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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터 2-10] 21화 : 이이철은 영등포 조직의 책임자가 되었다

『마터 2-10』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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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학 분야의 고무공장들이 전국에 걸쳐서 도시마다 있었고 섬유분야도 방직공장이 경성에는 수십 곳이 있고 웬만한 대도시에도 서너 곳씩 있었다. 그리고 이들 대부분이 부녀자와 미혼 여성들이었다. (2019. 06.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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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널예스>에서 황석영 소설가의 신작 『마터 2-10』을 매주 월/수요일 연재합니다.

 

 

당국은 유화책으로 해고를 철회하면서 면밀히 조사를 시작하여 대표자 다섯 사람은 물론 그들과 공공연하게 대중집회를 끌고 나갔던 이이철을 연행 조사했다. 그들은 불순 조직과의 연계를 완강히 부인했고 일단 훈방되었다가 안대길 방우창의 존재가 드러나게 되면서 다시 모두 연행되었다. 안대길 방우창 등 두 사람은 구속되고 이이철과 파업위원을 맡았던 홍씨 지씨가 해고되었다. 그는 육 개월쯤 쉬었다가 다시 방직공장에 인부로 취직했던 터였다. 외곽의 중앙조직은 여전히 활발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그들에 비하여 드러나지 않았던 아주머니 용인을 안대길과 방우창이 잡혀있는 유치장으로 면회를 가도록 했다. 아주머니는 공원들이 십시일반으로 모은 돈을 사식비로 넣었고 그들이 구치소로 넘어가기 전까지 안씨의 형수라고 핑계를 대어 면회를 다녔다.


면회를 다녀온 아주머니가 안대길의 말을 이철에게 전해 주었다. 방씨는 곧 나갈 것이며 안씨에게는 실형이 떨어지게 될 거라고 했다. 안대길은 자기 어머니가 신길리 부근에서 집을 얻어 밥집을 하는데 이이철이 한번 찾아가 보라고 했다는 것이었다. 이철은 이제 활동가로서 첫걸음을 뗀 것에 불과했으나 대뜸 그 말에는 어떤 목적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영등포 정거장을 지나 고춧말 언덕을 넘어 신길리로 가노라면 신작로 양편에 새로 생겨난 거리가 나왔다. 수십 년 전에 일본인들의 거류지와 상권이 생기고 마루보시 공장이 들어서면서 일대는 시장 인근에 못지않은 밥집 주점 숙박업소 등이 생겨났다. 행인과 출입객의 거개가 일본인들의 상업활동이나 공장의 일을 바라고 모여든 노동자들이었다. 일터가 있는 노동자건 가두노동을 하는 날품팔이건 모두들 이곳 어딘가에 등을 기대고 살았다. 값싼 일세 방에서 밥집까지 젊은 사내들이 버글거렸다. 정거장 뒤편의 철로변을 따라서 형성된 수많은 골목에는 임시로 지어진 가가에 사창가가 모여 있었고 역전의 버젓한 간판을 달고 영업하는 유곽에서는 일본 창녀들이 영업을 했다.


이이철은 홍씨가 한번 안대길 모친의 밥집에 가본 적이 있다고 하여 그 집을 찾아갔다. 혼잡한 점심시간이 지나 설거지에 여념이 없던 안대길의 모친은 이철과 홍씨의 위로의 말에 눈물이 가득 고인 눈길을 돌리고 픽 웃으면서 말했다. 


 “내가 멀 아나? 사내자식이 큰 뜻이 있어 하는 일이겠지.”


 “안대길 형님이 모친을 찾아가 뵙고 의논하라 하셨습니다.”


이이철이 은근히 말하자 안의 모친은 잠깐 그들을 바라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사흘 뒤에 다시 오게나. 내가 전할 말이 있을지두 모르겠네.”


이철은 다시 찾아가서 시간과 장소를 전달받았다. 그는 한강인도교를 건너 용산까지 가서 해가 저물기 시작한 여섯 시에 전차 정거장에 서 있었다. 그는 접은 신문지로 햇빛을 가리는 시늉을 하며 얼굴 앞쪽에 비스듬히 쳐들고 있었다. 누군가 옆으로 지나치며 그를 툭 치면서 말을 걸었다. 


 “영등포 사람이우?”


그는 그렇게 말을 건네면서도 걸음을 멈추지 않고 계속 걸어갔다. 이철은 그를 따라 자연스럽게 걸어가면서 말했다.


 “안에서 모친을 찾아가 보라는 전갈이 와서요.” 


 “성함이 어찌 되시우?” 


 “이이철이라구 합니다.”


그들은 용산 역전 방향으로 가로수가 서 있는 인도를 따라서 계속 걸었다.


