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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지예 “10년 만에 낸 소설집, 왜 여행이냐고요?”

『베로니카의 눈물』 권지예 저자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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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을 통해 보이지 않는 관계 이면의 어떤 갈등이 떠오르기도 하고, 내가 익숙하게 살던 곳에서는 보이지 않던 나의 모습이 여행지에서는 객관적으로 보이기도 해요. (2020.01.20)

 사진1 권지예 작가 프로필 사진 ⓒ김윤호.jpg
ⓒ김윤호

 

 

경쾌한 문장력과 섬세한 관찰력으로 이상문학상, 동인문학상을 연달아 석권한 소설가 권지예가 10년 만의 소설집 『베로니카의 눈물』 을 출간했다. 단조롭고 무료한 삶을 벗어나 이국의 공간에 함께 던져진 미완(未完)의 사람들. 여행은 사람을 좀 더 가깝고 애틋하게 만들어주지만, 오히려 가까워진 그 거리로 인해 서로가 더욱 낯선 존재로 변하기도 하고 스스로 고수해왔던 가면 속 자신의 민낯을 직면하기도 한다. 권지예는 이번 소설집에 실린 여섯 편의 중단편 소설을 통해 여행이란 특별한 상황 속에서 드러나는 수많은 삶의 이면을 신열하고 솔직하게 풀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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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만에 묶은 소설집입니다. 감회가 남다를 듯해요.

 


소설집으로서는 그렇네요. 2009년에 네 번째 소설집 『퍼즐』 을 출간한 이후로 10년 만이죠. 그래서인지 신인이 첫 소설집 내는 심정처럼 좀 떨립니다. 10년간 집필한 중단편을 묶었는데 그사이에 우리 사회와 문학의 생태계도 너무 많이 변했고 독자들의 의식도 많이 변한 거 같아요. 사실 작가인 저도 잘 몰랐는데, 소설집을 내고 다시 읽어보니 작가의 감수성도 꽤 변한 거 같고요. 뭐랄까, 좀 더 현실적으로 변했달까요?


10년 만에 소설집을 출간하면서 독자들의 반응이 좀 궁금했는데, 몇몇 젊은 독자들이 ‘이 작가 이름 처음 들어보는데 작품 읽어보니 아주 실력파더라’ 뭐 그런 평을 봤어요. (웃음) 꾸준히 정진했어야 했는데… 많이 반성이 되더라고요. 옛날 독자들은 반가워하셔서 큰 격려가 되었어요.


마지막에 수록된 「내가 누구인지 묻지 마」를 제외한 다섯 편의 이야기들은 모두 이국을 배경으로 한, 일종의 여행기 혹은 체류기를 담고 있어요. 여행을 소재로 한 단편들을 추려 묶은 것인가요?


네. 제가 90년대에 프랑스 파리에서 8년간 유학 생활을 한 덕에 유럽 여행을 많이 했고, 귀국 후에도 틈나면 여러 종류의 여행을 많이 했어요. 특히 예전에는 더 나이가 들기 전에 오지 여행을 많이 하고 싶기도 했는데, 히말라야 등반이나 유조선을 타고 망망대해를 20일간 항해한 적도 있었고요. 그런데 그런 여행은 작가 이전에 ‘나’를 계발하는 자기계발서 성격의 여행이었죠.


10년간 좀 쉬면서 여행을 많이 했는데, 소설가의 관점으로 새로운 여행 체험들을 소설적인 구성으로 쓰고 싶었어요. 예전과 달리 많은 사람들이 여행을 하는 시대이고, 실제 현실 속 우리네 삶은 단 한 번뿐이지만, 여행이야말로 인생을 시뮬레이션 할 수 있는 기회라 생각되었어요. 일종의 가상현실이죠. 삶의 배경이 달라지는 여행을 통해 내 삶의 좌표를 점검하고, 새로운 경험이나 인간관계를 통해 내 인생을 시험 내지는 성찰해볼 수 있으니까요. 이번 소설에서는 주인공들의 삶의 여러 조건이 나오고 여행지에서나 체류지에서 자기 자신의 모습을 만나거나 현지 사람들과 만나서 그들의 삶의 모습과 충돌하거나 화해하는 이야기를 다양하게 풀어보았습니다.


