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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의 일] “편집자 하지 마세요”의 숨은 의미

출구 없는 출판 불황에서 출구 찾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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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편집자란 공부하는 사람이라는 지점을 강조한다. 끊임없이 역량을 키우고 배우려는 자세를 잃지 말라는 의미다. (2020. 02.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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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라는 직업은 알지만 편집자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몰랐던 대학 시절, 한때 출판사에서 근무했다는 대학 강사를 찾아가 이것저것 물어보았다. 선생은 내게 “예비 편집자 대상 강의를 들어보라”고 제안해주었다.

 

대부분 예비 출판인들은 출판학교 SBI(서울북인스티튜트)에서 운영하는 6개월짜리 수업으로 출판의 기초를 쌓는다. 10여 년 전 당시에는 이런 제도가 존재하는지도 몰랐다. 한겨레문화센터 같은 기관에서 운영하는 10여 시간짜리 단편적인 수업이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전부였다. 고작 그 정도 시간으로 무엇을 배우겠냐만은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수업에 등록했다. 문화센터 강의 첫날, 강사가 했던 한마디가 아직도 생생하다.

 

“편집자 하지 마세요.”

 

그 강사의 주문이 통했는지, 강의가 진행될수록 ‘이쪽은 나와 안 맞는 것 같다’며 출판계에 발들이기를 포기하는 친구도 몇몇 생겨났다.

 

그는 왜 편집자를 하지 말라는 문장으로 수업을 시작했을까. ‘책을 좋아한다는 이유로 편집자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마라’는 의미였지만 그의 말투에는 약간의 좌절이 섞여 있었다. 당시에는 그 말의 속뜻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평균 근속 연수 3년, 실무 정년 마흔. 출판사의 90퍼센트가 10인 이하의 인원으로 운영되고, 책 종수는 매년 늘어나지만 독서인구는 끊임없이 줄어든다. 그의 좌절감은 이러한 수치를 아는 업계 사람의 하소연이었을 것이다. 바깥일을 마치고 돌아온 엄마가 어린 내게 ‘너는 절대 엄마처럼 살지 마라’ 읊조리며 내쉬던 한숨과 비슷할지도 모르겠다. 나도 지금 오늘내일하는데, 내 전철을 밟으려는 이에게 고운 말이 나올 리 없다.

 

이런 암울한 수치들이 출판계 현실임에도 여전히 SBI의 출판인 양성과정 수업에는 예비 편집자, 마케터, 디자이너로 문전성시다. 책이 좋아 책을 만들고 싶은 단계에까지 이른 열정 많은 예비 출판인들이다. 선배들이 “편집자 하지 마세요”라고 벽을 치는 어려운 상황임에도 결국 이 길을 걷겠다고 결심한 친구들에게 무엇을 말해줄 수 있을까.

 

그럼에도 도전해보고 싶다면, 오히려 지금의 현실을 객관적으로 직시하고 그 안에서 입지를 다져나가는 보신保身의 길을 택하라고 이야기해주고 싶다. 다만 이를 ‘상황이 여의치 않으니 이것만 받아라’며 들이미는 업계 최저 수준의 연봉을 감당하랄지, ‘이번 생은 망했어’라는 패배주의로 이해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포기’와 ‘인정’은 다른 의미다. 노동 문제는 별개로 접근해야 한다. 그저 업계의 한계를 깨닫고, 그 안에서 자신의 길을 모색해야 한다는 의미로 받아들이면 좋겠다. 인구 대부분이 책을 읽지 않는 시대에도 누군가는 책을 만들고 누군가는 그 책을 읽는다. ‘이생망(이번 생은 망했어)’을 외치며 좌절하기보다는 현재에 집중하는 편이 낫다.

 

『편집자 되는 법』 은 편집자가 알아야 할 A to Z가 담겨 있다. 신입 시절부터 10년 이후 베테랑 편집자가 되기까지 가져야 할 마음가짐과 약간의 실무가 포함된다. 선배 편집자로서 업계를 바라보는 착잡한 심정과, 그럼에도 책을 만드는 사람으로서 할 일을 한다는 자세가 눈에 띈다.

