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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장혜령 “결국 에세이가 아닌 자전적 소설이 된 『진주』”

지금의 르포이고, 지금의 시이고, 지금의 신화다. - 김혜순 시인 추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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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자전적 이야기를 바탕으로 1970~90년대 학생운동과 노동운동에 관한 다종다양한 자료, 사진 기록물, 일기, 악보, 뉴스 보도 등이 낯선 방식으로 결합, 재구성, 직조되어 있는 책이다. (2020. 01.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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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혜령ⓒ숨결

 

장혜령은 2017년 문학동네신인상으로 등단한 시인이자 EBS 〈지식채널E〉의 작가, 잘 알려지지 않은 좋은 책을 소개하는 팟캐스트 ‘네시이십분 라디오’를 8년째 만들고 있는 제작자, 글쓰기와 라디오 제작을 골자로 하는 창작 워크숍 기획자 및 운영자다. 작가 장혜령을 소개할 때 필요한 말들이다. “특정 장르에 속하기보다 새로운 공간을 개척하는 글을 쓰고자 한다”라는 장혜령.


 그에 새로운 한 걸음을 더할 이번 소설 『진주』 는 이름 없는 민주화운동가였던 아버지의 흔적을 찾아가는 딸의 이야기다. 보이지도 기록되지도, 기억되지도 않는 사람들과 그런 역사의 이야기. 작가의 자전적 이야기를 바탕으로 1970~90년대 학생운동과 노동운동에 관한 다종다양한 자료, 사진 기록물, 일기, 악보, 뉴스 보도 등이 낯선 방식으로 결합, 재구성, 직조되어 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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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로 데뷔하시고 첫 책이 산문집 『사랑의 잔상들』 이었는데요. 두 번째 책은 소설입니다. 특정 장르에 속하기보다 새로운 공간을 개척하는 글을 쓰고자 한다고 하셨는데, 이 말에 대해 조금 더 풀어 설명해주실 수 있을까요?

 

2010년경, 저는 학교를 그만두거나 학교 바깥의 삶을 모색하는 십대들을 만나는 일을 했었습니다. 저 자신이 어딘가 속하는 것을 참지 못하고 경계 위에 서 있을 수밖에 없는 사람이었으니까, 저와 닮은 사람들을 만나는 건 어쩐지 운명이었던 것 같아요. 시, 소설 등 한 가지 장르에 자신의 쓰기를 국한하기보다, 쓰기를 통해 자신의 공간을 개척하고자 하는 지향도 이렇듯 세상과 불화하는 성향에서 비롯된 것 같습니다.

 

저는 2017년 문학동네 신인상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그날부터 제가 시인이 된 거라 할 수 있을까요.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후 제게 주어진 길은 꽤 자명해 보였습니다. 시로 데뷔했으니 시인이 되고, 그때부터 청탁을 받아 원고를 발표하고 시집을 내는 길.

 

상을 받고 나니 이런 저런 얘기를 더 듣게 되더군요. 시를 계속 쓰려면 산문은 줄여야 한다거나 일이 년 안에 평단의 주목을 받아야 한다거나, 누가 지켜보고 있다는 말들. 그러나 이제 와 눈치 볼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가 ‘시인’이라는 자의식을 지키기 위해, 누군가의 눈치를 보면서 원고를 책상 서랍 속에 넣어두었다면 『사랑의 잔상들』『진주』  는 세상에 없었을 것입니다.

 

글쓰기는 본질적으로 ‘자유’를 향한 여정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 자유란 저마다 자신의 길을 개척하는 의지와 행동이니까, 우리 모두의 여정은 다를 수밖에 없겠지요. 첫 책 『사랑의 잔상들』  과 두번째 책 『진주』 는 각각 산문집과 소설이라는 이름을 달고는 있지만, 기존의 장르로는 사실 명확히 구분짓기 어려운 책들입니다. ‘이것이 시이고 이것이 소설, 이것이 논픽션이고 이것이 에세이다’ ‘시인이니까 시를 써야 한다’는 통념과 불화하는 것, 그럼으로써 자신만이 쓸 수 있는 글을 써내는 것. 제가 좋아하는 작가인 파스칼 키냐르는 “단 하나의 육체와도 같은 글을 쓰고 싶다”고 말했는데요. 그것이 저에게는 중요한 도전 과제였습니다.

