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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죽음이 아니라 삶에 이끌린 것이다

『어느 날, 죽음이 만나자고 했다』 정상훈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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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쓰면서 가장 경계했던 것은 ‘메시지를 전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었습니다. 저에게는 빈곤, 차별, 대립으로 갈라진 세계를 치유할 해결책이 없습니다. (2021.06.21)


살아 있는 모든 것들아, 부디 행복하고 편안하여라  - 숫타니파타 

『어느 날, 죽음이 만나자고 했다』는 지독한 우울증을 앓던 한 의사가 세상의 밑바닥 가난하고 아픈 사람들을 살리고자 고군분투하며 삶의 의미를 찾아가는 여정을 담은 에세이다. 돈 잘 버는 의사보다 세상을 고치는 의사가 되고자 치열하고 굳건하게 살아가던 의사 정상훈, 그에게 어느 날 갑자기 우울증이라는 병이 찾아왔다. 

2년에 걸친 치료로 우울증에서 점차 회복되었지만 그의 머릿속에 떠나지 않는 질문이 있었다. ‘인생은 살 만한 가치가 있는가?’ 질문은 허공을 헤맸고 삶의 이유를 찾지 못한 채 죽음에 이끌리던 그는 국경없는의사회 해외구호활동가가 되어 지구 반대편 죽음이 만연한 나라들로 향했다. 서아시아 빈곤국인 아르메니아, 내전이 한창이던 레바논, 치사율이 50~90%까지 치솟은 에볼라 바이러스가 창궐한 서아프리카 시에라리온까지. 생사의 경계를 넘나들다 ‘한국인 최초의 에볼라 의사’가 되어 돌아온 그가 세상의 온갖 아픔을 문자 안에 꾹꾹 눌러 담았다. 



간단한 자기소개를 부탁드려요. 

국경없는의사회 해외 구호 활동가였고 지금은 프리랜서 의사입니다. 『동네의사와 기본소득』 그리고 『어느 날, 죽음이 만나자고 했다』 를 쓰기도 했습니다.

행동하는의사회를 창립하시고, 멀리 지구 반대편으로 국경없는의사회 구호활동을 떠나셨습니다. ‘돈 잘 버는 의사’의 길을 택하지 않으신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요?

아쉽게도 ‘특별한’ 이유는 없습니다. 저는 ‘돈 잘 버는 의사’의 길에 욕망을 느껴 본 적이 없습니다. 그러니까 돈 벌고 싶은 욕망을 억누르며 다른 무엇인가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저는 클래식 음악 듣기를 좋아합니다. 저에게 ‘왜 K-pop을 듣지 않는가?’라고 물으신다면, 아마 똑같은 답변을 하게 되겠지요.

책 맨 처음에 ‘아들에게 쓴 편지’가 나옵니다. 편지로 책을 시작한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요?

편지를 넣게 된 것은 처음에는 독자들을 위한 고려였습니다. 출판사에서 제가 우울증에 걸리고 회복한 다음 아르메니아로 떠나는 이야기에 공감하기 어렵다는 의견을 주셨습니다. 사실 저는 속이 상했습니다. 우울증 환자의 듬성듬성 구멍 난 기억과 감정을 어떻게 이해하기 쉽게 전달할 수 있단 말인가? 그러다가 큰 아들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으로 바꿔 보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제 어리석음에 또 다시 깜짝 놀랐습니다. 제 선택에 대해서 먼저 설명해줘야 하는 사람은 독자가 아니라 큰 아들이었더군요. 비록 책의 일부이지만, 큰 아들에게 편지를 쓸 기회를 얻어 기뻤습니다. 큰 아들은 ‘아들에게 쓴 편지’를 읽다가 말았답니다. “눈물이 너무 나서 못 읽겠다”라고 하더군요. 큰 아들도 저처럼 눈물이 많은 사람이었어요.

선생님께서는 구호활동을 통해 많은 의료 사각지대를 다녀오셨는데, 책에 미처 담지 못했던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을까요? 

시에라리온의 에볼라 관리센터에 한 중년 남성이 입원했습니다. 그는 열이 펄펄 끓었습니다. 독자 여러분은 코로나19 때문에 ‘선별진료소’에 익숙하실 테죠. 코로나19 감염이 의심스러운 사람을 검사해서 양성이면 코로나 전담병원에 입원시킵니다. 그런데 에볼라에는 그런 선별진료소가 없습니다. 2014년 유행 초기 치명률이 90%에 달한데다 피나 땀 같은 체액으로 옮깁니다. 그러니까 검사 행위 자체가 극도로 위험한 것이죠. 시에라리온에서는 열이 나는 사람을 모두 에볼라 관리센터에 입원시켰습니다. 그리고 에볼라 음성이 나오면 퇴원시키는 방식이었죠. 그 남성은 온몸의 근육이 경련을 일으켜 뒤틀리다가 급기야 허리가 뒤로 꺾였습니다. 그는 에볼라가 아니라 파상풍에 걸렸던 것입니다. 하지만 에볼라 관리 센터에는 파상풍 치료제가 없었어요. 모든 근육이 경련을 일으키면 숨을 쉴 수 없어 죽게 됩니다. 정신은 멀쩡한데 말입니다. 그는 에볼라 확진 검사 결과가 나오기도 전에 죽고 말았습니다. 

