라고 보았다. 하나는 자연현상이다. 최초로 신화를 만들어낸 원시인들은 해가 뜨고 지는 것, 달이 차고 기우는 것, 별들의 운행이나 날씨의 변화와 같은 현상에 관심을 가졌다. 태초의 과학자이자, 철학자이자, 시인이었던 이들은 일반적으로 자연현상을 인격화하는 설명을 선호했다. 태양의 신들은 이집트의 라처럼 배를 타거나, 인도의 수리아처럼 전차를 타고 하늘을 가로지른다. 신화는 식물이나 동물, 때로는 세계나 인간 스스로의 기원을 설명하기도 한다. 

다른 하나의 영역은 역사다. 신화는 기록으로 남지 않을 만큼 오래된 과거에 있었던 건국, 전쟁, 위인들의 업적을 신과 영웅들의 이야기로 꾸며서 전달한다는 이야기다. 이런 관점을 고대 그리스 학자인 유헤메로스의 이름을 따서 유헤메리즘이라고도 부른다. 이런 식의 신화 해석은 오늘날 우리에게도 비교적 친숙하다. 단군 신화에 나오는 곰과 호랑이가 동물 토템을 섬기는 두 개의 부족을 상징한다거나, 환웅이 데리고 온 풍백, 우사, 운사 등은 날씨와 관련이 있는 신들이니 이들이 땅에 내려온 것은 농사에 대한 지식의 전파를 의미한다는 등의 해석이 여기에 속한다. 

오늘날 신화는 자연이나 역사에 대한 설명이라는 관점은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이유는 간단하다. 신화적인 설명은 문제를 이해하거나 명확히 하는 것을 돕기보다는(우리는 보통 그런 것을 ‘설명’이라고 말한다.) 오히려 복잡하고 모호하게 만든다. 이 문제에 대해 파스칼 보이어는 『종교, 설명하기』 에서 다음과 같은 예시를 든다. 천둥이 못된 인간에게 화를 내는 신의 목소리라는 신화적 설명이 있다고 하자. 그런데 이런 설명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갈 수 없는 머나먼 영역이라든가,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는 초자연적인 행위자들의 존재라든가, 그들이 가진 엄청난 능력에 대한 여러 가정과 상상이 덧붙여져야 한다. 자연현상에 대해서는 신화적인 설명을 시도할수록 설명해야 할 문제가 오히려 늘어나는 셈이다. 

역사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신화가 만들어질 당시의 역사적 상황이나 사건이 이야기에 반영되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그러나 신화는 사실의 기록에는 별 관심이 없으며, 역사적 사실을 상징적으로 암호화해서 보존할 필요도 그다지 없다. 오히려 많은 경우 신화는 역사적 사실을 설명하기보다는 은폐한다. 역사성이 짙은 신화가 만들어지는 것은 주로 특정한 지배집단을 옹호해야 할 필요가 있거나, 정당성이 떨어지는 권력의 존재를 합리화해야 하는 상황이다. 바로 그런 이유로 에드워드 타일러는 『원시문화』 에서 신화가 “역사를 해명한다기보다는 그것을 해명하기 위해 역사가 필요한 실정”이라고 말한 것이다.