 

읽다 보면 한 명의 편집자가 한 권의 책을 만들어내지만, 결코 혼자 일하는 존재는 아님을 이해할 수 있다. 자신이 몸담은 출판계의 판세를 읽고, 독자가 반응할 만한 소재를 저자에게 제안하고, 저자부터 디자이너와 마케터, 제작처까지 모든 일정을 조율하는 사람. 되지 않는 일을 되도록 만들고, 존중과 배려를 미덕으로 삼아 책을 만든다. 이로써 결국 출판도 사람이 하는 일이라는 교훈을 얻는다.

 

더불어 이 책은 출판사도 하나의 회사임을 인지하는 데 도움이 된다. 업계 밖에서 출판을 바라보는 시선에는 일종의 동경이 담겨 있다. 이는 갓 업계에 발을 들인 신입들에게도 마찬가지다. 책이라는 문화사업은 무언가 다르리라는 기대는 보통 첫 직장에서 무참히 깨진다.

 

‘어떻게 OOO 책을 낸 출판사에서 이럴 수가 있어.’

 

그 생각, 틀렸다. 그 책을 출간한 것과 회사의 근무 환경은 함께 가지 않는다. 출판사도 회사이기 때문이다. 다른 업계보다 나을지는 모르겠지만 청정지대일 수 없다. 책 속에 언급된 한 문장에 밑줄을 그었다.

 

“회사를 너무 믿지 마세요.”

 

일반 회사와 마찬가지로 출판사도 이윤 창출을 목적으로 한다. 이런 부분을 인지한 뒤에 출판계에 들어온다면 서로를 존중하되 의존하지 않는 ‘적정한 거리’를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마지막으로 이 책은 편집자란 공부하는 사람이라는 지점을 강조한다. 끊임없이 역량을 키우고 배우려는 자세를 잃지 말라는 의미다. 이는 ‘수많은 지식을 섭렵하라’는 말과는 다르다. 편집자가 아무리 날고 기어도 저자의 지식을 이길 수 없다. 나는 ‘공부하라’는 말을 ‘호기심을 잃지 말라’는 의미로 이해한다.

 

잊을 만하면 과학 관련 기획을 들고 오는 동료가 있었다. 천생 문과인 나는 그 친구가 신기해서 과학이 재미있냐고 물었다. 그 친구는 잘 모르는 분야를 동경한다고, 과학이 궁금하다고 대답했다. 나는 그가 대학원 출신 이과생 편집자보다 훨씬 흥미로운 과학 책을 기획하리라 확신한다. 많이 아는 것보다 많이 궁금한 편집자가 더 좋은 결과물을 만들어낸다. 이것이 출판이 재미있는 이유라고 생각한다.

 

『편집자 되는 법』 에서는 편집자의 일이 어떠냐는 말에 누군가 “힘들지만 재미있는 일입니다”라고 대답했다는 말이 나온다. 누군가는 ‘힘들지만’에 방점을 두고, 또 다른 누군가는 ‘재미있다’에 초점을 맞출 것이다. 어느 쪽에 중심을 두느냐에 따라 “편집자 하지 마십시오”라는 충고가 나올 수도, “편집자 할 만합니다”라는 조언이 나올 수도 있겠다. 선택은 자신의 몫이다. 나는 후자에 한 표를 던진다.

 


 


 

 

편집자 되는 법이옥란 저 | 유유
출판이 무엇인지, 거기에서 편집자가 아울러야 할 과정을 설명하고, 전문가인 책임 편집자가 되려면 무엇을 어떻게 갈고닦아야 하는지 놓치지 않고 보여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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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이지은(출판편집자)

12년차 출판노동자. 2009년부터 지금까지 6개 출판사에서 책을 만들었고, 지금도 만들고 있다. ‘인생은 재능이 아닌 노력’이라는 좌우명을 스스로 증명하기 위해 분투했다. 덕분에 재능 없이 노력으로 쌓은 12년 출판경력은 부끄러움과 자부심이 공존한다. 한 권의 책을 출간하기 위해 동료나 저자와 치고받고 싸우기도 하고, 죽고 못 사는 사이가 되기도 하는 출판이 재미있어서 이 언저리에 계속 남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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