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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가은의 나만 좋아할 수도 있지만] 나는 내가 축하할 거야

<윤가은의 나만 좋아할 수도 있지만> 7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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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나는 올해 내 생일도 내가 직접 나서서 축하할 거다. 온몸과 마음을 다 바쳐, 내가 나를 제일 많이 축하할 거야! (2021.03.05)

언스플래쉬

신난다. 사흘 밤만 지나면 드디어 생일이다. 그것도 태어나 서른아홉 번째로 맞이하는, 삼십대의 진짜 최종_파이널_마지막_확정 생일날이다. 생일을 앞두고 우울해지는 사람도 있다는데, 나는 한참 우울하다가도 생일이 다가오면 그렇게 좋을 수가 없다. 얼마나 신나고 들뜨는지 때론 친구들에게 먼저 나서서 축하해달라고 조르기도 한다. 정작 축하받아 마땅한 일들엔 고개도 못 들 정도로 민망해하는 내가 생일날만큼은 한껏 비대해진 자아로 기쁨을 만끽한다. 그러고 보면 나도 참 어지간히 이상한 사람이다. 

나만의 좀 특이한 생일 풍습이 있다. 내 생일 파티는 내가 기획하고 주최한다. 굉장한 축제를 여는 건 전혀 아니고, 그냥 매년 생일이 다가오면 어디서 누구와 무엇을 하며 보낼지 아주 신중하게 고민하고 결정한다. 친구들과 왁자지껄 보낼 때도 있지만, 나 자신과 오붓이 데이트할 때가 더 많다. 그럴 때면 작정하고 돈과 시간과 마음을 한껏 쏟아 오직 나를 위한 하루를 보낸다. 좋은 생일 선물도 사준다. 그렇게 내가 내 생일을 정성껏 축하해준다. 늘 그랬던 건 아니다. 어떤 이상한 생일을 보낸 뒤부터 마음먹은 바를 매년 실행하는 중이다. 

그해 생일은 아침에 일어날 때부터 기분이 좀 이상했다. 긴 방학을 보내며 몸과 마음이 다 찌뿌둥해졌는데, 며칠째 계속된 폭설로 집에 꼼짝없이 갇혀버렸고, 그런저런 사정으로 친구들과의 만남도 결국 다 취소되었다. 어쩐지 최고로 우울한 생일을 맞이할 것 같은 아주 슬픈 예감은…… 왜 틀린 적이 없나. 부모님은 아침 일찍 인사도 없이 출근하셨고, 남동생은 해가 중천에 뜨도록 일어날 생각이 없었다. 전날까지 앞다투어 무슨 선물을 바라냐고 큰소리치던 귀여운 친구들도 연락 한 통 없었다. 왠지 모를 서운한 마음이 스멀스멀 차올랐다.

점심 무렵, 친구 집에 놀러간다던 동생이 너무 일찍 돌아왔다. 요 귀여운 녀석이 친구 집이 아니라 실은 내 생일 선물을 사러 다녀왔구나 싶어 내심 기대하며 문을 열었는데, 이 고약한 놈이 자기 게임하면서 먹을 간식만 잔뜩 사와 곧장 방으로 들어가버렸다. 나는 토라진 티를 팍팍 내고 다니며 왜 화가 났는지 물어봐도 절대 대답 안 해줄 거라고 굳게 결심했다. 그 아이는 게임에 빠져 자기 누나가 집에 있다는 사실도 인지하지 못한 것 같았지만.

저녁이 되자 엄마가 다급히 전화를 걸어왔다. 배고프지 않느냐고, 먹고 싶은 건 없냐고 물었다. 역시 엄마뿐이야. 외식으로라도 생일 잊은 걸 만회하려는 바쁜 엄마의 마음에 새삼 감동해 속으로 메뉴를 골라보며 괜히 모른 척 왜 그러냐고 되물었다. 그러자 엄마는 오늘도 늦게 퇴근할 것 같으니 동생이랑 먼저 저녁 먹으라고, 밥이랑 반찬 알아서 꺼내 먹고, 설거지는 안 해도 되는데 그릇은 물에 담가놓고 어쩌고저쩌고…… 하는 다 아는 이야기를 한참 하다 또 급하게 끊었다. 애초에 왜 다급한 목소리로 전화를 한 건지 당최 알 수가 없었다. 

그냥 다 잊고 자버려야지 싶어 방바닥에 벌렁 누웠다. 물론 전혀 잠이 오지 않았다. 불 꺼진 천장 위로 매년 직접 나서서 챙겨준 수많은 이들의 생일날이 하나둘 떠올랐다. 그들을 위해 공들여 준비했던 다양한 선물들, 재밌는 이벤트들도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어쩜 그중 누구 한 명도 내 생일을 기억하지 못하는 걸까. 다른 날도 아니고 생일인데. 진짜 다들…… 너무 한 거 아니야? 참았던 서러움이 복받쳤다. 왈칵 눈물이 쏟아지기 일보 직전이었다. 