 

결국 에세이가 아닌 자전적 소설이 된 『진주』  인데요. 책을 쓰기 전과 쓰면서, 또 출간하고 나서 아버지에 대한 감정이 달라졌는지 궁금합니다.

 

초고를 쓰기 시작했을 때, 저는 가급적 ‘자신의 이야기’를 쓰고자 했습니다. 학부 때 저는 영화 연출을 공부했는데요. 영화를 공부하던 시기에 제가 쓴 시나리오의 문제가 그거였죠. 거기엔 단 한 번도 가족이 등장하지 않았습니다. 언젠가 누가 물은 적도 있습니다. “이 주인공은 왜 부모가 없어요?” 마음이 뜨끔했습니다. 보통 우리는 극중 인물의 ‘배경’을 통해 그가 어떤 사람인지를 알게 됩니다. 배경이 잠재적인 것일 뿐이라도 말이죠. 하지만 오랜 시간 저는 그런 이야기를 회피하고도 에둘러 갈 수 있을 거라 믿고 싶어했습니다.

 

이 글을 쓰면서 알게 되었습니다. 배경을 지운, 온전한 ‘자신만의 이야기’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 이야기의 원천이 되는 기억이란 타자와 더불어 존재한다는 것을요. 저는 제 삶에 ‘부재하는 아버지’라는 존재가 부재로서 실재한다는 것을 인정해야만 했습니다.

 

저는 그 사람이 누구인지 사실 잘 알지 못했습니다. 그렇기에 알기 위해서 공부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몇 달간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사료관의 도서관을 다녔습니다. 지금은 경기도 의왕으로 이사한 사료관이 그때는 광화문에 있었습니다. 사람이 아무도 없는 그곳에서 혼자 한국 근현대사를 다룬 많은 책들을 읽었습니다. 밤늦게 집에 돌아오면 거실에는 잠자고 있는 혹은 티브이를 보고 있는 현실의 아버지가 있었습니다. 제가 글에서 탐구하고 있는 인물과 현실의 사람은 분명 다른 존재라는 걸 느끼면서, 이러한 심정을 현실의 그와는 나눌 수 없기에 결국 글로 쓸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진주』  의 마지막 장면은 끝까지 뒤돌아보지 않는, 뒷모습의 아버지를 바라보는 것으로 끝납니다. 제가 할 수 있었던 것은, 그 뒷모습을 문장으로 잠시 붙잡는 것뿐이었습니다. 책을 끝낼 때, 그 고독한 뒷모습이 저의 일부를 이루고 있음을 알았습니다. 이 세상에 그런 뒷모습으로 스쳐간 이름 모를 사람들이 필시, 무수히 존재했겠지요. 그런 뒷모습들이 우리도 알지 못하는 우리 삶과 역사를 이루고 있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소설 속 엄마는 참 인내합니다. 그런 엄마에게, 비록 소설 속 인물이지만, 건네고 싶은 말이 있나요?

 

아버지에게 모든 것을 내어주는 어머니, 아내, 딸…… 그런 여성의 삶은 그저 희생당하는 삶이기만 한 걸까요? 저는 차학경의 『딕테』라는 작품에서 그런 물음을 건네받았습니다. 예컨대 일제에 식민 통치를 받았던 한국 민족은 수난당하기만 했던 것일까요?

 

차학경은 『딕테』에서 희생하는 아내의 모습, 신에게 봉헌하는 성녀의 모습, 열사 유관순과 잔 다르크의 모습을 대비하여 함께 보여주면서, 희생이 어떻게 순교가 될 수 있는지 묻습니다.

 

과거, 가난을 신념으로 기다림을 신앙으로 택해 살아갔던 한국사회의 여성들에게 그 인고의 시간은 고통이었을 겁니다. 그러나 한편 저는, 그들 스스로 고통을 짊어지기도 한 것이라는 불편한 진실 또한 알고 있습니다. 그런 삶에 대해 제가 감히 뭐라 말할 수 있을까요. 세상은 『진주』 의 엄마와 같은 여성들에게 섣불리 ‘위대하다’ 혹은 ‘불행하다’는 수식을 붙이고 싶어 합니다. 그러나 그 삶은 그리 간단히 말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작품을 쓰기 위해서 여러 사료도 살펴보셨다고 하셨는데요. 같은 시기 비슷한 상황에 처해 있던 다른 이들의 모습을 보면서 어떤 생각을 하셨을지 궁금합니다.

