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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신영 “기획서 쓰기가 어려운 건, 감성 천재이기 때문”

『산으로 가지 않는 정리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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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에 오셔서 주저리주저리 기획서를 쓰고 계신 분들을 보면 손을 한번 꼭 잡아드리고 싶어요. ‘여기 또 고흐가 앉아있네. 얼마나 힘들까’하는 생각이 들거든요(웃음). 논리적이지 않은 성향을 가지고 있지만, 회사에서 꿋꿋이 그런 일을 잘 해내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을 향한 애정이 있죠. 그분들의 막막함을 덜어드리고 싶어요. (2021.03.18)


밥 먹고 화장실 가는 시간 빼고는 온종일 기획서 작성에 매달린 A씨. 며칠 밤을 지새운 끝에 30페이지짜리 최종본을 완성했다. 성취감과 긴장감을 마음에 반씩 나누어지고 들어간 회의실에서 발표까지 멋지게 끝마쳤는데, 기획안을 찬찬히 넘기던 상대가 잠깐의 침묵 끝에 말한다. “잘 듣긴 했는데…어렵네요. 그래서 말하고 싶은 게 뭔가요? (뭔가 그럴 듯 한 것 같은데 하나도 못 알아들었어요.)” 

2013년 『기획의 정석』을 펴내며 ‘배운 적 없지만 해내야 하는’ 직장인들의 가이드가 되어 준 박신영 저자가 ‘기획 시리즈’의 네 번째 책 『산으로 가지 않는』 정리법을 펴냈다. 아무리 열심히 설명해도 “그래서 말하고 싶은 게 뭔데?”라는 질문을 받는 이들을 위한 실용서다. 이 책에는 10년간 10,000장의 기획서를 코칭하며 얻은 기획자의 9가지 정리법과 30개의 사례가 담겼다. 박신영 저자는 생각이 많아서 주저리주저리 하게 되고, 아이디어는 있지만 문서로 정리하는 게 어려운 이들에게 ‘한 장 도식화 그리기’를 권한다. 



쓱 봐도 알 수 있는 그림 한장 남기기 

한 장 도식화 그리기가 왜 중요한가요? 

우리의 아이디어와 시간은 너무 소중하니까요. 보고서나 기획서 등은 내가 보려고 쓰는 게 아니라, 남에게 보여주려고 쓰는 거잖아요. 그러면 상대가 읽고 싶어하는 구조로 써야 해요. 주저리주저리 하는 글로는 상대를 설득할 수 없어요. 한 장 도식화 그리기의 필요성은 상대방의 궁시렁을 떠올려 보시면 금세 알 수 있죠.


1) “뭔 소리인지 그림이 안 그려져!” → 그림을 그려줘야 이해한다. 

2) “좋긴 한데, 한 방이 없네.” → 상대가 가져갈 그림을 하나 그려줘야 한다. 

3) “한 눈에 안 들어 와” → 스마트폰 영향으로 집중력이 짧아진 이들에게는 긴 글 대신 쓱 보여지는 그림이 효과적이다. 

결국 이 궁시렁을 종합하면 ‘그림을 원하고 있다’는 말이에요. 제가 충격을 받았던 이론이 있는데요. 2013년 마이크로소프트에서 발표한 뇌파 측정 연구 결과에 따르면 인간이 한 사물에 집중하는 시간은 8초라는 거예요. 8초의 주의집중력을 가진 사람을 사로잡으려면 쓱 봐도 무엇인지 알 수 있는 그림 한 장이 필요해요. 

‘기획 교과서’ 시리즈의 네 번째 버전이에요. 전작 세 편(『기획의 정석』 『제안서의 정석』 『한 장 보고서의 정석』)을 아우르는 끝판왕 같다는 느낌이 들더라고요(웃음). 

이 책에는 히스토리가 있어요. 첫 책 『기획의 정석』을 펴낸 이후 2014년에 『보고의 정석』을 출간했는데, 예시가 부족하다는 의견이 있었어요. 저는 독자 분들의 말씀에서 힌트를 얻을 때가 많아서 리뷰를 열심히 찾아보는 편이거든요. 책을 낸 이후 줄곧 ‘예시가 부족하다’는 말이 너무 마음에 남아 『보고의 정석』을 절판시키고, 계속 사례를 모았어요. “한 눈에 알아보게 정리해!”라는 말을 많이 듣지만, 정작 어떻게 해야 하는지는 알려주는 사람이 없잖아요. 그래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9개의 방법론을 정리하고, 이를 실제로 적용한 30가지의 사례를 보완해 새 책을 펴냈습니다. 