 “해고들 당했지요? 오랫동안 일손을 놓고 있어서는 안 됩니다. 재취업 하세요.”


그는 조직의 방법에서 확실하게 믿음직한 소통을 주고받을 수 있는 두 사람의 동지를 만들어 세 사람이 논의하면서 각자가 자기 일터를 찾아가 같은 방법으로 논의할 수 있는 그룹을 형성한다는 것이었다. 접촉점을 최소화하면서 삼삼은 구, 삼사 십이, 삽오 십오, 하는 식으로 조직을 넓혀 간다고 하였다. 이이철은 중앙과의 이 접촉에서 안대길의 역할을 물려받았고 영등포 조직의 책임자가 되었다. 상부 선과의 연락은 일차와 이차가 있었는데 일차가 신길리 밥집이었고 이차가 매달 말일 같은 저녁 시간에 용산 시장 입구에 있는 삼개 국밥집에서 저녁을 먹는 일이었다.      

 
이철은 공장에서 모든 공원들이 기계를 멈추고 앞마당에 모이던 그날 아침을 언제나 잊지 않고 있었다. 해고 통보를 받았던 이백여 명은 물론이고 조장 반장 고원 기술직원에 이르기까지 모두 일터를 나와 모여들었다. 개중에는 일본인 반장이나 고원들도 있었는데, 물론 모여든 인원의 대부분은 조선인 인부들이었다. 이철은 공장의 안쪽 끝에 있던 아버지의 선반기를 바라보았다. 물이 서서히 빠지듯 전원을 끊은 여러 기계들이 멈추면서 공원들이 차례로 통로를 걸어 나오기 시작할 때에 이백만의 기계는 여전히 돌아가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그의 기계도 멈추었고 아버지는 한참이나 작업대 앞에 앉아 있었다. 이백만이 기계들 사이의 통로를 천천히 걸어 나왔다. 이철은 좌우로 활짝 열린 공장 문 앞에 서있었다. 아버지가 마지막 사람이 되어 문밖으로 나서자 이철이 레일에 달린 문을 닫았다. 


 “너 담배 있냐?”


이철이 작업복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어 한 대 뽑아 내밀었고 아버지에게 성냥을 그어 불까지 붙여 주었다. 이미 공장 마당에는 모여든 공원들이 파업위원회의 사회자가 부르짖고 있는 성토 내용에 박수를 치고 호응의 구호를 외치는 소리가 떠들썩했다. 이백만은 담배 첫 모금을 길게 내뿜더니 아들에게 말했다. 


 “기왕 이렇게 되었으니 열심히 해라. 나두 삼백 명 해고자 명단에 들었다만 으름장일 게다. 공장을 돌릴 수가 없는데 저들이 어쩌겠느냐? 하지만 너희들은 이번에 송곳처럼 드러나게 되었으니 각오는 해야겠지.”


그렇게 부자는 파업에 동참했다. 며칠간의 파업 끝에 최소한의 구속자와 해고자가 나오고 사태는 수습되었다. 그러나 이는 시작에 지나지 않았다.


이철은 아버지와 현장에서 습득한 선반 기술이 있었고 아직 정교한 부속은 제작하지 못했지만 웬만한 기계조작은 다룰 줄 알았다. 그는 인부 모집에 응했는데 전에 어디서 일한 적이 있느냐고 물어서 보통학교 나온 뒤 마찌꼬바 개인공업소에서 일하다 나왔노라고 답했다. 그는 대번에 취직이 되었고 기계부의 데모도에 배치되었다. 조수라고는 하여도 직공은 고장난 기계가 돌아오면 그에게 세부사항만 알려주고 그가 처리하는 걸 지켜보다가 안심하고 자리를 떠나 담배참을 갖거나 동배들과 잡담하다 돌아오곤 했다.


이철은 며칠 못 가서 작업장 안의 조장이며 반장이며 하는 이들과 거의 얼굴을 익히게 되었고 술판에도 어울리는 사이가 되었다. 그가 독서회를 시작하게 된 것은 취직하고 한 달쯤 뒤부터였다. 이전의 공작창과는 달리 방직공장이라 공원의 대부분이 젊은 미혼여성들이고 감독과 교부 반장들도 모두 나이 지긋한 여성들이었다. 신금이는 일요일에 조수 박선옥을 따라서 독서회가 모인다는 곳에 찾아갔다. 그곳은 시장거리의 북쪽 뚝방 아랫동네였다. 시장과 지척이어서 거기까지 점포들이 번져 있었고 크고 작은 가게와 노점 좌판이 늘어섰다.


