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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터 2-10] 13화 : 저건 바람소리다. 누가 왔다고 그래.

『마터 2-10』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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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렁거리고 삐거덕거리며 뗏목이 서남쪽 방향으로 내달려 원당산 언덕에 당도한 것은 겨우 몇 분 만이었다. 주안댁은 그들을 언덕에 내려놓고는 다시 뗏목을 타고 어둠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고 했다. (2019. 05.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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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널예스>에서 황석영 소설가의 신작 『마터 2-10』을 매주 월/수요일 연재합니다.

 

 

경신년에 혼이 났던 총독부가 부랴부랴 경성 일대를 홍수로부터 안돈시키느라 해마다 물난리를 겪는 와중에도 제방 공사를 서둘러 끝냈다. 그렇지만 겨우 일 년 안에 해치운 날림공사가 분명했다. 지난번에도 그랬지만 이번에도 두 차례에 걸쳐서 폭우가 내렸고 홍수는 엎친 데 덮치는 식으로 몰려들었다. 칠월 초에 태풍이 다가와 비가 많이 온데다 미쳐 물이 다 빠져 나가기도 전에 중순에 다시 뒤를 이은 태풍이 서해안으로 몰려와 상류에서부터 물난리가 시작되어 경성의 저지대 전부와 고양 광주 양주 가평 시흥 김포 양평 등지가 물에 잠겼고 가까스로 완공한 한강변의 제방을 무너뜨리면서 용산 마포 영등포 일대를 흙탕물로 만들었다.


해마다 수해를 겪어 왔던 이백만 가족은 대개는 버드나무에 잇대어 가설한 정자 대피처에서 이삼일 견디고는 홍수의 고비를 넘기곤 했었다. 그해에도 장마가 시작되자 예년처럼 식수를 저장한 항아리를 정자 위에 올려두고 지붕에도 초가 이엉을 얹어 밧줄로 튼튼히 엮었다. 한쇠가 열세 살 보통학교 삼학년이었고 두쇠는 열한 살 이학년이었다. 비가 오기 시작하자 학교에서는 아이들을 출석만 부르고는 그대로 집으로 돌려보냈다. 아마 막음이 고모가 영등포 둘째 오빠의 집에 찾아온 것이 그해 봄이었을 것이다. 이전 해의 겨울에 주안댁이 세상을 떠났으니까.


이백만은 두 아이들을 데리고 뒤치다꺼리를 하며 어렵게 그해 겨울을 났다. 백만이 쪽에서 먼저 누이동생에게 와서 도와 달라고 청하지는 않았다. 이막음은 올케가 작고했을 때에 막내 오빠 이십만과 함께 와서 빈소를 지키며 장례 일을 도왔다. 큰 오빠 이천만은 배를 타고 해주에 올라가 있어 참석할 수 없었다. 이막음은 이웃집의 제 또래가 영등포 방직공장에 취직이 되었다는 소문을 듣고 자기도 이럴 때가 아니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오빠네 집에 아낙도 없으니 가사도 도울 겸 영등포에 가있다가 기회를 보아 공장에 취직할 길을 찾아야겠다고 결심했다. 막음이가 찾아가자 이백만은 겉으론 무덤덤하게 아무런 내색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백만이 한 달 뒤 월급을 타자마자 옷감을 끊어다 동네 재봉소에 맡겨 옷을 지어 입도록 한 것으로 보아 누이동생을 반긴 게 사실이었다. 막음이 고모는 이후 한쇠가 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오년 동안 조카들을 돌보며 오빠네 안살림을 맡았다.


막음이 고모가 그해 봄에 왔을 때 한쇠 두쇠 형제는 어른들 말로 이미 대가리가 커서 자기 앞치레는 할 만하게 철이 들어 있었다. 비가 억수로 내리던 그날 아이들이 학교에서 돌아오고 이백만도 공장에서 일찍 퇴근하여 온 식구가 모여 있어서 안심이 되었다. 오후부터 저지대에 물이 들기 시작했고 막음은 저녁을 보통 날보다 세배쯤 되게 지어 저녁밥을 먹은 뒤에는 주먹밥을 뭉치기 시작했다. 비상식량으로 누룽지도 모아 두었다가 꾸덕꾸덕하게 말린 것을 종이에 가득 싸두었었다. 골목 어귀에 물이 들기 시작하자 그래도 아직은 견딜만하다고 마루에 닿기 전에는 그냥 방에 머물러 있을 작정이었다.


