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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과 동거하며 발견한 ‘오늘의 행복’

『나는 세 번 죽었습니다』 손혜진 저자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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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미래의 제 행복을 보장할 수 없지만, 오늘의 제 행복은 보장할 수 있어요. ‘살면서 행복한 날을 하루라도 더 늘리자.’는 생각으로요. (2020.0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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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몇 번 태어날까.  『나는 세 번 죽었습니다』 의 손혜진 작가는 ‘네 번’이라 답한다. 8세, 18세, 22세에 암이 발병해 생과 사를 가르는 수술대 위에 세 번 눕게 되었다. 일생에서 암과 함께 한 날이 그렇지 않은 날보다 많았다. 에세이 『나는 세 번 죽었습니다』 는 암과 살아온 나날의 이야기다.

 

손혜진 저자의 투병은 어린 시절부터 시작됐다. 초등학교 1학년 때 수개월 동안 계속된 복통으로 병원을 찾은 후 ‘축구공만 한’ 혹이 있어 떼어내야 한다는 진단을 듣는다. 소아암, 병명은 신경아세포종이었다. 수년간의 항암치료 후 뒤늦게 학교에 적응할 무렵, 이번에는 희귀암인 GIST가 찾아온다. 한창 취업 준비에 여념 없던 스물두 살, 희귀암이 재발하면서 그녀의 삶은 거대한 소용돌이에 휘말린다. 저자는 『나는 세 번 죽었습니다』 를 통해 결코 평범하지 않았던 자신의 삶을 풀어놓는다. 자신의 이야기를 통해 혼자 외로워하고 있을 누군가에게 작은 힘이 되고 싶었다고 말한다.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이 홀로 간직한 아픔을 조금 덜고, 잠시만이라도 덜 외로우면 좋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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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님 본인 소개 부탁드립니다. 


제게 주어진 남은 날이 얼마나 될지 모르겠지만 그날들을 행복하게 보내고 싶은, 책 읽는 것을 좋아하는, 암 투병 중인 34세 여자입니다. 가끔은 남은 날들이 아주 먼 미래까지 이어질 것 같고, 또 가끔은 몇 달 안에 이 모든 것이 끝이 날 것 같은 혼란 속에서 지내왔습니다. 지금은 그저 ‘오늘, 지금 행복하면 되었다.’ 싶습니다.

 

『나는 세 번 죽었습니다』 의 집필 계기가 궁금합니다. 투병 과정을 책으로 쓰겠다고 마음먹은 계기가 있나요?


초등학교 6학년 때 독후감 방학 숙제가 있었어요. 그때 읽은 책이 오토다케 히로타다의 『오체불만족』이었는데, 그 책이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는 ‘팔다리가 없는 나만이 할 수 있는 그 무엇이 있기 때문’에 자신이 태어났다고 해요. 책을 읽으면서 그런 경험이 글로 쓰일 수 있다는 걸 처음 알았습니다. 읽는 내내 그의 유쾌함과 긍정적인 생각에 동화되었고, 큰 위로를 받았어요. 그래서 나의 투병 이야기도 누군가가 읽고 위로받고 용기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병실 침대에 누워 있는데 낯선 의사 선생님이 방문했다. 곧장 내 앞에 온 의사 선생님은 친절하게 웃으며 “배에 축구공만 한 혹이 있어서 떼어내야 한단다.”하고 말했다. 나는 배를 한 번 내려다보고는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의사 선생님을 바라보면서 “말도 안 돼요. 축구공만 한 혹이 들어 있으려면 제 배가 이따만해야 해요.”하고 손짓을 더해 또박또박 대답했다. (중략) 그렇게 몇 분 동안 옥신각신하다가 의사 선생님은 무안했는지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그래, 야구공만 한 혹이 배에 생겼단다. 그러니 떼어내야 한단다.”하고 말했다. 나는 다시 내 배를 내려다보았다. ‘야구공만 하다고? 그래 야구공이라면 들어있을 만하군!’하고 그제야 납득했다. (『나는 세 번 죽었습니다』 16~17쪽)

 

초등학교 1학년 때 소아암으로 큰 수술을 받았어요. 어린아이였던 자신도 많이 무서웠을 텐데, 우는 엄마를 위로하려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어요.


