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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한 덕후, 유럽 가다] (3) 무엇이 반 고흐를 반 고흐답게 하는가

귀국 직후 바로 이 그림에 대한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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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 글을 보는 당신에게 소심하게 요구해본다. 언젠가 당신이 다녀온 그 나라의 이야기를, 우연히 발을 돌렸다가 발견한 동화 속 꿈결 같은 장소의 사연을 내게 속삭여 주기를. (2019. 10.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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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미술 교과서를 폈을 때부터 질리도록 들은 이름 중 하나는 반 고흐다. 인상파, 광인, 귀를 자른 자화상, 자살 등 그와 관련된 모든 이야기가 기이했다. 하지만 그의 레퍼토리에 비해 교과서에 실린 그림은 그리 충격적이지 않았다. 나는 궁금했다. 왜 반 고흐의 그림이 그토록 유명할까, 그의 삶 탓인가. 아니면 직접 보면 뭔가 많이 다른 걸까. 북스피어 유럽서점 떼거리 유랑단 3기, 열하루에 걸친 일정 중 이틀, 그런 반 고흐를 만날 기회가 찾아왔다. 그 첫 번째는 네덜란드 오털로의 국립공원에 위치한 크뢸러 뮐러 현대미술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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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읍내 아파트에 산다. 조금만 걸어 나가면 아파트 사이 논이 나타난다. 그보다 더 멀리 나가면 한강의 한 지류인 개천이 흐르고, 좀더 떨어진 곳에서는 얼마 전까지 그린벨트로 묶여 있었던 너른 대지를 만날 수 있다. 나는 이런 장소에서 서울에서는 만날 수 없었던 동물의 흔적을 발견하곤 한다. 동물은 언제나 냄새를 남긴다. 그리고 가끔 소리를 낸다. 음메에 혹은 꼬끼오 하고 말이다. 네덜란드 오털로에도 이런 냄새와 소리가 있었다.

 

여행 일주일째 되던 날, 웬일로 새벽 일찍 기상했다. 그렇게 일어나 바라본 창밖으로 동이 트고 있었다. 붉은 하늘을 수놓은 한 줄기 비행운이 아름다웠다. 이 풍경을 두 눈으로 직접 보고 싶어 호텔을 나왔다. 9월의 오털로, 새벽 바람이 차가웠다. 숲을 향해 뻗어있는 길을 걷자면 발소리가 들릴 정도로 공기는 청명했다. 타박타박. 얼마 지나지 않아 발걸음에 맞춰 낯익은 소리가 났다. 음메에. 길가에 작은 목장이 있었다. 소떼, 혹은 양떼 같기도 한 것들이 풀을 뜯고 있었다. 한가로운 녀석들을 지켜보다가 등 뒤에서 들린 꼬끼오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네덜란드에 오고 처음으로 반 고흐를 만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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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장 앞에 서 있는 반 고흐는 서울에서 봤다면 특별히 눈길이 가지 않았을 수준의 모화였으나 이 순간만큼은 특별하게 다가왔다. 얼굴을 살짝 붉혔다. 기대하기 시작했다. 직접 보는 반 고흐는 무언가 다를 거라고 자신을 부추겼다.

 

아침 일찍 국립공원으로 향하며, 숲길 사이로 자전거를 타고 달리는 일행을 멀찍이서 바라보며, 나는 상상했다. 오래 전 반 고흐가 걸었을 길을, 네덜란드의 자연이 그에게 줬을 수많은 상념을. 그래서 나는 마음이 급했다. 크뢸러 뮐러에 도착하자마자 반 고흐 갤러리부터 찾았다. 숲이 내다보이는 복도를 빠르게 걸어 그토록 보고 싶어 했던 현대미술을 스치듯 지나쳐 반 고흐의 그림부터 들여다봤다. 수없이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그의 그림 앞에서 무엇이 반 고흐를 반 고흐답게 하는가 느끼려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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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만난 반 고흐의 첫인상은 그냥 그랬다. 흥분하기는 했지만 충격적으로 다가오는 수준은 아니었다. 반 고흐 갤러리를 한 바퀴 도는 사이 흥이 잦아들었다. 모나리자를 직접 봤을 때랑 비슷한 기분이네……하다가 갤러리를 한 바퀴 돌아 마지막 순간 발견한 그림 앞에 우뚝 서고 말았다.


꽃나무가 춤추고 있었다. 이 기묘한 환상은 정면에서 마주봤을 때엔 또 전혀 달라 이제 꽃나무는 숨이 막힐 듯 붉은 빛을 뿜어냈다. 그리고 천천히 오른쪽으로 발을 옮기기 시작하자 꽃나무는 나의 발에 맞춰 서서히 시들었다. 의아했다. 단 한 장의 그림이 어째서 이토록 다양한 얼굴을 보이는 것일까. 분홍 꽃이 핀 나무의 그림, 교과서에 실렸다면 눈길 한 번 제대로 주지 않았을 그림일텐데 대체 왜 지금 이 순간 이렇듯 날 사로잡아 결국엔 쓰다 막힌 소설을 떠올리게 할까.