처음 홍수 때에는 동네 골목으로 물이 들어오기는 했으나 어른 허벅지에 닿을 정도여서 마당으로 들이치는 물을 염려스럽게 바라보기만 했을 뿐 정자 위로 올라가지는 않았었다. 이삼 일쯤 개었다가 다시 폭우가 쏟아져 내리면서 쌓았던 제방의 곳곳이 무너지며 물이 한꺼번에 밀려들기 시작하고 영등포 전체가 물에 잠기기 시작했다. 이때에는 마루를 넘어 마당의 물이 어른 허리께에 차올랐다. 이백만 식구는 그제야 정자에 올라가서 밤을 새웠는데 물은 점점 더 차올랐다. 어둠 속에서 이백만 식구는 정자에 쪼그리고 앉아 뇌성벽력 소리에 잠을 이루지 못했다. 물이 마당을 뒤덮고 마루를 넘어 안방 건넌방으로 밀려들어갔으니 이보다 낮은 시장 사거리 일대는 사람의 키를 넘어섰을 것이었다.


한밤중이었는데 빗줄기는 줄지도 않고 계속해서 쏟아지고 있었고 물도 차츰 불어났다. 나중에 발표하기를 제방이 무너지고 평지였던 영등포 전체가 물에 뒤덮여서 가옥의 지붕이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고 하였으며 심지어 비교적 높은 지대였던 영등포 역전 부근마저 삼 미터의 높이로 침수 되었다고 했다. 일대에서는 공작창 부근의 철도관사가 있던 원당산 언덕만이 남아 있었다. 몇 해 전에 주안댁이 삿대로 뗏목을 저어 공장 사람들을 실어 날랐다는 그곳이었다. 아직 물이 거기까지는 차오르지 않았을 한밤중이었는데 누군가 대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막음이 고모의 말에 의하면 그때 아무도 마당에 들어찬 물을 헤치고 나가서 문을 열어줄 사람이 없었다고 했다. 이백만은 꾸벅꾸벅 졸고 있었고 한쇠가 제일 먼저 졸다가 깨어났다고 한다. 


 “고모 우리 엄마가 오셨어요.”


 이막음이 얼결에 말했다.


“아이고 그러면 어서 대문 열어 줘야지.”


했다가는 아니 그런데 올케가 세상을 떠났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건 바람소리다. 누가 왔다구 그래.” 


 “꿈에 엄마가 온다구 그랬다니까.”


와지끈 하는 소리가 들리고 대문이 활짝 열리더니 주안댁이 왕골 도롱이 쓰고 머리엔 삿갓까지 얹고 철퍽거리며 안으로 들어서서 가설 정자 위를 올려다보았다. 


 “아가씨 애들하구 어서 내려오지 않구 뭘하구 있소?”


그 소리에 정신이 번쩍 들었는데 한쇠가 제일 먼저 저희 어미에게 내려갔고 두쇠도 따랐지만 이백만은 코를 골면서 자고 있더란다. 


 “오빠야 언니가 델러 왔네. 얼른 일어나요.”


하니까 이백만은 그제야 일어나 누이를 먼저 내려 보내고 자기도 엉거주춤 내려왔다. 골목으로 나오니 뗏목이 기다리고 있어서 모두들 기어올랐고 주안댁이 맨 뒤에 올라서서 삿대로 밀어내기 시작하니 골목을 요리조리 빠져 나가 네거리라고 짐작되는 너른 물에 나왔다. 물이 점점 불어나고 뗏목이 요동을 쳤다. 아무튼 출렁거리고 삐거덕거리며 뗏목이 서남쪽 방향으로 내달려 원당산 언덕에 당도한 것은 겨우 몇 분 만이었다. 주안댁은 그들을 언덕에 내려놓고는 다시 뗏목을 타고 어둠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고 했다. 이런 이야기 역시 이백만은 나중에 다르게 말했다.


막음이 고모가 어려서부터 저 혼자 생각에 골똘하는 버릇이 있는데 제 머릿속에서 생각한 일을 사실이라고 믿어버린다는 것이었다. 그날 이백만은 공장에서 태풍이 올라오니 이번에 모든 직원들은 솔가하여 철도관사로 대피하라는 공지를 받았다고 했다. 퇴근하여 막음이와 한쇠 두쇠를 데리고 철도관사 동네로 갔고 공회당에서 사흘을 머물다 물이 빠진 뒤에 귀가했다고. 그런데 문제는 막음이 고모 혼자 주안댁의 도움을 기억하고 있는 게 아니고 한쇠까지도 엄마가 왔었다고 굳게 믿고 있던 점이었다. 한쇠는 그에 보태서 엄마가 김이 무럭무럭 올라오는 팥 시루떡을 하나씩 주어서 맛있게 먹었다고 그랬다. 그걸 뗏목 위에서 먹은 게 아니라 엄마가 나중에 나타나서 공회당 밖으로 불러내어 자기와 아우에게 주어서 비를 맞으며 먹어 치웠다고 한다. 


 “너희들 여기 있을 동안 엄마가 매일 와서 떡을 줄게.”