여덟 살 때는 수술이 어떤 것인지 잘 몰랐어요. 그냥 다치면 연고를 바르고, 밴드를 붙이는 그 정도가 제가 아는 치료였어요. 의사 선생님이 혹을 제거해야 한다고 말했을 때도 ‘어떻게 배 안에 있는 걸 없애지?’ 그런 생각을 했어요.


수술하는 날, 머리에 비닐 모자가 씌워질 때도 ‘뭔가를 하는구나.’ 정도로만 여겼어요. 엄마 눈에 눈물이 맺혀 있어서 엄마를 위로하고 싶었는데 무얼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 수 없었어요. “엄마 울지 마.”하고 이야기하려다가 주변에 사람이 많아 결국 하지 못했어요. 마취되어 잠들 때도 ‘말해야 하는데, 말해야 하는데….’하고 생각하면서 어둠 속에서 필사적으로 입을 뻐끔거렸죠. 그러다 어느 순간 번쩍 눈을 떴어요. 초록색 모자와 마스크를 쓴 어른이 보였어요. 그분이 “엄마하고 아빠하고 곧 다 볼 수 있어.”라고 말해주셔서 안심하고 다시 잠이 들었죠.


그날 엄마에게 울지 말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어쩌면 엄마에게 어떤 말이든 해야 한다는 의지가 저를 살렸나 싶기도 해요. 생존율이 30%대밖에 되지 않는 위험한 수술이었다고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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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세 번 죽었습니다』 의 1장은 작가님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담고 있어요. 아픈 아이를 ‘불쌍한 아이’ ‘동정해야 할 대상’으로 보는 시각 때문에 상처받은 경험이 있다고요?


저는 원체 소심한 아이였던지라 대수롭지 않게 여길 수 있는 일에도 상처받고는 했어요.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아홉 살 무렵, 초등학교 방송부에서 찾아온 일이었어요. 같은 학교 초등학생이던 방송부 언니가 “오늘 방송을 촬영해서 널 도와줄 거야. 병원비를 마련해줄게.”라고 말했는데, 좋은 의도였겠지만 (제가 느끼기에) 뻐기는 말투에 마음이 상했어요.


‘나는 너와 다르다’라는 시선, 동정 어린 시선을 그날 처음 겪었어요. 당시에는 그게 뭔지 정의 내릴 수 없었으면서도 기분이 상했죠. 그 언니가 저를 통해 우월감을 느끼는 것처럼 보였어요. 불쌍한 아이를 도와준다는 자부심이었는지도 모르겠어요. 그땐 저도 그 언니도 어렸으니까…. 지금은 이해할 수 있는 일이 되었지만, 그땐 크게 상처를 받았죠.


그전까지 저는 그저 주어진 일상을 살아내고 있을 따름이었어요. 다른 아이들과 다른 삶을 살고 있다는 걸 의식하지 못했어요. 제 주변에서 만나는 아이들은 저처럼 병원에 다니고 있었으니까요. 그날 저는 제가 ‘불쌍한 아이’라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어요. 전 나름 행복하게 살고 있었는데, 주변에서 저는 동정해야 할 아이였던 거죠. 자존감에 큰 상처를 입었어요. 처음으로 제 존재에 대해 좌절했던 것 같아요.

 

8세부터 수년간 소아암 투병을 했는데, 18세에는 또 희귀암이 발병했어요. 그때는 특히 갑작스럽게 발병 소식을 들으셨다고요?


