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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터 2-10] 72화 : 우리만 편히 살 수 있나

『마터 2-10』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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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쇠가 가자는 날짜와 내가 근무 들어가는 날짜가 맞지 않으면 하루 이틀 당기거나 늦출 수 있으니 별 문제는 없을 거요. (2019. 12.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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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널예스>에서 황석영 소설가의 신작 『마터 2-10』을 매주 월/수요일 연재합니다.

 

 

그는 이미 잡고기 회와 술국을 앞에 놓고 앉았다가 자기의 사발 잔을 건네어 막걸리를 이철에게 따라 주었다.

 

“이제 어느 정도 살림살이가 안정된 거 같아서 뵙자구 했지요.”

 

그는 인사할 겨를도 없이 첫잔을 주욱 마셨다. 그에게도 술잔이며 수저가 왔고 큼직한 양은주전자는 묵직한 것이 먼저 온 김근식도 한 잔쯤 마셨을 것이다. 이철은 다시 그에게 잔을 돌려주고 술을 따랐다.

 

"공장 동무들이 다들 잘 대해 주어서 편히 지내구 있습니다.”

 

“인천은 아무래도 경성과 거리가 있어서 영등포와는 분위기가 많이 다를 겁니다.”

 

“지역에서는 독자적으로 판단하고 행동할 경우가 많을 듯합니다. 하지만 여기선 황해 바다만 건너면 대륙 아닌가요?”

 

김근식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바닷길 쪽은 경계가 아주 심합니다.”

 

두 사람은 한참이나 말없이 막걸리를 마셨다. 김근식이 낮은 목소리로 이철에게 물었다.

 

“듣자니 가형께서 특급열차의 기관수라든데요.”

 

“네 우리 아버지가 철도국 영등포공작창 초창기부터 근무하다 지금은 기술 고원이 되셨구요, 형은 용산 철도원학교를 나와서 히카리 호의 기관수를 하고 있습니다.”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가족 자랑을 늘어놓은 게 아닌가 하여 이철은 얼른 덧붙였다.

 

“생계에만 열중한 식민지의 무의식 소시민이지요.”

 

김근식은 동의하지 않았다.

 

“그들은 잠재적인 동지들일 수도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아버님이나 형은 산업 노동자 아니오? 그분들이 이 동무를 이해하여 주었으니 이만큼이라도 활동해 온 게 아닙니까?”

 

“딴은 그렇습니다.”

 

김근식이 술집 안을 둘러보았다. 어느 틈에 주객들이 자리를 가득 채웠고 왁자지껄 떠드는 소리가 요란했다. 주위를 둘러보더니 주전자에 남은 술을 이철과 자기 잔에 따르고는 말했다.

 

“얼른 비우고 일어섭시다.”

 

그들은 술집을 나와 큰길 건너 부두 쪽으로 걸어갔다. 바닷가로 나아가 한적한 곳에서 김근식은 말을 꺼냈다.

 

“우리 조직이 일본놈들 말처럼 완전히 궤멸된 것은 아닙니다. 경성과 인천에도 남은 오르그가 많고 지방에는 노동자뿐만 아니라 농민 조직들도 많습니다. 서로 연합이 안 되어 개인적인 연결만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 문제지요. 뒤늦었지만 코민테른에서도 스페인 내전 이후 인민전선으로 활동 노선이 전환되었습니다. 각 지역의 상황과 형편에 따라 혁명을 하자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계급투쟁을 앞세울 것이 아니라 통일전선을 형성해야겠지요. 우리는 지역의 특성상 이미 그런 쪽으로 지향하고 있었습니다. 전국적인 연합 통일전선을 만드는 것이 시급한 과업입니다. 최근에 우리 선배들 중의 한 사람인 중요 지도자가 출옥했습니다. 그가 풀려난 것은 거의 기적에 가까운 일입니다. 형무소에서 미친 시늉으로 일관하여 일제의 눈을 속인 겁니다. 지금은 잠복 밀행 중에 있어서 그의 소재를 파악하려는 담당 고등계가 혈안이 되어 찾고 있을 겁니다. 한편으로는 미쳐서 행려병자가 되었다, 또는 모처에서 요양 중이다, 소문을 내고 있습니다. 만주에서는 전쟁 이후 일제의 대토벌이 거듭되고 있어서 중국과 연합한 항일무장 투쟁도 소강기에 접어들었습니다. 소단위 전투는 계속되고 있어요. 국제당에서 조선측 주요인사를 파견했는데 그와 국내 측의 회합을 준비 중입니다.”