사실 「내가 누구인지 묻지 마」도 배경이 한국이지만, 집과 가족을 떠나 비밀스런 삶을 사는 두 남녀 주인공들의 정착하지 못하는 서로 다른 인생을 그린 점에서 넓은 의미의 여행소설이라 볼 수도 있습니다.


'여행'을 떠올리면 보통 '낭만'이나 '휴양'을 떠올리곤 하는데, 『베로니카의 눈물』 속 여행지를 통해 드러나는 것은 의외로 일상과 관계의 이면이에요.


사실 제게 여행은 딱 두 종류예요. 하나는 작가로서의 체험을 위한 여행이고, 다른 하나는 일을 끝낸 후에 하는 완전한 휴식으로서의 여행이죠. 저 또한 저를 위해서 힐링이 필요할 땐, 휴양과 낭만을 위해서, 삶의 재충전을 위해서 여행하며 그것이 일반적인 여행의 효용이라고 생각합니다. 만약 여행 에세이를 쓰려고 했으면 그 부분에 방점을 찍어 저도 좀 더 달콤하게 여행지의 아름다운 모습을 묘사할 수도 있습니다. 언젠가는 저도 ‘낭만’이나 ‘휴양’을 주제로 한 여행 에세이를 따로 쓰고 싶습니다.


하지만 소설가인 저는 늘 인생에 질문을 던지는 사람이라 생각하기 때문에 여행을 또 다른 인생의 모습이라 생각하고 쓰는 거지요. 게다가 저는 사물이나 일상, 인생의 이면에서 새로운 가치나 그런 것을 보는 소설가이다 보니, 그런 관점에서 소설을 쓰게 되지요. 여행 중 일상을 통해 사람 사는 모습을 고찰하게 되는데, 특히 단기나 장기로 체류하게 되면 만나는 사람과 그들과 엮이는 일상이 인생을 변화시키는 중요한 요인이 됩니다. 보이지 않는 관계 이면의 어떤 갈등이 돌올하게 떠오르기도 하고 내가 익숙하게 살던 곳에서는 보이지 않던 나의 모습이 여행지에서는 객관적으로 보이는 게 재미있잖아요.


특히 인상적이었던 것은, 읽는 이로 하여금 마치 그 공간에 실제로 머물고 있는 것처럼 느낄 수 있게 하는 디테일한 묘사였는데요, 실제 해외에서 머물렀던 경험을 녹여낸 이야기들인지 궁금합니다.


네, 아무래도 그런 부분들이 좀 많이 있습니다. 「낭만적 삶은 박물관에나」나 「베로니카의 눈물」의 배경이 된 프랑스 파리나 쿠바의 아바나는 방을 임대해서 각각 3개월씩 머물러 현지인처럼 일상을 살았습니다. 그래서 디테일한 묘사가 많습니다. 독자들이 마치 그 공간에 살고 있는 현실감을 느낀다는 분이 많은데 그런 이유 때문일 겁니다. 작가가 직접 체험한 현지의 분위기를 실감 나게 썼지만, 소설이라 스토리는 가공한 이야기가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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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속 인물들은 대부분 낯선 곳을 여행 중이거나 그곳에서 체류하며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인데요. 글을 쓰기 위해 쿠바에 가거나 사진을 찍기 위해 파리로 떠나고, 엄마와 함께 플로리다를 여행하거나 은혼식을 맞아 남편과 함께 발칸반도 패키지여행을 떠나죠. 해외 체류를 하며, 또 여행하며 특별히 오래 남는 기억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젊은 시절, 프랑스에 8년간 이방인으로 살면서 ‘이방인 의식’을 많이 느꼈어요. 그것은 프랑스에서도 한국에서도 소속감을 느끼지 못하는 정체성의 혼란이었죠. 늘 외롭고 불안했는데, 묘하게도 내 자아에 놀랍도록 집중이 되었고 내 인생과 한국 사회에 대해 객관적으로 볼 수 있게 되는 것 같았어요. 소설을 쓰기 시작했던 것도 그 무렵이었고요. 해외에 체류한 기간에 소설을 쓰고 소설가로 등단한 게 기억에 가장 남아요.


