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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터 2-10] 79화 : 언니, 기쁜 소식이야!

『마터 2-10』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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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의 입소문에 의하면 일본 관동군이 패전하자마자 만주인들이 일본인은 물론이고 조선인들의 재산을 빼앗거나 살해하기도 했으며 교통편도 끊겼다고 하였다. 신금이의 짐작으로는 고모부 강씨가 먼저 당했거나 두 아들에게 무슨 일이 생겼을 것이었다. (2020. 01.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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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널예스>에서 황석영 소설가의 신작 『마터 2-10』을 매주 월/수요일 연재합니다.

 


일철이 근무보고를 끝내고 양복차림이 되어 대합실 카페로 들어섰다. 막음이 고모가 서두르며 앞서서 역전 광장으로 나갔고 검은색의 택시들이 줄지어 서있고 길 건너편에는 또한 이두마차가 길게 늘어서 있었다. 고모가 일철이 가족을 돌아보며 말했다.

 

 “여기서 산보나 댕길만한 거리니까 마차 타구 가자.”

 

신금이는 훗날 역시 이씨 집 사람들이 머리가 좋다고 말했는데 그것은 막음이 고모를 보라는 것이었다. 그녀가 보통학교를 다니다 말았는데도 만주 신경 가서 얼마 되지 않아 일본어와 중국어를 번갈아 말할 정도였다고 한다. 영등포야 신경에 비하면 한 귀퉁이의 작은 공장지대에 지나지 않았고 고모는 시골의 서민 아녀자였다. 그녀는 신경에 쏟아져 들어오는 일본의 각종 잡지며 인쇄물들을 읽었고 무엇보다도 중심가에 몇 군데나 있는 극장과 영화관에서 동서양의 신극과 미국 유럽 일본 중국의 영화를 보았다. 신금이는 웃으면서 만주의 막음이 고모에 대해서 말했다.

 

 “신문명에 씻기웠지 머냐.”

 

고모부 강씨는 일본에서 조선을 거쳐 만주까지 진출한 토건회사의 현장 기사가 되어 있었다. 그가 특별히 교육 받은 바 없었으나 일본식 연립 나가야 주택 또는 영단주택이며 목조의 삼사 층 건물 등을 수백 채 지은 경험은 일본인 기사들도 따를 수가 없었다. 역에서 곧장 뻗은 큰 길이 대동대가인데 도심지 중심에 대동광장이 있고 좌우로 호텔 백화점 영화관 극장 관청 들이 늘어서 있었다. 광장의 동서로는 흥인대가가 있었다. 대동대가의 오른편으로 돌아서 관청가를 지나 공원을 건너면 주택가가 나왔고 조선이나 일본에서와는 달리 만주에서 예로부터 흔했다는 벽돌로 지은 집들이 반듯하게 줄지어 서있었다. 고모네 집은 단층이었지만 천정이 높았고 집 안에 뻬치카도 있었다. 아직은 그리 추운 날씨가 아니었건만 장작 몇 개가 타고 있어서 집안이 훈훈했다. 집에는 조선인 식모가 상을 차려놓고 기다리던 중이었고 응접실이 소란해지자 고모부가 방문을 열고 나왔다. 기술중학교를 졸업하고 이제 막 견습으로 취직했다는 둘째 아들이 어색한 동작으로 그 뒤를 따라 나왔다. 맏아들은 봉천에 취직해서 몇 달에 한 번씩 집에 들른다고 했다. 삼 년만 살고 돌아오겠다던 고모의 작심은 그렇게 어긋나버렸던 것이다. 신금이는 막음이 고모가 그리울 때면 언제나 같은 말을 되풀이 했다.

 

 “사람은 살다보면 좋은 시절두 오구 나쁜 시절이 뒤를 잇기 마련이란다. 그렇게 잘 살더니 해방이 되면서 길이 끊기구 말았지 뭐냐. 나중에 겪을 고생이 있으니까 먼저 잘살게 해주는 것 같지 않니?”

 

