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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페이위 “인간의 정신이 있는 한 소설은 영원하다”

비페이위 저자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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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시대가 오든, 인류의 생활양식이 다양해져도 인간에게 정신이 있는 한 소설은 반드시 존재할 것입니다. 우리의 정신은 자극을 통해 스스로 예술적 형상을 창조해야만 하기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이 만든 걸 보는 게 아니고요. (2020.0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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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문학의 차세대 작가군을 대표하는 소설가 비페이위가 지난 11월 21일 한국을 찾았다. 시대의 조류에 영합하지 않는 독자적인 소재와 창작 방식으로 주목받는 그는 1996년에 발표한 단편소설 「수유기의 여자」로 그해 제1회 루쉰문학상과 소설월보상을 받았다. 2000년에는 경극 여배우의 신산한 삶을 그린 소설 『청의』 와 장편소설 『위미』를 발표해 2003년 제3회 루쉰문학상과 2010년 제4회 맨 아시아상의 영예를 안았다. 이후로도 왕성한 창작활동을 이어나가 영국, 독일, 프랑스 등 유럽에 작품이 번역 소개되며 격찬을 받았다. 그 밖의 주요 작품으로 『평원』(2005) 「지구상의 왕씨 촌」(2002) 「한밤에 말하는 자 누구인가」(1995) 등이 있다. 『마사지사推拿』 는 2008년 출간되자마자 “2008년 소설의 가장 중요한 수확”이라는 언론의 찬사를 받았고, 2011년에는 중국의 가장 영예로운 문학상 중 하나인 마오둔문학상을 수상했다. 이후 텔레비전 드라마, 연극, 영화로 다양하게 변주되어 중국 현지에서 큰 반향을 일으켰다. 『마사지사』 를 통해 거장의 반열에 올랐다는 평가를 받게 된 비페이위 저자를 만나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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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 방문하신 소감은 어떠신지요?


몇 해 전에도 작가 행사차 한국에 왔었습니다. 아주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만 일정상 여기저기 구경하진 못했어요. 사실 중국인 입장에서 한국에 왔을 때 구경하거나 하지 않거나 느낌은 비슷합니다. 왜냐하면 두 나라는 서로 닮은 구석이 많고, 우호적이고, 지리적으로도 가깝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미 상호 이해도가 높은 편이죠. 한국은 제조업 중에서도 특히 첨단제조업, 그리고 영화와 문학이 매우 뛰어나고, 스포츠 중에서는 특히 한국 축구가 중국보다 훌륭합니다. 그런 부분들이 인상 깊었습니다. 한국에 올 때마다 항상 기분이 좋습니다. 비록 출국은 했지만 거리에서 한자의 흔적을 많이 볼 수 있기 때문에 출국했다는 느낌이 들지 않습니다. 심리적으로 친근한 느낌입니다.

 

작가님의 소설 『마사지사』 는 2019년 9월, ‘신중국 70주년 장편소설 70선’에 선정되기도 했습니다. 축하드립니다. 소감을 한 말씀 들려주세요.


『마사지사』 는 오래된 작품이죠. 2008년에 출간되었으니까요. 그런데 이 작품을 탈고한 2008년 5월 12일이 아직도 생생히 기억납니다. 그날 두 가지 사건이 일어났기 때문이에요. 첫째로 그날 제 아버지가 앞을 못 보시게 되었습니다. 갑자기 그렇게 되었어요. 제가 『마사지사』 를 통해 맹인들의 삶을 그렸는데 그 소설을 쓰고 나니 내 아버지가 맹인이 되신 겁니다. 또 중국의 쓰촨성 원촨 지방에 대지진이 일어난 날이기도 합니다. 이래저래 제겐 잊히지 않는 날이죠. 지난 10년간 『마사지사』 는 제게 많은 것을 가져다주었기에 이 책에 아주 감사하고 있습니다. 지금 돌아봐도 이 책에 만족하는 편입니다.

 

소설을 쓸 때, 주로 어디에서 소재나 영감을 얻으시는지요?