 

“지난번 김형신 사건처럼 피해만 입지 않겠습니까?”

 

이철이 조심스럽게 말하자 김근식은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저도 그때 김형신 선생과 국제당 국내선이었던 권 동지의 공개적인 선언문 삐라 등 아지프로 투쟁에 놀랐습니다. 류재익 동지를 종파로 모는 것이며 김형신 동지를 쁘띠 인텔리의 모험주의로 보거나 다 정당한 관점은 아니지만, 비판적으로 보자면 양측에 그러한 점이 있는 건 사실입니다.”

 

이이철이 말했다.

 

“당재건 운동은 밑바닥 현장 노동자의 투쟁을 통하여 아래로부터 조직되어야 한다고 배웠습니다.”

 

김근식은 그 말에도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중일전쟁 전까지만 하여도 원칙적으로 올바른 노선이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소강기입니다. 전쟁을 일으킨 일제의 파쇼 억압이 갈수록 심해지고 있지요. 유럽의 상황을 보면 전쟁은 더욱 세계적으로 확대될 것입니다. 지금 서구의 제국주의 열강들은 나치 독일에 대하여 반파쇼 연합전선을 구축하고 쏘련을 비롯한 사회주의 진영과도 전략적 동맹 관계를 가질 것입니다. 세계대전에서 파쇼 세력이 패하면 일본도 패망합니다. 그러면 조선이 일어서야할 절호의 기회가 옵니다. 이런 정세 하에서 운동자들은 헛되이 망동해서는 안 됩니다. 은밀히 운동자를 획득하고 역량을 보존하여 혁명의 결정적 시기를 포착해야 합니다. 상황이 달라진 이제는 전위적 지도부를 준비해야 하고 지도의 정점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혁명역량을 보존하려면 운동자의 정치적 통일과 단결을 위해서도 기관지를 통한 지속적인 의식화가 진행되어야 합니다. 현 단계에서 전위적 지도부의 할 일이란 기관지를 발행하고 조직을 통하여 배포하는 작업입니다.”

 

가두에서의 회합을 마치고 헤어지기 전에 김근식이 이철에게 말했다.

 

“참, 그리고 지방에 잠복했던 이관수 동지가 경성으로 돌아왔어요. 그쪽에서 연락이 왔으니 한번 선을 대보시려오?”

 

이이철은 가슴이 뛰었다. 그를 만나러 가던 창신동 비탈의 그의 아지트가 생각났다. 그리고 류재익과 김형신의 회합을 위하여 장산이 엄마 한여옥과 자신이 레포 노릇을 한 몇 차례의 만남도 떠올랐다. 김이 영등포에서 검거되고 위급한 사실을 그에게 알렸고 창신동과 낙산 길이 갈리는 지점에서 그들은 헤어져 마지막이 되었다.

 

이이철은 김근식이 알려준 대로 같은 조직원으로 감옥에서 나온 이관수의 누이동생을 만나러 갔다. 그들 모두가 초창기 조직원이었다. 그녀는 동대문 지역의 고무공장이며 제사공장 등지를 돌아다니며 옛날의 오르그를 점검하러 다녔다. 그녀는 이이철을 데리고 이관수가 상경하여 정한 아지트로 찾아갔다. 이관수는 돈암정 부근에 조촐한 한옥 한 채를 전세 내어 쓰고 있었다. 그는 여전히 활기차고 건강한 모습이었는데 예전과는 차림새가 달라졌다. 허름한 노동자 차림이나 작업복을 걸치고 다녔는데 그는 도시의 사무원처럼 말쑥한 양복차림에 단정하게 넥타이까지 매고 있었다. 그는 마당 안으로 들어서는 그를 보자 마루에서 뛰어내려오며 반겼다.

 

“고생 많았지요?”

 

“뭘요……다들 그랬지요.”

 

“김근식 동무가 나의 오랜 벗입니다. 소식을 듣고 반가웠어요.”