고등학교 2학년 1학기 기말고사를 앞둔 어느 날 몸에 이상 증상을 겪었어요. 구토가 나오더니 눈앞이 삽시간에 노랗게 변했죠. 이대로 기절하게 되리란 예감이 들었는데, 머릿속에 수많은 생각이 들었어요. 구급차 요금은 얼마나 하려나 싶기도 했고, 기말고사 공부 열심히 했는데 말짱 도루묵 되겠다는 생각도 했고, 쓰러지면 학교 애들한테 소문 다 날 텐데 학교는 어떻게 다니나 싶기도 했어요. 학교에서 쓰러지면 학창 시절은 망했다는 생각으로, 다시 그런 식의 유명인사는 되고 싶지 않다는 생각으로 쓰러지지 않고 버텼죠.


막상 여름방학이 되고 종합검진을 받을 때는 몸이 괜찮아서 검사 결과를 낙관했어요. 그래서 희귀암이 발병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큰 충격을 받았죠. ‘왜 또 내가?’ 하는 생각도 했고, 암이 발병하기 쉬운 몸인가 싶어서 두렵기도 했고요.

 

고등학교 2학년 때 암 수술을 받았는데, 22세에 병이 재발했어요. 재발 소식을 들었을 때, 어떤 심정이었나요?


말 그대로 하늘이 무너지는 기분이었어요. 정말 하늘이 무너지는 게 느껴졌어요. 그런데 세상은 여전히 잘 돌아가고 있더라고요. 그게 그렇게 억울할 수 없었어요. 왜 나만 이래야 하냐고 발악을 했어요. 분노가 터져 나왔죠. 열여덟 살 때도 느끼지 못한 감정이 이때 폭발하듯이 나왔어요.


그때 제시간은 정지했던 것 같아요. 더 이상 꿈이 없었어요. 계획 없이 살았던 것 같아요. 처음으로 주간 스케줄러와 월간 플래너를 구입하지 않은 채 한 해를 보냈어요. 흘러가는 대로 지냈죠. 그냥, 그냥 존재했어요. 몹시 공허했던 것 같아요. 몇 년간 바쁘게 보냈으니까요. 스케줄러에 계획을 빽빽이 채우며 하루를, 일주일을, 한 달을, 1년을 보내왔는데… 더 이상 아무런 계획도 목표도 생기지 않더라고요. 갑자기 제 인생이 방향을 완전히 틀었는데, 제가 통제할 수가 없는 상태였어요. 텅 빈 시간이 허무했고, 인생이 때때로 지루했죠. 다시 꿈을 찾기까지는 꽤 시간이 걸렸어요.

 

한때 진지하게 고민했던 생을 끝내는 방법들, 그중 어떤 계획도 실행하지 않아서 나에게 고맙다. 그래도 살아있는 게 좋으니까. 힘들어도 가끔 기쁘잖아. 몹시 행복한 날들도 있잖아. 그런 날들이 주는 즐거움 때문에 살아있는 게 좋았다. 만약 내일 죽는다고 해도 오늘은 웃고 싶다. (『나는 세 번 죽었습니다』  228쪽)

 

『나는 세 번 죽었습니다』 에는 행복에 관한 이야기가 많아요. 작가님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삶의 자세는 지금 이 순간을 즐겁게, 행복하게 사는 것이라고요.


미래를 믿을 수 없기 때문에 그런 것 같아요. ‘내가 언제까지 살 수 있을까?’ 이런 생각이 들 때면 스스로 다독이면서 말해요. 존재 여부가 불안한 내일보다는 확실히 존재하고 있는 ‘지금 이 순간, 오늘’ 행복하자고. 너무 먼 미래는 의식적으로 생각하지 않으려고 해요. 미래를 생각하면 불안해지기도 해요. ‘나는 미래를 위해 준비해놓은 게 아무것도 없는데, 뭘 해서 먹고살지? 병원비는 어떻게 감당하지?’ 돈 걱정이 큰 것 같아요.