복잡한 문제입니다. 비슷한 질문을 종종 듣곤 합니다만, 그건 딱 부러지게 대답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닙니다. 많은 작가들이 작품의 영감을 생활 속에서 얻는다고 하죠. 하지만 그 ‘생활’이 구체적으로 어떤 생활인지는 정확히 말할 수가 없습니다. 가령 누군가에게 어떤 이야기를 듣다가 그것이 작품에 대한 영감으로 작용할 수 있습니다. 아주 일반적인 경우죠. 또 책을 읽다가 영감이 떠오르기도 하고, 음악을 듣다가 그럴 수도 있습니다. 일상에서 마주치는 누군가의 표정도 영감이 될 수 있고, 비행기에서 드는 잡생각, 자동차에서 불현듯 떠오르는 어떤 생각이 영감으로 연결되거나, 또 꿈에서 영감이 찾아올 수도 있죠. 여러 가지를 말했지만 정리해보면, 글쓰기 능력을 가진 사람이라면 어떤 방식으로든 영감을 작품으로 승화시킬 수 있을 겁니다.


그런데 저는 영감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소설을 쓰지 않는 사람들도 생활 속에서 많은 영감을 받습니다. 중요한 건 그 영감이 찾아왔을 때 적시에 포착해 표현해내느냐의 문제입니다. 제가 젊은 작가들에게 종종 하는 말이 있습니다. “당신이 소설을 쓰고 싶어하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언제부터 소설을 쓰기 시작했는지도 중요치 않다. 얼마 동안 쓰기로 작정했는지도 마찬가지다. 중요한 것은 마침표다.” 이거죠. 끝까지 써내야 합니다. 마침표를 찍어야만 합니다. 마침표를 찍는다는 이 점 때문에 작가가 대단한 것입니다. 만약 마침표를 찍지 못한다면 작가라고 할 수 없습니다. 아무리 어려워도 다 써내야 합니다. 글쓰기는 행복하고 즐거운 일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죠. 물론 글쓰기 속에 즐거움도 분명 있습니다만, 그다지 즐겁지 않은 때가 훨씬 많습니다. 아니, 오히려 고달픈 점이 많고 심지어 고통스럽기까지 합니다. 정신적으로 고통을 주기도 하죠. 하지만 반드시 그것들과 함께해야 합니다. 모든 고통, 모든 쾌락과 함께 종국에는 이 마침표를 찍어야 합니다. Finish. 완성하라는 것이죠.

 

소설을 쓰실 때 가장 신경을 쓰시는 점은?


신경을 쓰지 않는 부분이 있을까요. 다만 집필 단계에 따라 달라질 수 있겠죠. 예를 들면 소설을 막 쓰기 시작했을 때, 혹은 아직 본격적인 집필이 시작되기 전에는 인물이 중요합니다. 아직 쓰기 전이라면 저는 그 인물을 보고 싶어 합니다. 그럴 때면 서재에서 “아, 이 사람이군. 이게 바로 내가 써 내려가야 할 사람이야.” 하고 생각하곤 합니다. 소설이 도입부로 들어가면 이제 인물은 정해졌기 때문에 구조가 가장 중요한 단계가 옵니다. 소설에는 구조가 필요합니다. 그렇겠죠? 픽션이니까요. 허구죠. 하지만 작가 입장에서는 허구가 아닙니다. 구조입니다. 완성해야만 하는 구조요. 구조를 만드는 동시에 고민해야 하는 부분은 작가의 사상과 가치관입니다. 이런 이야기와 인물을 통해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인가, 생활에 대해 어떤 태도를 보여주고 싶은 것인가? 이런 문제들을 시시각각 마주합니다.

 

하지만 이 모든 요소가 중요하지만 이 모든 것을 한편에 두고, 매일 작가가 마주하는 가장 중요한 대상은 바로 표현해야만 하는 언어입니다. 모든 문장이 유효하도록, 개성과 기질에 맞도록 표현하는 것이죠. 읽는 사람이 척 보면 아, 이것이 비페이위의 언어구나, 이것은 모옌의 언어구나, 이것은 위화의 언어구나 하고 알아채도록 말이죠. 이것과 매일 씨름해야 합니다. 왜냐고요? 작가가 독자에게 전하는 최종 대상은 인물도, 이야기도, 사상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마침내 독자에게 주는 것은 단 하나, 작가의 소설적 언어입니다. 작가는 자신의 소설적 언어를 통해 독자가 스스로 소설의 인물, 사상, 정서, 구조를 알게끔 만듭니다. 그러니까 작가는 독자가 직접 마주할 그것을 제공해야 합니다. 독자와 1:1로 만나는 부분이 언어입니다. 그래서 언어는 단 1분도 포기할 수 없습니다. 소설을 쓸 때 가장 중요한 부분이 뭐냐고 물으셨죠? 거기에 대한 대답은 결론적으로 “모두 다르다”입니다. 제게는 소설의 모든 것이 다 중요합니다.