여행의 기억은 뭐니 뭐니 해도 사람입니다. 함께 여행한 동행자나 여행 중 만난 사람, 또는 현지인이요. 그들에 대한 기억이 여행을 규정하지요. 많은 여행을 하고 수많은 사람들을 만났지만, 제 인생에서 쿠바에서 체류했던 경험을 잊지 못할 거 같아요. 너무나 다른 세계에서 고생도 많았고 충격도 있었지만, 산다는 것과 생존한다는 것. 자본주의 체제에서 살아온 내 삶과 사회에 많은 생각을 하게 해주었어요. 특히나 그곳에서 만난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어쩔 수 없는 연민과 그런 체제에서 살아가는 그들의 속성에 대해서도 이해할 수 있었고요. 지금껏 살다 보니 여행도 고생한 여행이 사실 가장 오래 기억에 남더군요.


신작 『베로니카의 눈물』 을 통해 독자들에게 전하고픈 메시지가 있다면 말해주세요.


거창하게 메시지랄 건 없고요. 그저 독자들이 제 소설을 재미있게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나름 지금까지 살면서 해외에 오래 살기도 해보고 여행도 많이 했지만, 결론은 사람 사는 세상 참 다르기도 하지만 또 어쩌면 이렇게 똑같을까 싶기도 합니다. 독자들이 이번 소설집에서 여행지의 묘사를 보면서는 색다른 감흥을 느끼고, 이야기를 읽으면서는 여기든 저기든 사람 사는 세상, 인간으로서의 어떤 보편적인 근본에 대해 생각해보신다면, 그리고 잠시라도 인생이라는 자신만의 여행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여행을 하면 절대적으로 좋은 세상도 없고, 절대적으로 나쁜 인생도 없다는 걸 알게 됩니다. 인생 또한 그렇지 않을까요?


저는 오히려 독자들이 제 소설을 어떻게 읽으셨을지 궁금한데요. 1월 30일 한남동 블루스퀘어에서 북 토크가 예정되어 있는데, 독자들과의 만남 또한 정말 기대가 됩니다. 특히 젊은 독자들의 목소리를 많이 듣고 싶어요. 제 소설이 늙지 않으려면요. (웃음)

 

 

 

 

* 권지예

 

1960년 경주 출생. 향리에서 유년기를 보내고 학령기에 서울에 정착. 숙명여고와 이화여대 문리대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하고, 프랑스 국립 파리 7대학에서 7년간의 연구 끝에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단편 「꿈꾸는 마리오네뜨」로 문단에 데뷔, 귀국 후 창작 활동을 활발히 전개하기 시작했다. 「뱀장어 스튜」로 2002년 26회 이상문학상 대상, 2005년 동인문학상을 수상하였다.저서로는 소설집 『꿈꾸는 마리오네뜨』, 『폭소』, 『꽃게무덤』, 『퍼즐』, 그림소설집 『사랑하거나 미치거나』, 『서른일곱에 별이 된 남자-반 고흐』, 장편소설 『아름다운 지옥 1, 2』, 『붉은 비단보』, 산문집 『권지예의 빠리, 빠리, 빠리』, 『해피홀릭』등이 있다.

 

 

 


 

 

베로니카의 눈물권지예 저 | 은행나무
가까워진 그 물리적 거리로 인해 서로가 더욱 낯선 존재로 변모하기도 하고 때론 그 대상이 나 자신이 되어 스스로 고수해왔던 가면 속 민낯을 직면하기도 한다. 권지예의 소설에서 여행은 독자와 이야기를 더욱 밀착시키는 매개체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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