만주에서 귀국한 사람들의 입소문에 의하면 일본 관동군이 패전하자마자 만주인들이 일본인은 물론이고 조선인들의 재산을 빼앗거나 살해하기도 했으며 교통편도 끊겼다고 하였다. 신금이의 짐작으로는 고모부 강씨가 먼저 당했거나 두 아들에게 무슨 일이 생겼을 것이었다. 또는 부부가 무사히 목숨은 건졌을지 모르지만 봉천 사는 맏아들을 기다리다 시기를 놓쳐버렸는지도 몰랐다. 일철은 하루 쉬고 먼저 특급열차를 몰고 떠났고 신금이는 지산이와 함께 신경 고모 집에서 남편이 철로를 타고 되돌아 올 때까지 며칠을 더 묵었다. 어찌된 일인지 지산이는 두 가지 기억만 또렷했고 나머지는 어머니 신금이의 이야기로 기억하고 있는 시늉을 할 뿐이었다. 그 두 가지란 아버지와 함께 특급 기관차의 앞자리에 앉아서 바라보던 만주 벌판의 지평선 위로 붉은 저녁 해가 지던 풍경이었고, 엄마가 고모 집에서 유성기를 틀어놓고 따라 부르던 노래였다. 신금이는 나중에 세월이 흐른 뒤에도 저녁을 지으면서 아궁이에 불을 때고 있다가 그 노래를 부르곤 해서 지산이의 기억을 이어줄 수가 있었다. ‘시나 노 요루요, 시나아 노요루우 우요’ 하던 지나의 밤이라는 노래였다. 그녀는 무심코 노래를 부르다가도 스스로 자책을 하는 것이었다.

 

 “에그 내가 멀 하구 앉았냐. 이런 노래 부르면 안 되는데……”

 

어린 손주 이진오가 종알거린다.

 

 “할머니 왜 그 노래 부르면 안돼요?”

 

 “이게 다 일본 놈들 거짓 선전이었거든.”

 

진오가 어째서 그러냐고 물으면 할머니는 그냥 희미하게 웃고 말던 것이다. 이제 생각해 보면 학병 나갔던 할아버지의 옛 친구 아무개가 집에 들렀다가 막걸리 몇 잔 마시고는 뭔가 비장한 곡조의 일본 군가를 부르다가 멈칫 하고는 그만두던 일과 비슷했다. 그리고 그는 멋쩍은 듯이 친구의 아들인 이지산에게 중얼거렸다.

 

 “이게 몹쓸 노래지만 우리에게는 청춘의 노래였지.”

 

손자 진오가 할머니의 ‘시나 노 요루’에 대해서 아버지에게 물은 적이 있었다. 아버지 이지산은 자기도 그 노래를 어려서부터 기억한다면서 말해 주었다. 그 여배우 가수는 일본 국적을 속인 중국인 또는 조선인이었다. 일본이 만주국의 오족협화론을 선전하는 도구였다고나 할까. 


 그날, 이지산은 경성 문안의 중학교에서 수업을 받고 있었다. 한 시간 전부터 선생들은 교실에 들어오지 않았고 교무실에서 회의를 한다며 학동들에게는 자습을 시키고 있었다. 어린 학생들은 몰랐지만 선생들에게는 중대방송이 있을 것이니 교무실로 모이라는 교장의 지시가 있었다.

 

이백만이 예전처럼 공작창에 나가서 일하고 있었거나 그들 가족이 철도관사에 그대로 살고 있었다면 그날 세상을 뒤흔들게 될 어떤 사건이 벌어지는지 진작 알게 되었을 것이었다. 신금이는 시아버지에게 점심을 차려 드리고 더위에 풍로 불을 쓰고 땀범벅이 되어 세수를 했다. 그녀는 그늘에 앉아서 부채를 부치고 있었다.

 

박선옥이 조영춘의 연락을 받은 것은 오후 세 시가 넘어갈 무렵이었다. 일 년여의 옥살이를 하고 나와 보니 조부모 중 할아버지가 돌아가셨고 할머니도 기력이 쇠잔하여 거동이 불편했다. 식량 통제시대여서 제병 양조 등의 업종은 사라져 버린지 오래였다. 생활력이 강한 박선옥은 굴하지 않았고 인천을 오가며 건어물과 젓갈 등속을 떼어다 이미 시장에 편입되어버린 집 앞을 터서 좌판을 만들고 어물전을 차려 먹고 살아온지 수년째였다. 저녁 장을 준비해야할 시각이어서 박선옥은 함지에서 건어물을 꺼내어 펼치고 소금도 뿌리고 날아드는 파리를 연신 쫓아내고 끈끈이를 처마에 달기도 하면서 분주하게 일하고 있었다. 아직 장보러 나온 손님이 없을 때라 골목이 아래위로 휑하니 비어 있었는데 저쪽 시장통 길에서부터 누군가 뛰어오는 이가 보였다. 박선옥이 자세히 보니 조영춘이 분명했고 그녀는 공연히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혹시나 또 무슨 큰 사건이 터져서 그 불똥이 예전 공장 야체이카들에게 번진 게 아닌가 겁이 났던 것이다. 그는 집 앞에 나와 있던 선옥을 발견하고는 숨을 헐떡이며 이제는 걸어왔다. 그녀는 무슨 일이 일어났느냐고 차마 묻지는 못하고 눈을 동그랗게 뜨고 기다릴 뿐이었다. 조영춘은 그녀와 시선이 마주치자 갑자기 허공을 보며 껄껄 웃어대기 시작했다.

