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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 기고] 백희나 작가의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상 수상이 갖는 의미 – 김지은 아동청소년문학 평론가

‘감각적이면서도 경이롭고 아찔하면서도 예리한’ 세계에 대해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상 심사평’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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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인 문학상을 수상한 백희나 작가가 아직도 다음 작업 세계를 선보일 수 있는, 상대적으로 젊은 거장이라는 사실은 독자로서 감사한 일이다. 그러나 그가 다음 작업을 할 수 있게 될 것인가는 백희나의 책 속 공동체가 아니라, 현실의 우리 공동체가 대답해야 할 일인 것 같다. (2020. 0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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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희나 작가


지난 3월 31일 밤이었다. 습관처럼 모니터를 열어놓고 2020년의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상 수상자 발표를 기다리면서 종이에 낙서를 하고 있던 나는 “올해의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상 수상자는 한국의 백희나!”라는 소리를 듣자마자 손에 들고 있던 펜을 떨어뜨렸다. 모니터에는 분명 내가 아는 백희나 작가의 사진이 올라오고 있었다. 심사위원장의 낭랑한 목소리가 멀어지면서 아득하게 들렸다. “전화로 백희나 작가를 연결하겠습니다.”라는 말이 이어졌다. 오랫동안 우리 아동문학의 독자로 지내온 나로서도 좀처럼 믿어지지 않는 멋진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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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상 수상작 발표 영상 갈무리

 

 

2002년 스웨덴의 작가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이 향년 94세로 세상을 떠나자 스웨덴 정부기관인 스웨덴 예술위원회는 국민의 세금으로 그의 이름을 딴 국제적인 상을 제정했다. 『내 이름은 삐삐 롱스타킹』 을 쓴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은 현대 아동문학의 기틀을 마련한 사람으로서 존경을 받는 위대한 작가다. 그는 아동문학이 어린이의 독립적 시선을 담은 이야기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증명했다. 증거는 그가 남긴 탁월한 예술성을 지닌 아동문학 작품들이다. 어린이 독자는 린드그렌이 창조한 주인공들을 열렬히 사랑했고 갑갑하기만 했던 문학을 비로소 자신의 것으로 즐기며 자유로운 독자의 권리를 누렸다. 그전까지 대부분의 아동문학은 어른들이 바라는 고분고분한 어린이의 모습, 가르침과 헛기침이 점령하고 있었다. 세계의 어린이들은 린드그렌의 이야기 세상 안에서 마음껏 달리고 서로 안아주며 자라났다.

 

그런데 백희나 작가가 바로 그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상을 수상한 것이다. 이 상은 전 세계에서 매년 1~2인의 수상자를 선정하는데 그 과정에서 작품 한 편이 아니라 작가의 업적 전체와 예술성을 종합적으로 살피며 작품에 담긴 인도주의적 가치를 함께 평가한다. 이 상의 운영위원회는 어린이 청소년 문학의 중요성을 세계에 알리고 작가와 관련 종사자들에게 활동의 동기를 부여하기 위해 우리 돈 6억 원이 넘는 500만 크로나의 높은 상금을 책정했다.

 

2003년 첫해 수상자는 『괴물들이 사는 나라』 의 모리스 센닥과 『깡통 소년 , 『오이대왕』의 크리스티네 뇌스틀링거였다. 수상자의 면면을 보면 이 상이 세계 최고의 권위를 자랑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림책을 모르는 사람도 제목을 다 아는 『누가 내 머리에 똥 쌌어?』 의 볼프 에를브루흐나 『엄청나게 시끄러운 폴레케 이야기』 의 휘스 카위어도 이 상의 수상자다. 수상자가 발표되는 3월 30일이면 해마다 볼로냐도서전의 시상식 중계 스튜디오에는 남은 시간을 알리는 커다란 시계가 설치되고 현장에는 긴장과 기대가 넘친다. 스톡홀름에서 진행되는 수상자 발표 행사는 온라인으로 세계의 독자들에게도 생중계된다.

