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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월드컵 경기장을 닮은 정물오름

'정물'이라 불리는 쌍둥이 샘에서 비롯된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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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오름에는 '개가 가리켜 준 명당터'가 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인근 금악리에 살던 사람이 죽었는데 묏자리를 찾지 못했다. 그러자 그 집의 반려견이 상제의 옷자락을 물고 끌고 갔는데, 주변을 살펴보니 바로 '옥녀금차형'의 명당이었단다. (2019. 07.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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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물오름 정상에서 바라본 북서쪽 지대

 

 

짙은 구름에 해는 가렸지만 높은 습도가 내 어깨를 무겁게 누르는 날, 정물오름 꼭대기를 향해 헉헉대면서 오르다가 깨달았다. 이 오름이 초승달 모양새의 제주 월드컵 축구 경기장의 지붕 형태와 유사하다는 것을! (2012년 리들리 스콧 감독의 영화 <프로메테우스>에서 인간을 닮은 외계인의 우주선을 닮기도 했다.) 북서쪽을 향한 초승달 모양의 말굽형 화구를 가진 정물오름은 바다를 향해 관중석이 뻥 뚫린 그 경기장과 어쩜 그리 닮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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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물오름 표지석

 

 

정물오름은 주차장 기준으로 좌측으로 올라서 우측으로 내려오면 한결 수월하다. 좌측 길은 끝없는 오르막이지만 완만해서 천천히 걷다 보면 어느새 정상에 이르게 된다. 여름에는 산책로도 수풀로 우거져서 걷기 만만치 않다. 진드기 기피제는 필수이다. 비가 내린 후라면 신발이 물에 젖을 각오를 단단히 해야 한다. 반면에 우측 길은 가파른 계단의 연속이다. 우거진 나무 터널 덕분에 동화책 속에 들어온 기분마저 든다. 굳이 체력 단련을 할 게 아니라면 주차장 입구에서 좌측 산책로로 들어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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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한 길을 원하면 정물오름 초입에서 좌측 산책로로 출발하자

 

 

정상에는 네 개의 의자가 잠시 쉬어가라고 자리를 내준다. 얼굴과 상체에서 흘러내린 땀방울이 양말까지 적신다. 준비해간 얼음물을 마시니 차가운 기운이 순식간에 온몸으로 퍼진다. 장마철 구름으로 전망이 썩 좋지 않지만, 다음에 올 때는 다른 모습을 기약할 수 있으니 행복하다. 늦가을 억새꽃이 흐드러지게 피는 날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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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거진 나무 터널을 지나면

 

 

독특하게도 정상보다는 오름을 오르거나 내려오는 길에 정물오름의 전체적인 모양새를 파악할 수 있다. 정상(표고 466m, 비고 151m)에 도달해서 주변을 둘러보면 어느 하나 시선을 쉽게 돌릴 수 없는 드넓고 아름다운 전망에 탄성이 끝없이 나온다. 알프스 산맥의 목초지대 못지않은 절경이다. 오름의 형태는 남서쪽에서 다소 가파르게 솟아올라 정상에서 북서쪽으로 완만하게 뻗어 내렸다. 오름 서쪽에는 조그만 알오름(정물알오름)이 있다. 겉보기에 정물오름에 포함된 화산체로 여겼으나 항공사진 등으로 판독한 결과 정물오름과 별도의 화산체로 밝혀져서 지금은 독립된 오름에 속한다. 동남쪽으로는 당오름이 이웃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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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소 가파른 오르막이 이어진다

 

 

이 오름의 이름은 정상 북서쪽 비탈 아래쪽 기슭에 '정물'이라 불리는 쌍둥이 샘에서 비롯되었다. 제주는 화산섬이라서 빗물이 그대로 지하로, 바다로 흘러 들어 마실 물이 귀했다. 중산간 지역에서는 식수를 구하기 훨씬 힘들었는데 정물오름의 샘은 양도 많고 무척 깨끗해서 이 부근은 물론 먼 지역에서도 물을 길어다 마셨다고 한다. 정물오름 주변에는 유난히 목장이 많은 이유이기도 하다. 인근에 원물오름과 함께 가축에게 끊임없이 물을 제공했다. 그 유명한 성 이시돌 목장도 지척에 있다. 간혹 목장에서 새나온 가축 분뇨 냄새로 인해 코를 움켜쥐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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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물오름 주변에는 목장이 많아서 이색적인 풍광이 펼쳐진다

 

 

이 오름에는 '개가 가리켜 준 명당터'가 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인근 금악리에 살던 사람이 죽었는데 묏자리를 찾지 못했다. 그러자 그 집의 반려견이 상제의 옷자락을 물고 끌고 갔는데, 주변을 살펴보니 바로 '옥녀금차형'의 명당이었단다. 이후 개가 죽자 주인 곁에 함께 묻어주었고 후손들은 대대손손 잘 살았다고 한다. 그 때문인지 산책로 주변은 물론 정상에도 묘지가 곳곳에 있다. 남쪽 바로 밑에는 숲 지대를 파헤쳐 만든 골프장이 흉물스럽게 펼쳐져 있어서 안타까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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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산길은 계단의 연속이다

 

 

하산하고 보니 산책로를 뒤덮은 풀잎에 고여있던 빗물이 신발과 바지를 촉촉이 적셨다. 손으로 툭툭 털어내고 조금 전 올랐던 정물오름을 다시 본다. 오름 산책이 끝나면 언제나 묘한 아쉬움이 공존한다. 아마도 한 시간 남짓으로 짧게 트레킹이 끝나기 때문일 것이다. 이런 아쉬움 때문에 계속 오름을 찾나 보다.