 

유럽여행을 떠나기 직전까지 잡고 있는 소설이 있었다. 아무리 해도 써지지 않는 단편. 나는 그 소설을 어떻게 써서마무리지을지, 무엇을 이야기해야할지 몰랐다. 그런데 이 그림을 한참 바라보는 사이 깨달아버렸다. 내가 써야 할 소설은 바로 이 그림에 대한 이야기여야 한다는 사실을.


글은 늘 그렇게 온다. 내가 쓰려고 하는 것을 나는 미리 눈치 채는 법이 없다. 하지만 쓰다 보면 결국 만나고 만다. 쉼 없이 뻗어나간 숲길의 끝에 다다른 미술관에서 우연히 만난 반 고흐의 그림 한 장처럼 그렇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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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국 직후 바로 이 그림에 대한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관련 자료를 수집하다가 알게 된다. 이 그림의 제목은 ‘꽃이 핀 복숭아 나무’, 봄의 탄생을 그리던 반 고흐가 스승의 부고를 들은 후 완성한 그림이란 사실을. 그리하여 이 그림에 삶과 죽음이라는 기묘한 이중성이 자리잡게 되었다는 사실을. 이 소설은 내년 ‘사이코패스 애리’라는 제목의 단편으로 발표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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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의 마지막 날, 암스테르담의 반 고흐 뮤지엄에 들렀다. 이 코스에는 도슨트가 따라붙었다. 영어 도슨트이긴 했지만 내용을 이해하는 데 큰 무리는 없었다. 일단 인솔자가 번역을 해주었고, 열흘이 넘는 내내 다양한 외국어를 접하다 보니 “안 되면 말든지” 정신이 생겼다. 도슨트는 반 고흐의 그림 중 대표작, 즉 교과서에서 본 듯한 그림 앞에만 골라서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이런 도슨트가 설명해준 그림 중에는 ‘아를의 반 고흐의 방’도 있었다.

 

중학생 무렵, 우연히 텔레비전에서 반 고흐의 그림을 둘러싼 타임슬립 영화를 봤다. 내용은 전혀 기억이 나지 않지만 마지막 부분은 감명 깊었다. 소년 소녀들은 자신들이 정말 반 고흐를 만났었다는 증거를 현재에서 발견한다. 반 고흐가 그들에게 자신의 그림 한 장을 남긴 것. 문제의 그림이 바로 ‘아를의 반 고흐의 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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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시간 여에 걸친 도슨트는 반 고흐가 죽기 직전 그렸다는 ‘까마귀가 있는 밀밭’에서 끝났다. 그새 주변은 세계 곳곳에서 온 사람들로 인산인해가 되었다. 도슨트와 헤어진 후 볼 것은 보고, 보지 못한 것은 다음에 다시 와서 보겠다는 마음가짐으로 돌아다녔다. 반 고흐의 귀가 세 개 그려진 밀밭의 그림이라던가 아트숍을 기웃거리며 여유를 부렸다. 그러다가 낯익은 책을 한 권 발견했다. 『화가 반 고흐 이전의 판 호흐』  로 번역되어 국내 출간된 『Van Gogh: THE LIFE』. 지금까지 나온 평전 중 가장 대중적이며 문제적이란 평을 받는 반 고흐 평전으로, 잭슨 폴락의 평전을 적어 퓰리처상을 수상하기도 한 스티븐 네이페?그레고리 화이트 스미스 콤비의 또 다른 대표작이다. 이 책의 원서가 있다니 사고 싶은 마음이 불쑥 치솟았다. 하지만 이걸 사가지고 가봤자 읽지도 못할 것, 결국 짐만 될 게 뻔해 가까스로 멈췄다. 대신 반 고흐의 해바라기를 스케치한 반 고흐 뮤지엄 에코백만 여덟 개 샀다. 얼마는 선물하고 얼마는 귀국 직후 열리는 북토크를 찾은 독자님들께 드릴 셈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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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열하루에 걸친 일정이 끝났다. 이탈리아, 스위스, 독일, 네덜란드 등 총 4개국을 빠르게 돌며 서점, 미술관, 쇼핑센터 등을 다양하게 훑었다. 마지막 회차를 맞이해 들른 곳을 일일이 소개할까 하는 생각도 잠시 해보았으나, 최근 텔레비전에서 유럽의 유명한 서점을 찾아가는 프로그램이 방영되기 시작했다는 소식을 듣고 그만두기로 했다. 나는 여행의 별미는 아무도 가지 못한 곳에 찾아내는 것에서 시작된다고 생각한다. 텔레비전이 유럽의 서점을 소개할 정도라면, 나는 참는 편이 나을 것 같다.

 

대신 나는 이 글을 보는 당신에게 소심하게 요구해본다. 언젠가 당신이 다녀온 그 나라의 이야기를, 우연히 발을 돌렸다가 발견한 동화 속 꿈결 같은 장소의 사연을 내게 속삭여 주기를, 우리만의 소중한 비밀로 간직하기를 말이다. 만약 그러하다면 나는 당신에게 이렇게 말해줄 셈이다.

 

“당신은 또다른 성공한 덕후의 여행을 다녀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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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ㆍ사진 | 조영주(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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