 

『마사지사』 에서 가장 좋아하는 인물은 누구인가요? 샤오마인가요?


그렇게 말하긴 어렵습니다. 샤오마는 독자들이 가장 좋아하는 인물이죠. 네, 독자들이 좋아합니다. 많은 분들이 샤오마라는 인물을 어쩜 그리 흥미롭게 그려냈냐고 신기해하십니다. 그에 대한 대답은 이렇습니다. 샤오마를 흥미롭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당신이 소설을 쓰지 않기 때문입니다. 만약 소설을 쓰는 분이라면, 이 인물을 묘사하는 방법이 딱 한 가지밖에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것입니다. 소설적 작법을 말하는 겁니다.

 

샤오마는 맹인으로 거기 앉아 있죠. 친구도 없고 내성적이고, 과묵하며 움직이는 걸 좋아하지도 않습니다. 그렇죠? 그가 유일하게 하는 행동이 무엇인가요? 일을 마치면 가만히 앉아서 생각에 빠지는 것입니다. 문제는 소설에서 가만히 앉아만 있는 인물을 써낼 재간이 있는 작가는 많지 않다는 점입니다. 샤오마가 가만히 앉아 움직이지 않는다면, 없는 사람이 되는 거죠. 샤오마가 아무 말도 않고 있어도 없는 사람이 됩니다. 한 사람을 완성하려면 말이죠. 자, 이 책에 샤오마에 관한 내용이 이만큼 있습니다. 그런데 샤오마가 움직이지도 않고 입을 닫고 앉아만 있다면 이 인물을 더 써 내려갈 수가 없습니다. 작가가 묘사할 수 있게끔 무언가를 부여해야 합니다.


하지만 샤오마가 아무 말 없이 앉아 있을 때도 그와 함께하는 단 한 가지가 있습니다. 바로 시간이죠. 그래서 저는 시간을 샤오마의 장난감으로 삼아 그가 시간과 함께 놀도록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혹은 반대로 샤오마가 시간의 장난감이 되어 시간이 그를 가지고 놀게끔 할 수도 있죠. 어떤 쪽이든 제가 『마사지사』 에서 샤오마와 시간의 관계를 써 내려간 것은 필연입니다. 그게 아니라면 저는 쓸 것이 없었을 겁니다. 이런 기법이 아니라면 샤오마는 한 문장으로 끝나는 인물입니다. 하지만 한 문장으로 소설을 구성할 수 없으니까요. 그래서 그렇게 쓸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마사지사』 에는 또 다른 흥미로운 인물이 있습니다. 사푸밍이죠. 사푸밍은 강력한 지식인의 냄새를 풍기죠. 하지만 사푸밍을 우리가 일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지식인의 모습으로 그린다면 맞지 않았을 것입니다. 사푸밍은 그만한 지식도 없고 사고능력도 뛰어나지 않으니까요. 그는 독서광이지만 글을 모릅니다. 그런데 정신적 기질로는 지식인에 가까운 인물입니다. 예를 들면 진리와 진상을 추구하는 열렬한 욕망이 있죠. 하지만 그럴 만한 능력은 또 없습니다. 그래서 이 인물을 써 내려가기 까다로웠습니다만, 도전이 큰 만큼 즐거웠습니다.


또 흥미로운 인물이 있습니다. 두훙이죠. 네, 그 아름다운 두훙 맞습니다. 저는 오랫동안 두훙에 관한 이야기를 쓰고 싶었어요. 대학 시절 저는 중문학 전공이었는데요, 영문학을 전공하는 여학생을 한 명 알게 되었습니다. 그 여학생 이름이 두훙이었죠. (질문자: 그럼 실존 인물을 염두에 두고 쓰신 건가요?) 아닙니다. 저는 정작 그 실존 인물에 대해서는 흥미가 없었습니다. 두훙이라는 이 두 글자에 매료되었을 뿐입니다. 그래서 언젠가 두훙에 관한 책을 쓰고 싶었어요. 그 여학생이 아니라 그녀의 이름 두 글자에 대해 말하는 겁니다. 이 이름은 소설 속 인물의 이름이라고 생각했어요. 굉장히 소설에 적합한 이름입니다. 소설을 쓰고 싶은 마음을 유발하는 이름이었죠.