비단 기획서에 국한된 게 아니라 흔히 볼 수 있는 전단지의 내용이나, 누군가의 말을 도식으로 정리하는 과정이 재밌었어요. 특히 책 『고흐의 편지』를 읽고 받은 위로를 표로 정리하는 예시가 흥미롭더라고요. 

주저리주저리 하게 되는 사람들의 특징을 살펴보면 감성적이고, 논리적인 부분에 약해요. 이건 핸디캡이 아니라 문화예술 부분에서 그만큼 강하다는 뜻이거든요. 저 또한 그런 사람이라서, 좌뇌 영역의 개념을 우뇌 영역에 해당하는 이야기로 설명하는 게 재밌더라고요. 『한 장 보고서의 정석』에서는 윤종신의 노래 ‘좋니’로 보고서 쓰기를 설명하기도 했죠. 

저는 강의에 오셔서 주저리주저리 기획서를 쓰고 계신 분들을 보면 손을 한번 꼭 잡아드리고 싶어요. ‘여기 또 고흐가 앉아있네. 얼마나 힘들까’하는 생각이 들거든요(웃음). 저도 감성적인 사람이라, 그분들이 기획서 쓰기를 어려워하는 이유를 너무 잘 알아요. 그래서 늘 이렇게 얘기하고 강의를 시작하죠. “여러분이 생각을 한 장으로 정리하기 어려운 건 고흐처럼 천재이기 때문이에요. 기획서나 보고서를 쓸 때만큼은 보통 사람으로 내려오세요. 평범한 사람들이 알아들을 수 있게 1,2,3 넘버링을 해주시고요. 항목을 좀 구분해 주세요.” 그러면 즐겁게 받아들이고 열심히 하시더라고요(웃음). 강의를 수월하게 하기 위해 꾸며낸 이야기가 아니라,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해요. 논리적이지 않은 성향을 가지고 있지만, 회사에서 꿋꿋이 그런 일을 잘 해내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을 향한 애정이 있어요. 그분들의 막막함을 덜어드리고 싶어요. 

이번 책을 쓰면서 가장 고민스러웠던 점이 무엇인가요. 

모든 책이 비슷한데, 제목에 부합하는 내용을 담으려고 노력했어요. 『기획의 정석』 쓸 때는 “기획이 잘 안 된 책이네”라는 말을 들을까 봐 너무 무서웠거든요. 이번에는 산으로 가지 않으려고 애를 썼죠(웃음). 한 챕터 원고를 끝낼 때마다 스스로에게 “1.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뭐야?”라고 물었어요. 그때 바로 한 문장으로 답이 나오지 않으면 다시 정리를 했고요. 이후에는 “2. 여기서 머릿속에 남는 그림 한 장이 있어?”라고 물은 뒤, 그림이 그려지지 않으면 더 정리를 했죠. 마지막으로 “3. 진짜 써먹을 수 있어?”라는 질문에 답할 수 있는 예시를 만들려고 노력했어요. 그래서 사례가 30개나 들어갈 수 있었던 것 같아요. 한 번 읽고 마는 책을 쓰고 싶지는 않았거든요. 

‘이 책을 한 장으로 정리하면 뭘까?’를 고민하다 정리한 한 장의 그림 


듣는 사람은 산에 오르고 싶지 않다

기획스쿨을 찾는 수강생들이 공통적으로 토로하는 어려움이 있나요?

대부분 똑같은 말씀을 하세요. “생각은 많은데 정리가 안 된다”고요. 실컷 열심히 설명했는데 상대가 “그래서 하고자 하는 게 뭔가요?”라는 질문을 받으면 너무 화가 난다고 말씀하시죠(웃음). 그래서 하고자 하는 걸 간략히 설명해달라고 하면 못 하세요. 스스로도 무슨 생각인지 정리가 안 되는 거예요. 사실 저도 이 원리를 깨닫기 전에는 상대에게 맞추라는 말을 싫어했어요. ‘난 내 스타일대로 할 거야~’라면서 쓰고 싶은 대로 기획서를 썼는데, 그럼 고생도 내가 하더라고요(웃음). 결국 상대에게 맞추는 방법론을 계속 연구하고, 만든 거죠. 내 노동력이 헛수고가 되지 않으려면 상대의 궁시렁을 열심히 들어야 해요. 

