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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늘 을이야, 맨날 을이야

김먼지 『책갈피의 기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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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자는 내게 반문할지 모른다. “당신이 무슨 을이야? 네가 진짜 을의 기분을 알아?”라며 코웃음을 칠지도 모른다. (2019. 05.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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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늘 을이야. 맨날 을이야.
(김먼지 지음, 『책갈피의 기분』  64쪽)

 

2006년 가수 바이브는 3집 <Re-Feel>에서 ‘술이야’라는 곡을 발표한다. 타이틀곡은 ‘그 남자 그 여자’였지만 더 히트한 노래가 바로 ‘술이야’다. 한동안 남자들은 노래방에서 줄창 외쳐댔다. “난 늘 술이야 맨날 술이야.” 술을 안 좋아하는 나로서는 듣기 고욕인 노래였지만, 이 곡을 쓴 1980년생 가수 류재현의 이름을 똑똑히 기억하게 되는 계기가 됐다.

 

2019년 현직 편집자 김먼지는 이 노래를 패러디한 문장을  『책갈피의 기분』  64쪽에 쓰기 이르렀다. ㅠㅠ와 ㅋㅋㅋ를 오가며 이 책을 읽던 나는 온전히 ‘책갈피의 기분’을 느꼈다. 혹자는 내게 반문할지 모른다. “당신이 무슨 을이야? 네가 진짜 을의 기분을 알아?”라며 코웃음을 칠지도 모른다.

 

며칠 전, 작은 잡지사에서 인터뷰를 하자고 요청이 왔다.  『태도의 말들』 의 저자로 한 첫 번째 지면 인터뷰. 다행히 따로 사진을 찍지 않는다고 하여 흔쾌히 약속 장소로 나갔다. 인터뷰는 여성, 엄마, 직장인(워킹맘)에 포커스가 맞춰졌다. 기자는 물었다. “책을 쓰고 달라진 점이 있냐?”고. 예상했던 질문이었기에 술술 답했지만, 집에 돌아와 생각해보니 정말 하고 싶은 이야기는 따로 있었다. “저를 아주 하대하는 자리는 없어진 것 같아요. 제 책을 읽은 사람들은 제 눈치를 좀 보는 것 같기도 하고요. 우선 메일 회신이 굉장히 빨라졌고요. 3년 전 얼굴도 한번 보지 않았던 한 출판 마케터는 제게 무척 친근하게 ‘~씨’라며 하대하셨는데, 최근에는 갑자기 저를 ‘팀장’이라고 부르더라고요? 저 팀장 아닌데 말이죠. 하하.” 나는 솔직한 성격이라 위와 같이 말할 수 있었지만, 애써 문장을 고쳐야 할 기자의 노고를 알기에 적당히 말했다.

 

기자는 또 물었다. “작가님은 왜 갑을 문제에 관심을 많이 갖게 되었어요?” 아… 그렇다면 나의 초등학교 학창 시절 에피소드까지 꺼내 놓아야 하는가? 나의 첫 직장 생활이 ‘전천후 을’이었다는 사실을 밝혀야 하는가. 순간 3초 정적.

 

대학 졸업 후, 취업 공부를 딱히 하지 않은 나는 작은 홍보대행사에서 첫 직장 생활을 시작했다. 기자에게도 을, 클라이언트에게도 을, 회사 대표에게도 을인 정체성이 바로 ‘나’라는 직장인이었다. 내가 갑인 상황은 내 돈 주고 커피를 사먹는 순간 밖에 없었던 시절. 지금 생각해보면 이때가 나의 ‘을’로서의 절정, 전성기가 아니었나 싶다.

 

얼마 전 유명 작가와 편집자를 만났다. 나름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 대화를 이어갔지만, 아무래도 나는 ‘책갈피의 기분’을 느낄 편집자의 입장에 더 마음이 갔다. 작가의 눈치도 보고 기자의 눈치도 봐야 하는 상황. 왜 우리는 평행선으로 공평하게 대화하지 못할까, 조금 속상했다.

 

『태도의 말들』 을 쓰면서 꼭 쓰고 싶었던 문장이 하나 있었다. 경제학자 김재수가 『99%를 위한 경제학』  에 쓴 문장 “제가 선 곳을 잊지 않으려고 합니다. 을의 입장에서 세상을 바라보려고 노력합니다.” 나도 노력하고 싶기에 담고 싶었던 문장이다.

 

현직 편집자가 필명으로밖에 쓸 수 없었던 에세이  『책갈피의 기분』 을 어떤 사람이 많이 읽으면 좋을까? 바로 작가, 곧 저자들이다. 출판계 이야기를 소재로 한 책에 흥미를 갖고 있다면, 보이지 않는 노동의 손길이 궁금하다면, 김먼지 작가의  『책갈피의 기분』 을 읽자. 여기에서도 치이고 저기에서도 치이고 있다면  『책갈피의 기분』 을 읽고 위로를 받자. ‘나만 이렇게 사는 거 아니구나’, ‘내가 정말 배려할 상대는 ‘갑이 아니고 을’일지 몰라’, 반성하자. TMI를 하나 보태자면, 제철소에서는 곧 현직 문학 편집자가 쓰는 『문학하는 마음』이 출간될 예정이다. 은유 작가의  『출판하는 마음』  을 흥미롭게 읽은 독자라면 재밌게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출판사 이야기까지 보태는 이유는 동명의 독립출판물로 이미 인기를 얻은 김먼지 작가가 세 출판사의 프러포즈를 받고 '제철소' 출판사를 선택한 이야기를 238쪽에 밝혔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김먼지는 세 곳 중에서 가장 규모가 작은, 그리고 이 책과 가장 잘 어울리는 출판사와 계약을 했다.” 역시 김먼지 작가는 똑똑한 편집자다. 그에게 야망이 있었다면 큰 띠지를 포기하지 못하는 대형 출판사에서 책을 냈겠지? 157쪽의 명문장을 패러디 해본다.

 

박사님! 이 책이 당장 큰돈은 벌어다주진 못하겠지만, 오랫동안 박사님만의 가치 있는 콘텐츠로 기억되게 해줄 거예요. 방송으로 소비되는 이미지의 수명은 아주 짧습니다. 하지만 책은 그렇지 않아요. 책은 먼 훗날에도 박사님이라는 사람을 기억하게 해줄 겁니다. (157쪽)

 

-> 김먼지 작가님! 이 책이 당장 큰돈은 벌어다주진 못하겠지만, 오랫동안 김먼지 작가님의 개성 있는 콘텐츠로 기억되게 해줄 거예요. 광고로 만들어진 베스트셀러의 수명은 아주 짧습니다. 하지만 진짜 좋은 책은 그렇지 않아요. 작은 출판사에서 나온  『책갈피의 기분』  은 먼 훗날에도 김먼지 작가님이라는 사람을 기억하게 해줄 겁니다.


 

 

책갈피의 기분김먼지 저/이사림 그림 | 제철소
열정뿐인 신입사원 사이에 끼인 우리 납작이들에게 전하는 작은 위안과 응원의 메시지를 발견하게 된다. 그리고 모니터 앞에서 분연히 일으켜세워 다른 갈피에 접어두었던 삶을 꿈꾸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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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엄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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