 

올해는 코로나19로 인해 온라인으로만 열렸다. 하이라이트는 수상자가 직접 전화를 받는 순간이다. 올해도 67개국이 추천한 240명의 작가가 후보에 올랐지만 전화가 걸려오기 전까지는 누구도 자신이 수상자가 될 것인지 알 수 없다. 심사위원장 보엘 웨스틴의 전화를 받고 어리둥절해 “내가 이 상을 받나요?”라고 묻던 백희나 작가의 떨리는 목소리는 영상을 통해 세계로 송출되었고 각국에서 빠르게 관련 기사가 올라왔다.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상 공식 유튜브 영상

 


백희나 작가는 그동안 모두 13권의 그림책을 발표했다. 2004년 출간한 데뷔작 『구름빵』 은 흔한 말로 ‘국민 그림책’이 될 정도의 엄청난 사랑을 받았지만 작가에게는 출간 이후 지금까지 이 작품의 저작권이 없다. 처음에 전집의 한 권으로 출간하기로 계약하면서 작가가 서명한 계약서 때문에 이 책의 단행본 저작권은 출판사가 가지고 있다. 작가는 2004년 이후 지금까지 16년 동안 고통 속에 이 작품의 저작권을 되찾기 위해 노력해왔다. 지금도 소송 중이며 얼마 전 고등법원에서 열린 2심에서 패소했고 대법원 판결을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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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스트리드 린드그렌상 심사위원회는 세계가 지켜보는 가운데 백희나의 작품 세계를 설명하면서 『구름빵』 을 가장 첫 번째로 호명했다. 그 작가의 작품이지만 권리는 그 작가의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세계의 독자들에게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당장 해외 도서전에만 나가도 한국인 린드그렌상 수상작가의 데뷔작에 대한 다양한 질문이 쏟아지겠지만 “그 작품에 대해 작가는 아무 권리가 없다고 한국의 사법부가 말했어요. 구름빵 캐릭터의 동일성유지권조차도 작가에게 없다고 판결했어요. 저작권은 조각조각 나눴다는데, 출판사 한솔수북이나 강원문화진흥원에 가보세요.”라고 말해야 할 판국이다.

 

작가의 수상 사실이 언론을 통해 알려진 이후 “구름빵을 작가에게 돌려주세요.”라는 국민 청원이 올라와 진행 중이고 대법원은 어떤 판결을 내릴지 궁금하며 독자들의 불매 선언이 이어진다며 신문에 보도되었다. 출판사는 끝까지 이 그림책의 소송에 임하겠다고 인터뷰했다. 국가가 나서서 경축할 예술적 업적을 이루었고 일생일대의 기쁨을 누려야 할 작가는 “꿈에 그리던 린드그렌상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기뻐만 할 수 없게 만드네요. 이제는 살고 싶습니다. 정말 아픕니다. 더 많은 작업을 하고 싶습니다.”라는 글을 자신의 SNS에 올렸다.

 

이 글은 왜 여기까지 왔을까. 펜을 떨어뜨리며 감동에 빠져들던 그 발표의 순간으로 돌아가야 하는데 독자인 나조차도 그것이 쉽지 않다. 하지만 백희나 작가의 작품 세계와 수상의 의의를 살펴보는 본연의 임무로 돌아가서 그의 그림책들을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소중한 작가를 잃을 수 없다는 마음으로 독자가 할 수 있는 일은 우선 이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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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스트리드 린드그렌상 운영위원회'는 2,000단어가 넘는 길고 섬세한 심사평을 통해 백희나 작가의 세계에 대한 심사위원회의 찬사를 전했다. “백희나는 영화 같은 자신의 그림책을 통해 고독과 연대에 관한 이야기를 무대에 올리는 작가”라고 소개하면서 『달샤베트』 , 『어제저녁』 , 『장수탕 선녀님』 , 『삐약이 엄마』 , 『알사탕』 , 『나는 개다』 등에 담긴 미학적 의미를 한 권 한 권 분석한다. 그리고 심사평의 말미에서는 “백희나는 손으로 직접 만드는 공예와 애니메이션의 요소를 흥미롭게 결합해 비타협적이고 대담한 방식의 테크닉과 예술적 솔루션을 선보이면서 그림책 분야를 새롭게 발전시키고 있는 예술가”라고 요약한다. 백희나 작가가 어린이, 동물, 사물, 목욕탕의 선녀님까지 어울려 교감할 수 있는 즐겁고 감동적인 세계를 만들어낼 수 있었던 것은 ‘어린이의 관점’을 존중하고 지지하는 작가의 태도에 있다고 말한다. 이것은 린드그렌의 정신과 정확히 통하는 지점이며 오늘날의 아동문학이 걸어가는 방향이기도 하다.

 

백희나 작가의 작품 속에서는 어린이가 신나고 어린이가 쓸쓸하며 어린이가 해낸다. '요구룽'를 먹고 싶다는 선녀님의 오랜 소원을 들어준 것은 작은 여자 어린이 덕지다. 가족이 있어도 외롭고 이웃은 멀지만 알고 보면 한 귀퉁이는 더없이 따뜻하다. 알사탕의 마술 덕분에 아빠의 사랑을 알게 되어서 속상함이 조금 풀린 건 동동이지만 한 발 더 다가와서 아빠를 뒤에서 안아주는 쪽은 동동이다. 린드그렌상 심사평에서도 이 장면을 두고 동동이가 외로운 아빠에게 출구를 마련해주는 장면이라고 해석한다.