그래서 마침내 『마사지사』 에 두훙에 관해 썼습니다. 그녀는 예쁘고 아름답습니다. 그 아름다움 때문에 사푸밍은 연애 감정이 생깁니다. 하지만 사푸밍이 그녀를 사랑하는 건 제가 두훙을 사랑하는 것과 같습니다. 왜냐면 사푸밍은 다른 사람이 그녀가 아름답다고 하는 말을 듣고 사랑하게 되지만, 아름다움이 무엇인지는 모르거든요. 그는 아름다움이 어디 있으며 그게 무엇인지 알고 싶어 더듬어보고 아름다움에 홀리게 되지만, 그 아름다움은 두훙과는 관계가 없습니다. 저도 마찬가지죠. 제가 반한 건 두훙이라는 이 글자일 뿐, 사람과는 관계가 없습니다. 제가 이 두 글자에 대해 가졌던 미련을 사푸밍의 두훙에 대한 사랑에 투영하고 싶었습니다. 이 안에 제 꿈이 들어 있다고 말할 수 있죠. “I have a dream.” 할 때 그 꿈 말입니다. 다시 강조하지만 두훙이라는 인물과 저는 관계가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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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님의 소설 『마사지사』  『평원』 등에는 추상적인 개념을 구체화하는 묘사가 많습니다. 이런 작업을 할 때 중점을 두시는 부분은 무엇인가요?


이 질문에 대답하려면 지식인과 작가를 구분해야 합니다. 지식인은 누구이고 작가는 누구를 말할까요? 사실 그 둘은 같습니다. 모든 지식인이 작가는 아니지만, 적어도 모든 좋은 작가들의 생각 체계는 지식인과 같습니다. 그럼 뭐가 다를까요? 지식인은 개념을 개념으로 풀어갑니다. 개념을 제시하고 논증한 후 그것을 사회에 제공하죠. 이게 지식인이 하는 일입니다. 작가도 반드시 어떤 개념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이상이든, 사상이든, 아이디어든 반드시 지니고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작가의 작업 방식은 개념에서 개념으로 끝나서는 안 됩니다. 작가는 종국에는 모든 걸 소설 속 인물, 그 인물의 행위, 성격, 기질, 행동으로 만들어 독자에게 말해야 합니다. 그러니까 지식인은 이런 일을 하고 작가들은 이와 다르게 일을 하는 것이죠. 물론 작가도 지식인처럼 개념부터 개념으로 가는 방식으로 일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소설가는 그렇게 하길 즐기지 않죠. 제가 즐기는 건 개념을 소설화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소설가가 되었고 지식인의 길을 걷지 않았습니다.


뭐가 다르냐고 물으신다면 이렇게 대답하겠습니다. 만약 어떤 소설가가 개념을 가지고 있고 그 개념을 개념으로 풀어버린다면 그 소설은 아무도 읽지 않을 것입니다. 독자가 원치 않겠죠. 독자는 형상과 구체적인 일상을 원합니다. 개념을 어떻게 소설로 변환하느냐가 소설가로서 저의 일입니다. (질문자: 그런 작업에 어려움은 없나요?) 있죠. 하지만 반대로 말할 수도 있겠습니다. 지식인에게 있어 개념을 개념으로 풀기는 쉽지만 개념을 현상으로 풀긴 어렵습니다. 하지만 저에게는 개념을 개념으로 푸는 것은 어렵지만, 제가 소설 쓰기를 좋아하기 때문에, 개념을 현상으로 푸는 것이 쉬울지도 모릅니다.


재능이란 무엇일까요? 무언가를 쉽게 할 수 있는 능력입니다. 다른 사람이 보기엔 어려운 것을 어떤 사람은 쉽게 합니다. 저는 그저 가장 쉬운 일을 선택한 것일 뿐이죠. 저는 어렸을 때부터 이 일을 좋아했고 쉽다고 생각했어요. 어른이 되고 나서 그런 사람을 작가라고 한다는 걸 알았죠. 작가가 되고 싶었기 때문에 개념을 현상으로 푸는 작업을 하는 게 아니라, 이 일을 하고 싶어서 작가가 된 거죠.

 

난징대학교에서 특임교수직으로 학생들에게 문학과 관련된 강의를 하신 것으로 알고 있는데, 강의 중 학생들에게 특히 강조하셨던 점이 있으실까요?


난징대학교에는 여러 교수님들이 계시죠. 중문과에서 학생들에게 꼭 가르쳐야 하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는 문학사입니다. 고대, 서양, 일본, 한국, 중국의 문학사, 중국의 고대, 근현대, 당대 문학사 등이죠. 문학의 역사는 중문과 학생들에게 매우 중요한 지식입니다. 두 번째 것도 중요합니다. 바로 문예 미학입니다. 그건 지식이라기보다는 받아들이는 방식, 문학을 감수하는 능력입니다. 어떻게 심미하고 비평할 것인지, 한 소설을 어떻게 인지할 것인지의 문제입니다.