 

자료를 읽다가 박원순 시장이 국가폭력 피해자에 관한 연구를 했던 연구자였음을 처음 알았습니다. 그가 쓴 『야만 시대의 기록』에서 소설의 일부 상(像)을 구체화하는 데 큰 도움을 받았습니다.

 

이 책에서 김문수의 일화를 읽은 것이 큰 충격으로 남습니다. 저는 그때까지 ‘민주화운동을 하다가 정계에 뛰어들어 변절했다’는 한 줄의 가십 정도로 그를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박원순이 제시한 자료는 조금 다른 것을 말하고 있었습니다. 책 속의 김문수는 심한 고문을 당했습니다. 고문으로 인해 “피로 물든 수백 개의 눈”을, 검진하러 다니는 의사에 대해 말하고 있었습니다. 국가로부터 고용된 의사들은 피해자들을 더 고문해도 되는지, 아닌지를 검토해주기 위해 일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시간이 가면 낫습니다. 더 (고문)해도 되겠습니다.” 소설 속 이 문장은, 의사가 고문 이후 정보부 요원에게 건넨 말로 김문수의 증언에서 따온 것입니다.

 

저는 1970년대, 저희 아버지 세대가 학생운동을 벌이던 그 시대가 어떠한 모습이었는지, 그 사회의 경험이 이후의 아들-남편-아버지들을 어떻게 변화시켰는지 알고 싶었습니다. 김근태, 김문수, 서경식, 서승, 이재오, 신영복, 박원순 등의 책을 읽으며 왜 이 사람들이 서로 다른 모습으로 살아가게 됐는지, 그들이 감옥에 갇혀 있을 때 가족에게 쓴 서한집을 읽으며 이 가족들은 어떻게 같고 또 달랐는지 살펴보고자 했습니다. 이것이 제가 이해하고 싶었고, 펼쳐내고 싶었던 제 기원 이전의 풍경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진주』  를 가장 먼저 권하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어떤 사람일지 궁금합니다.

 

세상과 불화하는 사람.


광장에 서는 것은 주저하는 사람.


사랑과 혁명을 동등한 자리에 두고 공평하게 보려는 사람.


남자들의 대문자 역사의 이면에 존재하는, 여자들의 소문자 역사를 읽고 싶은 사람.

 

『사랑의 잔상들』 부터 장혜령 작가님만의 독특한 문체가 인상적인데요. 글쓰기에 특별히 영향을 받은 작가나 글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사랑의 잔상들』 은 롤랑 바르트의 『사랑의 단상』 과 파스칼 키냐르의 『은밀한 생』 으로부터 용기를 얻어 시작했습니다. 『진주』  를 쓰는 데 도움을 받은 책은 차학경의 『딕테』, 데이비드 밴의 『자살의 전설』, 에두아르 르베의 『자화상』 , W.G. 제발트의 『이민자들』 , 마르그리트 뒤라스의 『히로시마 내 사랑』 , 나탈리 샤로트의 『어린 시절』 , 제인 정 트렌카의 『피의 언어』 , 한강의 『소년이 온다』 입니다.

 

『진주』 를 중심으로 영향 받은 몇 작품을 말씀드리려 합니다. 차학경의 『딕테』는 제게 사실 어려운 책이었습니다. 어딘지 끌려서 사두긴 했는데 책장에 꽂아두곤 쉬이 펼치기를 망설이게 하는 그런 책 말입니다. 그러다가 세월이 흘러 그 책의 페이지들을 소리내어 읽었던 날을 기억합니다. 저는 그날, 『딕테』의 힘을 처음으로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무엇이었을까요. 그 책은 실은, ‘소리’로 쓰인 책이었던 겁니다.
저는 『진주』 를 문자가 아닌 소리로써 작성하고자 했습니다. 소리로써 쓴다는 건 무엇일까요. 그것은 대문자 역사가 아닌 소문자 역사― 보이지 않고 기록되지 않았으나 그렇다고 없는 것은 아닌 존재들의 역사를 쓰겠다는 마음이었습니다.