가장 꽂혔던 문장이 “말 센스만큼 중요한 건 남의 시간을 소중히 여기는 센스. 말하는 사람이 산으로 갈 때 듣는 사람은 산에 오르고 싶지 않음을 기억하기(214쪽)”였어요(웃음). 

맞아요. 내가 하고자 하는 말만 열심히 하면 전달되지 않을 확률이 높죠. 하고 싶은 말을 한 장 도식화로 그리는 건 상대를 향한 배려이기도 해요. 

작가님은 언제부터 상대의 궁시렁이 들리기 시작했나요? 

몇 번의 충격적인 사건들이 있었죠(웃음). 예를 들어 한 기업에서 9시간가량 강의를 했는데요. 이건 말하는 저도 힘들지만, 듣는 사람도 엄청 힘든 시간이거든요. 강의를 마친 뒤 서로 감기는 눈꺼풀을 겨우 뜨며 마지막 질의응답을 하는데, 누가 질문을 해요. “강사님, 정말 잘 들었는데요. 그래서 뭘 하라는 건가요?”(웃음) 만약 질문을 하는 분의 태도가 무례했다면 제가 깨달음을 얻지 못했을 거예요. 그런데 열심히 강의를 들으신 분이, 아주 예의 바르게 그렇게 물어보니 말문이 막히더라고요. 비슷한 경험을 몇 번 거듭하면서 고민을 시작했어요. ‘그래서 이 강의로 내가 말하려는 게 한 마디로 뭐지?’ 생각했는데 써보기가 쉽지 않더라고요. 그때부터 뭐든 한눈에 보이도록 정리하는 연습을 했어요. 수천 번 깨지면서 터득한 기술인 셈이에요(웃음).

‘한 장 도식화 그리기’를 익히고, 변화된 사례를 소개해 주신다면요. 

사회연대은행에서 진행하는 ‘사회적기업 육성 프로그램’에서 기획서 쓰기 교육을 하며 ‘느린 걸음’이라는 발달장애인 부모 카페의 대표님을 만나게 되었어요. 줄곧 아이만 키우다가 처음 창업을 하며 ‘발달장애 아이들을 위한 비대면 교육서비스’를 운영하고 싶어 하셨죠. 좋은 아이디어는 있지만 기획서는 한 번도 써본 적이 없으셔서, 저와 함께 사업 모델을 도식화로 정리하고 기획서를 만들었어요. 그 기획서로 투자를 받아서 실제로 사업을 진행하게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너무 기쁘더라고요. 

사실 도식화는 대단한 기술이 아니에요. 단지 언어가 다를 뿐이거든요. 보석 같은 아이디어가 있지만, 그걸 정리하는 방법을 모르는 분들께 이 기술을 가르쳐드린 뒤 나오는 아웃풋을 보면 정말 멋있어요. 특별한 생각이 있는 자들에게 ‘한 장 도식화 그리기’ 정리법이 더해지면 어마어마한 성과가 나오더라고요. 도식화는 ‘정리 언어’라고 볼 수 있어요. 알파벳을 배우면 영어를 읽을 수 있듯, 생각을 정리하는 것도 방법만 조금 익히면 얼마든지 써먹을 수 있는 거죠.



‘나’에게도 연습할 시간을 주세요 

떠오르는 아이디어를 정리할 때도 도식화를 활용하시나요? 

저는 일을 시작하기 전에 무조건 종이에 써 봐요. 그렇게 해서 한 장으로 정리가 안 되면 일을 진행하지 않고, 다시 생각하죠. 한 장으로 표현할 수 없다는 건 내 안에서도 정리가 안 되었다는 뜻이거든요. 사실 도식화 그리기를 굳이 배우지 않아도 하고자 하는 말을 잘 정리하는 분들이 있어요. 그 분들은 타고난 달변가인 거고, 저는 후천적 노력으로 기술을 습득한 거죠. 너무 주저리주저리 하는 스타일이어서 일부러 의식하고 더 잘하려고 하다 보니까 이걸 가르치게 된 거예요.

비단 기획서 쓸 때가 아니라 일상적인 생각을 정리할 때 써도 좋은 방법인 것 같아요.  