 

백희나 작가의 책 대부분은 판타지를 통과하고 있음에도 쏟아지는 폭풍 행운 같은 건 나오지 않는다. 대신 꼭 필요한 만남이 있고, 그 만남은 다정하며, 거기에는 이 시대에 드물고 귀한 정직한 선의가 동행한다. 얼룩말은 양에게 열쇠를 찾아주고 생쥐는 개 부부가 잃어버린 양말을 발견해준다. 늑대 할머니가 준비해둔 달 샤베트가 없었다면 그 더운 여름밤은 어떻게 잠들 수 있었을까. 사람들은 이것을 마법 같은 일이라고 부르지만 어린이 독자들은 백희나식의 마법이 “자신들이 만들어갈 미래에는 얼마든지 있을 수 있는 일”이라고 믿고 그 마법의 주인공이 되고 싶다는 꿈을 갖는다. 그런데 책을 읽고 나면 어린이 독자들의 꿈이 불가능한 일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만약 연대와 경청과 우정을 회복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면 더 이상 자라야 할 이유는 없을지도 모르니까. 그런 점에서 백희나는 비관의 강도와 규모를 무시하지 않는 낙관주의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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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린드그렌상' 심사평에서는 백희나 작가가 만들어낸 독창적 표현 양식에 대한 부분도 눈에 띄었다. “한글을 시각화하여 서사 구조에 통합해낸 점”을 높이 평가하면서 『알사탕』 에서 아빠의 끝없는 잔소리 장면을 “숨 막힐 것 같이 빼곡하게 들어찬 글자들”로 채운 것을 예로 들었다. 사각 안에 꽉 들어맞는 고딕체의 글자들과 여백도 없이 그 글자로만 도배된 한 페이지는 동동이의 심리를 정확히 드러낸다. 그렇지만 손글씨로 그린 사랑의 말들은 벽도 경계도 없이 둥실둥실 떠다닌다. 또한 길고 고된 노동의 시간을 거쳐야 함에도 불구하고 손으로 만들기를 고집하는 백희나 작가의 방식만이 만들어낼 수 있는 ‘불완전함의 아름다움’에도 주목했다. 얼핏 초라하고 삐딱해 보이는 인물들은 점토를 만지는 정교한 손길 덕분에 세상에 하나뿐인 그 인물만의 표정을 지니게 된다. 린드그렌상 심사위원회는 백희나 작가의 손을 ‘해부학적 정확성’을 만들어내는 손이라고 평가한다. 뿐만 아니라 낱말에 불과한 캐릭터를 작가가 붙잡아 오랜 시간 손으로 다듬고 빚어내 3차원으로 세우는 이 과정에서 백희나의 인물들은 저마다 독자 앞에서 자신만의 정체성과 존재감을 지니게 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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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희나의 인물들은 생물이든 무생물이든, 하나하나 다르지만 뜨개질한 옷처럼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 구름빵의 구름은 이상한 엄마의 전화를 받은 선녀 할머니를 태우러 온다. 여기에 백희나 공동체의 아름다움이 있다. 누가 이 세계를 함부로 훼손할 수 있을까. 악의는 철저히 고립시켜 놓았기에 거의 눈에 띄지도 않는다. 그럼에도 한 겹만 들추면 서늘함이 가만히 눈을 뜬다는 걸 작가는 놓치지 않는다. 그리고 그걸 알면서도 “여기에는 악의가 살 곳이 아무 데도 없어요.”라고 외친다. 이것이 그의 작품이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용기다.

 

세계적인 문학상을 수상한 백희나 작가가 아직도 다음 작업 세계를 선보일 수 있는, 상대적으로 젊은 거장이라는 사실은 독자로서 감사한 일이다. 그러나 그가 다음 작업을 할 수 있게 될 것인가는 백희나의 책 속 공동체가 아니라, 현실의 우리 공동체가 대답해야 할 일인 것 같다. 그의 작업을 꾸준히 오래오래 만날 수 있도록 현실이 제대로 응답하기를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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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김지은(아동청소년문학평론가)

『어린이, 세 번째 사람』, 『거짓말하는 어른』을 썼고 『왕자와 드레스메이커』, 『인어를 믿나요』, 『홀라홀라 추추추』 등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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