 

그런데 문학에는 중요한 분야가 또 있습니다. 바로 문학의 실천입니다. 우리가 하는 일이 바로 문학 실천이죠. 소설을 어떻게 ‘없는 것’에서 ‘있는 것’으로 만들 것인가. 무에서 유를 만드는 것이 실천입니다. 난징대학교에 수많은 문학사 교수님과 미학 교수님이 계십니다. 모두 훌륭하시죠. 하지만 난징대학교는 여전히 문학 실천을 가르칠 사람을 갈구하고 있습니다. 소설의 실천은 대체 어떻게 하는 것인지 제가 학생들에게 가르치길 바라고 있죠. 제가 난징대학교에서 소설을 가르치지만, 제 수업에서 문학사는 논하지 않습니다. 제 전공도 아니고요. 문학이나 소설의 미학을 중점으로 여기지도 않습니다.


제 수업에서는 조설근(曹雪芹. 청나라 시기의 소설가로 『홍루몽』의 작가)이라는 작가, 루쉰이라는 작가, 모옌이라는 작가 등이 어떻게 소설을 썼는지 살펴봅니다. (질문자:학생들의 반응은 어떤가요?) 좋습니다. 사실 이 수업의 수강생이 많은 편이지만, 그렇게 많은 학생이 수강해야 한다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난징대학교 또는 난징사범대학교의 중문과 학생들이라면 모두 문학사나 미학에 관한 지식을 갖출 필요가 있겠지만, 그렇다고 모두가 문학 실천을 배워야 하는 건 아니거든요. 그래서 저는 단 한 명의 학생이라도 제 강의에 만족한다면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단 한 명이라도 제 수업을 원한다면 저는 가르칠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건 일반적인 것이 아니거든요. 문학사, 미학, 언어학 이런 것이 필수이지 실천은 모두에게 필수 사항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스토리텔링’의 매체 환경이 다원화되고 있습니다. 기존 드라마나 영화뿐만 아니라 웹소설, 웹드라마 등 플랫폼도 다양해지고 있는데 이와 차별되는 ‘소설’만의 미덕을 꼽아주실 수 있나요? 


소설만의 특성이라면 추상성을 꼽겠습니다. 예를 들어 연극은 구상(具象)적이죠. 배우가 무대에 오르면 연기하는 바로 그 사람이 됩니다. 영화도 구상적입니다. 슛이 들어가면 어떤 인물을 연기하고 그 배우가 거기 있습니다. TV나 웹 영상도 마찬가지예요. 배우가 예술 형상을 구체적으로 연기합니다. 감독이 인물을 형상화하는 것이지요. 중국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소설가 역시 인물을 형상화한다고 말합니다.


저는 반복적으로 그 주장에 반대합니다. 소설가는 인물을 형상화하지 않습니다. 여기 제 책에 위미, 위슈, 위양 세 여자가 나오죠. 위미가 어딨죠? 위슈는 어디 있나요? 영원히 볼 수 없습니다. 소설가는 인물을 형상화하지 않으니까요. 하지만 위미, 위슈, 위양은 이 책 안에 존재하죠. 어디서 왔을까요? 소설가인 제가 언어로, 그러니까 가장 효과적인 언어, 가장 소설 미학에 부합하는 언어로 독자를 자극해서 독자가 상상하게 만듭니다. 이 기법은 구상적이지 않고 추상적이기 때문에 인류에게 중요한 의미를 갖는 정신 활동이라고 생각합니다. 시각 활동도 청각 활동도 아닌 정신적 활동입니다.

 

그래서 저는 어느 시대가 오든, 인류의 생활양식이 다양해져도 인간에게 정신이 있는 한 소설은 반드시 존재할 것이라고 감히 말씀드립니다. 소설은 영원할 것입니다. 왜냐고요? 우리의 정신은 자극을 통해 스스로 예술적 형상을 창조해야만 하기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이 만든 걸 보는 게 아니고요. 제가 햄릿을 연기한다면 그걸 본 모든 사람들에게 햄릿은 제가 연기한 모습 하나겠죠. 셰익스피어는 햄릿을 영어로 썼습니다만, 러시아의 비평가 벨린스키가 “천 명의 독자가 있다면 천 개의 햄릿이 있다”고 말한 이유와 같은 맥락입니다. 셰익스피어는 하나죠, 사실 햄릿도 하나뿐입니다. 하지만 독자가 다릅니다. 독자가 다르기 때문에 햄릿이라는 인물이 바뀌는 것입니다. 굉장히 흥미롭고 매력적인 문제입니다. 그래서 소설처럼 문자로 이뤄진 예술 작품과 그 매력은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거라 생각합니다. 사회가 어떻게 변해가든 말입니다. 어느 날 갑자기 티브이와 영화와 인터넷이 사라져도 소설은 있을 것입니다. 저는 그렇게 믿습니다.

