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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병모 작가 “한계 없는 텍스트로 가 닿고 싶다”

중편 『심장에 수놓은 이야기』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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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고 작고 가볍다고 해서 내용이 가볍지는 않다, 라는 말에서 힘 얻는다.” (2020. 03.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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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유석

 

 

가장 강렬하고 아름다운 판타지를 선사하는 ‘스토리텔러’ 작가 구병모의 새로운 소설 『심장에 수놓은 이야기』 가 아르테 ‘작은책’ 일곱 번째 책으로 출간되었다. 『심장에 수놓은 이야기』 는 삶 속에 도사린 폭력에 맞선 사람들을 구원해주는 환상적 순간을 눈앞에 펼쳐 보인다. 평범한 중년 여성 ‘시미’는 동료 ‘화인’을 통해 미제 사건들의 연결 고리를 따라가며 비밀을 공모하듯 낯선 세계로 발을 들인다. 현실이라는 지표에서 떨어진 세계를 공유하면서 타인에게 무심하던 시미가 낯선 사람에게 건네는 축복의 말들은 “입 밖으로 나온다고 하여 (중략) 달아나거나 가치가 감소하지도 않”는다는 책 속 문장처럼 나약한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쉽지만 신비스런 기도를 체험하게 한다. 무엇이 나를 지켜줄지 아득한 가운데, 빛나는 생을 살지는 못하더라도 한 발치 앞이나마 비추어줄 한 점의 빛을 만날 수 있기를 비는 작가의 염원이 가슴에 든든하게 새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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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 『심장에 수놓은 이야기』 로 독자분들을 만나고 계십니다. 독자들의 반응이 뜨거운데 혹시  후기 중 기억에 남는 멘트가 있으신지, 작품에 대한 작가님의 마음도 그런 반응들로 인해 출간 전과 후가 달라진 점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모두가 아시는 바대로 지금 사선에서 목숨 내놓고 일하시는 분들도 계시고, 곳곳에서 대다수의 분들은 일상과 생계가 마비된 상태입니다. 안타까운 일들과 우려되는 일들, 또한 화나는 일들이 많고 각자 그것에 대해 생각하거나 해결하느라 자신의 내면에 집중하기 어렵습니다. 이런 때 신작에 대해, 많은 분들께 그 보람이나 반가움을 포함한 인사를 충분히 전달하기 어렵다는 현실적인 한계도 있었습니다. 모든 리뷰를 자세히 읽어보진 못했습니다만, 짧고 작고 가볍다고 해서 내용이 가볍지는 않다,라고 말씀해주신 분들의 이야기가 대체로 힘이 되었고요. 또 나도 언제 한번 문신 해보고 싶다고 남겨주신 분들의 이야기도 기억에 남습니다.

 

『심장에 수놓은 이야기』 에서의 '50대 여성' 화자와 '문신'이라는 조합을 신선하게 느끼시는 분들이 많은 것 같아요. 어떤 계기로 이런 조합을 구상하게 되셨고, 집필하시는 동안 작가님께 ‘시미’가 보고 듣고 경험하는 것들은 어떻게 와 닿았는지 궁금합니다.


20, 30대가 문신을 한다고 하면 저희 느낌에는, 그런가 보다 멋 내나 보다 하고 그냥 자연스럽거든요. 이게 현행법상 불법이다 아니다 같은 것도 별로 생각 안 나고, 귀걸이 하려고 귀 뚫는 것과 비슷한 정도로 생각되는 거예요. 연예인들이나 운동선수들을 통해서 익숙해진 문화이기도 하고요. 그런데 세대가 위로 올라가면 범죄랑 연관을 짓거나, 꼭 그렇지 않더라도 어쨌든 조직 단체생활에서 튀는 사람이다, 일종의 낙인을 찍어요. 지금도 타투 예술이나 타투 의료법 관련해서 인터넷 기사 한번 올라오면 거기 베스트 댓글이 ‘문신충 꼴 보기 싫다’ 하는 식이고, 최대한 너그럽게 하는 말이 문신 새기는 건 자기 마음이지만 내 눈에는 안 띄었으면 좋겠어. 이렇게 아직까지는 보수적인 인식이 많은 것 같아요. 주인공 시미는 그런 인식의 전통에 충실하게 맞춰 살았다고 할 수 있는 인물이에요. 신속하게 탈혼을 하긴 했지만, 보통의 어르신들이 적령기라고 일컬으면서 여성의 몸에 대해 사회적인 의무 수행을 요구하는 그 나이에 맞게 결혼과 출산의 경험이 있고, 그 경험의 자장에서 적극적 주체적으로 벗어나지는 못한 상태거든요. 그런 여성이 몸에 상처를 내가면서 문신을 한다는 것은 생각보다 큰 심리적 변화를 요구하는 일이라고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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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유석

