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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 인터뷰] 성 정체성 이야기를 블랙 유머로 풀어내다 - 존 보인

『우리 형은 제시카』, 『줄무늬 파자마를 입은 소년』 존 보인 작가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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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어두운 작품일지라도 유쾌한 순간은 늘 들어 있죠. (2020.09.08)

존 보인(John Boyne) 어느 날 성 정체성을 고백한 제이슨을 받아들이는 가족의 모습을 동생 샘의 시선으로 담아낸 소설 『우리 형은 제시카』가 출간됐다. 아우슈비츠 철조망을 사이에 두고 독일 나치 장군의 아들과 유태인 소년의 감동적인 우정 이야기를 그린 『줄무늬 파자마를 입은 소년』으로 전 세계에서 주목받은 아일랜드 출신 작가 존 보인의 신작이다. 묵직한 주제를 다루면서도 특유의 블랙 유머를 능숙하게 녹여 내는 존 보인식 화법이 돋보인다. 홀로코스트부터 트랜스젠더까지 결코 가볍지 않은 소재를 풀어내면서 그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동일해 보인다. 서로를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 글을 쓰는 것이다. 존 보인 작가를 서면으로 만나 보았다.

“세상에는 가장 진솔한 모습으로, 자신의 본래 모습으로, 자신의 진정한 자아를 찾아서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데 이들처럼 성별에 대한 편협한 정의에 부합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이 사회는 냉정한 편이다. 사람들은 자신이 이해하지 못하는 것을 두려워한다. 그러나 무언가에 대해 많이 알수록 두려움이 없어진다는 걸 나는 매번 절실히 깨닫고 있다.” 

- 작가의 말 중에서



 『우리 형은 제시카』는 어느 날 가족에게 성 정체성을 고백한 제이슨의 동생 샘의 시선으로 그리신 작품입니다. “성별이나 성적 취향 같은 복잡한 문제가 당장 자신이 맞닥뜨린 문제가 아닌 그들이 사랑하는 다른 누군가의 문제일 때 어린이가 어떤 식으로 대처할지 궁금했다”고 하셨습니다. 그 이전에 좀 더 구체적으로 이러한 궁금증이 유발된 계기가 따로 있으실까요?

최근 몇 년간 신문, 인터넷, 방송에서 트랜스젠더의 삶이 꽤 많이 등장했고, 소설의 소재로 다루어 보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제가 쓴 여섯 권의 청소년 문학은 모두 미처 능숙히 대처할 충분한 경험도 없이 매우 어른스러운 사고를 해야 하는 복잡하고 어려운 상황에 놓인 아이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웠고, 『우리 형은 제시카』 속 ‘샘’도 역시 그렇습니다. 점점 더 많은 젊은 친구들이 전통적인 남성과 여성의 역할과는 다른 성 정체성을 탐구하는 데 주저함이 없기에, 그들과 그들이 사랑하는 사람의 경험을 더 잘 이해하도록 돕는 책이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소설이 지니는 사회적 함의에서 벗어나, 저 개인적으로는 서로를 의지하고 서로에게 다정히 대하는 두 형제의 애정 어린 관계를 써 내려가는 일이 즐거웠습니다. 소설에는 형제자매 간의 골치 아픈 갈등 관계가 종종 그려지지요. 결국은 서로의 편으로 남을 두 아이를 그려 내는 일이 제게는 신선했습니다.

성인 소설과 더불어 청소년 소설도 다수 쓰셨습니다. 성인을 대상으로 한 책과 달리 청소년 문학을 집필하실 때 특별히 염두에 두거나 유념하시는 점이 있을까요?

집필하는 과정에서 큰 차이는 없습니다. 청소년 문학을 (성인 대상 문학보다) 일부러 더 단순하게 만들지도 않습니다. 가끔 아이들이 제 책을 못 읽게 하는 부모님들이 있단 말을 듣습니다. 너무 무거운 주제를 다루고, 이야기가 그들을 속상하게 만들 수 있다는 사실 때문이죠. 이런 말을 들을 때면 저는 늘 놀랍니다. 제가 생각하기엔 제 소설 속에는 우리가 아이들이 제대로 인식하기를 바라는 확고한 도덕(성)이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제 소설들은 전쟁에 반대하고, 편견에 반대하고, 아이들이 물리적인 폭력보다 더 나은 방식으로 논쟁과 갈등을 풀 수 있도록 이끄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아마 부모님들은 자녀를 너무 이른 나이부터 심각한 이슈에 노출시키고 싶지 않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어찌 되었든 세상 밖에는 이런 문제들이 실제로 벌어지고 있죠. 학교에서건 TV에서건 말이죠. 현실을 회피할 순 없는 법입니다. 문학이 결국 아이들을 올바른 방향으로 이끄는 데 적절한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봅니다.

또 다른 영어덜트 소설 『줄무늬 파자마를 입은 소년』 으로 한국의 독자들은 물론 전 세계적으로 많은 사랑을 받으셨습니다. 청소년기를 특별히 여기고 다루시게 된 계기나 이유가 무엇인가요?