 

나탈리 샤로트의 자전적 글쓰기인 『어린 시절』 은 화자가 둘입니다. 어린 시절의 나와 쓰는 나. 저는 이 작품을 처음 읽었을 때, 이 분열적 쓰기에 놀라움을 느꼈습니다. 저는 이 작품의 쓰기가 상당히 진실한 쓰기라고 느꼈습니다.


지금의 ‘나’는 과거의 ‘나’와 같은 ‘나’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나’에 대해서 쓴다고 할 때, 글 속에서 화자인 ‘나’는 현실의 ‘나’를 초과하는 존재입니다. 글을 쓸 때, 현실의 ‘나’가 개입할 수 없었고, 볼 수도 없었을 사건을 화자인 ‘나’는 볼 수 있습니다.


『진주』  역시 두 사람의 화자가 있습니다. 하나는 성년의 나, 다른 하나는 유년의 나입니다. 저는 유년의 내가 자라 성년이 된 것이 아니라, 성년의 존재 속에 유년의 존재/타자가 거주함을 표현하고자 했습니다. 이 책에서 성년의 나와 유년의 나는 동일한 존재가 아니라 타자로서 충돌하는 존재들입니다.


저는 이러한 분열적 쓰기를 소설의 주제적인 물음으로 확장하고자 했습니다. 과거의 아버지와 현재의 아버지는 과연 같은 아버지일까요. 과거의 민주화운동가가 왜 현재에는 전혀 다른 언설을 펼치는 정치인이 되어 있는 걸까요. 어제가 오늘과 같고, 오늘이 내일과 같은 일상인데 왜 우리는 어느 순간 다른 존재로 변해가는 걸까요.

 

작년 한 해 동안 읽은 책 중 가장 기억에 남은 책이 있다면 추천해주실 수 있을까요?

 

라이너 쿤체의 『나와 마주하는 시간』 입니다. 라이너 쿤체의 『시』(열음사 판)는 제가 아끼는 책 중 하나입니다. 붉은색 하드커버 장정에 정말로 제목이 ‘시’인 시집. 이 책이 절판이라는 것도, 이 시인이 잘 알려지지 않은 것도 왠지 그의 희박한 언어에 어울리는 것 같았습니다. 그렇게 동시대 사람이 아닌 것만 같은 이 시인의 신작 시집이 번역되어 나왔습니다.

 

처음 쿤체의 시를 읽을 때는 이 시인의 과묵한 어법이 답답했었습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서 다른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풍경에 깃든 고요는 침묵과는 다른 것이며, 고요를 보는 자가 그 막막한 슬픔을 표현하려면 고요의 언어로서 말할 수밖에 없음을, 단정한 문체 속에 응결된 그 슬픔에는 아름다움도 있음을 알겠습니다.

 

와카마쓰 에이스케의 『슬픔의 비의』 도 좋았습니다. 정사각형 모양의 파란색 커버. 대형 서점이었다면 누구도 찾지 않아 서가에 꽂혀 있을 책, 그렇다면 더더욱 누구의 눈에도 띄지 않을 작은 에세이입니다. ‘인생에는/ 슬픔을 겪어야만/ 열리는 문이 있다./ 슬퍼하는 사람은/ 새로운 삶이 시작되는 순간을/ 지켜보고 있는 사람이다.’ 저는 이런 말에 이끌려 책을 펼쳐보는 독자입니다. 이 책은 이렇게 하면 슬픔을 잘 극복할 수 있다는 방법론이나 쉬운 위로를 전하는 책이 아닙니다. 한편 그리 특별한 내용도 아닙니다. 저는 이 책을 통의동의 보안책방에서 샀습니다. 아마 이런 책을 독자가 발견하게 하고자 독립서점이 존재하는 것 아닐까, 생각합니다.

 

 

 

 


 


 

 

진주장혜령 저 | 문학동네
오 년이라는 시간 동안 특정한 형식에 종속되지 않는 방식으로 자신만의 진실한 이야기를 쓰고 또 고치며 “이야기의 세계를 만들어, 기록되지 않는다면 사라질지 모를 기억이 머물 자리를 그 속에 마련하고자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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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ㆍ사진 | 출판사 제공

출판사에서 제공한 자료로 작성한 기사입니다. <채널예스>에만 보내주시는 자료를 토대로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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