맞아요. 저는 조금만 마음이 불편하면 무조건 종이에 써 봐요. 두루뭉술하게 느끼는 어떤 감정에 대해서도 쪼개고 흐름을 그리다 보면 쉽게 정리되는 경우가 많거든요. 예를 들어 ‘내가 지금 왜 불안하지?’라는 생각이 들면 불안한 이유를 쭉 써 보고, 지금 해결할 수 있는 문제와 없는 문제를 나눠보기만 해도 쓸 데 없는 걸로 깊이 고민했다는 걸 알게 되죠(웃음). 

책을 보면 쉽게 느껴지지만, 막상 따라하려면 막막한 독자들이 있을 텐데요. 정말 연습하면 도식화 그리기에 익숙해질 수 있을까요? 

저희 아이가 지금 38개월인데요. 뭐든지 다 자기가 하고 싶어하는 시기라 오늘 아침에는 마스크에 끈 끼우는 걸 하겠다고 우겼어요. 결국 제가 해주면 1초에 끝났을 일이 20분이나 걸렸죠. 오늘은 20분만에 끈을 끼웠지만 ‘스스로 집중하고 격려 받는 경험을 반복’하면 곧 잘하게 될 거예요. 언젠가는 저처럼 1초만에 끈을 끼우는 날도 오겠죠. 이와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요. 어른이 될수록 우리는 스스로를 기다려주지 못하는 것 같아요. 책 한권 읽고 ‘어? 해봤는데 안 되네’라고 생각하지 마시고, 스스로 집중하고 격려하는 시간을 주셨으면 좋겠어요. 물론 하면서 속이 터지고 답답할 때가 많겠지만 나라도 나를 기다려줘야죠(웃음).  

『기획의 정석』은 여전히 신입사원들의 필독서로 여겨지고 있어요. 소회가 남다르실 것 같은데요. 

첫 책을 내고 비장해지는 순간들이 있었어요. 카이스트 대학교에 강의를 가서 교수님께 인사를 드리러 갔더니, 교수실에 기획의 정석 책이 몇 박스 쌓여 있는 거예요. 상담하러 온 친구들에게 책을 선물로 준다고 하시더라고요. 또 어떤 분은 회사에서 팀장님이 “이거 읽고 이대로 써와라”라고 하셨대요. 제 책이 시작하는 사람들의 가이드로 쓰인다는 걸 알게 되니까 어깨가 정말 무거운 거예요. 그래서 매번 새로운 책을 펴낼 때마다 스스로에게 ‘진짜 써먹을 수 있어? 막막한 사람들에게 도움이 돼?’라는 질문을 괴로울 정도로 했어요. 비장하게 ‘기획, 제안, 보고, 도식’ 시리즈 안 끝내면 다른 거 안 한다고 마음 먹은 세월이 어느덧 10년이네요(웃음). 도식까지 펴내서 이제 홀가분 해요.


 

『산으로 가지 않는 정리법』을 왜 읽어야 하는지, 한 마디로 정리해 주신다면요.

“책을 읽고, 한 장 도식화 그리기를 딱 3개월만 연습해보시면 주위의 반응이 달라질 거예요!” 한 달은 너무 짧고요. 3개월 정도 해보시면 감이 올 거라고 생각해요. 한번 변화를 느끼면 앞으로도 계속 하게 되실 걸요? 




*박신영

대학시절 ‘공모전 상금으로 혼수준비를 다 마친 공모전의 여왕’이라 불리며 상을 휩쓸고 다녔다. 제일기획 입사 후 AP전략그룹에 소속되어 맨땅에 구르며 거칠게 실무 기획 내공을 쌓았다. 그때 기획은 정답 없는 영역이라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아 막막해하는 사람들이 참 많다는 것을 느끼고 10년 삽질 후 얻은 엑기스를 탈탈 털어 ‘기획의 정석’ 시리즈를 출판했다. 이 책은 배운 적 없지만, 해내야만 하는 눈물겨운 직장인들과 대학생들의 절절한 지지를 받으며 입소문을 타고 10만 권 이상 팔리며 스테디셀러가 되었다. 그녀의 책은 삼성, LG, 포스코, CJ, 롯데, 월드비전 등 유수 기업에 기획 교과서로 선정되었고 대학교 교재로도 쓰이고 있다. 눈코 뜰 새 없이 출강 의뢰를 받고 있는 그녀는 현재 기획이 막막한 기막힌 사람들의 학교, ‘기획스쿨’에 소속되어 기획, 제안, 보고, 발표를 시작하는 사람들을 위한 연구와 출강에 집중하고 있다.



산으로 가지 않는 정리법
산으로 가지 않는 정리법
박신영 저
세종서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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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성소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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