홀로코스트를 다룬 문학 작품을 여러 해 동안 탐구했습니다. 픽션과 논픽션을 가리지 않고 주요 작품들을 정말 많이 읽었습니다. 소설을 연구할 목적이 아니라 순전히 그때의 그 시대와 역사를 더 잘 이해하고 싶어서였죠. 제가 태어난 바로 앞 세대의 시기에 벌어진 일이라는 점에 특히 매료되었습니다.(『줄무늬 파자마를 입은 소년』 속 인물 브루노와 쉬뮈엘의 출생일은 1934년 4월 15일이고, 제 아버지와 같은 날 태어난 셈입니다.) 하지만 영감이 떠오르기 전까진 아우슈비츠를 다룬 소설을 써 볼 생각을 하지는 못했습니다. 『줄무늬 파자마를 입은 소년』을 처음 쓸 때는 단지 이 세 가지만 알고 있었습니다: 안전한 장소(집)를 떠나는 한 아이로부터 이야기가 시작될 것, 브루노와 쉬뮈엘이 철조망에서 만나는 시점, 그리고 이야기가 어떻게 끝날지 말이죠. 거기서부터 출발한 이야기입니다.

십 대 시절부터 이어진 독서하고 연구하던 그 모든 세월은 2004년 4월에 『줄무늬 파자마를 입은 소년』의 초고를 쓸 때 꽃피었습니다. 초고가 완성되었을 때, 수용소의 지리와 유대인 수용자들의 생활, 그들이 입었던 옷과 음식을 아주 자세히 조사했고, 덕분에 제 작품 속 수용소인 ‘아우비츠’가 얼마큼 세세한 묘사로 그려져야 할지 결정할 수 있었습니다.

열서너 살 난 샘의 시선을 따라가는 작품이다 보니, 형을 누나로 받아들이기까지의 과정에서 샘의 혼란스러운 심경이 잘 담겨 있습니다. 어린 시절에 이는 마음을 성인이 된 뒤에도 생생하게 떠올려 담아내기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 시절의 경험이나 기억, 감정 상태를 잘 표현해 내기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이시나요?

원고를 네다섯 번째로 퇴고하는 사이에 세심하고 예민한 감수성을 지닌 독자에게 보여 주었습니다. 트랜스젠더인 독자가 원고를 읽고는 제가 틀리게 썼던 사실들을 짚어 주었고, 인물에 관한 풍부한 생각까지 더해 조언을 훌륭히 해 주었습니다. 정말 큰 도움을 받았죠. 함께 일한 편집자도 같은 식으로 도움을 주었습니다. 물론 모든 충고를 받아들일 필요는 없겠지만, 듣고 나서 자신이 선택할 수는 있죠. 글쓰기란 것이 다 이런 게 아닐까요?

작품 곳곳에 특유의 유머와 재치가 돋보입니다. 다소 무거울 수 있는 소재를 블랙코미디로 풀어내고자 하신 이유가 궁금합니다.

독자가 샘과 제시카 두 인물 모두에게 공감할 수 있도록 하는 게 저한텐 중요했습니다. 그러려면 유머를 섞는 일이 좋은 방법이지요. 샘은 사춘기가 한창인 어린 남자아이고, 그리 사려 깊지는 못할 수도 있어요. 그래서 샘을 조금은 바보 같은 면이 있고, 또 조금은 장난꾸러기 같은 모습도 보여 주는 아이로 만들어 독자가 쉽게 공감할 수 있게 했습니다. 어떤 소설이든 유머가 작품을 끌어 올리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쓴 것 중 가장 어두운 작품일지라도 유쾌한 순간은 늘 들어 있죠.

『우리 형은 제시카』를 쓰실 때 트랜스젠더들과 이야기를 많이 나누셨다고 하셨습니다. 그분들과 만나며 크게 느끼신 점이 무엇인지 들려주세요.

이 소설을 쓸 때 나이가 많고 적은 다양한 트랜스젠더들과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성 정체성을 알게 되었을 때의 심경, 가족이나 친구에게 털어놓을 때의 어려움을 제대로 알고 싶었습니다. 제가 대단히 깊이 이해한다고 할 수 있는 주제가 아니었고, 처음엔 『우리 형은 제시카』의 화자인 샘처럼 묻고 싶은 질문이 많았습니다. 떨쳐 버려야 하는 선입견도 가지고 있었습니다. 샘의 시선으로 이야기가 진행된 이유는 누나가 된 형 제이슨의 마음속을 그리는 일은 감히 제 일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성 정체성의 고백이 자기가 매우 많이 사랑하는 누군가와 가족과 조금 이기적으로는 자기에게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두려워하는 이의 관점을 유지했습니다.

작품 속에는 성 소수자를 포함해 여성, 인종, 난독증을 보이는 샘 등 약자나 소수자를 향한 차별 양상이 상당히 구체적으로 그려져 있습니다. 오늘날의 현실을 보여 주시고자 한 의도로 파악됩니다. 그런 장면을 마주할 때마다 마음 한편이 씁쓸했습니다. 작가님께서도 우리의 현실을 텍스트로 옮기는 작업을 하실 때 감정적으로 힘들진 않으셨나요?