반대로 책에 담긴 이야기 중 가장 기억에 강하게 남는 에피소드에 대해서도 알고 싶어요. 혹은 기억에 남는 문장도 좋습니다.

참 가혹한 질문입니다.(웃음) 책을 구상하는 단계, 한참 원고를 쓸 때 그리고 퇴고할 때, 저를 강하게 사로잡았던 에피소드는 각각 달랐거든요. 이 책은 구호 활동 기록이기도 하지만, 저의 성장기이기도 합니다. 제가 더 성장하고 부디 더 지혜로워진다면, 제 기억과 감정은 완전히 뒤바뀔지도 모릅니다. 저는 오히려 독자들이 어떤 에피소드를 가장 강렬하게 기억할지 궁금합니다. 제일 그러지 못한 에피소드를 저는 가장 아끼게 될 테니까요.(웃음)

책에는 한국과 멀리 떨어진 아르메니아, 레바논, 시에라리온의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 지금 한국에 사는 우리에게 머나먼 나라의 이야기들이 시사하는 바가 있을까요?

책을 쓰면서 가장 경계했던 것은 ‘메시지를 전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었습니다. 저에게는 빈곤, 차별, 대립으로 갈라진 세계를 치유할 해결책이 없습니다. 그것이 구호 현장에서 저를 사로잡던 절망감의 뿌리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니 저는 독자들에게 무엇인가를 ‘시사’할 능력도 자격도 없습니다. 다만 저의 이야기를 할 수 있을 뿐입니다. 저는 그곳에서 ‘자아’가 사라지는 경험을 했습니다. 그러자 의미를 지닌 채 유일하게 남은 것은 고통 받는 이들을 돕는 행위였습니다. 저에게 벌어진 일은 저에게만 가능할까요? 그렇지는 않겠지요. 제가 사는 지역 버스에 ‘미얀마 민주화 운동을 지지합니다’라는 광고가 붙어있더군요. 얼마 전까지도 미얀마는 우리에게 참으로 ‘머나먼’ 나라가 아니었던가요?

3부 제목이 ‘그래도 살아야 하는 이유’입니다. 제목이 품고 있는 뜻이 궁금합니다. 선생님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 이유를 찾으셨는지요?  선생님의 ‘그래도 살아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지요? 

우울증은 제 영혼에 지워지지 않는 흉터처럼 하나의 질문을 남겼습니다. ‘나는 왜 살아야 하는가?’ 세 번의 구호 활동은 그 답을 찾는 여정이었습니다. 물론 처음부터 그것을 알았던 것은 아닙니다. 저는 단지 죽음에 끌렸을 뿐입니다. 그러다가 지구 반대편에서 저를 애타게 부르는 소년을 만났을 때, 저는 깨달았습니다. ‘나는 살아서 이곳에 왔어야만 했다!’ 앞으로 저는 오마르와 파티마타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들이 못다한 질문을 이 세상에 던져야만 합니다. ‘우리의 짧았던 삶은 무엇인가요?’ 그러자면 저는 살아남아야 합니다.  

지금은 선생님을 필요로 하는 방방곡곡 의료 현장에서 ‘동네 의사’로 일하고 있다고 하셨는데요. 앞으로의 계획이 궁금합니다. 혹시 또다시 국경없는의사회 활동을 계획 중이신지요? 

제 책의 모티프가 된 『시지프스 신화』에서 알베르 까뮈는 ‘자살’에 관해 어떤 결론을 내렸을까요? 그 역시 살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럼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가능한 다양한 삶! 여러 사람의 인생! 저는 물론 까뮈의 가르침을 따라 살아야겠다고 생각해본 적은 없습니다. 그런데 반쯤 살고 보니 참 다양하고 별난 삶을 살았더군요. 저는 세상의 아픔이 보여주는 길을 따라 살 작정입니다. 아픔 앞에 늘 깨어있고자 애쓸 것입니다. 하지만 구체적으로 무슨 일을 할지는 우연에 맡겨볼 생각입니다. 뒤돌아 보면 제 삶에서 중요한 선택은 대부분 우연히 찾아왔기 때문입니다.    



<슬기로운 의사 생활>, <낭만 닥터 김사부> 등 최근에 많은 드라마에서 의사 캐릭터가 등장하고 인기를 얻고 있습니다. 작가님께서 생각하시는, 후배 의학도들에게 가장 좋은 귀감이 될 것 같은 의사 캐릭터가 있을까요?  

저는 TV를 거의 보지 않아요. 그래도 제가 닮고 싶었던 의사는 ‘체 게바라’입니다. 그는 불가능한 것을 꿈꾸었던 인간이기 때문입니다.

 



*정상훈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서울대병원 의료관리학교실 전공의로 재직했다. 돈 잘 버는 의사보다 세상을 고치는 의사가 되고자 의료인 단체 ‘행동하는의사회’를 창립해 남다른 의사의 길을 걸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에게 믿을 수 없는 일이 찾아왔다. ‘우울증’이라는 병이었다. 그는 운명 앞에 좌절했고 세상을 피해 자기 안으로 깊이 침잠했다. 2년에 걸쳐 우울증에서 회복한 후, 삶의 의미를 되찾기 위해 ‘국경없는의사회’ 해외구호활동가가 되어 지구 반대편 가난한 나라들로 향했다.



어느 날, 죽음이 만나자고 했다
어느 날, 죽음이 만나자고 했다
정상훈 저
웅진지식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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