그때, 현관문이 열리며 뭔가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귀를 쫑긋하고 후다닥 나가자 막 퇴근한 아빠가 나를 보고 환하게 웃고 있었다. 아빠 손에 들린 커다란 봉지를 보자 나도 절로 웃음이 나왔다. 그제야 마음이 좀 풀린 나는 봉지를 낚아채며 말했다. 오늘 내 생일인 거 아빠밖에 모른다고. 진짜 아빠가 최고라고. 순간 오만가지 감정이 스치는 아빠의 얼굴을 뒤로한 채, 나는 곧장 방으로 들어와 봉지를 마구 풀어헤쳤다. 그 안엔 집 근처 할인마트에서 산 게 분명한 커다란 플라스틱 쓰레기통 하나가 들어 있었다. 며칠 전 쓰레기통이 망가져 새로 사야겠다고 투덜거리던 아빠의 모습이 문득 떠올랐다.  

쓰레기통을 부여잡고 한참을 멍하니 앉아 있었다. 솔직히 쓰레기통이 마음에 들었으면 또 모르겠는데, 조악한 디자인은 둘째치고 한쪽 모서리가 살짝 깨져 있었다. 그래서 이천 원에서 오백 원 더 할인했던 것 같고…… 모르겠다. 그냥 모든 게 다 어이가 없었다. 누구도 몰라주는 외로운 생일날 아빠한테서 괴상한 쓰레기통을 갈취하고 넋 나간 사람은 세상에 나밖에 없을 것 같았다. 도대체 이게 다 무슨 일인데. 이 일을 어떻게 해석해야 되냐고. 이건 정말 해도 해도 너무 우…… 웃기잖아 하하하하하……

문득 웃음이 터져 나왔다. 나는 쓰레기통을 끌어안고 미친 듯이 깔깔거리며 온 방 안을 굴러다녔다. 마침 퇴근하고 들어온 엄마가 그런 나를 보더니 영문도 모르고 같이 웃어 다시 웃음이 터져버렸다. 그제야 게임을 멈추고 나온 동생이 자기도 무슨 일인지 알려달라며 기웃거려 또 웃음이 솟구쳤다. 씻고 나온 아빠가 일단 그 쓰레기통은 돌려달라고 말해 나는 거의 웃다 기절할 지경이었다. 진짜 웃겼다. 웃겨서 계속 웃음이 났다. 웃으면 웃을수록 속이 시원해졌다. 몸도 마음도 상쾌해졌다. 

그랬다. 사실 이렇게 종일 신나게 웃을 수도 있는 날이었다. 마음만 먹었다면 이렇게 맘껏 웃으며 충분히 즐거운 하루를 보낼 수도 있었다. 그랬어야 마땅한 소중한 생일날이었다. 그런데 이런 좋은 날을 왜 다른 누군가가 선사해주기만 기다렸을까. 내가 언제 진짜로 웃을 수 있는지 제일 잘 아는 사람이 바로 난데 왜 손 놓고 전전긍긍하기만 했을까. 정작 내 생일을 모른 척 무시했던 사람은 어쩌면 나 자신이 아니었을까. 

나는 끝내 아빠께 쓰레기통을 돌려드리지 않았다. 간신히 찾아낸 행복한 생일의 비법이 그 안에서 샘솟는 것처럼 느껴져 꼭 붙들고 싶었다(어쨌든 그해 받은 유일한 생일 선물이기도 했고). 그날 이후 굳게 마음먹었다. 더는 누군가의 축하를 기다리지 말고, 내가 제일 먼저 나서서 나를 제일 많이 축하해주자고. 내가 내 생일의 진짜 주인이 되자고! (그러지 않으면 요상한 쓰레기통의 저주를 받게 될 것이니) 


언스플래쉬생각해보면 생일은 진짜 대단한 날이다. 무려 한 해를 무사히 버텨내고 또다시 새로운 해를 맞이한다는 건, 정말 엄청난 노력과 행운이 동시에 필요한 일이다.  이렇게 살아남아 또 다른 생일을 맞이한다는 건 정말 놀라운 사건이고 축복이 아닐 수 없다. 혹여 남들이 그 경이를 잊고 몰라준대도, 내가 잘 살아남아 다음 해를 맞이하고 있다는 진실은 절대 훼손될 수 없다. 

그러니까 나는 올해 내 생일도 내가 직접 나서서 축하할 거다. 온몸과 마음을 다 바쳐, 내가 나를 제일 많이 축하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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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윤가은(영화감독)

영화 만드는 사람. 좋아하는 게 많습니다. 단편영화 <손님>(2011), <콩나물>(2013), 장편영화 <우리들>(2016), <우리집>(2019)을 만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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