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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솔미 에세이] 불발언 : 이 면접에 붙고 싶지 않습니다

박솔미의 오래 머금고 뱉는 말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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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과거가 회사의 현재와 미래에 어떻게 기여할 수 있을지를 가늠하기 때문이다. 비슷한 업계끼리는 서로 사정을 잘 알기 때문에 함부로 부풀려 말할 수도 없다. (2021.03.26)

언스플래쉬

어떤 표정으로 어떻게 말할지 수없이 연습해놓고도, 실전에선 버벅대기 쉬운 자리. 정신줄을 놓아 버린 자와 가까스로 최선의 대답을 꺼내는 자로 나뉘는 자리. 그것이 합격이 되고 불합격이 되는 자리. 바로 면접이다. 

회사가 원하는 인재상과 가장 닮은 모습을 끄집어내기 위해 우리는 고도로 집중해 발언한다. 물론 거짓에 가까운 말도 서슴없이 한다. 회사에 뼈를 묻겠다는 둥, 저를 놓치면 후회하실 거라는 둥. 

신입 사원으로 임하는 면접이든, 경력직을 뽑는 면접이든 떨리기는 매한가지일 테다. 그런데 나의 경우엔 경력 사원일 때가 더 어려웠다. 대학 졸업을 앞둔 시절에는 손을 번쩍번쩍 들며 당차게 말하는 것만으로도 많은 걸 보여줄 수 있었다.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자신 있습니다. 배우고 싶습니다.”

“꿈이 있습니다.”

여태 한 것보다 앞으로 해낼 것에 초점을 두는 자리이기 때문이다. 이직 시장에서는 상황이 좀 다르다. 그 어떤 포부보다 그간 해온 일들이 나를 더 정확히 설명한다. 나의 과거가 회사의 현재와 미래에 어떻게 기여할 수 있을지를 가늠하기 때문이다. 비슷한 업계끼리는 서로 사정을 잘 알기 때문에 함부로 부풀려 말할 수도 없다.

하지만 면접 마지막 질문에서 나는 늘 거짓 답변을 한다. 

“회사나 지원하신 포지션에 대해 더 궁금한 점 없으신가요?”

속으로 하는 대답은 늘 같다. 

‘퇴근은 보통 몇 시에 하는지 굉장히 궁금합니다. 혹시 주말에 출근하는 일이 발생하진 않는지도 미리 알고 싶습니다. 육아 휴직이나 개인 휴가에 대해서도 물어보고 싶은데요. 근데 그거 먼저 물어보면, 그래도 날 좋게만 생각할 건가요? 진심으로?’

물론 내가 그렇게 말했다면 그들도 가만히 있진 않았을 거다. “우리 회사가 얼마나 오픈마인드인데요. 저도 꼰대 아니고요. 퇴근 시간 참 중요하죠, 요즘 시대에….”라며 맞섰겠지. 그런데 평가가 뒤집힐 가능성이 조금도 없을까? 다음 차례로 면접에 들어온 사람은 다른 걸 물어볼지도 모르는데? 

“얼마 전 회사가 발표한 신사업에 대해 질문 드리고 싶습니다.” 혹은 “팀 내 커뮤니케이션 방식이 궁금합니다. 맡은 업무와 직접적인 관련은 없지만 가능성을 타진해보기 위해 다른 부서와 소통할 일이 종종 있는데요. 이런 경우 회사에선 어떤 방식으로 대화하길 권장하나요?” 

다른 사람들은 면접관이 좋아할 만한 걸 물으면 어떡하지? 입사하기도 전에 퇴근 시간을 물어본 나의 면접 점수를 덜어서 그 사람에게 주지 않을 거라고 장담할 수 있나?

이렇듯 면접에서는 회사가 좋아할 것 같은 발언만 남기기 쉽다. 나 또한 몇 번의 면접을 보며 두고두고 후회하는 불발언을 남겼다. 아이를 낳고 1년간의 육아 휴직을 마칠 무렵이었다. 원래 다니던 광고회사로 돌아가는 것이 두려웠다. 일 자체는 매력 넘치지만 저녁이 되어도 퇴근 시각을 종잡을 수 없는 날이 허다했기 때문이다. 이제는 육아와 일을 병행해야 하니 적어도 합의된 시간에 퇴근할 수 있는 곳에서 일하고 싶었다.

직장을 옮기기 위해 두 회사에 면접을 봤다. 첫 번째 회사에서는 꽤 많은 불발언이 발생했고, 두 번째 면접에서는 명발언이 많이 터져 나왔다. 정해진 결말이었을까? 첫 번째와는 연이 이어지지 않았고, 두 번째 회사로 이직했다. 

서로가 서로에게 별로였던 첫 번째 회사에서 임원 면접을 봤을 때의 일이다. 육아 휴직을 하기 전까지 나는 말과 글로 메시지를 만드는 일을 했다. 소비자들이 제품에 매력을 느끼고, 브랜드의 철학을 오래 기억하도록 말과 글을 짓는 것이 나의 기술이었다. 