한쇠는 주안댁이 그랬다는 말까지 덧붙여서 말했다. 한쇠는 막음이 고모가 눈을 찔끔대며 아버지 있을 적에는 그런 얘기를 하지 말라고 당부했는데도 잊어버리고 신이 나서 떠들곤 했다. 한쇠 나이가 그때 열세 살이었고 보통학교도 다녀서 충분히 문리를 깨칠 무렵이었으니 나중에 그의 아내 신금이나 아들 이지산이 절반 정도는 믿을 수밖에 없었다. 두 살 터울이었던 아우 두쇠는 이백만의 편을 들었지만 그의 말은 곧 무시당했다. 한마디로 두쇠가 집안 돌아가는 사정에는 커서도 별 관심이 없었다는 게 그 이유였다. 두쇠는 주의자들에게 휩쓸려 일경에 쫓겨 도망 다니거나 옥살이로 세월을 보내지 않았냐는 것이었다.


막음이 고모는 한쇠와 죽이 맞아서 주안댁에 대한 여러 가지 전설을 만들어냈다. 이막음이 남편을 만나게 된 인연을 얘기할 적에도 주안댁을 놓치지 않고 끼워 넣었다. 그녀가 방직공장에 들어가 보려고 모집 공고가 날 적마다 오빠 이백만에게 부탁도 해보았고 돈을 모아 두었다가 반장하는 이의 아내에게 화장품도 사들고 찾아갔건만 언제나 허사가 되고 말았다. 그래도 보통학교는 나와야 되지 않겠냐는 것이었다. 그러니 이제 열 일고여덟이면 혼사 길을 찾아야할 나이라 대개는 시집이나 가지 뒤늦게 직공이 되려느냐고 좋게 거절만 당하였다. 그때도 모집공고를 보고 면접까지 하고는 같은 소리의 면박만 당하고 눈물바람하며 돌아오는데 대문을 열고 마당으로 들어서니 주안댁이 절구질을 하고 있었다. 


 “아이고 형님 여기서 뭘하구 있소?”


 주안댁은 예전처럼 우람한 몸집을 흔들며 공이를 절구에 쿵쿵 내려찧는 동작을 멈추지 않고 대답했다.


 “보면 몰라? 우리 한쇠 두쇠 떡해 줄라구.”


 “오빠가 무싯날에 떡 하면 화 낼 텐데 밥이나 합시다.” 

 

 막음이가 그랬더니 주안댁이 핑하니 웃으며 절구질을 계속했다.


 “벽창호 오기 전에 빻아놓고 갈 테니 시루에 찌는 건 아가씨가 해여.”


그러고는 방에 들어가 옷 갈아입고 나오니 주안댁은 온데 간 데가 없었다. 절구 안에는 뽀얗고 곱게 빻은 쌀가루가 담겼고. 그래서 막음이 고모는 그날 밥보다 먼저 떡을 찌게 되었다. 아이들은 학교에서 돌아와 오랜만에 허겁지겁 명절에나 먹는 팥 시루떡을 먹을 수 있었다. 막음이 고모는 오빠가 퇴근하여 돌아오기 전에 모든 흔적을 싹 치우고 된장찌개에 생선구이로 저녁 밥상을 차려냈고 아이들은 먼저 저녁을 먹었노라고 시치미를 떼었다고 한다. 이튿날 한가한 오후에 이막음이 낮잠을 한숨 자고 일어났는데 마루 끝에 주안댁이 앉아 있었다. 


 “아가씨가 어디 갈 데가 있어.”

 

주안댁이 이끄는 대로 따라갔는데 시장 초입이었다. 중년 남자와 젊은 사람이 덧걸이 가가를 짓고 있던 중이었다. 나무 기둥을 세우고 위에 지붕을 떠받칠 서까래를 얹고 원래의 집에 덧대어 길 쪽으로 점포를 내는 참이었다. 이막음이 옆을 돌아보니 자기를 끌고 왔던 주안댁은 보이지 않았다. 그녀는 서성이다가 젊은 목수에게서 말을 듣게 된다.


 “저리 비켜요. 거 왜 일하는데 거치적거려?”


 “우리 집두 고칠 데가 있어서 물어볼라구 왔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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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황석영(소설가)

「객지」 「삼포 가는 길」 『무기의 그늘』 『장길산』… 소설의 제목만 들어도 역사가 그려지는 한국의 대표 작가. 1943년 만주에서 태어나 4.19와 5.18, 방북과 망명, 수감을 거쳐 한국의 현대사를 온 몸으로 받아낸 시대의 증인이다. 2000년대 이후 장편소설 『오래된 정원』 『손님』 『바리데기』 『개밥바라기별』 『강남몽』 『낯익은 세상』 『여울물 소리』 『해질 무렵』 등과 자전 『수인』을 잇달아 펴내고 왕성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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