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이건 진짜야 : 유노윤호 ‘Thank U’

유노윤호 두 번째 미니앨범 <Noir>

  • 페이스북
  • 트위터
  • 복사

누구나 상상했지만, 실현은 할 수 없었던 이 기적의 대통합이 유노윤호의 이름 아래 가능해진다. 이건 진짜다. 정윤호의 시간과 노력이 만든 결정체다. (2021.01.27)

유노윤호 미니앨범 <Noir> 이미지

굵은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뒷골목. 익숙한 암청색 화면을 가르고 나온 한 사내가 흠뻑 젖은 담배에 불을 붙인다. 초조하게 한 모금을 빠는 사이, 검은 비옷을 입은 수십 명이 화면 뒤를 뛰어 지난다. 그들이 만든 어둡고 좁은 우산 터널을, 담배를 문 사내가 마치 런웨이를 걷듯 지친 걸음으로 가로지른다. 목표는 터널 끝 검은 세단. 넷플릭스라면 ‘긴장감 넘치는 음악’이라는 자막이 달렸을 법한 음악 사이로 버석거리는 발소리와 빗소리가 겹쳐진다. 숨 막히는 긴장을 가르고 들어오는 건 누가 봐도 이인자 관상의 한 남자. 그가 처리하라는 듯 고개를 한 번 끄덕이자 검은 비옷들이 일제히 사내를 덮친다. 사내가 혈투를 벌이는 소리를 배경으로 검은 세단의 창문이 천천히 내려간다. 선글라스를 낀 채 사탕을 입으로 굴리는 남자. 이인자의 자비 없는 일격으로 사내가 쓰러지자 그가 선글라스를 벗는다. 한국형 누아르의 상징이자 완성, 황정민이다. 빗속에 쓰러진 사내를 확인한 그가 마침내 입을 연다. ‘가자’.

이제는 제목 구분도 무의미해진 흔해빠진 한국형 누아르 영화의 도입부가 아니다. 이건 동방신기 유노윤호의 두 번째 미니앨범 <Noir>의 타이틀곡 ‘Thank U’의 뮤직비디오다. SNS를 통해 ‘마치 7초 같았다’는 호평이 쏟아진 무려 7분 38초 길이의 뮤직비디오는 실제로 그렇게 순식간에 시간을 흘려보낸다. 가장 큰 이유는 아마 영상을 가득 채운 갖은 클리셰 때문일 것이다. 이미 도입부에서 묘사했듯 ‘Thank U’는 이 영상이 닳고 닳은 각종 누아르의 유산임을 감추려 하지 않는다. 아니, 오히려 노골적으로 이용한다. 조직에 배신당한 남자, 끝끝내 살아남아 복수를 위해 몸을 단련하는 남자, 최종 보스에게 가기 위해 ‘올드보이’의 ‘장도리신’으로 똘마니들을 물리치는 남자, 중국식당의 개별 룸에서 마침내 찾은 보스, 네가 찾아올 줄 알았다는 듯 태연한 보스, 한 발만을 남긴 리볼버로 러시안룰렛을 제안하는 보스, 그리고 마침내 벌어지는 하이라이트 육탄전. 


‘Thank U’ 뮤직비디오의 한 장면

뮤직비디오가 아닌 7분짜리 한국형 누아르 요약판이라 해도 고개를 끄덕일만한 영상은 그러나, 긴박한 장면 사이마다 우리가 ‘유노윤호’ 하면 쉽게 떠올릴 수 있는 그만의 캐릭터를 적절하게 삽입하며 영상의 주인공이 누구인지를 명확히 각인시킨다. 몸을 단련하는 유노윤호는 <나 혼자 산다> 등 예능을 통해 보여준 아침부터 운동과 안무를 익히는 정윤호의 모습과 오버랩 되며, 엘리베이터신이나 장도리신 등 액션신 이후 이어지는 군무는 극이 가진 긴장감을 놓치지 않는 선에서 자연스럽고 무게감 있게 연출된다. 