 

『심장에 수놓은 이야기』  속 '문신술사'를 보면서 『위저드 베이커리』 속 '점장'을 떠올리는 분들이 많으신 것 같아요. 한편으로는 현실적인 여성 서사를 전면에 다룬다는 점에서는 소설집 『단 하나의 문장』 과 『네 이웃의 식탁』 이 떠올리는 분들도 계십니다. 전에도 그랬지만 특히 『심장에 수놓은 이야기』  에서는 작가님만의 ‘환상’이 현실의 모순을 더욱 또렷하게 드러내는 하나의 수단이자 현실의 아픔을 치유하는 방식으로 더 잘 와 닿았던 것 같아요. 이런 현실과 환상의 접점은 어떻게 발견하고 또 구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위저드 베이커리』 의 점장은 성격이 강해서 독법에 따라 그를 주인공으로 보시는 경우도 있는데, 문신술사는 성격이 거의 드러나지 않습니다. 철저하게 주변인물이면서 배경이고, 인물의 삶에 침투하지 않지요. 이렇게 성격이 없다는 점, 인간미라고 할 만한 게 드러나지 않는다는 점은 환상이 가진 비일상성과 비현실성이라는 속성을 강화하는 전략으로 기능합니다. 그런데 현실과 환상에 접점이 있다는 것은 그 둘을 명확하게 구분할 수 있다는 뜻과 같은데, 그런 의미에서 저는 접점이 없거나 접점을 찾기 힘들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환상과 현실을 굳이 구분하지 않는다고 꾸준히 얘기해왔고 그 관점을 이번 소설에서 그대로 노출한 대목이 있는데요. 우리가 흔히 현실이라고 부르는 자리에서 1센티미터만 이동해도 어느새 환상인지 현실인지 모를 무엇이 있을 거예요. 지금 우리의 현실이 환상보다 더 굳건한 토대 위에 있는가를 생각하면 더욱 그렇습니다.

 

『심장에 수놓은 이야기』 의 마지막 장면에서, 『파과』 의 마지막 ‘살아 있는 모든 것이 농익은 과일이나 밤하늘에 쏘아올린 불꽃처럼 부서져 사라지기 때문에 유달리 빛나는 순간을 한 번쯤은 갖게 되는지도 모른다’라는 문장이 떠올랐습니다. 작가님 개인에게 ‘아름다운 것이 부서져 사라지는 순간’이란 어떤 순간일까요?


빛나는 이미지가 두 편의 소설에서 쓰였으니 빛에 대해 이야기를 하자면, 티베트의 불교철학에서는 빛남luminous과 knowing을 중요시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빛난다는 건 우리가 눈으로 볼 수 있는 빛나는 걸 가리키는 게 아니라, 의식이 지닌 능력 즉 무언가를 밝혀내거나 드러내는 능력을 말합니다. 앎은 그렇게 밝혀지고 드러난 것을 지각하고 파악하는 능력이고요. 그런 의미에서 제가 생각하는 아름다움이란 지시하거나 지칭할 수 있는 게 아니라 어느 순간 드러나는 것, 그러나 대부분은 드러나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실은 허무야말로 유일한 궁극의 미가 아닐까, 이름 그대로 허무니까 부서질 것도 사라질 것도 없는 상태 말이지요. 그러니까 ‘아름다운 것이 부서져 사라지는 순간’이라는 것은 저의 세계에서는 성립되지 않는데, 왜냐면 예로 들어주신 『파과』 의 마지막 문장에서 제가 정말로 아름답다고 느끼는 건 잘 익은 과일이나 빛나는 불꽃이 아니라 부서져서 사라지는 일 그 자체이니까요.