확실히 소설을 통해 ‘차별’이라는 주제를 탐구하는 방식으로 시작되어, 성 소수자분들이 일상생활에서 매일같이 직면하는 현실을 더 깊이 이해해 달라고 촉구하는 소설이 되었습니다. 많은 사람 앞에 내보여지는 일은 누구에게나 쉬운 일이 아니겠지요. 세상은 무례와 편협으로 가득하고, 할 수 있는 만큼 진실하게 삶을 사는 용기를 지닌 사람들을 존중하기보다는 헐뜯고 비방하기를 더 좋아하는 겁쟁이들은 어디에나 늘 있습니다. 보통 젊은 세대가 그보다 앞선 세대보다 더 관대하고 열려 있다고 생각하긴 하지만, 샘과 제이슨/제시카의 이야기가 교실에서 나누는 대화의 소재가 되거나 어린 친구들에게 ‘다름’이 겁먹을 일이 아닌 축하할 일이라는 것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글을 쓰는 동안 감정적으로 힘들어하진 않습니다. 작가는 이야기와 일정한 거리를 두고 표현, 인물, 대화, 주제에 순수하게 집중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작가님께서는 동성애자라는 사실을 세상에 털어놓으신 뒤 삶이 백만 배쯤 더 좋아지셨다고 하셨습니다. 커밍아웃 이후 크게 변화한 점이 무엇인가요?

제가 학교에 다니던 1980년대 그리고 동성애가 범죄가 아니게 되었던 1990년대 초까지도 아일랜드에서 커밍아웃을 하기란 불가능했던 시기였습니다. 동성애자를 향한 부정적인 시선과 차별이 많은 환경에서 자라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고, 그런 환경이 변화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저는 우리나라(아일랜드)가 세계 최초 국민투표로 동성결혼이 합법화된 나라란 사실과, 이민자에다 동성애자인 사람이 총리로 당선된 점, 그리고 이에 대해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다는 것에 큰 자부심을 느낍니다. 전통적이고 보수적이었던 나라가 훨씬 더 자유롭고 진보적이고 친절해진 것을 실감합니다. 제 조카뻘의 젊은 세대들은 어떤 형태의 편견도 참지 않고, 동성애 혐오 발언을 한 또래를 질타합니다. 제가 본 가장 의미 있는 변화된 사회의 모습이죠.

결국 성 소수자에 관한 이야기에서 나아가 자신과 다른 이들을 향한 존중, 즉 다름을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한다는 메시지를 담아 주셨습니다. 여전히 차별이 만연한 사회에서 다름을 인정하자는 말을 꺼내는 일이 오히려 용기가 필요한 상황입니다. 작품을 쓰시고 발표하시기까지 두려움은 없으셨나요?

전혀 두렵지 않았습니다. 무언가에 두려움을 느끼기엔 나이를 많이 먹었고 다양한 일들을 겪었죠. 소설이 나왔을 때 《아이리시 타임스》의 지면에 이 소설을 쓴 이유에 관한 글을 실었습니다. 제가 이 책을 쓴 이유는 십 대 트랜스젠더와 그들의 친구들 사이의 오해를 지우고, 이 주제에 관해 서로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 데 있었습니다. 어떤 사람이든 자기 정체성에 관한 권리를 가지고 있듯이 저 역시 자기 정체성이 있으며, 제 정체성은 그저 ‘인간’일 뿐입니다. 저는 이 소설에서 십 대 트랜스젠더가 아닌 자신의 가족을 이해하고자 노력하는 동생을 화자로 내세웠다는 점을 짚고 싶습니다.

지금 관심을 두고 계신 주제가 있으신지, 앞으로 또 어떤 이야기를 다루고 싶으신지 작품 활동 계획에 관해 미리 들어 볼 수 있을까요?

새로 선보이게 될 작품은 ‘지혜의 문의 여행자(A Traveller at the Gates of Wisdom)’라는 제목의 성인 대상 소설입니다. 2,080년을 건너고 남북한을 포함한 52개국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이야기입니다. 세상이 어떻게 변화하는지, 그럼에도 인간이 느끼는 감정은 어떻게 똑같이 남아 있는지를 다루는 작품입니다.

『우리 형은 제시카』를 접한 혹은 접할 한국의 독자들에게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우리 형은 제시카』를 즐겨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제 작품을 읽어 주시는 독자분 모두에게 큰 감사 인사를 드립니다. 이 이야기가 여러분께 무언가를 남길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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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출판사 제공

출판사에서 제공한 자료로 작성한 기사입니다. <채널예스>에만 보내주시는 자료를 토대로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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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로코스트에 대한 새로운 시각적 접근! '브래스드 오프', '작은 목소리'의 마크 허만 감독" '줄무늬 파자마를 입은 소년'은2006년 영국에서 출간되어 큰 화제를 일으켰던 존 보인의 소설 '줄무늬 파자마를 입은 소년'을 바탕으로 한 영화로 '원작에 매우 충실한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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