그런데 이 임원은 면접 내내 자꾸 뭘 말로 표현하면 안 된다고 가르쳤다. 그는 말이 아니라 그냥 느낌적인 느낌으로 매력을 뿜는 브랜딩이 좋은 브랜딩이라는 철학을 갖고 있었다. 일부 동의한다. 다만 내가 가진 기술이 여기서는 무쓸모라는 뜻이었다. 그런데 왜 나를 최종 면접까지 오게 한 거지? 회사가 찾는 능력과 내가 가진 기술은 근본부터 다른데 말이다.

거기에서 나라도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면접을 중단했어야 했다. 죄송하지만 제가 있을 자리가 아닌 것 같다고, 회사가 원하는 사람과 제가 원하는 장소가 다르다고, 저도 제가 귀하게 쓰일 수 있는 자리에 가고 싶다고 말을 했어야 했다. 귀중한 시간을 내어 준 임원과 나 모두를 위해서 말이다.

안타깝게도 그러지 못했다. 오히려 내가 이 회사에 어떻게 하면 일조할 수 있을지 궁리하며 꾸역꾸역 대답해나갔다. 모름지기 지원자라면 어디든 붙고 봐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굳어 있는 취업 시장과 일단 회사부터 옮기고 봐야 한다는 마음 또한 스스로를 구기게 했다. 말과 글은 필요 없고 느낌적인 느낌이 필요하다는 조직에 쓸모 있는 사람으로 보이려고 노력했다.

면접 시간 최후의 1초까지, 어떻게든 이 회사에 이바지하도록 노력하겠다는 운을 띄우며 면접장을 나섰다.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에 올라탔는데, 비로소 미안함이 집채만 한 파도가 되어 나를 덮쳤다. 스스로 경력을 존중하지 못해 미안했다. 그간 노력하며 쌓아 올린 카피라이터로서의 시간을 생각해서라도 그러지 말았어야 했다.

다행히도 늦지 않게 다른 기회가 찾아왔다. 평소에 선망했던 회사에서 먼저 제안이 왔고, 내가 가진 기술을 진심으로 존중받으며 면접을 치렀다. 나는 두 번째 회사로 이직한 것을 두고 인생에 몇 번 없을 귀한 선물을 받았다고 여긴다. 

길목 너머에 이렇게 멋진 기회가 기다리고 있단 걸 알았다면 스스로 그리 험하게 구겨지진 않았을 텐데. 어쩌면 스스로 한바탕 찌그러져 보고 나서야 알게 된 건지도 모른다. 좋은 면접, 좋은 일터가 무엇인지를.


언스플래쉬이 글을 읽는 분이 이직 중이실지, 첫 취업을 앞두셨을지 모르겠다. 부디 어느 면접이든 불발언이 아닌 명발언이 많이 탄생하길 바란다. 물론 면접관 마음에 들어야 입사할 수 있겠지만 반대로 생각해보는 걸 추천한다. 결코 면접관 마음에 들기 위해 이 자리에 온 것만은 아니라는 태도를 가지는 게 좋다. 한마음 한뜻으로 똘똘 뭉친 내부 사람들이, 들어오겠다고 기를 쓰는 나를 테스트하는 구도라고 오해해선 안 된다.

회사 생활을 해보니 절대 그렇지 않다. 일단 거기 모인 면접관들은 서로 친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면접장에 들어오기 전까지만 해도 각자 일을 하느라 고단한 직원이었다. 서먹한 사이일지도, 자리다툼 하느라 견제 중일지도 모른다. 그들은 똘똘 뭉쳐있는 게 아니라 면접이라는 업무를 무사히 해내기 위해 전략적으로 잠시 나란히 앉아 있는 거다. 그럼 생전 처음 보는 면접관 A와 나의 관계가 차라리 산뜻하거나 친밀해질 수도 있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이렇게 면접장 안에서의 구도만 조금 달리 봐도, 훨씬 덜 긴장하게 된다.

지원자 홀로 면접을 보는 게 아니다. 면접관들도 같이 면접을 보고 있다. 발언 하나하나가 조심스러운 건 피차일반이다. 면접장에서 허튼소리를 했다가 대외적으로 야단나는 것은 오히려 그들. 면접자는 실수를 하더라도 내부적인 에피소드에 그친다. 그러니 겁먹을 필요 없다. 잔뜩 긴장해서는 생각을 멈춘 채로 말을 지어내려고 애쓰지 말자. 숨 쉬고, 각하고, 최선을 꺼내어 당당히 보여주면 된다.

여담으로, 면접에 와준 지원자에게는 합격 여부와 관계없이 이동비나 식사비를 지급해야 한다. 수많은 회사 중에 하나를 선택해준 데다가, 누구보다 간절한 마음으로 회사에 대한 의견을 들려주지 않았는가. 돈으로도 살 수 없는 순간을 면접관과 회사에 안겨준 것이다. 취업을 문의하는 쪽이 제대로 대접받는 것이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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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박솔미(작가)

어려서부터 글이 좋았다. 애틋한 마음은 말보다는 글로 전해야 덜 부끄러웠고, 억울한 일도 말보다는 글로 풀어야 더 속 시원했다. 그렇게 글과 친하게 지내다 2006년, 연세대학교에서 영문학을 공부하고 2011년, 제일기획에 입사해 카피라이터가 되었다. 에세이 <오후를 찾아요>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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