 

그동안 작가님은 작품을 통해 '사회적 약자'가 살아 숨 쉬는 세상과 그들의 목소리를 다양하게 보여주셨어요. 특히 『심장에 수놓은 이야기』 에서는 ‘시미’를 중심으로 연결되는 등장인물들뿐만 아니라, 작품 밖의 서로 다른 입장을 가진 또 다른 상처받은 사람들에게로 무수히 연결되는 듯한 느낌을 받았는데요, 이런 ‘연결’을 어떻게 구상하게 된 건지, 그리고 지금의 작가님은 또 어떤 분들께 어떻게 가 닿고 싶으신지 궁금합니다.


현실에서는 낯을 많이 가리는 편이고 말도 별로 하지 않습니다. 물리적인 거리가 상당히 있어서 누군가를 만나는 일도 없습니다. 누군가한테 가서 닿는 건 텍스트로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텍스트라면 한계 없이 누구한테든 가 닿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때 『심장에 수놓은 이야기』 『한 스푼의 시간』 과 같이 비교적 환대에 가깝다고 할 만한 방식이 있는가 하면, 『네 이웃의 식탁』  같은 환멸 일변도의 접근 방식도 있으니, 그 누구에게도 전적으로 받아들여지기는 어려울 것 같다는 현실적인 문제가 남아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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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유석

 

 

작가님의 소설을 읽으면 어떤 상황을 묘사하실 때의 표현이나 단어 선택이 굉장히 적확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찰나적 해소”나 “기묘한 공감대” 같은… 작가님께서는 자신의 ‘단어 사전’ 같은 것을 가지고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인데요. 평소에 글을 쓰지 않으실 때 어떤 것을 주로 보고 들으면서 지내시는지 궁금합니다.


글을 쓰지 않을 때는 보통 글을 쓰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돌봄노동과 일상생활을 꾸리는 것, 책을 고르고 읽는 것, 죽지 않을 정도로만 루즈하게 운동하는 것, SNS에서 사람들이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들여다보는 것 모두 예열에 해당한다고 주장해봅니다. 주객전도가 되는 때도 많지만요.

 

꾸준히 작품을 발표하고 계시는데요, 작품을 낼 때마다 그 전과 후, 일상이 달라지는 게 있는지 궁금합니다. 그리고 이 책의 독자분들께 인사를 전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회사원이 프로젝트 하나를 마쳤다고 해서 그 전후로 일상이 달라지지 않고(달라져서도 안 되고) 그냥 회사를 계속 다닙니다. 노동을 지속할 컨디션 회복을 위해, 잠깐 연차를 내서 짧은 휴가 여행은 다녀올 수 있겠지요. 『심장에 수놓은 이야기』 가 출간되던 날에 저는 다른 마감을 하고 있었고 지금도 그렇습니다. 다 함께 내일이 어떻게 될지 모르는 총체적인 난국 속에 이 책을 선택하고 손에 쥐어주셔서 고맙습니다. 부디 무탈히 건강하세요.

 

 

* 구병모


1976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경희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편집자로 활동하였다. 2009년 『위저드 베이커리』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 『그것이 나만은 아니기를』, 『단 하나의 문장』 장편소설 『네 이웃의 식탁』, 『파과』, 『아가미』, 『한 스푼의 시간』이 있다.

 

 

 

 

 

심장에 수놓은 이야기 구병모 저 | arte(아르테)
삶 속에 도사린 폭력에 맞선 사람들을 구원해주는 환상적 순간을 눈앞에 펼쳐 보인다. 평범한 중년 여성 ‘시미’는 동료 ‘화인’을 통해 미제 사건들의 연결 고리를 따라가며 비밀을 공모하듯 낯선 세계로 발을 들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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