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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야와 마지막 드래곤> 디즈니가 동남아시아 문화와 만났을 때

아시아로 간 디즈니의 신작 애니메이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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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문화를 향한 관심과 존중, 이를 엔터테인먼트화 하는 능력, 그럼으로써 영화의 트렌드를 선도하는 디즈니의 작품은 여전히 주목할만하다. (2021.03.04)

<라야와 마지막 드래곤>의 한 장면

월트 디즈니는 동시대의 진보한 경향을 발 빠르게 이야기에 녹여내는 작업으로 정평이 나 있다. 삶을 개척하는 ‘자매’의 활약이 인상적인 <겨울왕국> 시리즈, 초식동물과 육식동물의 연대로 ‘다양성’을 강조한 <주토피아>(2016), 백마 탄 왕자가 등장하지 않아도 ‘소녀’ 혼자 이야기를 풀어가는 데 아무 문제 없는 <모아나>(2017) 등 여성만의 사연을 전면에 내세우고, 소수자 이슈를 다루는 데 있어 주저하는 법이 없다. <라야와 마지막 드래곤>은 디즈니의 신작 애니메이션이다. 이번에 디즈니가 주목한 화젯거리는 아시안 컬처다. 

라야(켈리 마리 트란 목소리 출연)는 전설의 마지막 드래곤을 찾기 위한 여정에 한창이다. 사연이 있다. 500년 전만 해도 라야가 발 딛고 선 ‘쿠만드라’ 왕국은 하나의 땅이었다. 인간과 드래곤이 사이좋게 어울려 살았다. 이를 시기한 괴물 ‘드룬’이 나타나 인간과 드래곤을 닥치는 대로 돌로 만들었다. 이때 드래곤 시수(아콰피나)가 드룬을 물리쳐 왕국을 구했다. 여전히 남은 드룬의 잔당을 막으려 시수는 자신의 마법을 응축한 다이아몬드 형태의 ‘드래곤 젬’을 남겼다. 근데 이걸 갖겠다고 인간들이 서로 불신하면서 왕국은 다섯 개의 땅으로 분열됐다. 

드래곤 젬을 보관하는 곳은 ‘심장의 땅’이다. 이곳 부족의 리더는 벤자(대니얼 대 킴)이다. 라야의 아빠다. 평화를 갈망하는 벤자는 ‘송곳니의 땅’, ‘발톱의 땅’, ‘척추의 땅’, ‘꼬리의 땅’ 사람들을 불러 드래곤 젬을 공동 관리하자고 제안할 참이다. 송곳니의 땅의 리더 비라나(산드라 오)는 그럴 생각이 없다. 딸 나마리(젬마 찬)를 조종해 드래곤 젬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려다 마법에 갇혀 있던 드룬을 불러낸다. 다시 불모의 땅으로 변한 쿠만드라 왕국을 예전으로 돌려놓겠다고 라야는 지금 종적을 감춘 마지막 드래곤 시수를 찾아 여기저기 헤매고 있다. 

<스타워즈: 라스트 제다이>(2017)의 켈리 마리 트란, <페어웰>(2019)의 아콰피나 등 목소리 출연 배우 모두 아시아계로 구성된 <라야와 마지막 드래곤>은 동남아시아의 물의 신 ‘나가’의 전설을 모티브로 이야기와 배경을 꾸렸다. 뱀의 형태를 하고 물을 관장하는 나가는 <라야와 마지막 드래곤>에서 귀엽고 유머러스한 수룡의 형태로 등장한다. 베트남계 미국인 출신의 각본가 퀴 응우옌의 설명에 따르면, 서양의 드래곤이 공포의 대상이자 압도적인 힘의 상징인 것과 다르게 동양의 용은 신성시되는 행운의 상징이며, 희망과 불굴의 용기를 의미해서다.


<라야와 마지막 드래곤> 공식 포스터

실제로 <라야와 마지막 드래곤>의 제작진은 라오스와 인도네시아, 태국, 베트남, 캄보디아, 말레이시아, 싱가포르를 포함한 동남아시아 전역의 문화를 직접 체험하고 조사한 것으로 알려진다. 이에 동참한 공동 연출가 폴 브릭스는 동남아시아의 공동체 의식과 그를 지탱하는 신뢰에 큰 인상을 받았다.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이나 함께 했던 가족들로부터 모든 사람을 환영하는 믿음을 엿볼 수 있었다. 그들은 우리가 그곳에서 존중의 마음을 갖고 배움을 얻으리라고 믿었다. 우리는 그 사람들에게 활짝 열린 태도로 환영받는 큰 영광을 누렸다.”

<라야와 마지막 드래곤>의 주제도 이와 직결한다. 용의 형태를 한 쿠만드라 왕국이 다섯 개의 부족으로 찢어진 건 위기에 맞서 힘을 합하기보다 권력을 독점하려는 욕심이 불러온 불신의 결과였다. 돌로 변한 아빠를 살리고 심장의 땅의 위용을 되찾겠다고 라야가 동행 없이 홀로 움직이는 건 어려서 목격했던 공동체의 불신이 몸에 밴 까닭이다. 라야의 바람대로 단독의 영웅이 된다면 심장의 땅은 다시 위세를 떨칠 수 있어도 쿠만드라는 여전히 분열된 상태로 서로 간에 적대한 채 살아가야 한다. 그래서는 희망이 없다. 

어려서부터 라이벌로 성장한 라야와 나마리는 리더의 자격을 갖추고도 아직 새로운 시대를 향한 마음에는 무지하다. 부모 세대의 갈등을 그대로 물려받은 채 적대하고 있다. 이건 미래를 이끌 젊은 세대가 갖춰야 할 삶의 태도가 아니다. 영화 속 상황에만 적용되는 가치가 아니어서 <라야와 마지막 드래곤>이 동시대를 겨냥해 설파하는 주제이기도 하다. 상대에게 먼저 손을 내밀 줄 아는 용기와 내민 손의 가치를 알아보는 마음의 선구안, 그로 인해 형성되는 믿음의 벨트, 즉 공동체 의식이다. 

디즈니는 서구 배경 일색이던 전통의 창작 방식에서 벗어나 폴리네시아 문화의 <모아나>, 중국 배경의 <뮬란>(2020) 등 다양성으로 확장하고 있다. 쪼개진 쿠만드라 왕국을 통일하는 것처럼 <라야와 마지막 드래곤>을 통해 동남아시아 문화와도 손을 잡았다. 각기 다른 개성과 문양을 지닌 문화가 디즈니와 만나면서 특유의 모험 스토리와 강인하고 도덕적인 주인공 캐릭터 등 획일화되는 경향이 없지 않다. 그렇더라도 타문화를 향한 관심과 존중, 이를 엔터테인먼트화 하는 능력, 그럼으로써 영화의 트렌드를 선도하는 디즈니의 작품은 여전히 주목할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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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허남웅(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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