 

이관수는 류재익과 양주에서 은신 잠행하다가 류가 검거되자 지방으로 탈출하여 걸인으로 변장하고 대구까지 걸어 내려가 작은 가게를 열어놓고 안착했다. 그는 거기서도 가만있지 않고 섬유공장 노동자들을 조직하는 학습조를 여럿 만들어 놓고 경성으로 돌아온 참이었다. 감옥에서 풀려난 초창기 멤버들 가운데 남녀 조직원들은 열 명이 채 안되었지만 모두들 강철 같은 신념을 가진 활동가들이었다. 이들은 ‘공산주의자’라는 지하 월간지를 발행하기 시작했다. 모든 실패를 딛고 다시 시작한다는 의견의 일치를 보았다. 이관수는 그 무렵에 조선공산당 창설 시기의 선배 활동가들을 접촉하면서 함흥 원산 등지의 태로계에도 레포를 보내어 조직을 확대해 나가고 있었다. 이들은 경성 콤뮤니스트 그룹이라 자칭하여 경성 콤이라고 줄여서 부르게 된다. 어찌 보면 현장투쟁을 통해 검증된 이들로 전위조직을 꾸리겠다던 류재익의 구상이 현실화 되고 있었다. 이관수는 이전보다는 좀 더 아량이 생기고 침착해져 있었다. 그는 인천에서 올라온 이이철에게 자고 가라고 하였다. 그들은 함께 자취하여 저녁을 먹고 같은 방에 나란히 누웠다. 그때에 이관수가 이철에게 넌지시 당부를 했다.

 

“매우 중요한 사업이 있는데 이철 동무가 맡아 주었으면 합니다.”   

 

이이철은 이미 짐작을 하고 있었다. 김근식이 꼭 집어서 무슨 일이라고 얘기해 주지는 않았지만 그 일 때문에 자기를 이관수에게 보낸 것이리라 짐작하고 있었던 터였다. 그는 대답 않고 기다렸고 이관수가 말했다.

 

“형 되는 이가 특급열차의 기관수라고 들었소.”

 

“네 히카리호의 기관수로 경의선 구간을 맡고 있습니다.”

 

“신의주에서 누군가를 경성까지 데려와야 하는 일입니다. 조직에서는 이 동무가 적임자라는 결론이 났어요.”

 

이이철은 이미 짐작하던 바를 확인하고는 그에게 대답했다.

 

“제가 책임을 지겠습니다.”

 

“그러면 날짜와 접선 방법 등은 추후에 인천으로 통보해 주겠소.”

 

그는 며칠 뒤에 김근식에게서 경성의 통보 내용을 들었다. 그리고는 형수 신금이를 인천으로 불러 만났던 것이다.

 

신금이는 집에 돌아가자마자 근무를 마치고 휴무일에 집에서 쉬던 남편 일철에게 시동생의 사정과 부탁을 털어놓았다. 일철은 아무 대답도 없이 시무룩한 얼굴로 생각에 잠겨 있었다.

 

“괜한 걱정거리를 들여와서 미안해요. 그런데 서방님이 어찌나 간곡하게 부탁을 하는지……”

 

“당신이 미안할 게 뭐요? 내 아우인데. 녀석이 집안의 골치꺼리지만, 어디 가서 무슨 도적질을 하는 것두 아니오. 목숨 걸고 독립운동을 하자는데 우리만 편히 살 수 있나. 두쇠가 가자는 날짜와 내가 근무 들어가는 날짜가 맞지 않으면 하루 이틀 당기거나 늦출 수 있으니 별 문제는 없을 거요.”      

       
이철은 날짜가 정해지자 히카리 호의 개성역 정차 시각을 알아두고 나름대로 개성까지 갈 길을 알아보았다. 그가 굳이 개성까지 가서 특급을 타려는 이유는 보안 때문이었다. 그들과 같은 사상운동의 전과자들은 관청 부근이나 기차와 같은 교통수단이 가장 위험했던 것이다. 보호관찰자로서 이탈 구역인 영등포는 물론이고 경성역은 고등계와 헌병대의 보조들이 눈을 날카롭게 치뜨고 모든 승객들을 검문했다. 더구나 국경으로 나가는 경의선은 경부선보다도 더욱 감시가 철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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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황석영(소설가)

「객지」 「삼포 가는 길」 『무기의 그늘』 『장길산』… 소설의 제목만 들어도 역사가 그려지는 한국의 대표 작가. 1943년 만주에서 태어나 4.19와 5.18, 방북과 망명, 수감을 거쳐 한국의 현대사를 온 몸으로 받아낸 시대의 증인이다. 2000년대 이후 장편소설 『오래된 정원』 『손님』 『바리데기』 『개밥바라기별』 『강남몽』 『낯익은 세상』 『여울물 소리』 『해질 무렵』 등과 자전 『수인』을 잇달아 펴내고 왕성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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