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위대한 방옥숙>, 이상하고 나쁜 여자들의 세계

웹툰 <위대한 방옥숙>

  • 페이스북
  • 트위터
  • 복사

배신과 음모, 폭력과 김치가 난무하는 ‘부녀회 누아르’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2020.10.12)


출처: 네이버 웹툰 <위대한 방옥숙> 


추운 겨울 새벽녘 어둠 속에서 수상한 차림새의 한 무리가 누가 봐도 시체일 것 같은 덩어리를 한강에 유기한다. 일당 중 한 명의 정체는 곧 드러난다. 53세 방옥숙, 고등학생 딸과 이십 대 중반 아들을 둔 주부…가 아니라 한 가정의 가장이다. 지난 9월 말 완결된 네이버 웹툰 <위대한 방옥숙>(글 매미·그림 희세)의 주인공은 서울 어딘가의 강변에 자리 잡은 노블골드캐슬(구 매미 아파트) 부녀 회원들이다. 인근 재개발로 아파트 앞에 고층 주상복합 건물이 들어서면 한강 조망권을 빼앗기게 될 거라는 소식을 듣고 목숨줄과 같은 집값을 지키기 위해 떨쳐 일어난 이들의 기세는 장난이 아니다. 영화 <아수라>를 보고 ‘여자 버전 아수라’를 떠올린 작가들은 “부동산 재개발 이권을 둘러싼 남성 마초 악당이 있다면 그 상대편은 집값에 미친 부녀회 아줌마들이 어떨까” 생각했다. 배신과 음모, 폭력과 김치가 난무하는 ‘부녀회 누아르’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출처: 네이버 웹툰 <위대한 방옥숙>


<아수라>를 비롯해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은 남성 마초 악당, 살인 전과까지 있는 조폭 출신 재개발 조합장 윤태웅에게 일개 부녀회쯤이야 “집에서 살림이나 하는 분들”이자 반찬 걱정이나 해야 마땅한 여자들이다. 그러나 노블골드캐슬 부녀회는 결코 만만한 분들이 아니다. 오로지 집값을 지키기 위해 온몸으로 구치소 건설을 막아내고, 임대 아파트 쪽 입구를 폐쇄했으며, 주민들의 뜻을 거스른 부동산을 문 닫게 했을 만큼 전투력과 조직력을 겸비한 군단이다. 그도 그럴 것이, 반지하에서 신혼 생활을 시작했던 방옥숙에게 무리해서 산 한강뷰 아파트는 신분 상승의 증거이자 중산층 삶이라는 판타지를 유지하게 해주는 유일한 장치다. 모든 책임을 내던지고 가출해 ‘자연인’이 되어버린 남편 없이 혼자 남매를 키우며 안 해본 일 없는 그에게 아파트는 자식의 학비이자 결혼 자금이며 자신의 노후 대책이면서 미래의 모든 것이다. 방옥숙과 함께 재개발 조합 해산의 선봉에 선 부녀회장 윤지애 역시 죽음을 앞두고 집값을 지켜야 할 이유가 있다. 삼십 대 후반이 되도록 정신 못 차린 아들에게 집이라도 남겨주고 싶어서다. 

‘아줌마=진상=김여사’ 수준의, 게으르고 도식적인 중년여성 묘사를 뛰어넘어 다양한 생김새와 표정, 각자의 ‘이유’를 지닌 여성을 볼 수 있다는 것은 이 작품의 중요한 매력이다. 상습적으로 바람을 피우는 도희, 남편의 폭력에 시달리면서도 SNS에서 완벽한 가정을 전시하는 예리, 자꾸 돈 관련된 사고를 치는 웅진 엄마, 학벌 콤플렉스 때문에 딸의 성적에 집착하는 민서 엄마, 온화해 보이지만 과거에 어떤 죄를 저질렀던 것 같은 민호 할머니 등 부녀회원들의 입체적인 캐릭터는 이들이 재개발 무산이라는 목표를 향해 뭉치고 또 흩어지는 과정에서 빛을 발한다. 이들에게 남편은 잘 봐줘야 애증, 아니면 벗어나야 할 굴레다. 예리가 남편에게 학대당하는 장면을 직접 보여주지 않는 것이 그 캐릭터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했다던 작가들은, 폭력 묘사 대신 다양한 방식으로 이를 암시했음에도 예리가 학대의 피해자임을 의심하는 댓글 반응이 많아서 놀랐다며 지적한다. “현실에서도 가정 폭력의 피해자가 자신의 피해를 증명하기란 어려운 일이겠구나.” 