그렇게 깊이 걱정하다 보면 항상 결론은 같아요. ‘미래의 내가 어떻게든 하겠지.’ 지나간 과거를 떠올려보면, 어떻게 지나왔는지 모르겠는데 떠밀려서 여기까지 와 있더라고요. 미래의 제가 알아서 하겠죠. 뭐든 하겠죠. 약간 무책임하죠? 그런데 미래는 지금의 제가 통제할 수 없잖아요. 통제할 수 없는 건 마음을 불안하게 만들더라고요. ‘내가 감당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나면 어쩌지?’ 그런 생각이 들면 ‘그럼 별수 없지. 흘러가는 대로 둬야지. 방법이 없다는데 어떡해.’ 싶어요. ‘나는 지금 여기에서 존재할 수밖에 없구나.’ 체념한 채 납득하는 거죠. 열심히 한다고 제 생각대로 미래가 보장되는 건 아니니까. 그러다 보니 남는 게 오늘밖에 없는 거예요.


저는 미래의 제 행복을 보장할 수 없지만, 오늘의 제 행복은 보장할 수 있어요. 그냥 매일 아침 눈을 뜨면서 오늘의 나는 어떠한가 봐요. ‘살면서 행복한 날을 하루라도 더 늘리자.’는 생각으로 지내요.

 

『나는 세 번 죽었습니다』 는 작가님의 첫 책입니다. 독자들이 이 책을 어떻게 읽었으면 좋겠나요?


이 책이 누군가에게 잠시 쉼이 된다면 더 바랄 게 없어요. 책을 읽는 그 시간 동안, 조금이라도 위로가 되면 더 없이 감사할 것 같아요. 이 책을 읽고 나 혼자만 이렇게 아픈 게 아니구나, 하고 잠시만이라도 덜 외로우셨으면 좋겠어요. 알고 보면, 모두가 아픈 것 같아요. 저는 오랫동안 제가 아픈 모습밖에 보지 못했어요. 지금도 마찬가지일 것 같아요. 그런데 때때로 살아가는 모든 존재가 아프다는 걸 느낄 때가 있어요. 그게 연민이래요. 저는 그걸 조금씩 배워가는 중이에요.


누군가 저를 보고 용기를 얻을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아요. 그러기엔 저는 너무 평범한 존재거든요. 저는 그냥 제 삶을 살아왔고, 생존해나가고 있을 뿐이에요. 제가 아픈 사람들에게 작은 힘이 될 수 있을 거란 생각 역시 들지 않아요. 단지 서로의 얘기를 나누어 들을 뿐인 것 같아요. 제 글을 읽으면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되리라는 게 제가 기대하는 것이에요. 독자는 모든 책을 읽으면서, 그 안에서 자신의 모습을 찾는다고 생각하거든요. 제가 책을 통해 전하고 싶은 말은 다음과 같아요. 저 역시 당신과 다르지 않습니다.

 

 

 

 

* 손혜진


1987년에 태어나 8세에 소아암, 18세에 희귀암, 22세에 희귀암 재발을 겪었다. 세 번의 암과 세 번의 수술, 일생에서 암과 싸운 날이 그렇지 않은 날보다 많았다. 가끔은 남은 날들이 아주 먼 미래까지 이어질 것 같고, 또 가끔은 몇 달 안에 모든 것이 끝날 것 같은 혼란 속에서 지내왔다. 그래도 오늘 살아 참 다행이라고, 사는 동안 불행한 날보다 웃는 날이 많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오늘도 있는 힘껏 웃는다. 『나는 세 번 죽었습니다』는 작가의 첫 에세이로, 어린 시절부터 시작한 투병 생활을 담았다. 혼자 외로워하고 있을 누군가에게 당신은 혼자가 아니라고, 당신이 겪은 일을 나도 안다고, 이 책으로 말을 건네고 싶다.

 

 

 

 

 


 

 

나는 세 번 죽었습니다손혜진 저 | 알에이치코리아(RHK)
늘 죽음을 의식하면서 살아갈 수밖에 없었던 자신의 삶을 담담하게, 진솔하게 풀어놓는다. 자신의 이야기를 통해 혼자 외로워하고 있을 누군가에게 작은 힘이 되고 싶었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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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ㆍ사진 | 출판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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