여기에서 새삼스레 각인되는 건 노래 ‘Thank U’의 존재감이다. 유노윤호가 스스로 ‘영혼까지 바친 앨범’이라 설명한 <Noir>는 그가 제작 단계부터 참여한 앨범이다. 특히 타이틀 곡 ‘Thank U’를 관통하는 정서는 다름 아닌 유노윤호식의 ‘정공법’이다. ‘그것이 바로 인생의 진리지’로 대표되는 샘솟는 열정으로 그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열정 만수르’의 자리에 오른 그의 캐릭터는, 초기 인터넷 유행을 통한 손쉬운 조롱의 단계를 벗어나 이제는 누구나 리스펙트를 보낼 수밖에 없는 유노윤호만의 고유한 영역으로 대중 안에 확고한 자리를 잡았다. ‘Thank you for diss / Thank you for like / Thank you for me’라는 가사는 냉소와 조롱은 물론 사랑과 나 자신까지, 지금 나를 이 자리에 있게 해준 모든 것들에 감사를 전한다. 2003년 데뷔 이후 강산이 두 번 가까이 변할 동안 함께 호흡을 맞춰온 유영진의 손에서 탄생한 노랫말은 단순한 언어유희가 아닌 유노윤호가 터득한 투박하지만 올곧은 그만의 ‘인생의 진리’처럼 다가온다. ‘Thank U’ 뮤직비디오는 그런 직구와 직구가 만나 만든 정공법의 홍수다. 누구나 상상했지만, 실현은 할 수 없었던 이 기적의 대통합이 유노윤호의 이름 아래 가능해진다. 이건 진짜다. 정윤호의 시간과 노력이 만든 결정체다. 





추천기사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이 기사가 마음에 드셨다면 아래 SNS 버튼을 눌러 추천해주세요.

독자 리뷰

(2개)

  • 독자 의견 이벤트

채널예스 독자 리뷰 혜택 안내

닫기

부분 인원 혜택 (YES포인트)
댓글왕 1 30,000원
우수 댓글상 11 10,000원
노력상 12 5,000원
 등록
더보기

글 | 김윤하(대중음악평론가)

대중음악평론가. 한국대중음악상 선정위원. 케이팝부터 인디까지 다양한 음악에 대해 쓰고 이야기한다. <시사IN>, <씨네21>, 등 각종 온·오프라인 매체에 기고하고 있으며 KBS, TBS, EBS, 네이버 NOW 등의 미디어에서 음악과 문화와 관련된 이야기를 나누기도 한다. 네이버 온스테이지와 EBS 스페이스공감 기획위원으로 활동했으며, 현재 TBS FM 포크음악 전문방송 <함춘호의 포크송> 메인작가로도 활동 중이다. 한마디로 음악 좋아하고요, 시키는 일 다 합니다.

오늘의 책

20세기 가장 위대한 시인의 대표작

짐 자무시의 영화 〈패터슨〉이 오마주한 시집. 황유원 시인의 번역으로 국내 첫 완역 출간되었다. 미국 20세기 현대문학에 큰 획을 그은 비트 세대 문학 선구자, 윌리엄 칼로스 윌리엄스의 스타일을 최대한 살려 번역되었다. 도시 패터슨의 역사를 토대로 한, 폭포를 닮은 대서사시.

본격적인 투자 필독서

네이버 프리미엄콘텐츠' 경제/재테크 최상위 채널의 투자 자료를 책으로 엮었다. 5명의 치과 전문의로 구성된 트레이딩 팀으로 국내는 물론, 해외 최신 기술적 분석 자료까지 폭넓게 다룬다. 차트를 모르는 초보부터 중상급 투자자 모두 만족할 기술적 분석의 바이블을 만나보자.

타인과 만나는 황홀한 순간

『보보스』, 『두 번째 산』 데이비드 브룩스 신간. 날카로운 시선과 따뜻한 심장으로 세계와 인간을 꿰뚫어본 데이비드 브룩스가 이번에 시선을 모은 주제는 '관계'다. 타인이라는 미지의 세계와 만나는 순간을 황홀하게 그려냈다. 고립의 시대가 잃어버린 미덕을 되찾아줄 역작.

시는 왜 자꾸 태어나는가

등단 20주년을 맞이한 박연준 시인의 신작 시집. 돌멩이, 새 등 작은 존재를 오래 바라보고, 그 속에서 진실을 찾아내는 시선으로 가득하다. 시인의 불협화음에 맞춰 시를 소리 내어 따라 읽어보자. 죽음과 생, 사랑과 이별 사이에서 우리를 기다린 또 하나의 시가 탄생하고 있을 테니.


문화지원프로젝트
PYCHYESWEB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