모임 장소는 작은 한옥의 앞쪽을 튼 점포 집이었다. 그곳은 떡 파는 가게였다. 박선옥의 외할머니 부부가 시골서 올라온 총각 하나를 데리고 떡을 만들어 팔았다. 점포 앞의 좌판에는 김이 무럭무럭 나는 시루떡에서 백설기에 절편에 가래떡 바람떡 송편 등속을 늘어놓았다. 안쪽에 살림하는 공간이 있고 맨 구석에 뒷방이 있는데 곡식 가마니며 떡메에 홍두깨에 함지 채반 따위의 잡동사니가 방의 반쯤을 차지했지만, 그래도 여러 사람이 벽을 등에 지고 둘러 앉을만했다. 모인 사람은 여섯 명이었다. 이이철 한 사람 빼고는 모두가 여성이었는데 정식 직공은 신금이 외에는 조수거나 보조용인이었다.


이철은 처음에는 혁신적인 인사들이 주도하는 월간잡지와 팸플릿 몇 가지를 들고 와서 서로 돌아가며 읽어보게 하였다. 단편소설이나 시도 읽고 사회과학에 관한 글도 읽었다. 프롤레타리아라는 단어가 여러 번 나왔을 때 박선옥이 손바닥을 쳐들어 이게 무슨 뜻이냐고 물었다. 이철은 아무것도 가진 것 없는 무산자를 말하며 우리 같은 노동자의 또 다른 명칭이라고도 알려주었다. 이철은 안대길에게서 들은 대로 옛날 서양의 로마 시대에 사회에 기여할 것이라곤 자신과 같은 노예를 재생산하는 능력밖에 없는 계급을 이르는 말이었다고 설명했다. 집중력이란 대개 한 시간에서 두 시간 이상을 유지하지 못하기 때문에 한 시간 동안에 책을 읽고 내용을 서로 묻고 감상을 이야기하고 남은 시간 동안은 친교활동을 했다. 그리고 공장의 동무들 가운데 진중하고 성품 좋은 이들 중에서 독서회에 참여할만한 이들을 서로 찾아보자고 이야기했다.


신금이는 공장 야학의 동급생 중에서 두 사람을 끌어들였고 이철은 남성 조장 한 사람을 찾아냈다. 조영춘 직공은 자신 보다 다섯 살 위의 청년이었고 보통학교를 나와 공업고보를 이년 다니다 중퇴한 이였다. 아직도 학업에 대한 꿈이 남아있어 돈을 모으면 일본에 가서 기사 자격을 따오겠다고 그는 말하곤 했다. 몇 달 사이에 조도 이철이처럼 공책 학습으로 식민지 노동자인 자신의 처지를 깨닫게 된다. 이이철과 조영춘은 박선옥과 더불어 방직공장의 기본 오르그를 이루었다. 이들은 바깥 중앙과의 연락 속에서 산별노조를 중심으로 연대해야 함을 알게 되었으며 이미 금속, 섬유, 화학, 출판 등으로 부서별 연대가 이루어지고 있음을 눈치챘다. 이철은 제사, 방적, 견직, 등의 공장마다 적게는 칠팔 명에서 많게는 십여 명 이상의 적색노조준비위가 연결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화학 분야의 고무공장들이 전국에 걸쳐서 도시마다 있었고 섬유분야도 방직공장이 경성에는 수십 곳이 있고 웬만한 대도시에도 서너 곳씩 있었다. 그리고 이들 대부분이 부녀자와 미혼 여성들이었다. 이들은 어떤 의미에서는 학교 문전은커녕 자기 집 담 밖에도 나가지 못하고 아버지가 정해 주는 남자에게 시집갈 날만 기다리는 수많은 자기 또래의 조선 처녀들에 비해서 과감하게 자기 인생을 개척해 나아갈 준비가 되어 있던 존재들이었다. 따라서 공장의 남자 직공들보다도 선진적이었다. 신금이가 이이철의 안내에 의하여 사회주의의 초입에 들어서긴 했지만 그때에 매우 개인적인 사건이 발생하게 되었다고 한다.
 철도원 삼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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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황석영(소설가)

「객지」 「삼포 가는 길」 『무기의 그늘』 『장길산』… 소설의 제목만 들어도 역사가 그려지는 한국의 대표 작가. 1943년 만주에서 태어나 4.19와 5.18, 방북과 망명, 수감을 거쳐 한국의 현대사를 온 몸으로 받아낸 시대의 증인이다. 2000년대 이후 장편소설 『오래된 정원』 『손님』 『바리데기』 『개밥바라기별』 『강남몽』 『낯익은 세상』 『여울물 소리』 『해질 무렵』 등과 자전 『수인』을 잇달아 펴내고 왕성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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