출처: 네이버 웹툰 <위대한 방옥숙>


전작 <마스크 걸>에서 외모 콤플렉스, 나르시시즘, 자기혐오, 이중성, 허영심 등 누구에게나 있을 법한 결점을 가진 인물들이 극단적인 상황에 몰렸을 때 어떤 선택을 하는지 섬뜩하도록 현실감 있게 보여준 작가들은 이번 작품에서도 온갖 욕망의 각축장을 징글징글할 만큼 생동감 넘치게 그려낸다. 가짜 뉴스, 이른바 ‘애국보수’ 세력의 시위 방식, 여성혐오적 힙합 문화 등 동시대 한국 사회를 꼼꼼하고도 신랄하게 풍자하는 감각 또한 남다르다. 이들의 작품 속에는 ‘나쁜 여자’와 ‘여자의 적인 여자’가 다수 등장하지만, 이들은 동시에 ‘마냥 나쁘다고만은 할 수 없는 여자’이면서 ‘인간의 적(어쩌면 동지)으로서의 인간’으로 그려진다. <마스크 걸> 후기에서 “앞으로도 다양한 나쁜 여자들을 그리고 싶다”던 작가들은 <위대한 방옥숙>을 마치며 “차기작에는 더 이상한 여자들이 등장할 것 같다”고 선포한다. 이보다 더 이상하고 나쁜 여자들이라니, 벌써 무섭고 너무 신난다.


추천기사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이 기사가 마음에 드셨다면 아래 SNS 버튼을 눌러 추천해주세요.

독자 리뷰

(0개)

  • 독자 의견 이벤트

채널예스 독자 리뷰 혜택 안내

닫기

부분 인원 혜택 (YES포인트)
댓글왕 1 30,000원
우수 댓글상 11 10,000원
노력상 12 5,000원
 등록
더보기

글 | 최지은(칼럼니스트)

대중문화 웹 매거진 <매거진t>, <텐아시아>, <아이즈>에서 기자로 활동했다. 『괜찮지 않습니다』와 『엄마는 되지 않기로 했습니다』 등의 책을 썼다.

오늘의 책

그럼에도 인간은 선하다

전쟁, 범죄, 불평등, 동물 학대 등 오늘도 뉴스는 불편한 소식으로 가득하다. 인간 본성은 악할까? 네덜란드의 대표 언론인 뤼트허르 브레흐만은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밀그램의 복종 실험, 스탠퍼드 교도소 실험 등 기존 연구의 허점을 밝히고 인간의 선함을 입증했다.

일상을 살아가며 우주를 사랑하는 법

천문학자에게 천문학이란 어떤 의미일까. 우주의 비밀을 찾아 헤매는 천문학자도 현실은 연구실 안에서 데이터와 씨름하느라 바쁘다. 두 아이의 엄마이자 비정규직 행성과학자로 일상을 살아가며 우주를 사랑하는 천문학자 심채경의 첫 에세이.

가지각색 고민에 대한 요시타케 신스케의 대답

아기부터 어른까지 인생은 수많은 고민들의 연속입니다. 요시타케 신스케는 사람들이 품고 있는 고민들에 유쾌한 해법을 제시합니다. 지쳐서 그런건지 자기 상태를 모를 때는 지친 셈 치고, 아무도 날 봐주지 않으면 큰 소리로 울어보라는 천진한 답변이 유머러스한 그림과 어우러져 깊게 다가옵니다.

생활과 가까운 언어로 전하는 공감과 위로

박솔뫼식 감각으로 선보이는 공감과 위로의 이야기. 작품의 인물들은 눈에 보이거나 만져지지 않지만 우리가 선택하지 않은 어떤 삶에는 존재하거나 존재했을 수도 있는 또 다른 삶을, 가능성을 그린다. 한번쯤 떠올려보았을 생각과 상상이 활자가 되어 펼쳐지는, 낯설고도 친근한 세계다.

.

주목! 투데이 포커스


문화지원프로젝트
KALIOP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