 

중국 현대 소설의 특징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중국 소설의 특징을 논하기는 아직 이릅니다. 오랫동안 중국 사람들이 가장 좋아해 온 문학의 형태는 소설이 아니라 시조와 산문이었습니다. 수천 년간 그래왔습니다. 소설은 중국 문화에서 낮은 지위를 차지하고 있었고, 소설 쓰기는 서구가 더 잘했죠. 명?청대에 와서야 소설이 발전하기 시작했습니다. 소설의 진정한 발달은 1919년 5?4운동 이후, 신문화운동 이후부터입니다. 1970년대 후기, 즉 중국의 신문학 시기에 중국 소설이 비로소 꽃피우기 시작했습니다. 모옌, 위화, 그리고 저도 이 시기에 성장한 작가 중 한 명입니다.


그런데 문제가 하나 있습니다. 어떤 작가들은 생활 자체를 잘 묘사하고, 또 어떤 작가의 작품에는 중국 전통문화의 성분이 보입니다. 어떤 작가들은 유럽, 남미, 북미 등 서구 문화의 영향을 많이 받았고, 또 어떤 작가들은 일본, 한국, 베트남 등 아시아 문학의 영향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지금 중국 소설의 특징이 무엇이냐 물으시면 대답하기 어렵습니다. 중국은 매우 넓고 사람도 많아서 소설을 쓰는 사람도 아주 많습니다. 저는 질문자가 앞서 언급하셨던 그 단어로 중국의 현재 소설의 상황을 표현하고 싶습니다. ‘다원화’입니다. 아주 다양한 특징을 드러내고 있죠. 특히 젊은 작가들은 자기 색깔을 뚜렷하게 드러내고 싶어 합니다. 예를 들어 선배 작가들이 썼던 방법들은 더이상 차용하려 하지 않습니다. 새로운 작법을 모색하죠. 그래서 중국의 현대 문학의 특징을 정리하기란 시기상조인 것 같습니다. 아마 100년 후쯤에는 할 수 있을지도 모르죠.

 

혹시 다음 작품으로 구상 중인 소재나 이야기가 있다면 말씀해주실 수 있으실지요?


구상 중인 소재는 있으나 말씀드리긴 어렵습니다. 2020년에 나올 예정이거든요. 집필은 끝났습니다. 기회가 되면 문학동네를 통해 한국에도 소개되면 좋겠습니다.

 

 

 

* 비페이위


1964년 장쑤 성 싱화 시에서 태어났다. 1987년 양저우 사범학교 중문과를 졸업하고 5년간 난징특수교육사범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다. 이후 <난징일보>에서 기자 생활을 하면서 1994년 장이머우 감독의 영화 <트라이어드 Shanghai Triad>(1995)의 시나리오 작가로 참여하여 각본가로 이름을 알렸다. 1998년, 기자 생활을 접고 전업 작가의 길로 들어선 그는 2008년까지 장쑤 성 작가협회에 소속되어 창작 활동을 하며 이십여 편의 소설을 발표했다. 현재는 난징 대학교 교수로 재직중이다.

 

 

 

 

마사지사비페이위 저 / 문현선 역 | 문학동네
자연스레 맹인 마사지사들과도 친분이 쌓였는데, 대학 졸업 후 난징의 특수교육사범학교에서 시각장애인과 청각장애인을 가르치는 교사로 일했던 경험도 있던 터라 마사지사들의 생활과 마음을 좀더 쉽게 들여다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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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 고르듯 살고 싶다』 임진아 작가가 우리 곁의 평범하고 익숙한 사물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사물에게 배우는 마음을 가질 수 있다면 내 삶은 조금 더 너그러워질 거라는 작가의 마음이 담긴 글과 직접 그린 그림들. 책을 펼치는 순간 오늘이 조금 더 좋아지는 마법을 발견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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