이렇게 하여 신화가 무언가를 설명하는 이야기라는 이론은 완전히 논파된 것인가? 그렇지는 않다. 20세기 초의 인류학자 말리노프스키는 현지조사를 통해 원시사회에서 신화가 실제로 어떤 기능을 하는가에 관심을 가졌다. 그에 의하면 신화가 설명하는 것은 자연이나 역사 같은 것이 아니다. 신화는 도덕이나 규범을 왜 지켜야 하는지, 의례는 왜 수행되어야 하는지, 사회가 공유하는 신앙이 왜 진실인지를 보여주는 실용적인 헌장이다. 다시 말해서 신화는 그냥 설명이 아니라 무언가를 정당화하는 설명이다. 신화의 주된 기능이 사회의 도덕이나 규범을 지지하는 것이라는 말리노프스키의 주장은 흥미롭긴 하지만, 현지조사를 통해서 신화를 둘러싼 사회적 맥락을 살필 수 없는 고전신화들에 대해서 이런 관점을 적용하기가 곤란한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신화적 설명이 무언가에 대한 정당화, 합리화라는 아이디어는 기억해 둘 필요가 있다. 동남아시아를 중심으로 나타나는 신화 유형 가운데 ‘바나나형(型) 신화’라는 것이 있다. 태초의 인간이 돌(혹은 먹기 힘든 것)과 바나나(혹은 먹기 좋은 것) 가운데 물렁하고 잘 상하는 바나나 쪽을 택했기 때문에 불로불사의 기회를 잃고 유한한 생명을 갖게 되었다는 ‘설명’을 담은 신화다. 그런데 이 유형에 속하는 일본 신화로 천황가의 조상인 천손(天孫) 니니기노미코토의 이야기가 있다. 니니기가 지상에 내려와 바위의 신인 이와나가히메와 꽃의 신인 코노하나노사쿠야히메 가운데 아름답지만 곧 시들어버리는 꽃의 신을 아내로 맞았기 때문에 그 후손들은 한정된 수명을 갖게 되었다는 이야기다. 이것은 천황이 신의 자손이라는 이데올로기와 그들이 평범한 인간과 같이 늙고 죽는다는 현실 사이의 모순을 봉합하기 위한 정당화 논리다.


추천도서: 말리노우스키, 서영대 옮김, 『원시신화론』 (민속원, 1996)



추천기사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이 기사가 마음에 드셨다면 아래 SNS 버튼을 눌러 추천해주세요.

독자 리뷰

(11개)

  • 독자 의견 이벤트

채널예스 독자 리뷰 혜택 안내

닫기

부분 인원 혜택 (YES포인트)
댓글왕 1 30,000원
우수 댓글상 11 10,000원
노력상 12 5,000원
 등록
더보기

글 | 한승훈(종교학자)

오늘의 책

게이고답지만 게이고답지 않은 소설

2001년에 발표된 게 믿기지 않는 게이고의 장편 소설. 어느 날 나타난 친구의 ‘여성이지만 남성의 마음을 가졌다’는 고백. 거기다 살인까지. 충격적인 이야기의 뒤엔 젠더, 사회의 정상성, 결혼 등에 대한 질문이 숨겨졌다. 그답게 세심한 미스터리 흐름을 좇게 만드는 소설.

다정한 사람이 더 많습니다

박지현 저자는 15년간 다큐멘터리 디렉터로 일하며 다양한 사람을 만나왔다. 유재석과 같은 인기 연예인에서부터 일반인, 시한부 인생, 범죄자까지. 다채로운 삶을 접하며 확인한 것은 세상은 아직 살 만하고 우리사회에는 다정한 사람이 더 많다는 사실이다.

입지 키워드로 보는 부동산 이야기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 그리고 현대에 이르기까지 입지를 중심으로 한반도의 부동산 역사를 담았다. 교육 환경부터 도시계획까지 5개의 키워드를 중심으로 역사 속 사건을 통해 부동산 입지 변천사를 보여주며 현대에는 어떻게 변화되었는지 한눈에 살펴볼 수 있는 책이다.

광고인 박웅현이 사랑한 문장들

『책은 도끼다』, 『여덟 단어』의 저자 광고인 박웅현이 아껴 기록한 문장들을 소개한다. 그가 ‘몸으로 읽’어낸 문장들은 살아가는 동안 일상 곳곳에서 생각을 깨우는 질문이 되고, 그 답을 찾는 과정의 든든한 안내자가 된다. 이제 살아있는 독서를 경험할 시간이다!

.

주목! 투데이 포커스


문화지원프로젝트
PYCHYESWEB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