 

 “저저 놀란 눈 좀 보라지. 정말 하늘도 땅도 뒤집힐 놀랄 일이 터져버렸소.”

 

박선옥은 그가 갑자기 미친줄 알고는 더욱 겁을 먹었다.

 

 “조, 조선이 해방 되었소!”

 

 “쉬잇, 안으루 들어가요.”

 

박선옥이 그의 소매를 당기자 조영춘은 대뜸 뿌리치고는 다시 껄껄 웃었다.

 

 “일본이 항복했다구. 공장마다 방송을 들었대여. 오늘은 일두 때려치구 다들 집으루 돌아왔어.”

 

조선 해방의 소식을 들은 모든 사람들이 처음에는 그 뜬금없이 꿈같은 소리를 믿지 못했고 방송을 들은 사람들도 직직대는 라디오의 잡음 속에서 가냘프게 들리는 천황 히로히토의 일본 말을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일본 국가 기미가요가 장중하게 흘러나오고 소식을 알리는 아나운서의 말이 비통하게 들리는 것만으로 역시 무슨 일이 터졌다는 걸 눈치 챌 수는 있었다. 그리고 방송이 끝난 뒤에 일본인들이 꿇어앉아 울음을 터뜨리는 것으로 그게 일본에는 절망적이고 조선에는 희망적인 어떤 일이라는 걸 알아차렸다. 일본인 간부는 공장의 조선인 반장 기술공들에게 간단히 말했다.

 

 “전쟁이 끝났습니다. 오늘은 휴무이니 집으로 돌아가시오.”

 

수군수군 의견을 나누다가 조선인들은 뒤늦게 전쟁이 끝났다는 의미와 일본인들의 슬픔에 대하여 깨닫게 되었다. 일본은 연합군과의 전쟁에서 패배했고 그들은 내지로 돌아갈 것이며 조선은 독립을 하게 될 것이라는 자명한 이치였다. 그러자 누군가 기계를 멈추며 만세를 불렀다.

 

 “조선독립 만세!”

 

멍하니 섰던 사람들도 하나 둘씩 만세를 부르기 시작했고 온 공장이 떠나가게 만세의 함성이 터졌다. 공장 바깥 길에는 다른 일터에서 쏟아져 나온 남녀 노동자들이 몰려가고 있었다. 만세 소리는 마치 운동 시합에서 우리 편이 이겼을 때 저절로 터지던 함성처럼 멀리 가까이서 들려왔다. 조영춘은 그에게 달려온 몇몇 세포 노동자들에게서 같은 얘기를 두세 번 듣고 양평동 당산동 일대의 공장 거리를 거쳐 오면서 노동자들의 만세를 직접 목격하고 차츰 격앙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함께 고초를 겪은 초창기 오르그였던 박선옥을 찾아 나섰다. 박선옥은 펼쳐놓기 시작했던 건어물들을 다시 함지에 담고는 조영춘에게 말했다.

 

 “나 다녀올 데가 있어요.”

 

집을 나서는 선옥에게 조영춘이 말했다.

 

 “오늘 저녁에 제재소에서 모일 텐데 꼭 나오시오. 나두 연락하려면 부지런히 뛰어다녀야겠네.”

 

 “몇 시에요?”

 

 “여섯 시가 좋겠군.”

 

박선옥이 고개만 끄덕여 보이고는 시장에서 서북쪽으로 향하는 신작로 길을 바삐 걸었다. 그녀는 샛말 신금이네 집으로 향했다. 신금이네 집 대문을 두드리며 박선옥은 거리낌없이 소리를 질렀다.

 

 “금이 언니, 언니야 문 좀 열어요!”

 

신금이는 그것이 선옥의 목소리임을 알고는 역시 화들짝 놀랐다. 그래서는 발소리를 죽이고 대답 없이 대문가로 가서 가슴에 두 손을 얹고 기다렸다.

 

 “언니, 기쁜 소식이야!”

 

신금이가 대문을 빼꼼이 열자 박선옥이 왈칵 밀치며 대문간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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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황석영(소설가)

「객지」 「삼포 가는 길」 『무기의 그늘』 『장길산』… 소설의 제목만 들어도 역사가 그려지는 한국의 대표 작가. 1943년 만주에서 태어나 4.19와 5.18, 방북과 망명, 수감을 거쳐 한국의 현대사를 온 몸으로 받아낸 시대의 증인이다. 2000년대 이후 장편소설 『오래된 정원』 『손님』 『바리데기』 『개밥바라기별』 『강남몽』 『낯익은 세상』 『여울물 소리』 『해질 무렵』 등과 자전 『수인』을 잇달아 펴내고 왕성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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