 

◇ 접근성 ★★
◇ 난이도 ★★
◇ 정상 전망 ★★★★

 

 

 

오름에 가져온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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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용 커피 서적 - 커피생활자의 탐구일기
조원진 저

 

제목이 ‘실용 커피 서적’이지만, 커피를 실용적으로 다루는 내용은 없다. 커피를 추출하는 기구에 대한 안내가 있지만 해보면 안다는 얘기가 주이고, 커피를 어떻게 내려야 하는지에 대한 설명이 있지만 결국 자기 입에 맞는 커피가 제일 맛있다는 얘기다. 그러면 도대체 무엇이 ‘실용’일까? 중학생 시절부터 커피를 마신 15년차 커피 덕후는, 커피 덕분에 주어진 인생의 시간들을 잘 사용했으므로 ‘실용 커피’라고 말한다.

 

 

찾아가는 방법

 

지도 앱이나 내비게이션에서 '정물오름'으로 검색하면 되지만 일부 내비게이션은 엉뚱한 장소를 알려준다. 정물오름 우측으로 난 도로를 천천히 운전하다가 정물오름 이정표를 발견하면 들어가자. 주차장에 대여섯 대 가량을 주차할 수 있다. 일반 버스로 접근하기는 다소 번거롭다.


◇ 주소 : 제주시 한림읍 금악리 산52-1

 

 

주변에 갈만한 곳

 

책방 소리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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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6월에 문을 연 따끈따끈한 독립서점이다. 제주 서쪽 한림읍에 위치한다. 『오늘이 마지막은 아닐 거야』  책으로 많은 사람에게 감동을 준 정도선, 박진희 부부가 제주에 정착해서 차린 곳이기도 하다. 제주 전통 가옥을 직접 리모델링 했다. 작은 공간이지만 방마다 주제가 있다. 서점 경력이 풍부한 부부가 큐레이션 해놓은 수천 권의 책을 하나 둘 살피다 보면 타임머신을 탄 것처럼 시간이 금세 흐르기 일쑤다. 손님이 원하면 부부가 직접 공간에 대한 설명도 해준다. 서점 바로 옆에 카페(정낭 cafe)도 있으니, 소리소문에서 책을 사들고 카페에서 따스한 커피와 함께 읽기를 추천한다.


◇ 주소 : 제주시 한림읍 상명리 1036 (주차 가능)
◇ 이용시간 : 11:00 ~ 19:00 (수요일 휴무)
◇ 홈페이지//www.facebook.com/sorisomoonbooks
 

 

성 이시돌 목장


드넓은 목장과 독특한 건축물 테쉬폰(이라크 바그다드 지역 인근 테쉬폰에서 시작한 건축 양식) 때문에 유명하다. 1954년 성골롬반외방선교회 선교사로 제주에 온 맥그린치 신부가 황무지였던 주변을 목장으로 개간해 경작하고 새로운 농업기술을 소개하며 생겨났다. 목장 내 우유부단 카페에서 밀크티와 아이스크림을 맛볼 수 있다.


◇ 주소 : 제주시 한림읍 금악동길 35

 

 

제주 탐나라 공화국


가평 남이섬을 만든 강우현 대표가 제주에 만든 새로운 공화국이다. 이곳을 입장하려면 출입국관리소에서 비자(1일 입장권, 1만원)나 여권(1년 입장권, 2만원)을 발급받아야 한다. 2018년에는 헌책 30만권을 모아 헌책축제를 열었다.


◇ 주소 : 제주시 한림읍 한창로 897

◇ 전화 : 064-772-2879

 

 

* 최경진


4년차 제주 이주민이다. 산과 오름을 좋아하여 거의 매일 제주 곳곳을 누빈다. 오름은 100여회 이상, 한라산은 70여회, 네팔 히말라야는 10여회 트레킹을 했다. 스마트폰으로 제주의 아름다운 자연을 담고 있으며(
www.nepaljeju.com), 함덕 부근에서 에어비앤비 숙소를 운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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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ㆍ사진 | 최경진

지구에 춤을 추러 온 화성인입니다. 여행과 영화 감상을 좋아하며, 책을 사보는 것도 좋아합니다. 잘 읽지는 못하고 쌓아만 둡니다. 전세계를 돌아다니며 춤을 추는 게 삶의 목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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